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남자치고는 눈물이 많은 편이다. 하지만 엉엉 울거나 큰 소리로 울지는 못한다. 남자는 울면 안된다는 자기 최면을 너무 많이 걸었기 때문이다. 그나마 드라마나 슬픈 영화를 보며 눈물을 흘리기 시작한 것도 대학원 이후 부터였다. 대학 들어 갈 무렵부터 대학원에 다닐 때까지 나는 눈물을 거의 흘리지 않았다. 눈시울이 뜨거워 진 적은 많았지만 안간 힘을 다해서 눈물을 참았다. 아니 마치 무의식적으로 눈물을 두려워한 것인지도 모른다. 눈물이 참는다고 나오지 않는 것은 아니니까.


성인이 된 이후 내가 마지막으로 큰 소리 내며 울었던 날을 기억한다. 대학원에 들어가서 집단상담 실습을 한 다음 날 아침이었다. 그날 나는 1시간을 넘게 울었다. 자리에서 일어나서 거울을 보면서 나도 모르게 혼잣말을 몇 마디 하는데 갑자기 눈물이 나오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그러더니 걷잡을 수 없이 눈물이 나오기 시작했고 곧이어 나는 엉엉 소리 내며 울다가 그것도 모자라 이불 위를 뒹굴며 울었다. 미친놈처럼, 정신 나간 놈처럼 눈물과 콧물을 온 얼굴에 뿌려가며 1시간을 울었다. 누가 들을까, 누가 이런 나를 볼까 두려워하면서도 터져나오는 눈물과 울음을 주체할 수 없었다. 내 속에 이렇게 많은 눈물이 있었는지, 사람이 이렇게 많은 눈물을 흘릴 수 있는지 나는 그 때 처음 알았다. 나라는 존재는 울음 그 자체로만 존재했다. 아무 생각도, 어떤 구체적인 이유도 없이 그저 울기위해 울었다. 나라는 존재 전체가 마치 울음인 것 처럼 그렇게 한 시간을 흘려 보냈다.


그렇게 울면서 나는 비로소 내 눈물의 역사를 하나하나 기억할 수 있었다. 원래 눈물 많고 마음 약한 내가 언제부터 울음을 죽이기 시작했는지, 그리고 그 날 이전에 언제 또 울었는지.


돌이 되기 전에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어머니는 혼자서 날 키우셨다. 힘들고 어려웠던 시절인 만큼 어머니는 매일 매일 늦게 들어오셨고 나는 우리집 근처 공장의 차가운 돌계단에 앉아서 어머니를 기다리곤 했다. 다섯 살 무렵이었던 것 같다. 하루는 어머니는 아무리 기다려도 오시지 않았고 나는 차가운 돌계단에 엎드려서 돌바닥의 냄새를 맡으면서 그게 울 엄마 냄새 같다고 생각했다. 눈물이 흘러 돌계단을 적셨던 것 같다. 그리고 어느새 난 잠이 들었다. 깨어보니 집이었고 어머니는 내가 좋아하는 계란요리를 하고 계셨다. 우셨는지 어머니의 눈도 발갛게 부어 있었다.


그날 이후 난 가능하면 울지 않으려고 했다. 웬만큼 외로워도 울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했다. 어머니가 늦게 돌아오시면 오히려 웃으면서 혼자 잘 놀아서 좋았다고 이야기했다. 어머니가 어디에 같이 가자고 하시면 난 혼자 있는 것이 좋다고 말하곤 했다. 초등학교에 들어가서는 난 집에서 책읽는 것이 좋아서 어머니와 같이 가지 않는다고 말하곤 했다. 아버지가 우리에게 남겨주신 것은 엄청난 분량의 책이었다. 아버지는 등단을 하시지는 않으셨지만 시인이셨고 친구들 대부분이 문인이어서 책을 많이 가지고 계셨다. 어머니는 다른 것은 몰라도 책을사는 것에는 인색하지 않으셨고 친구에게 책을 얻어 오는 경우도 많아서 우리 집에는 정말 책이 많았다.


난 방에 틀어박혀 늘 책을 읽었다. 초등학교 4학년 때 <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을 읽었고 5학년 때 <희랍인 조르바>와 <세익스피어 희곡집>을 읽었다. 뜻을 이해하고 읽는 것은 아니었다. 활자라면, 그리고 이야기가 된다면 무엇이라도 좋았다. 심지어 <세계인명사전>을 펼쳐서 한명 한명에 대한 생의 요약서를 읽기도 했다. 일전에 포스팅한 글에 나오는 후스의 일화는 그 당시에 읽은 인명사전에서 본 내용이다.


활자를 읽고 있으면 그 활자가 마음 속에 묘한 느낌을 불러 일으켰고 나는 어두운 방안을 떠나 활자들로 이루어진 세계 속을 거닐곤 했다. 어려운 단어들은 제 각기 묘한 여운을 울리면서 어떤 신비로운 개념들, 내가 모르지만 무언가 심오한 개념들이 이 세상에는 넘실거리고 있다는 것을 암시해 주었다. 멋대로 그 개념의 뜻을 상상하면서 시간을 보내는 것은 그래도 즐거운 일이었다. 어머니가 오시기 전까지 외로움을 잊을 수 있는 유일한 일이기도 했고. 지금도 앓고 있는 활자중독증은 그때 생겨난 것이다.


집단상담 실습은 대학원생이 직접 집단상담의 대상자가 되어 상담에 참여하는 것으로 이루어졌다. 구조적 상담이어서 각기 자신의 그룹내 이름을 정하고 각자 초등학교 이전의 기억을 이야기하는 시간이었다. 내 어린 시절, 청소년 시절에 대해 친구들이나 후배들에게 이야기한 적이 거의 없던 내게 이 세션은 어색하고 힘든 것이었다.


어린 시절의 기억은 늘 슬픔과 외로움으로 점철된 것이었다. 그래서 가급적 어린 시절이나 청소년시절의 이야기를 친구들이나 후배들에게 꺼내는 일이 없었고 후배들에게 대충 존경받는 선배역할을 하던 나는 언제나 웃고 명랑한 표정만을 짓곤 했다. 억지로 그랬다기 보다는 원래 성격이 낙천적이었고 그런 관계로 내 삶의 상처들을 불행으로 간주해 본 적이 없었다.


결국 어머니와 헤어져 복지시설에서 자라게 된 나는 이 세상에 얼마나 불행이 넘쳐나는지 충분히 알고 있었고 그에 비해 내가 얼마나 행복한지도 느끼고 있었으니까. 모두가 불행할 때에는 자신의 불행이 별로 대단한 것으로 여겨지지 않는 법이다. 행불행은 대부분의 경우 상대적인 개념이니까.


어색하고 어렵게 첫 마디를 시작했다. 늘 혼자였고 늘 책을 읽곤 했다고. 아니나 다를까 몇몇 후배들이 놀란 표정으로 나를 보고 있었다. 나는 멋쩍게 웃어주었다. 어색하고 힘든 자기개방의 시간을 마치자 참가자들끼리의 피드백이 있었다. 대부분 내가 그런 어린 시절을 보냈으리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그래도 잘 이겨내었다 등등의 지지와 격려성 발언이 이어졌다.


세션이 끝나고 차와 다과를 마시고 잡담을 할 때 한 아이가 내게 다가왔다. 어려운 자기 고백을 마친 다음이라서 어색한 표정을 애써 감추면서 농담을 하며 커피를 마시는 중이었다. 커피 맛이 몹시도 까끌까끌 했다. 그 아이는 1초 정도 나를 바라 보고 있었다. 나랑 비교적 친하게 지내던 후배였다. 학부전공이 달라서 기본적인 개념이나 용어해석에 약해서 늘 나를 따라다녀서 때로는 귀찮기도 했던 아이였다. 왜 이리 빤히 쳐다보지? 뭐라고 말을 꺼내려는 찰나 그 아이가 입을 연다.


“난 선배가 부러워요. 그래도 그 덕에 그 많은 지식을 가지게 되었잖아요. 나도 차라리 힘들었을 때 책 속으로 도망갔으면 좋았을 텐데.....”


그런 것이다. 숨기고 싶던 상처가 타인에게는 부러움의 대상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니 어떻게 내가 자기연민에 빠질 수 있을까? 침을 삼키고 웃으면서 그래, 그럴 수도 있겠네...라고 대답했다. 그 아이는 다시 1초 정도 나를 바라보았고 나는 눈을 피한 후 그 자리를 피해 버렸다.


그 다음날 아침 나는 늦잠을 잤다. 그리고 천천히 거울로 다가갔다. 거울 속의 나를 보면서 나도 모르게 속삭이고 있었다.


“다른 아이들이 나 같은 슬픔을 가지고 자라게 하지 말자.......... 절대로 그런 일이 다시 있게 하지 말자....... 이 세상 모든 아이들이 행복하게 자라게 하자”


그때였다. 갑자기 눈물이 쏟아져 나온 것은. 내가 속삭이는 말들이 얼마나 말이 안되는지, 얼마나 멍청한 말인지 느껴졌고 그래서 내 안의 어떤 녀석은 웃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눈물은 계속 쏟아졌다. 그리고 한 시간 동안 격렬하게 나는 울었다. 가슴 한 가운데가 마치 망치로 두들겨 맞는 것 처럼 아팠다. 가끔 찾아 오곤 하다가 애써 묻어 두었던 동통. 슬퍼서 우는 것인지, 아파서 우는 것인지 알 수 없을 만큼 나는 아프면서 슬펐다.


삶이 팍팍하고 메마르게 느껴질 때 가끔 그날의 눈물을 생각하곤 한다. 그때의 슬픔이 어찌나 강렬했던지 그 장면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욱씬 동통이 느껴진다.


그날의 슬픔은 자기연민이었을까? 그래, 그럴지도 모른다. 누구도 불쌍하게 보지 못하게 만드느라 온 힘을 썼든 나는 그날 처음으로 나 자신을 불쌍하게 보고 동정해 본 것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안다. 이 세상에는 정말로 많은 슬픔과 아픔이 있다. 내 슬픔과 아픔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큰 슬픔과 아픔이 넘쳐나고 있다. 그러나 스스로의 슬픔을 진정으로 느낄 수 있어야 타인의 슬픔도 느낄 수 있는 것이다. 그러니 가끔은 내 슬픔을 풀어 주고 묵묵히 바라 볼 수도 있어야 하는 거다. 남들이 나를 불쌍하게 생각할지 모른다는 두려움은 잠시 접어두어도 괜찮지 않을까? 

내가 하는 일이 매너리즘으로 바뀌는 것 같고, 내 감정이 소진되어 버리는 것 처럼 느껴질 때 나는 그날 아침을 떠 올린다. 그러면 어느새 내 가슴에는 강렬한 감각이 되살아 난다.
 아픔과도 같은 슬픔. 혹은 슬픔과도 같은 아픔. 그러면 삶에 대한 느낌이 다시 달라진다. 무미건조한 삶이라는 없는 것이다. 이토록 슬프고 아픈 것이 삶일 수도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걸 견디고 이겨내며 남의 아픔과 슬픔을 덜어 줄 수 있어야 하는 거다.


슬픔이 때로는 삶의 힘이 되어주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