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은 생각의 간극이 너무 커 자의반 타의반으로 절연하다시피 교류가 없다가 모처럼 연락이 와 만났던 선배(80년대 함께 학생운동을 했음)에게 보냈던 카톡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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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O형에게

 

2019.12.09.

 

지난 토요일, 형 집을 그렇게 나오고 난 후 내내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방문을 결심할 때는 그런 일은 없도록 하자고 마음을 다 잡고 갔는데 아직 혈기가 남은 것인지 나이가 들어 고집만 는 것인지 모르지만 애초의 다짐을 지키지 못했네요. 오랜만에 만나 서로 얼굴을 붉히며 나와 죄송합니다.

 

그 날 제가 드리지 못했던, 형이나 OOO(대학시절 언더 써클) 사람들과 나누고 싶었던, 이야기를 해 볼까 합니다. 글이 길어지더라도 인내를 가지고 끝까지 읽어주시길 바랍니다.

저는 형을 설득하고자 글을 올리는 것은 아니니 그냥 후배가 하는 넋두리라고 생각하고 봐 주시기 바랍니다.

 

자신이 가진 사상이나 이념은 새로운 정보를 접하거나 사회적, 경제적 환경의 변화에 따라 바뀔 수 있지만, 인간의 사유구조나 사안의 접근방식은 더 고질적이라 쉽게 바뀌는 것이 아니라서 솔직히 저는 형이나 OOO 사람들이 제 글에 설득 당할 거라 기대하진 않습니다. OO(제 아내)이도 이 점을 잘 알고 있어 제가 OOO 사람들과 대화를 시도하려 할 때마다 부질없는 짓이라고 말려 왔습니다.

아마 형은 아니라고 부정할지 모르지만, 형이나 OOO 사람들과 대화가 되지 않는 이유는 사상과 이념의 차이 때문이 아니라 사유구조와 사태를 파악하는 방식의 차이 때문이라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형이나 형수님은 저나 OO이가 수구꼴통의 극우적 사상과 이념을 가졌기 때문에 진보좌파적 자신과 괴리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는 듯합니다.

이런 근본적인 차이로 인해 길어야 두서번의 대화 밖에 이어가지 못하고 감성적 비난만 쏟아내고 끝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서로 대화는 하지만 각자의 주제(or 포커스)가 다르니 접점이 생길 리 없고, 상호 허수아비 공격만 하는 것이죠.

저는 회사의 직원들 등 주변 사람들에게 제가 세상을 바라보는 눈(방식)에 대해 항상 이렇게 이야기하고 또 당부합니다.

 

1. 가치 판단 이전에 사실 판단을 항상 먼저 하라. 가치판단이 우선할 경우 사실을 편견과 선입견으로 판단하는 우를 범하며, 자신의 주장에 유리한 사실들만 취사선택하게 된다.

 

2. Fact에 기초하지 않은 주장은 가치가 없으며 선동일 뿐아니라 남의 판단을 그르치게 하는 죄악이다. 가치 판단에 투여하는 시간의 10배 이상을 Fact 검증에 투여하라.

 

3. 내로남불(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하지 말고 기준 적용에 일관성을 유지하라. 자신에게 더 엄격하면 좋겠지만, 최소한 나와 남에게 대하는 기준은 동일하게 하라.

 

4. 사태나 사안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는지 헷갈릴 때는 역지사지해 보라. 세상의 대부분의 일은 역지사지하면 쉽게 답을 찾을 수 있다.

 

5. 사안과 주제에 맞는 해결 방식을 제시하라. 과학 문제에 종교적 방식으로 접근하지 말고, 종교 문제를 과학으로 해석하지 말라. 이성적으로 냉정하게 접근해야 하는 사안에 감성적인 해법을 내놓지 말라.

문자주의적 보수 기독교계가 성경을 문자적으로 해석하여 지구의 나이가 6천년이라 주장하는 것이나 영성의 문제나 하나님의 존재 여부를 과학적으로 규명하겠다는 것은 본질과 해법의 괴리를 부를 수밖에 없다. 피해자나 희생자에 대한 연민과 위로는 인간적 도리이나 사고 원인을 규명하고 대책을 마련할 때는 이성적이고 냉정한 자세가 필요하다.

 

저는 OOOO이에게도, 직원들에게도, 친구들에게도, 어느 누구에게도 도덕적이어야 한다, 정의로워야 한다고 말하지 하지 않습니다. 위에 있는 5가지만 유념하고 살면 남에게 해를 끼치거나 불편을 주지도 않고 문제를 해결하거나 일을 해 나가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 보기 때문입니다. 굳이 도덕이나 정의를 강요하지 않더라도 부지불식간에 이를 실천하게 될 것이고 아름다운 세상을 만드는데 기여할 것이라 봅니다.

 

제가 굳이 위 5가지를 들먹이는 이유는 저 자신도 그렇지만 형을 비롯한 OOO 사람들, 더 넓게 386(저는 똥팔육이라 부릅니다) 운동권 사람들이 위 5가지에 대해 너무 소홀한 것이 아닌가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사상과 이념 이전에 위와 같은 사안에 접근하는 방법론이 우선해야 하고, 이런 방법론은 좌/, 진보/보수를 막론하고 어느 진영이든 꼭 갖추어야 할 기본적인 것이라 생각합니다.

형과 제가 대화를 이어가지 못하는 것도 형은 이미 제가 보수꼴통 사상을 가졌다고 단정하고 있어 제가 말하는 어떤 이야기도 정의롭지도, 옳지도, 사실에 근거하지도 않고 있다고 보기 때문이죠. 이건 선후를 뒤바꾸고 원인과 결과를 도치해 사고하는 잘못된 사유체계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왜 보수꼴통인지 그 근거를 제시해 보라고 하면 형이나 형수님이 묵묵부답이 되는 것도 이것 때문입니다. 가치 판단을 우선하고 사실에 대한 검증을 게을리 하고,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믿고 싶은 것만 믿으며, 메시지에 대한 합리적 비판보다는 메신저를 공격하게 되는 것은 모두 이런 사유구조 때문이라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형을 비롯한 386 운동권 사람들이 좌파적 이념을 가졌기 때문에 잘못된 것이 아니라 저런 황당한 사유체계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상식에 반하는 황당무계한 주장을 하는 것입니다.

 

저는 저 자신이 보수라 생각한 적도 없고, 보수/진보에 대한 세간의 정의나 개념에도 동의하지 않습니다. 진보라 자처하는 인간 중에 자신이 왜 진보인지 제대로 설명하는 인간을 본 적이 없습니다. 그냥 자신이 진보이니 정의롭다고 주장하고 남을 도덕적으로 비난하는 사람은 많이 보았습니다. 제가 제 자신을 진보라고 말하니까 형수님은 비웃었지만, 왜 제가 진보라고 생각하지 않는지는 설명하지 못하더군요. 저는 제 자신이 진보라고 생각하는 이유를 진보에 대한 개념부터 설명하고 제가 진보인 근거를 제시합니다. 형수님이 제가 왜 진보가 아닌지 답을 못하는 것도 사실 판단보다 가치 판단을 우선했기 때문이지요.

저는 한국 보수(자한당)가 주창한 논리를 그대로 따른 적이 없습니다. 다만, 어떤 정당이든 그 정책이 합리적인지, 현실적 대안인지, 효율적인지, 그리고 실질적으로 서민과 대중들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지에 따라 옹호하거나 비판해 왔습니다. 지난 토요일에도 말했지만 저는 진보란 대중의 삶의 질을 실질적으로 단 1보라도 향상시키는 것이라고 정의하고, 입으로만 대중들을 위한다며 나불대는 진보는 위선적 진보라고 봅니다.

일례로 박근혜의 공무원연금개혁을 적극적으로 지지하고 일본과의 위안부 문제 합의도 환영한 반면, 문재인의 탈원전은 궁극적으로 우리 경제를 피폐화하고 서민과 대중들의 삶을 어렵게 할 것이라고 생각해 비판합니다.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이나 정규직 전환도 경제에 미치는 부작용이 심해 반대합니다. 강제징용 문제나 위안부 문제를 문재인 정부처럼 풀어가는 것은 역사적 진실을 왜곡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궁극적으로 국민들의 삶에 도움이 안 되기 때문에 반대합니다.

저는 불평등 해소도 중요하지만, 빈곤계층의 감소와 빈곤층의 경제적 여력이 향상되는 것이 우선이라 생각합니다. 못 살아도 평등하면 좋다는 것에 찬성하지 못하며, 다소의 불평등이 있더라도 현재의 빈곤층의 삶이 더 나아지고 극빈층이나 빈곤층의 숫자가 줄어드는 것이 낫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문재인의 문케어 등 포퓰리즘적 정책은 베네주엘라나 아르헨티나와 같이 될 것으로 보아 반대합니다. 문재인 정책은 모두 못 살게 되면서 불평등도 더 심화시킬 것으로 보지요.

불평등에 대해서도 고정관념을 탈피할 필요가 있습니다. 무조건 부정적으로 보는데, 불평등이 사회적으로 긍정적 역할을 하는 것도 많습니다. 자유경쟁의 결과는 불평등일 수밖에 없습니다.

인간 사회든, 물리적 현상이든 프라이스 법칙이 나타납니다. 집단의 숫자의 제곱근의 사람이 그 조직이나 사회의 일의 50% 이상을 한다고 하지요. 만 명의 조직이 있다면 100명이 그 조직의 50% 일을 한다는 것입니다. 20:80의 사회가 되는 이유도 그것이구요. 아마 이런 현상은 형도 회사를 운영해 봐서 경험해 봤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열심히 공부하고, 열심히 일하는 이유는 남들보다 좋은 대우를 받기 위함입니다. 즉 차별적 보상과 대우(불평등)를 우리 스스로 원하고 있는 것이죠. 이게 인간의 본성이 아닐까요? 이 본성을 선악의 잣대, 정의나 가치로 평가할 일은 아니라고 봅니다. 자연스런 인간의 본성이고, 이 본성이 사회를 발전시킨 원동력이지요.

만약 열심히 공부하고 열심히 일했는데도 동일한 평가나 보상을 하게 되면 어떻게 될까요? 우리 모두 차별적 대우를 요구하면서, 그리고 그렇게 하지 않으면 또 불만을 토로하면서도 정작 결과가 자신에게 불리하게 나오면 평등을 요구하는 모순을 저지릅니다.

물론 세상사가 모두 정당한 평가와 보상을 하지 않는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제가 50 중반을 살아보며 느낀 것은 그래도 대체적으로 시장경제에서는 열심히 공부하고 열심히 일한 사람이 그에 따른 보상을 받는 편이더군요.

OO(선배의 아들)이를 보십시오. 수입이 월 1천만원은 넘는 것으로 말씀하셨는데 그 나이에 월 1천만원을 받는 젊은이가 우리나라에 몇 %나 될까요? 1억 연봉이면 전체 상위 5% 이내입니다. OO이가 열심히 공부해 의대 가서 인턴까지 뼈 빠지게 수련했으니까 그만큼의 보상이 따르는 것입니다. 수년간 보통의 젊은이들은 감내하기 힘든 생활을 통해 의사라는 역할을 수행해 내는데 필요한 지식을 습득하기 위해 들인 노고에 대한 댓가입니다. 아무나 OO이가 하고 있는 일을 하겠다고 한다고 해서 그 일을 맡기지도 않으며 시장(기업)은 그만큼의 보상도 하지 않습니다. 또 적정한 보수를 지급하지 않으면 OO이가 하는 일을 하려는 사람도 없게 됩니다. 형이나 형수님도 OO이가 우리나라 노동자 평균 임금 정도인 월 200만원을 받는다면 찬성하시겠습니까?

시장은 그 쌍방의 접점을 찾아 연결해 줍니다. 그래서 저는 시장경제는 불완전하지만 그래도 가장 공정하다고 생각하지요.

시장은 공짜가 없습니다. 공짜가 없으니 꼼수가 낄 여지가 적습니다. 그리고 시장은 오픈 되어 모두에게 열려 있습니다. 그래서 자유로운 경쟁을 할 수 있습니다. 이 자유로운 경쟁은 불가피하게 불평등을 낳을 수밖에 없습니다. 어떻게 하면 공정한 경쟁을 유도할 것인지를 고민해야 하는데 우리나라 진보연하는 사람들이나 세력들은 경쟁 그 자체를 부정시하고 없애려 합니다. 현실세계에서는 존재할 수 없는 유토피아를 꿈꾸며 불평등이 없는 세상을 찾는 것이야말로 넌센스이지요.

그래서 저는 시장경제주의자이며 진보우파입니다. 그렇다고 복지를 소홀히 하거나 무시하는 것은 반대합니다. 시장경제의 근간을 무너뜨리지 않고, 생산적이며 효율적인 복지의 확대에는 적극 찬성합니다.

설마 진보=좌파, 보수=우파 라는 등식을 내세우며 니가 왜 진보냐?”라는 반박은 하지 않겠죠? 스탈린 치하의 소련, 대약진운동과 문혁의 장본인 모택동의 중국, 3대째 세습체제를 이어온 북한이 좌파니까 진보적 사회라고 주장하지는 않겠지요?

이렇게 저는 제 나름의 진보에 대한 개념을 갖고 있지만, 형이나 형수님은 어떤 진보관을 갖고 계신지요? 적어도 남을 비판하려면 자신이 명확한 개념을 가지고 또 그에 대한 설명을 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요?

 

그 날, OO이가 옷을 챙기며 그냥 가자고 나설 때 제가 말리지 못하고 따라 나섰던 것은 방문을 주저하는 OO이를 설득했던 제 말이 형과 형수님의 한 마디에 바로 허망해져 버렸기 때문입니다.

방문을 주저하는 OO이를 그래도 세월이 지났고 설마 형이나 형수님이 조국이나 그 일가를 쉴드치는 일이야 있겠느냐고 달래며 왔었는데, OO이가 가장 싫어하는 말이 두 분 입에서 나왔습니다. OO이는 절대 형이나 형수님은 변하지 못할 것이다고 장담했지만 저는 조국을 쉴드칠 정도로 사고가 경직되어 있거나 상식을 무시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설득했었습니다. 그 정도라면 진짜 답이 없으며 더 이상의 만남은 무의미하지 않겠느냐고 했지요. 그런데 저희들이 어느 정도는 예상했지만 일어나지 않기를 기대했던 일이 벌어져 버린 것이죠. 형은 조국은 잘못한 것이 없다. 조민의 성적은 고려대를 들어가고도 남을 훌륭한 성적이다. 언론들의 fake 뉴스일 뿐이다.”라고 하고, 형수님은 조국을 사랑하며 존경한다. 조국이 대통령 나오면 반드시 찍는다.”는 발언이 나오자 OO이는 두말도 하지 않고 바로 옷을 들고 나와 버린 것입니다.

우리 집에서는 조국스럽다는 것을 세상에서 가장 심한 욕으로 생각하며, 이 말을 들을 정도면 인간 취급을 하지 않습니다. 온갖 정의로운 척, 도덕적인 척은 다하고는 자신은 보통 사람들은 상상도 하지 못할 온갖 편법과 불법을 동원해 사적 이익을 취하는 위선에 OO이는 치를 떨었지요.

103일 광화문에 있었던 조국 구속, 문재인 퇴진집회에 OO이와 나갔다가 친구와 함께 온 친구 지인들과 합류하고 저녁 식사를 먹는 자리가 있었습니다. 친구의 지인이 저에게 조국이 같이 뻔뻔스러운 인간에게 뻔뻔스럽다는 말은 너무 약하다며 더 좋은 말이 없겠느냐고 물어왔을 때, 제가 조국의 후안무치한 행위를 표현할 우리나라 말은 찾기 어려우니 조국스럽다고 말하는 것이 낫겠다고 했었습니다. 친구의 지인도 그것 좋다고 했고, 저녁 자리에 모였던 모든 사람들이 조국스럽다가 세상에서 가장 모욕적인 것이라는 것에 동의했습니다. 이 정도로 OO이와 저는 조국을 혐오스러워 하고, 또 조국을 옹호하는 사람들을 정상으로 보지 않습니다.

 

OO이를 더 빡치게 했던 것은 형이나 형수님이 김어준의 말을 절대적으로 신봉하고 조국을 옹호하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저나 OO이는 김어준을 온갖 거짓으로 대중을 선동하는 인간말종으로 취급합니다. 그런 인간의 말을 검증도 하지 않고 절대적으로 믿고 따르는 형과 형수님을 OO이가 어떻게 생각했을지 저는 짐작이 갑니다. 사이비 종교 집단에서나 있을 일이 고등 교육을 받은 사람들, 더구나 함께 공부하고 생활했던 사람들에게 일어나고 있으니 얼마나 기가 차겠습니까?

토요일에도 제가 말했지만, 제 인생의 목표가 있다면, 김어준을 이 사회에서 퇴출시키는 것이 하나가 될 것이라고 말할 정도로 저 역시 김어준을 사회의 암적 존재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김어준을 이렇게까지 단호하게 말하는 데는 그 이유가 있습니다. 김어준은 숨 쉬는 것 빼고 모두 거짓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거짓으로 세상 사람을 기만하고 선동해 정치적으로 악용해 먹기 때문입니다. 세상을 살다 살다 김어준처럼 거짓말을 태연히 하고 거짓임이 드러나도 단 한마디 사과나 반성을 하지 않는 인간을 본 적이 없습니다.

김어준의 대표적인 사기 행각을 들어 보겠습니다.

 

1. 논문 조작으로 물의를 일으킨 황우석 옹호

김어준을 쉴드치는 사람들도 이 사건에 대해서는 김어준의 흑역사라고 말할 정도로 김어준은 논문이 조작으로 드러났음에도 불구하고 황우석을 끝까지 옹호했죠.

 

2. 세월호 사고 - 국정원이 닻을 내리게 해 고의로 사고를 냈다고 주장

세월호는 단원고 유족들의 요구로 수천억의 돈을 들여 인양했고, 김어준 같은 음모론을 주장하는 자들 때문에 또 수백억원을 들여 직립시키는 작업까지 했습니다. 하지만 국정원이 개입했거나 닻을 내려 고의로 사고가 났거나, 잠수함과 충돌해 침몰했다는 어떤 증거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상식적으로 생각해 보십시오. 박근혜 정부나 국정원이 자신들에게 어떤 이익도 없으며 오히려 치명타가 될 것을 뻔히 알면서 왜 고의로 세월호 사고를 내겠습니까? 그 사건이나 사고로 이익을 가장 많이 볼 사람이나 집단이 범인이라고 의심하는 것이 상식 아닌가요? 김어준은 그 날, 바다라는 영화까지 만들어 세월호가 국정원이 개입해 고의로 사고를 낸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혹시 형이나 형수님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나요?

 

3. 201218대 대선 부정개표 주장

김어준은 박근혜가 당선된 201218대 대선에서 박근혜측이 조직적인 부정개표로 결과를 조작했다고 주장했습니다. 이 사건 역시 더 플랜이라는 영화를 만들어 자신의 주장을 대중들에게 확산시켰지요. 이 김어준의 주장이 생구라라는 것은 201719대 대선에서 문재인이 당선된 것에서 바로 드러났습니다. 박근혜 후보가 당선될 때와 문재인 당선될 때의 패턴이 동일하게 나타나 김어준의 주장이 엉터리라는 것을 실증적으로 보여주었습니다. 그 전에 이미 과학적으로, 통계적 분석으로 김어준의 주장이 말도 안 된다는 것은 이론적으로 증명되었습니다.

김어준의 영화 더 플랜을 신랄하게 비판한 제 글은 별도로 보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4. 미투에 걸린 정봉주를 옹호하기 위해 공중파를 이용하여 거짓 방송을 함

정봉주가 렉싱턴 호텔에서 부적절한 행위를 한 것이 사실임에도 김어준은 자신이 진행하던 SBS 프로그램을 이용해 정봉주의 알리바이를 만들어 주어 마치 정봉주가 렉싱턴 호텔에 가지 않았던 것처럼 국민들을 호도하고 피해자를 매도했습니다. 결국 정봉주가 렉싱턴 호텔에 가서 결제한 영수증이 나와 정봉주 스스로 시인함으로써 정봉주가 자연인으로 돌아간다고 발표하고 잠수를 탐으로써 일단락 되었지만, 이에 대해 김어준은 자신의 잘못을 사과한 적이 없습니다.

 

5. 장자연 사건을 자신의 사익 추구에 악용한 윤지오를 영웅으로 만듦

이 사건은 비교적 최근의 일이니 자세히 설명하지 않겠습니다. 윤지오를 자신이 진행하는 프로그램에 출연시켜 윤지오를 정의로운 내부 고발자로 만드는데 혁혁한 공(?)을 세웠지요. 윤지오가 어떤 인간인지 이미 밝혀졌는데도 김어준은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습니다.

 

6. 조국 옹호

조국 사건 관련해 형도 김어준의 구라에 놀아나고 있다는 것은 제가 일요일에 카톡으로 그 일부 자료를 보내주었으니 이제 알 것이라 생각합니다. 아직도 김어준의 말을 믿고 계신다면 김어준의 말이 생구라는 것을 증명하는 수많은 증거들을 더 보내 드리겠습니다.

 

이 외에도 김어준의 구라들은 수없이 많습니다. 앞서도 이야기했지만 김어준은 숨 쉬는 것 빼고 거의 모두 거짓말이라고 생각해도 무방합니다. 김어준 외에도 김어준과 함께 하는 인간들인 주진우, 김용민, 정봉주, 그리고 안민석, 이상호 등의 말도 진위 여부를 반드시 검증해야 합니다. 이런 인간들의 특징은 거짓말을 하고도 전혀 반성이 없으며, 오히려 더 당당하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이들의 패악질이 계속 되도록 만드는 것은 이들의 말을 의심하거나 검증하지 않고 맹신하는 빠돌이 빠순이들이 있기 때문이지요.

 

저는 제가 글을 쓸 때 가장 신경 쓰는 것이 있습니다.

제 주장의 근거가 되는 사실들이 혹시나 내가 잘못 알고 있거나 거짓이었어 대중들을 기만하고 판단을 그르치게 하여 혼선을 주게 될까봐 극도로 경계합니다. 판결문을 비판하는 글을 쓸 때도 판결문 전문이 수백 페이지가 되어도 적어도 두 번 정도는 정독하고 글을 쓰고, 검찰의 기소문에 대한 제 의견을 밝힐 때도 언론들이 요약한 것만 보지 않고 전문을 꼭 입수해 보고 관련 자료들을 할 수 있는 데까지 찾아 모읍니다.

사실관계를 정확하게 기술한 글은 필자의 가치 판단이 개입했다 하더라도 독자들이 필자를 옹호하거나 비판하는데 지장이 없습니다만, 자신의 주장을 정당화하기 위해 증거를 취사 선택하거나 사실을 왜곡한다면 토론은 불가능하며 생산적인 결과물을 도출하기 힘들어지지요.

형과 저의 대화가 겉돌고 생산적이지 못하고 감정적으로 치닫는 이유는 사실 판단에 있어 명백한 차이를 보이기 때문입니다. 사실에 대한 판단은 거짓과 진실이 있을 뿐 둘이 공존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사실 판단에 있어서는 틀리고 옳음을 명확하게 할 필요가 있고 이 영역에서는 상대방의 다름을 존중해 줄 이유가 없으며 존중해서도 안 됩니다. 정확한 사실관계를 토대로 자신이 신봉하는 가치(이념, 철학, 역사관)를 반영하여 주장하는 것은 나와 다른 주장이라도 그 다름을 인정 하고, 또 존중 받아야 하겠지만, 사실관계의 진위를 따지는 문제에 있어서는 이 다름이 인정되거나 수용되어서는 안 됩니다. ’틀린 것은 틀린 것이지 다른 것이 될 수 없습니다.

형과 제가 대화를 이어가지 못하는 이유는 서로의 가치관이 달라서가 아닙니다. 사실관계에 있어 형이 사실이 아닌 것(틀린 것)을 사실이다(맞다)고 주장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형에게 계속 사실관계 확인부터 해 보라고 말 하는 것입니다.

저는 시장경제주의자이고 진보우파이지만, 형이 좌파적 이념을 가졌다는 이유로 비판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건전한 좌파, 합리적 좌파는 존중하고 저 역시 경우에 따라서는 좌파적 정책을 옹호하기도 합니다.

저와 OO이가 형과 형수님, 그리고 OOO 사람들에 대해 안타까워하는 것은 좌파적 사고를 하고 있기 때문이 아니라 사실관계에 천착하지 않고 화석화 된 80년대 이념과 가치를 절대화 해서 사실관계를 왜곡하기 때문입니다.

80년대 학생운동권에서 사회구성체논쟁을 할 때, 우리나라를 봉건신식민지 국가로 규정했던 것과 같은 어처구니없는 짓을 지금도 여전히 하고 있지요. 80년대 한국은 봉건도 아니고, 식민지 국가도 아닌데, 북한의 주장과 통일 노선을 따르려니 현실과 전혀 다르게 한국 사회를 규정할 수밖에 없었지요. 자신의 주장과 이론, 이념과 사상을 정당화하기 위해 사실관계를 비틀어 버리는 짓을 2019년에도 여전히 하고 있습니다.

 

에구! 글이 또 길어졌네요. 다른 일도 있고 해서 오늘은 이만 줄이겠습니다. 글 중에 오타도 있고 비문도 있을 것입니다. 수정하지 못하고 그냥 보내니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글을 쓰다 보니 직설적이고 격한 단어와 문장이 들어 있어 수정해 순화할까 생각도 해봤지만, 제 심정을 그대로 전하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도 있고, 다른 일로 다시 글을 돌아볼 시간이 없어 그냥 보내드리니 양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언제 다시 만나 대화할 기회가 있을지 모르겠지만, 항상 건강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