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오지 않는 다리가 있다. 판문점 가는 길에 있는데, 일반인들은 임진각에서 멀리 구경할 수 있을 뿐이다. 이 다리를 건너 북한으로 가면 다시는 남한으로 되돌아 올 수 없기에 그런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일종의 미늘톱니(ratchet)같은 것이다.

땅뿐만 아니라 인간에게도 돌아오지 않는 다리가 있다. 예컨대 어미 뱃속에서 한 번 나와 버리면 도로 태아가 될 수는 없는 노릇이다. 학교 졸업했으면 다시 그 학생이 될 수 없음도 마찬가지이다.

인간의 몸뚱이만 그런 것이 아니라 마음 또한 그러하다.

좌파이다가 우파가 되는 경우는 있어도, 우파이다가 좌파가 되는 경우란 없다. 만에 하나 있다면 우리는 이것을 "치매" 혹은 "약(藥) 빨았다"고 부른다.

우파(右派) vs 좌파(左派)
부유(富裕) vs 빈곤(貧困)

이 둘을 결합하면 네 종류의 인간이 나온다.
(4% 인중인(人中人), 16% 인중민(人中民), 16% 민중인(民中人), 64% 민중민(民中民)이라는 네 종류와도 어느 정도 통한다.)

제1: 부유 좌파 (富裕 左派) (브라만에 해당)
제2: 부유 우파 (富裕 右派) (크샤트리아에 해당)
제3: 빈곤 우파 (貧困 右派) (바이샤에 해당)
제4: 빈곤 좌파 (貧困 左派) (수드라에 해당)

어차피 정권은 (1)의 손에서 (2)의 손으로, 다시 (2)의 손에서 (1)의 손으로 오간다. 혁명이라도 일어나면 (3)이나 (4) 출신이 잡기도 하는데, 잡는 즉시 (1)이나 (2)가 되니 별 다를 것도 없다.

문제는 이 둘의 정치 행태가 판이하다는 점이다.

(1)이 정권을 잡았을 때, 이들은 최대한 (4)의 숫자를 늘리려고 노력한다. 돌아오지 않는 다리 이론에도 불구하고 (3) → (4) 전환까지 시도한다. 집값을 올리고, 실업률을 올리고, 의료비를 올리고, 세금을 올리고, 식료품값과 밥값을 올리고, 빈부 격차를 올리고... 그래야 자기네들이 영구 집권 할 수 있다고 믿는다. 실제로 김일성-김정일-김정은 삼대까지는 성공하였다.

(2)가 정권을 잡았을 때, 이들은 최대한 (4)의 숫자를 줄이려고 노력한다. (4)를 (3)으로 만들려 시도하는데, 그 방법은 (1)의 행태의 정반대, 거울 상이다. 물론 이것이 뭐 (4)가 예뻐서는 아니다. 다 자기네들 영구 집권을 위한 계략이다.

좌우파 각각의 계략은 그렇다치고, 대관절 (4)에게는 (1)이 도움이 되는 존재인가, (2)가 도움이 되는 존재인가? (4)로 사는 게 과연 행복할 수 있는 일인가? 누군들 (4)로 영원히 살고 싶겠나? 빈곤 탈출을 하려면 (1)을 골라야 하는가, (2)를 골라야 하는가?

지구인들의 어리석음이 서글프다. (4)에게 (1)이란 알고 보면 날강도같고 기생충같은 사기꾼 놈들인데; 이런 놈들을 은인으로, 스승으로, 지도자로, 애국자로 잘못 알고 무조건 선거에서 찍어주니 말이다.

2019-12-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