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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알려진 바와 같이 청동(靑銅)이란 인류가 사용해 온 가장 오래된 금속으로 보통 구리와 주석의 합금을 말하며 영어로는 bronze라 불린다.
구리에 아연을 합금한 금속은 황동(黃銅)이라 불리며 영어로는 brass이다. 이는 실제로 노란색을 띠고 있으며 이에 대해선 별로 헷갈릴 일이 없다. 단지 인간이 가장 귀하게 여기는 황금과 이 금속을 외양만으로 구분할 수 있는지 다소의 논란이 있는데 그다지 중요한 문제는 아니다.
문제는 청동이다. 올림픽에서 금메달, 은메달, 동메달이 각각 gold, silver, bronze로 표현되니 실제로는 동(銅, copper)메달이 아니라 청동메달이라 부르는 게 맞다. 하지만 이렇게 부르면 당장 혼란이 발생할 것이다. 동메달은 분명히 붉은 색을 띠고 있기 때문이다. 즉 영어에서 bronze color 는 '광택을 띤 붉은 색'을 말한다. 머리카락도 브론즈 색이라면 붉은 머리를 말하며 때로는 햇볕에 잘 그을려 불그레해진 피부도 브론즈라고 불린다. (반면 노란 머리칼은 blonde인데 이는 '금발이 너무해' 류의 영화로 인해 잘 알려져 있다) 실제로 머리칼이나 피부의 광택은 지방질 광택이라 청동 등의 금속성 광택과는 구분이 되지만 그 정도는 넘어갈 일이다.
문제는 우리가 이 금속을 청동(靑銅), 즉 '푸른색의 구리'라고 부른다는 점이다. 그 이유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청동이 주조되었을 때의 처음 색깔은 붉지만 곧 녹이 슬게 되며 그렇게 되면 푸른 색을 띤다. 더구나 내부까지 침투하여 전체를 붕괴시키는 철(鐵)의 녹과는 달리 이 금속의 녹은 표면에만 국한되어 오히려 전체를 보호하는 역할을 하게 된다. (인체에는 독성이 강하지만) 따라서 청동제품은 푸른색으로 덮인 채 오랜 기간을 보내게 되며 사람들은 이러한 녹의 색, 즉 청색을 이 금속의 원래 색으로 인식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래의 금속과 그의 녹은 엄연히 다른 물질이며 이는 언어에서도 분명히 나타내야 한다고 본다.
무엇보다도 이러한 우리 말의 문제점은 번역체에서부터 나타나기 시작하고 있다.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즈에 두 젊은 여자가 등장한다. 한명은 금발머리이고 한명은 "청동빛 머리칼"을 갖고 있다. 자, 이것은 무슨 뜻인가? 원작을 생각하면 bronze color이니까 붉은 머리라는 뜻이며 전혀 헷갈리는 표현이 아니다. 그런데 우리말로 이를 읽으면 누구나 '아니, 머리가 파랗다구?'하는 생각이 먼저 들게 된다. 작품을 읽는데 있어 전혀 쓸데없는 혼란을 주는 것이다.(그렇지 않아도 작품 자체에 혼란스러운 내용이 많은데 말이다 -_-) 얼마 전 다른 소설에서는 "청동빛 피부를 갖고 있는 근육질의 남자"를 묘사한 귀절도 보았다. 사람이 좀비도 아니고 피부가 푸르둥둥할 수는 없을 테니 여기선 햇빛에 타서 불그레해진 몸을 말하는 게 분명하다. 자, 여기 청동색 피부 = 붉은 색 피부 라는 공식이 있다. 피부는 양변이 공통이니 빼어버리자. 청동에서 동(銅), 즉 구리는 사람의 몸과 비교하는데 필요없는 잉여 표현이다. 역시 생략한다. 그러면 결국 "청(靑) = 붉은색"만 남게 된다.
우리나라 말 중에서 개선이 시급한 사안 중에 하나라고 본다. 뭐 한국인이 대단한 민족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언어문제 가지고 일부러 골탕을 먹일 것 까지야 없지 않겠는가? ^^
반박 감사합니다. 이런 게 좀 달려야 글 올릴 맛이 나지요... ^^
구글에서 bronze를 가지고 이미지 검색을 해 보면 대부분 구리와 별로 다르지 않은 금속들의 이미지가 뜹니다. 주석 등 다른 금속이 들어간 비율에 따라 살짝 주황색이나 주갈색으로 변화될 수는 있겠지만 "붉은 색이 없어진다"는 판단은 무리라고 봅니다. 무엇보다 올림픽 동메달을 보고 이게 "투박한 brown"이지 어떻게 붉은색이냐고 항의할 사람은 많지 않을 것입니다.
머리카락을 놓고 볼 때 물론 bronze가 붉은 장미처럼 새빨갛지는 않습니다. 사실 구리 자체가 붉은 계열이지만 채도 높은 적색은 아니죠. 은하영웅전설의 키르히아이스처럼 "루비를 녹여서 부은 듯한 붉은 머리" (다나카 요시키 문장력 하고는 ㅋㅋㅋㅋㅋ) 라면 bronze라고 부르기엔 무리입니다. ginger란 대체로 이렇게 불타는 듯한 붉은 머리를 일컫는 것으로 알고 있어요. 그렇다고 bronze가 "어두운 brown"이라고는 생각되지는 않는데요. 이를 위해 brunette이란 용어가 분명히 있는데? 하긴 세부적으로 한없이 들어가면 당연히 제가 알기 어렵겠죠. (빌 S. 벨린저의 '이와 손톱'이 생각나네 ^^)
녹청도 다양한 색깔이 나올 수 있다는 것은 새로 알게 된 정보입니다만 이게 바탕 금속의 종류에 따라서 달라지지는 않을 것입니다. 무슨 화학물질로 별도 처리를 하지 않는 이상 구리건 청동이건 황동이건 자연적으로 발생하는 patina는 똑같은 청색일 텐데 굳이 이 금속만 따로 취급해서 청(靑)이란 이름을 붙이는 현실이 제 불만(?)의 근원이었던 만큼 이 글의 주요 논지는 아직까지 유효하다고 생각합니다.
링크해주신 metal market 사이트에 들어가 보면 아예 첫 문장으로 "Copper, Brass and Bronze, otherwise known as the “Red Metals”, may look the same initially, but.... "라고 분명히 언급하고 있네요. ^^
1924년 때 동메달은 거 특이하군요. 어떤 걸 잘해서 상으로 주는 거라면 반짝거리던지 해서 뭔가 귀한 거라는 느낌을 줘야 하는거 아닐까요? 제가 당시 올림픽에 참가해서 이걸 받았다면 웬 흙덩어리 같은거 던져줬다고 ㅅㅂㅅㅂ했을 거 같습니다...
제가 읽은 한국판 율리시즈는 김종건 교수 번역인데 자칭 조이스를 평생 연구해 왔고 율리시즈에 대해서도 수십년간의 개정에 개정을 거쳐 이젠 거의 완벽하다고 자부한답니다...만 이해가 안되긴 마찬가지, 번역이 "정말 웃기다"는 평에 저도 동의하렵니다. ^^
사실 개인적으로 바라는 건 bronze는 "갈동(褐銅)"이라던가 이런 식의 이름으로 바꾸고 구리의 녹청(patina)에 대해서 뭔가 다른 명칭을 붙이는 건데... 현실적으로 가능성이 없다는 건 저도 잘 알고 있습니다. -_-
재미있는 토론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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