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사람들은 자유와 평등을 경쟁적인, 그래서 둘중 하나를 선택하여야 하는 개념으로 생각한다.  "자유냐 평등이냐"의 논쟁을 벌이기도 하며, 우파는 자유에 중점을 두는 반면, 좌파는 반대로 평등에 중점을 둔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심히 어리석은 생각이다. 자유란 동태적인 것이고, 평등이란 정태적인 것이다. 자유가 수직선의 무한이라면 평등은 0 원점의 유한이다. 자유가 복수라면 평등은 단수이다. 이 둘은 대등하게 병립할 수 있는 개념이 아니다.

 

자유(自由)란 여자적으로는 "행위의 까닭이 스스로에게 있음"이다. 의미적으로는 무언가에 의하여 구속되거나 강제되지 않은 채 가능한 모든 경우의 행태를 망라함을 뜻한다. 그러므로 그 "가능한 모든 경우"중에는 당연히 평등한 상태도 포함된다. 물론 이 평등한 상태란 마치 바늘을 세워놓은 것과 마찬가지로 불안정하므로 금방 불평등한 상태로 변하며, 얼마의 시간이 흐르면 또 다시 평등한 상태를 거쳐 반대편 불평등한 상태로 갈 수도 있다. 아주 쉽게 비유하자면 시계 추가 자유롭게 좌우로 진동함과 같다. 시계 추라면 매번 중립점을 통과한다.


반면 평등이란, 자유속의 평등이 아니라 그냥 무조건의 평등이란, 부자유(不自由)이고 고정이고 죽음이다. 죽은 시계의 멈추어 서있는 추와 같다.


그런즉 자유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내가 살고, 너도 [가능하다면] 살자"는 것인 반면, 기계적 무조건적 평등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너 죽고 나 죽어 다같이 죽자"는 것이다.


남녀 평등을 정말로 링 위에 올라가서도 시행할 수 있겠는가? 남녀를 링 위에 함께 올리려면 선결 문제가 있다. 우선 먼저 수술대에 올려 놓고, 이들의 생식기를 잘라내어 반씩 교환하여야 공평할 것이다. 그 결과 남자도 여자도  ½자지 + ½보지, ½고환 + ½난소 + ½자궁을 장착하여야 할 것이다. 


뿐만 아니라 유전자도 반씩 교환하여야 할 것이다. 상염색체는 남녀 차이가 없으니 그걸로 되었고, 차이지는 성염색체를 반씩 교환하여 남자건 여자건 X½X½Y의 염색체를 가져야만 할 것이다.  이런 염색체를 가지고 인간이 과연 정상적으로 살아갈 수 있을지 모르겠으나, 예측해 보자면 ½터너 증후군 + ½클라인펠터 증후군 정도 되겠다. 물론 생식력은 제로이다.


진정한 기계적 평등은 지구인들에게 재앙이다.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보다 더 나쁘다.


지구의 껍질인 지각의 두께는 일정하지 않아서, 두꺼운 곳은 튀어나와 대륙이 되고,  얇은 곳은 패여들어가 대양이 된다.  지각의 두께가 평등하다고 가정해 보자. 그러면 어떠한 일이 벌어질까? 지표면의 높이, 즉 지구 중심으로부터의 거리가 어디나 똑같다. (실제로는 지구 자전 및 공전에 따른 원심력을 고려하여야 하나 이 가정에서는 생략한다.) 그러면 그 지구 표면을 물 또한 일정한 두께로 덮을 것이다. 그결과 뭍이란 존재하지 않게 된다. 육상 동식물은 전부 끝장이다. 지구인도 예외가 될 수 없다.


지구인들이 알고 또 경험하고 있는 이 우주의 본질은 불평등이다. 왜 어떤 물질은 별이 되고,  어떤 물질은 성간 물질이 되고, 어떤 물질은 아예 암흑 물질이 되는가? 지극히 불평등하고 불공평하다. 왜 별들은 끼리끼리 모여 항성계를 만들고 은하계를 만들고 은하단을 만드는가? 지극히 불평등하고 불공평하다. 왜 어떤 원자는 무생물의 원자이고, 어떤 원자는 생물의 원자인가? 지극히 불평등하고 불공평하다. 왜 어떤 원자는 양성자 한 개뿐인데, 어떤 원자는 양성자 92개에 중성자까지 146개를 갖고 있는가? 지극히 불평등하고 불공평하다.


한국인들의 종특은 "다같은 단군의 자손"이라는 허위 의식에서 비롯된다. 다같은 단군의 자손이므로 일종의 대가족이다. 그러므로 가족중 잘 나가는 사람 하나가 있으면 나머지 사람들은 이 출세한 사람 하나에게 빨대 꽂는 것이 당연스럽다. 누구 하나가 희생타를 치고 나머지 사람들은 거저 묻어 간다는 것이다. 누구 하나가 사슴 잡아오면 다같이 둘러앉아 공짜로 먹는다는 것이다.


회사 사무실의 칸막이를 옮기거나, 하다 못해 생수통 거꾸로 꽂는 일 하나까지, 힘든 일에는 남자의 손길이 닿지 않는 곳이 없다.  이 별의 무역 물동량의 90%가 배에 의하여 오간다. 그것을 담당하는, 물위에서 사는 선원의 숫자가 140만 명이다. 이들 덕분에 우리가 입고 먹고 쓰는 것이다.  일 년에 몇 백, 몇 천 명씩 죽어 나간다.  그 140만 명중 여자의 비율은 1% 라고 한다.  그런데 박원순이가 서울시에서부터 남녀 임금 차이를 공개한다고 한다. 환영한다. 이제 더 힘든 일을 하고 똑같은 임금을 받는 남자들이 [있다면]  들고 일어날 것이다.


(※ 본회원이 잘 아는 사람은 일생동안 단지 여검객이라는 이유로 돈을 덜 받거나, 남검객이라는 이유로 돈을 더 받음을 본 적이 없다. 칼질 한 대로 돈을 받는다.)


2019-12-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