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만(사제)은 어떻게 하여 매력을 유지할 수 있었을까?

그들이 애초부터 신과 인간의 중간적 존재이자 신과 인간의 중개자로서, 유일하게 베다 및 우파니샤드에 정통한 지식인 계급이며 거륵한 존재이었음을 인정하더라도, 왜 다른 문명과 달리 신정(神政)도 아니면서 제1계급 지위를 유지할 수 있었는지에 대하여는 문화 인류학적 고찰이 필요하다.

마빈 해리스는 「문화의 수수께끼」,  「작은 인간」, 「식인과 제왕」등의 저서를 통하여, "지구인들의 역사는 '소에 대한 기생'의 역사이다."라고 주장하였다. 

 힌두스탄 평원이나 데칸 고원이나 유목만으로 과도한 인구를 부양하기에는 부적합하다. 그들(인도 아리아족)은 본시 유목민이었고, 소니 양이니 잡아먹으면서 살았을 터이나, 이른바 "생식 압력"때문에 더 이상 그럴 수 없게 되었으리라. 정착 농경을 시작하면서 소는 이제 그들의 어머니요 신(神)이 되었다. 소를 먹지 못하면 물소나 양이나 돼지나 닭을 먹으면 된다. 그러나 그런 육식의 지속은 언제라도 배고파 눈이 돌아가면 소 역시 잡아먹을 가능성/위험성을 수반한다.  

그때에 브라만들은 채식주의를 선언하고 채식을 지킴으로써 그들의 "매력"을 보존하였다. "우린 아주 조금만 먹을 거야, 시앗 죽은 눈물만큼만." 불살생(ahimsa)은 그 당연한 따름 정리. 그러면서 또한 윤회(samsara)와 업보(karma)와 정법(darma)의 가르침을 통하여, 설령 수드라일지라도 정법을 지키고 현실의 고업을 묵묵히 견디며 해탈(moksa)을 추구하면 다음 생에는 "브라만으로 태어날 수도 있다"고 가르쳤다. 이 말의 숨은 뜻은 "내가 브라만인 건 고스톱 쳐서 거저 따낸 것 아니니까, 그런 줄 알아라."일 터. 

지구인들중 매력으로 살아가는 사람의 비율이 아마도 가장 높을 것이다.
폭력도 금력도 노동력도 없는 어린이, 늙은이, 백수, 백조, 전업 학생, 전업 주부, 장애인, 창녀, 연예인들 숫자를 생각해 보라. 더하여 브라만에 해당하는 신부, 목사, 승려나 그외 거지까지도. (재미있게도 거지는 마이너스의 매력을 갖고 있다, 전자기력의 척력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