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미향과 이용수

 

2020.05.11.

 

 

총선 압승 후에 오는 필연적 수순인지 모르지만 진보진영 내에서 파열음이 벌써 들려온다.

최근 논란의 한 중심에 선 장본인들은 더불어민주당의 비례정당인 더불어시민당의 비례대표 당선자인 윤미향과 위안부 할머니의 대명사인 이용수 할머니(이하 존칭 생략)이다.

이용수는 정의기억연대(전 정대협, 이하 정의연)가 모금한 기부금이나 성금을 위안부 할머니 지원에 쓰지 않았고, 2015년 한일간 위안부문제를 합의할 당시 윤미향 정대협 대표가 합의 진행내용을 알면서도 위안부 할머니들에게 알려주지 않았다고 폭로했다. 그리고 학생들에게 증오와 상처만 가르치는 수요집회는 중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윤미향은 이용수의 기억이 왜곡되었다며 이용수의 폭로에 대해 반박하면서 의미심장한 이야기를 덧붙였다.

이용수 할머니와 관련해 “1992년에 신고전화를 했을 때에 제가 사무실에서 전화를 받았고, 모기소리만한 목소리로 떨면서 저는 피해자가 아니고, 제 친구가요...”하던 그 때의 그 상황을 바로 어제 일처럼 기억하고 있다고 말했다.

충격적인 내용이다. 이 말을 윤미향이 한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액면 그대로 해석하면 이용수는 가짜 위안부 할머니라는 것이고, 이런 가짜 위안부 할머니를 내세워 30년 동안 정대협은 대국민 사기극을 펼쳤다는 이야기가 된다. 물론 이용수가 자신이 위안부였다는 사실을 밝히는 것이 두려워 친구 이야기로 돌려 이야기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고, 윤미향도 이용수가 더 이상 떠들지 못하도록 이용수의 약점을 공개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이용수에게 보내기 위해 그런 말을 했을지도 모른다. 이 일이 수습되면 윤미향은 그 말은 이용수가 자신이 위안부라는 사실이 알려지는 것이 두려워 처음 신고 때 친구 이야기처럼 꾸며 했을 뿐, 나중에는 자신의 경험담이라는 것을 알았다고 말을 바꿀 수 있다. 어쨌든 윤미향은 이용수가 가짜 위안부였다고 말한 것은 아니니까 저렇게 말을 바꾸어도 더 이상 추궁하긴 어렵다.

윤미향은 본인이 언급했던 저는 피해자가 아니고, 제 친구가요...”라는 말에 대해 구체적인 부연 설명을 해야 하고 이용수의 위안부 진위에 대해 명확하게 밝혀야 한다. 이용수도 스스로 자신의 위안부 진위여부를 확인해 줌으로써 국민들이 더 이상 오해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그 동안 이용수의 증언이 시간에 따라 수시로 바뀌어 왔기 때문에 증언에 대한 신빙성이 의심받아 왔고, 정대협도 위안부 할머니들의 기억을 왜곡해 왔다는 의혹들이 많았다.

그 동안 공생해 오다 틈이 벌어지면서 역사의 진실이 드러나기 시작하는 것일까?

언론들은 이 사건을 단순한 해프닝으로 취급하지 말고 그 동안 정대협을 둘러싼 의혹들과 문제점들에 대해 심층 취재해 위안부 문제의 진실을 밝혀 잘못 알려진 우리 근현대사를 바로 잡을 기회로 삼아야 한다.

 

아래에 필자가 20157월에 썼던 위안부 문제를 어떻게 볼 것인가라는 글 중에 이용수와 정대협(현 정의기억연대)에 관련한 부분만 발췌해 따로 올린다.

그리고 위안부 관련하여 썼던 다른 글들(‘우리가 잘못 알고 있는 역사 - 위안부 문제’, ‘머래디스 머랜과 위안부 할머니, 그리고 박유하’)도 아래에 링크하니 참고하기 바란다.

http://road3.kr/?p=7779&cat=150

http://road3.kr/?p=3582&cat=121

 

 

<위안부 할머니들의 증언의 신빙성 - 이용수 할머니 사례를 보며>

우리가 알고 있는 위안부의 실상들은 대부분 생존하는 위안부 할머니들의 증언들을 통해서 형성된 것이 많습니다. 그런데 위안부 할머니들의 증언들이 처음에 진술했던 내용과 최근에 표현해 내는 내용들이 너무나 달라 위안부 할머니들의 증언의 신빙성에 의문을 갖게 합니다.

위안부 할머니의 대표적 사례로 언론에 자주 언급되었던 이용수 할머니의 증언을 시간대별로 정리해 보면, 위안부 문제가 처음 세상에서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시점인 90년대에 인터뷰한 내용과 정대협이 본격적으로 활동하고 사회적 이슈로 부각된 이후인 2000년대에 증언한 내용이 너무나 차이가 많아 위안부가 된 계기, 위안부 생활과 대우 등에 대해 무엇이 진실인지 헷갈리는 것이 많습니다.

이용수 할머니는 93~99년 사이 언론과 인터뷰에서는 19441016살의 나이로 위안부에 끌려가 19451월에 대만 신주시에서 가미가제의 위안부로 일을 했으며 하루 5~6명의 군인들을 상대했고, 자신을 살려주고 도움을 준 가미가제 특공대에게 사랑을 느꼈고 98년에는 이 특공대원과 영혼 결혼식도 올렸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용수 할머니는 2007년 미의회 청문회에 나와서는 전혀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으며, 2015년 워싱턴포스트에 실린 증언에서도 마찬가지로 90년대의 증언과는 엄청난 차이를 보이는 말을 하고 있습니다.

자신은 19441016세의 나이로 위안부에 끌려왔다고 하면서도 3년간 일본 위안부 생활(19458월 일본군이 항복했으니 10개월의 위안부 생활이 됨. 대만에서 위안부 생활을 했다고 했음으로 일본군의 항복 후에는 위안부 생활을 하지 않았음)을 했다는 앞뒤가 맞지 않는 이야기를 하는가 하면, 하루에 적게는 20, 많게는 70번 성관계를 강요받았으며, 생리중에도 성관계를 할 수밖에 없었다고 증언합니다. 93년 첫 증언에서는 하루에 5~6명을 상대했다는 증언과는 그 횟수에 엄청난 차이를 보이고 있죠.

가미가제 특공대원이 자신을 살려주고 도움을 주어 사랑을 느껴 98년에 그 특공대원과 영혼결혼식도 올렸다고 98년에 증언했는데 2007년에는 이런 내용 대신에 대만으로 가는 배 안에서 일본군 300명에 강제로 강간을 당하고 전기고문을 당했으며, 다른 위안부들은 요구를 거부하여 칼을 가지고 쭉쭉 째는 폭력과 죽임을 당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런 내용은 90년대 처음 증언 때에는 나오지 않던 것들이죠.

그러면서 자신은 종군 위안부가 아니라 일본군 성폭력 피해자이며 조선의 딸이다고 강조합니다.

이용수 할머니는 60대 나이에 증언하지 못한 기억들이 70~80이 넘어 새롭게 기억들이 되살아난 것일까요? 저는 이용수 할머니가 일부러 거짓말을 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첫 증언 이후 세간의 관심을 받고 정대협활동을 하면서 기억의 편린들 사이의 조각들을 활동하면서 들은 이야기들로 보충하고 그러는 사이 이것들이 자신의 과거 경험이라고 기억 속에 재편입되어 버린 것으로 보입니다. 재편입된 가공된 기억들이 2007, 2015년에는 재생되어 나오게 된 것이 아닌가 합니다. ‘정대협활동 중에 집단 극단화 과정을 거치면서 자신의 개인적 경험과 기억들이 정치적, 조직적 요구에 의한 경험담으로 각색되어 대체된 것이라 저는 보지요.

컴퓨터는 모든 정보를 세세하게 다 저장하는 반면에 사람의 뇌는 기억할 공간이 한정되어 있어 자신의 감각기관으로부터 들어온 모든 정보를 저장할 수 없기 때문에 중요한 부분만 키워드 형태로 저장하게 되고 나중에 기억을 되살릴 때는 그 키워드들만 재생하고 키워드 간의 빈 공간은 기억해 낼 당시의 상황에 맞춰 스스로 가공해 엮어 내게 됩니다. 초등학교 동창생 모임에서 동창생들이 큰 줄기에서는 기억들이 유사하지만 디테일한 내용에서는 각자가 다르게 기억하는 것도 이와 같은 우리 뇌의 특성에 기인하는 것이고, 같은 사람이 똑같은 과거의 기억들을 기억을 말할 때마다 조금씩 다르게 재생해 내는 것도 같은 이유입니다.

마찬가지로 이용수 할머니도 초기에 기억했던 위안부에 대한 키워드들 사이의 디테일한 기억들을 개인의 삶에 초점을 맞춰 가미가제 특공대와의 사랑으로 재생하여 증언했지만, 정대협 활동을 통해 위안부 문제가 정치적 사건이자 역사적 문제로 부각됨으로 인해 자신의 기억의 편린들 사이의 디테일을 이에 맞춰 구성하게 되는데, 이 가공되는 디테일의 내용들이 정대협 활동을 통해 들은 내용으로 채워지고 또 그런 방향으로의 구성을 알게 모르게 강요받은 환경에 노출됨으로써 이런 왜곡된 기억들이 강화되었던 것이죠.

제가 이용수 할머니의 기억이 정치적으로 왜곡되어 채워지고 있다고 보는 근거는 또 있습니다. 이용수 할머니는 2012년 통합민주당(현재 새민련)의 비례대표로 출마한 적이 있습니다. 비례대표는 되지 않았지만, 정치적 관심이 많았다고 볼 수 있지요. 그리고 정대협의 주변 환경과 상황이 이용수 할머니의 기억을 왜곡시켰다고 봅니다. 정대협의 간부들의 면면들을 보면 이들이 진정 위안부 할머니의 경제적, 정신적 어려움을 어루만져주려고 하는 것인지, 정치적 목적을 가지고 위안부 할머니를 이용하고 있는지 의심할 수밖에 없습니다.

정대협의 상임대표인 윤미향의 남편은 1994년 남매간첩단 사건으로 4년형을 선고 받고 복역한 김삼석이고, 손미희 대외협력위원장은 40차례 방북하고, 통진당 해산을 반대했으며, 김정일 조문을 주장했던 인물이죠. 또 그 남편은 맥아더 동상 철거 등 반미집회를 주도하다 실형을 산 사람입니다. 정대협 간부들 중 일부는 박근혜 퇴진을 주장하는 등 시국활동에 참여했습니다. 이런 정대협 간부들이 정대협 활동을 하면서 위안부 할머니들에게 어떤 말들을 전하고 어떤 식으로 위안부 할머니들을 유도했을까는 충분히 짐작할 수 있죠. 정대협 간부들과 위안부 할머니들끼리만 모여 있다 보니 서로의 경험담이 상승작용하고 거기에다 간부들의 정치적 논리가 가세하여 집단 극단화 현상이 일어났다고 봅니다. 이용수 할머니도 이런 환경에서 정대협 간부진들의 반복되는 말들에 자신이 경험하지 않았음에도 경험한 것처럼 왜곡된 기억들을 부지불식간에 쌓아갔다고 저는 추측합니다.

그래서 저는 이용수 할머니의 위안부에 대한 증언은 90년대 첫 증언시의 내용이 사실에 가깝고 정대협 활동 이후의 2007~2015년의 EBS 다큐 <시대의 초상>, 미의회 증언, WP의 기사는 과장과 왜곡이 많았던 것으로 생각합니다.

따라서 위안부 문제도 한일 쌍방간에 객관적 사실에 대한 인식의 괴리 매우 심하다고 보이며, 이런 괴리로 인해 한일간 위안부 문제의 해결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봅니다. 상호간 객관적 사실에 대한 인식 간극을 좁히거나 해소하지 않은 이상 쉽게 이 문제를 해결하기 힘들다고 보지요. 그 괴리의 책임이 일본에만 있다고 보기 힘들고, 저는 상당 부분 우리 쪽에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정대협은 위안부 할머니들을 진정으로 돕고 있는 것일까 - 그 정체와 재평가>

위안부 할머니를 돕고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연구하며 일본의 사죄와 보상을 요구하는 단체인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이하 정대협)는 과연 지금 그 본연의 목적을 위해 일을 하고 있는지 솔직히 의문이 갈 경우가 많습니다.

일본군 위안부와 정신대는 엄연히 다름에도 불구하고 명칭이 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라는 것을 보아도 이 단체가 애초에는 위안부 문제에 대해 제대로 모르고 있었다는 반증입니다. 이 단체는 1992년부터 매주 수요일에 일본 대사관 앞에서 수요시위를 진행하면서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국내외에 알리고 일본의 사죄를 촉구하는 등의 긍정적인 일을 하는 것은 저도 인정하지만, 이 단체를 이끌고 있는 인사들이 사심 없이 진정성을 갖고 위안부 문제를 제기하는지에 대해서는 선뜻 동의하기 힘들어집니다.

정대협은 일본이 일본 위안부들에게 사죄와 함께 보상을 하겠다며 내놓은 아시아여성기금을 통한 보상금 수령을 적극 반대함으로써 실질적으로는 위안부 할머니들의 경제적 어려움을 해소하는 것을 방해했습니다. 당시(1997~2002) 우리 돈으로 1인당 3천만원에 이르는 보상금은 어려운 처지에 있는 위안부 할머니들에게는 경제적으로 상당한 도움을 줄 수 있는 것이었습니다. 정대협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아시아여성기금으로부터 보상을 받은 일부 위안부 할머니들(대부분 정대협소속이 아니라 무궁화할머니회소속)에게는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기도 했지요.

한국 위안부 71명과 대만, 필리핀, 인도네시아 등의 위안부들 285명은 아시아여성기금으로부터 사죄와 함께 보상을 받고 더 이상 위안부 문제를 거론하지 않고 있습니다만, 유독 한국만 현재까지도 위안부 문제를 제기하고 있습니다. (중국은 일본으로부터 위안부 문제 등 제반 부문에 대한 배상금과 보상금을 받지 않겠다고 했고, 네덜란드 위안부들은 일본의 인정과 사죄를 받아들이는 대신 보상금 수령은 사양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또 다른 위안부 할머니 모임인 무궁화할머니회는 아시아여성기금으로부터 보상금을 수령하려 했고, 이 과정에서 정대협과 의견 충돌로 현재 극한 대립관계를 보이고 있죠. ‘무궁화할머니회는 부산지역을 중심으로 한 위안부 할머니들의 모임으로 정대협보다 먼저 결성된 단체로 순수한 위안부 할머니들의 모임이었고, 위안부 할머니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주고자 활동했습니다.

정대협은 아시아여성기금의 보상을 거부하고 일본을 상대로 보상금 지급 소송을 제기했지만, 모두 패소하게 되어 아시아여성기금으로부터 보상금을 받지 못한 위안부 할머니들이 아직도 한 푼의 보상금도 받지 못하게 되어 할머니들의 경제적인 어려움을 해결해 주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 단체(정대협)의 지도급 인사들은 위안부 문제를 사회적 이슈로 부각시키며 정치문제화 하고 그 과정에서 자신들의 인지도를 높이고 그것을 이용해 국회의원이나 장관(지은희, 이미경) 등 제도권 정치에 입문하는 개인적 영달에는 성공했는지 모르지만 위안부 할머니들에게 실질적 도움을 주지는 못했습니다. 실질적 도움은커녕 위안부 할머니들의 현재의 고통은 무시하면서 위안부 할머니들의 개인적 경험이나 기억들을 소거시키고 오로지 일본에 대한 원한만 되살리기를 요구하고 항일 투사로 나서기를 강요하고 있지요. 위에 이용수 할머니의 사례를 설명드렸지만, 정대협은 위안부 할머니들에게 왜곡된 기억을 강제하고 과장과 거짓을 은연중에 강요하면서 할머니들을 이용한다는 느낌도 지울 수 없습니다.

그 동안 위안부문제에 관해 정대협의 소수 관계자들만이 독점하고 이들이 위안부문제에 관한 한 한국의 입장을 결정했으며, 이들의 의견이 한일관계를 좌지우지하는 상황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국민의 대일정서에 편승한 이들의 주장에 대해 감히 어는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지 못하고 지낸 것이 20년이 넘은 것이죠. 이들이 위안부 문제에 대해 객관적 사실을 왜곡하고 위안부 할머니들에게 자신들의 주장에 부합하는 이야기를 은연중 강요하더라도 누구도 나서서 바로 잡을 생각을 하지 못했습니다. 이젠 사실은 사실대로 돌려놓고 정대협도 본연의 목적에 충실하도록 국민들이 나서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