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가 한국인에게 어려운 까닭으로 여러 가지를 꼽을 수 있겠다.
영어가 사용하는 로마자가 한국인에게 생소한 문자이고,
영어 어휘의 대부분이 프랑스어(내지 라틴어) 및 헬라어에서 왔다는 점과,
영어가 고립어화하여 조사 및 어미로써  의미를 나타내는 한국어와 다름과,
영어의 어순이 SVO로서 한국어와 다르다는 점을 일단 들 수 있다.

이중에서 어순이 다르다는 점은 특별히 고급 어휘가 등장하지 않는 일상 대화에서조차 빠른 이해에 어려움을 겪게 되는 원인이 된다고 여겨진다. 더하여 전치사와 접속사와 관계사로 문장이 하염없이 길어진 경우, 긴 문장을 통으로 번역하려면 뒤에서부터 출발하여 앞으로 와야 하니 햇갈리기 십상이다.

이러한 어순 차이는 역사관의 차이와 관련이 있다는 생각이 든다.

지구인들이 가지고 있는 역사관에는 네 가지가 있다.
제1: 나선(螺旋) 사관
제2: 선형(線形) 사관 
제3: 정상(定常) 사관
제4: 순환(循環) 사관
으로 정리할 수 있다.

(나선(螺旋)은 나선(螺線)의 일종이다.) 

한국어의 SOV는 순환사관을 닮았다. 
내가 → 너를 → 먹는다 (먹는 게 내 입으로 들어온다)
내가 → 너에게→ 사기친다 (사기친 이익이 나에게 돌아온다)

영어의 근원이 되는 인도 유럽어족의 여러 언어들도 마찬가지이다. 그럴 것이 인도 아리아족이 만든 힌두이즘이나 헬레니즘이나 공통적으로 순환사관이므로.

그러나 셈족의 언어는 VSO의 순서이고, 이것은 선형사관을 닮았다. 셈족의 헤브라이즘에서 선형사관 및 종말론이 등장한다. (맑스가 유태인이므로, 맑시즘에서 말하는 "역사의 진보"라는 것도 결국 종말론의 변형일 뿐이다.)
먹는다: 내가 → 너를 (나에서 출발하여 너에서 끝난다)
창조한다:  내가→ 너를 ( " )
쏜다: 내가 → 너를 ( ")

"내 입에서 나가는 말도 이와 같이 헛되이 내게로 되돌아오지 아니하고
나의 기뻐하는 뜻을 이루며 내가 보낸 일에 형통하리라"
(이사야서 55:11)

앵글로색슨족들은 비교적 늦게 기독교로 개종한 후, "늦게 배운 도둑질에 날 새는 줄 모른다"는 조선 속담대로, 이런 헤브라이즘의 선형사관에 심취하여 영어의 어순조차 바꾸었다. 그렇다 하여 VSO로까지 바꿈은 어려웠는지, 게르만어의 특징인 V2 어순을 일반화하는 정도에 정착하였다.

한국인이 영어를 읽거나 들을 때,  주어가 화살을 쏘고, 그 화살이 날아가고, 날아가 목적어에 꽂히고, 그 다음에 그 목적어 주변을 설명하는 부가구가 붙음을 머릿속에서 공간적으로 연상하면 해석이 좀 쉬워질 것이다. 그 화살은 주어에게 되돌아가지 않는다. 그래서 항상 두괄식이며, 끝으로 갈수록 힘이 없어지고 희미해진다. 맥빠지고 김빠진다. 그래서 영어는 선동적 연설에는 적합하지 않는 언어이다. "조선말은 끝까지 들어봐야 한다."는 속언과 대비된다. 

그들이 한국인들보다 덜 감정적이고 보다 이성적인 까닭에 이러한 어순 차이도 영향이 있을 수 있으리라. 물론 SOV 어순을 가진 인도인, 헬라인, 독일인들을 보면 이것은 별로 설득력없는 우연적 사실일 가능성이 더 높아 보인다. 또한 "이성은 열정의 노예일 뿐이다."라는 데이빋 흄의 금언을 생각해 본다면, 앵글로색슨족이라 하여 마냥 이성적이기만 한 것도 아닐 터. 최근 미국 하원의 트럼프 탄핵 추진이나 영국 대법원의 죤슨 불법 판결을 보면 알 조 아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