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자의식과 인식간 충돌

 인간은 비판적 회의, 회의적 비판기제가 작동하기 바로직전까지, 외부환경을 여과없이 받아들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그 여과없는 받아들임이 차곡차곡 축적된 데이타베이스는 인간 자의식의 '근거' 로 기능합니다.
 (상기 명제는 태아/유아교육의 중요성을 역설하는 객관적 근거입니다.)

 그러나 비판적 회의, 회의적 비판기제가 작동하는 순간부터 더이상,
 바로직전과 같은 데이타베이스의 선형적 또는, 기하급수적 축적이 불가능합니다.

 이는 더이상, 외부환경을 여과없이 받아들이지 못하게 되기 때문이며 따라서, 인간 자의식의 '근거' 또한 양적으로 한정된 상태로 정체됩니다.
 (아이러니하게도 비판적 회의, 회의적 비판기제가 작동하기 시작하면서부터 소위, 머리가 '굳기' 시작한다고 표현하죠!)



 그렇다면 비판적 회의, 회의적 비판기제는 어떠한 조건에서 작동하기 시작할까요?

 지금까지의 데이타베이스와 상호모순되는 새로운 외부환경 소위, '신세계' 에 발들이거나 발들여지기 시작하면서부터입니다. 예들어,
 북한주민들이 한류드라마를 접하기 시작하면서 코리아드림을 동경한 나머지 탈북을 기획하거나 실제, 실행하는 사례입니다.

 정리하면 비판적 회의, 회의적 비판기제가 작동하기 시작하면서 인간 자의식은 정체되는 반면(= 머리가 '굳기' 시작하는 반면),
 자신의 자의식을 배반하는 '인식' 과 마주하기 시작합니다. 예들어,

 유년시절 아버지로부터 유교교육을 철저히 받아온 김군이 남녀혼탕이 자유로운 북유럽에 여행갔다가
 자신의 자의식, '남녀칠세부동석' 을 배반하는 '북유럽의 성에 대한 인식' 과 마주하는 사례입니다.



 당신의 공고했던 자의식에 쇼크를 가한 그 모든것을 '인식' 이라 불러도 좋습니다.
 어두웠던 등잔밑을 밝혀주는 것을 '인식' 이라 할수도 있겠네요.



 2. 올 어바웃 사이언스

 자신의 자의식에 집착하면 등잔밑을 밝힐수 없습니다.
 의식이 정역학적이라면 인식은 동역학적이죠

 이정도쯤되면 다음의 반문이 횡행합니다.

 '그렇다면 자의식을 배반하는 인식이 세상에 한두개가 아닐텐데
  그 한두개가 아닌 인식s을 죄다 수집할때까지 주구장창 인식s만 구하러 다녀야합니까?'



 메커니즘이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다음과 같이 정의하겠습니다.

  메커니즘 : 현상 A로부터 현상 B를 100이면 100번 재현(replay) 하는 방법론



 메커니즘에 의존하여 사는겁니다. 예들어,
 똥을 섭취하지 말아야 하는 정당화된 규범 따위는 없습니다. 그러나,
 똥을 섭취하면(현상 A) 구토, 설사, 장염 등의 발병(현상 B)이 100이면 100번 재현되는 메커니즘을 아니까 '굳이',
 똥을 섭취하지 않는것입니다.

 그리고 그 메커니즘을 규명하는 것을 '과학' 이라 부릅니다.
 과학의 최고 순기능은 '피곤한 믿음' 에 '굳이', 의지하지 않게 해준다는 겁니다.

 물론, 과학은 믿음을 버리라는 규범 또한, 제시하지 않습니다.
 다만, 굳이 그럴 필요없는 것들을 가려주지요.



 저는 인생을 또는, 생명의 삶과죽음을 영화 '큐브' 에 비유합니다. 
 몇가지 굵직굵직한 메커니즘이 실작동하고 그 메커니즘을 인식한만큼 보다더 여유로워지고 풍요로워지는것은 시간문제입죠

 물론, 과학은 보다더 여유로워지고 풍요로워지라는 규범 또또한, 제시하지는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