"네 가족이라고 [가상적(假想的)으로] 생각해 봐라!"는 말이 남한에서는 걸핏하면 등장한다. 세월호든 민식이든 종군 위안부든 사건 사고만 있으면 언필칭 등장하는 마법의 상투어이다. 

마법은 대응 마법으로 깨야 한다. "네 가족이 아니라고 [사실적(事實的)으로] 생각해 봐라!"

  거짓은 참을 이길 수 없다. 마찬가지로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다, 적어도 아우구스티누스 신학에서는. 가족이 아닌데 어찌 가족이라고 대접해 줄 수 있나, 뭐 상상은 해 볼 수도 있겠지만? 가족이 아닌데 가족이라고 대접해 준다면, 진짜 가족에게 미안할 일 아닌가?

  코빋-19와 관련하여 미국의 의료보험 제도가 도마위에 오른 모양이다. 이른바 의료사회주의의 대척점에 위치한 미국의 의료자본주의에는 까일 거리가 무수하지만, 미국의 현행 제도가 그리 되기까지에는 역사적 연원이 있으며, 그중에는 우연도 있고 필연도 있다.

  애초에는 어느 나라에도 국가적 의료보험 제도라는 것이 없었다. 이씨조선 시대에 병 생기면 의원 불러다 진맥받고 처방받아 약짓고 약 다려먹어 나으면 다행, 안 나으면 어쩔 수 없는 이런 식이 이씨조선 말고도 동서고금 수천년간 이어져 왔다. 돈 있으면 치료받는 거고, 돈 없으면 의원에게 읍소(泣訴)라도 해보다 마는 식으로...  흔히 "히퐄라텟 선서" 들먹이기 좋아하는데, 그것 들먹이는 사람들중 원문이든 번역문이든 선서 자체를 읽어 본 사람은 거의 한 명도 없을 거라고 본다. 거기에는 의사가 "환자를 가족처럼 여긴다든지, 환자에게 헌신 봉사한다든지"하는 말은 그 비숫한 말조차 단 한 글자도 안 나온다.

  제2차 세계 대전은 지금껏 지구인들이 겪은 전쟁중 가장 큰 규모의 전쟁이었다. 미국은, 프랭클린 루즈벭의 선거 공약이기도 하였지만, 이 전쟁에 대하여 처음에는 미적지근하였다. 와슁톤 돜트린이나 그것의 확장판인 몬로 돜트린을 상기해 보면 이는 당연할 일이리라. 그러나 여하튼 어찌어찌하여 결국 참전하게 되는데, 전쟁전 50만 병력이었다가 무려 천만 명이 넘는 대군을 전장에 보내게 된다. 그 결과 전시 특수를 맞이한 미국의 공장들은 심각한 노동력 부족에 시달리게 되며, 제1차 세계 대전때처럼 수많은 여자들이 공장에 취업하게 된다. (코빋-19때문에 지금 MLB대신 KBO라도 보고 있듯이, MLB대신 여자 야구선수들이 전국 릭전을 벌였다.)

  노동력 시장도 원래는 수요 공급 법칙에 따라 움직여야 한다. 그러나 전시에 그리 내버려 둘 수는 없는 법. 루즈벭는 "물가 통제법"을 만들어 임금도 동결하였다. 기업가들 입장에서는 법의 헛점을 노려서라도 뭔가 특전을 얹어주며 노동자들을 유인할 필요가 있었고, 거기 이용된 것이 바로 의료보험 혜택이었다. 이것이 미국 의료보장 제도의 특색인 "고용에 의한 의료보장"의 기원이다.

  전쟁이 끝난 후 영국을 필두로 하여 사지(死地)에서 돌아온 무산 계급을 회유/보상하기 위한 사회복지 정책이 속속 들어서는 가운데, 미국은 "첫 단추를 잘못 꿰면 마지막 단추 꿸 곳이 없다."는 속담대로, 하던 것을 그냥 계속 한 게, 고비는 좀 있었으나,  오늘날까지 이어져 왔다.

  여기에는 미국만의 고유한 사정도 물론 있다. 

미 연방 헌법의 전문(前文)은 다음과 같다. 
  "We the People of the United States, in Order to form a more perfect Union, establish Justice, insure domestic Tranquility, provide for the common defence, promote the general Welfare, and secure the Blessings of Liberty to ourselves and our Posterity, do ordain and establish this Constitution for the United States of America." (우리 합주국(合洲國) 인민들은, 우리 자신과 우리 후손에게 (1) 보다 완전한 연방을 결성하고, (2) 정의를 확립하고, (3) 국내적 평온을 보증하고, (4) 공동의 방어를 제공하고, (5) 위대한 복지를 촉진하고, (6) 자유의 축복을 보장하기 위하여, 미합중국(美合衆國)을 위한 헌법을 제정하고 확립한다.)

  연방 헌법 제정의 목적이 여섯 가지 열거되어 있고, 그중 마지막의 것이 "자유라는 축복의 보장"이다. "promote"보다 "secure"가 훨씬 더 센 동사이다.

  연방은 가입주의 내정에 간섭할 수 없다. 이것의 프랰탈은 주정부가 각 가족의 내정에 간섭할 수 없음이다.  의료보험에 들지 말지는 "사적 자치(私的 自治)"의 영역이므로 연방정부든 주정부든 강요할 수 없다는 것이며, 기업이 자기네 고용인(employee)에게 의료보험 혜택을 제공할지 말지 역시 고용자(emlpoyer)의 자유 의사에 달려 있다는 것이다.

  노예의 생명과 건강은 주인에게 매여 있다. 주인에게 노예는 한 재산 되므로, 아마도 대개는 잘 돌볼 것이다. 종군 위안부들도 포주한테서, 또  현지 주둔군 사령관한테서 대접받았을 것이다, 황금알을 낳는 거위이었을 테니까.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노예가 노예아닌 무엇이 됨은 결코 아니다. 비싼 가축일 뿐이다.

  국민의 생명과 건강을 국가가 책임진다? 세상에 공짜란 없다. 국가란 Gesellschaft이고, 자선 단체도 아닌데 그냥 그런 일을 해줄 리가 만무하니, (설령 자선 단체일지라도 요즘 정기연/정대협 보다시피....) 반드시 국민을 국가의 노예로 부리는 날이 온다. 가족이 아닌데 가족처럼 대접한다면, 그것은 '바라는 바'가 있기때문이다. 이 때 미국 정부는 남한 정부보다 적게 바랄 것이다.

덧붙이자면, 미국의 강제 의료 보험 제도 부재는 미국인들을 적자생존의 무한경쟁으로 밀어넣어 총합적으로 국가사회를 전진시키는 동력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몸이 튼튼하거나 머리가 좋은, 그래서 돈을 벌 수 있는 자들만 살아 남아라! 그리고 그런 자들만 이민 와라! 이점이 지구인들증 5%가 채 안 되는 미국이 그 아이디어나 그 발명이나 그 생산이나 그 영향력에서 5%를 아스라히 뛰어넘는 소이이다. 이 길이 아직까지는 성공적이고, 따라서 당분간은 바꿀 필요를 미국 '지도자들, 즉 강자들'이 느끼지 않음이 부재가 지속되는 소이이기도 하다. 미국의 코빋-19 만연도 같은 맥락의 체(filter)라고 볼 수 있다. 

2020-05-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