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혁명당시 하루에 죽어갔던 귀족의 숫자가 대략 8천명정도. 기요틴이 만들어진 배경이 이 귀족들을 효율적으로 죽이기 위한 것이었다고 합니다. 이 효율적인 도구를 통해 프랑스 귀족의 80프로가량을 죽였는데 대충 20만정도 되었다네요. 나머지는 다른 나라로 망명을 해야 살아남을 수 있었구요.

물론 이 이러한 프랑스 혁명을 선동한 사람들은 부르조아 계급이었죠 반면 실제 귀족계급들과 싸우면서 엄청난 피를 흘린 것은 평민계급들이었구요. 부르조아들은 평민이면서 유일하게 성안에 살았던 사람들이라죠. 부르조아 자체가 성안에 사는 자라는 뜻이었구요. 원래 성안은 귀족과 영주들만 살았던 곳인데 말입니다. 조선시대로 치면 중인계급정도 될 것입니다.

1789년 이 날 이후 귀족들의 씨가 말라갔고 그 결과 쟁취한 것이 바로 국민주권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국민주권에 그 주권을 가진다는 국민이 누구냐에 대해서 피터진 이론적 현실적 싸움이 벌어지게 됩니다. 그것이 바로 유명한 국민주권논쟁이지요.(nation주권 vs peuple주권)

그런데 저런 피의 숙청은 인간의 역사를 돌아보면 사실 무수히 많았습니다. 그런데 어찌하여 1789년에야 소위 주권자체를 군주나 귀족에서 국민에게 가져올 생각을 했던 것일까요?

동양이든 서양이든 무수한 왕조가 교체될때 실제 피를 흘린 것은 평민들(소위 못배우고 가지것 없는 프롤레타리아들)이었지만 그 열매는 위에 몇몇 놈들이 다 가져가고 실제 피를 흘렸던 평민들은 새로운 왕조의 탄생의 희생양이 되었을 따름이었거든요.

이 부분은 각설하고,

프랑스 대혁명으로 인해 공화정이 들어섰지만 얼마 가지 못해 다시 왕정이 들어서고 다시 그 왕정을 피로써 끌어내리며서 발전하게 소위 국민주권의 역사요 민주주의의 역사라는 것입니다. 영국을 제외하고 독일도 이에 못지않게 심한 부침을 겪었습니다. 다만 프랑스는 민주주의세력이 좀 더 힘이 강한 반면 독일은 소위 국가주의 전체주의세력이 좀 더 강했다는 정도일 겁니다.

그러면 한국은 어떤 경로를 밟은 걸까요? 솔직히 프랑스처럼 귀족들을 기요틴에서 목메단 역사가 없고 오히려 민주주의 떄문에 피의 댓가를  치루어야 했다는 점에서 독일과 유사한 면이 많다고 보여집니다.

한국으로 치면 4.19의 피의 유혈로 독재자를 몰아낸 이후 엉뚱하게 갑자기 쿠데타가 일어나고 거기다 유신이 들어서더니 박정희가 비명횡사한 5월의 봄의 공간에 다시 민주주의의 역사가 쓰여질려는 찰라 5.18때의 피의 유혈로 조용이 막을 내리고 신군부가 들어섰다가 87년 6.10항쟁의 결과 직선제 개헌쟁취로 직접선거권을 얻어냈지만 다시 노태우의 등장으로 암울모드 거기다 3당합당으로 초암울모드 흐흐. 그런데 다시 아이엠에프로 인해 전세역전의 결과 최초의 정권교체 와우 그 뒤 노무현의 등장과 이명박의 등장으로 이어지고 있져

대한민국의 역사 간단히 정리하면, 근대 정치 민주주의의 확립의 역사였지만 소위 수구꼴통들을 한번도 제대로 기요틴에 보내지 못한 역사 즉 독일의 역사를 따라가고 있습둥.

물론 이런 역사인식은 많은 생략이 있기 때문에 구체적인 맥락을 고려하고 기타 소수적인 의견도 참조할 필요는 있을지언정 이런 큰 흐름자체는 부정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참고로, 전에도 적었지만  현재의 대한민국의 역사적 좌표는 민주주의의 성숙기에 들어가고 있는 상태이고 내용적인 풍부함을 채워가야 할 시기인 것은 확실합니다.

자본주의 시장경제는 확실히 무엇을 얼마나 생산할 것인가? 어떻게 생산할 것인가?에 있어서는 탁월한 체제였습니다. 남한의 경제적 성공과 북한의 경제적 실패가 바로 여기에 기원하는 것이라고도 볼 수 있을 정도입니다. 박정희나 김일성 개인의 문제가 아니고 구조의 문제가  현재의 남북한 경제의 차이를 가져온 것이져. 박정희는 중상주의 경제를 채택했지만 남한의 그 이후 흐름이 결국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큰 흐름안에 있었기 때문에(비록 문제가 많았지만) 그나마 경제적 성공이 가능했던 것이죠. 물론 거기다 누누히 이야기하지만 냉전시대의 지리적 잇점도 뺴놓을 수 없을 겁니다.

암튼 파레토 효율성의 측면에서 자본주의 시장경제와 같은 그런 괴물이 없다는 것입니다. 반면 이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최대의 맹점은 바로 폴 샤무엘슨이 애기했듯이 누구를 위하여 생산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잼병이라는 것입니다.

바로 이 부분과 관련된 새로운 논쟁들이 터져나오고 있는 것이 요즘 보이더군요. 소위 경제민주화, 재벌개혁, 나아가 복지논쟁 등등입니다. 이른바 실질적 민주주의론의 새로운 주제들이져. 물론 정당민주화나 정책정당과 같은 이슈도 여전히 발전되어야 과제이긴 합니다. 이것들도 정치적 영역에서의 실질적 민주주의와 연관되는 과제이긴 합니다.

아무튼 우리는 기요틴의 유혈로 귀족계급을 숙청하면서 만들어간 민주주의가 아닌 오히려 풀뿌리 민초들이 피를 흘리면서 만들어준 민주주의하에서 편안하게 살아가고 있습니다.(개인적으로 이 피를 흘린 민초들의 핵심에 호남민중에 있다고 봅니다. 부르조아들이 선동만 했을 뿐 피는 평민이 흘렸음에도 그 과실은 부르조아가 차지했듯 작금의 지역주의 논쟁도 그런 맥락으로 흐르는 것은 아닌지 그냥 걱정이 됩니다.)

자자 이제 선거가 얼마남지 않았습니다.

거시적인 차원에서 역사적으로 우리는 올바른 길을 걸어왔다고 자부합니다. 다만 미시적으로 서로에게 못마땅한 점들이 분명 있을 겁니다. 친노들이 다시 민주당을 장악하고 하는 그런 문제등등 논쟁꺼리야 많지만 요즘 저 자신의 행복지수를 위해 그런 문제는 사고에서 지우고 거시문제에 집중하기로 했습니다.

선거는 이기고 보는게 장땡이 아닐런지 머 이런도 생각입니다.(져도 어쩔 수 없구요... 그땐 또 그때가서 고민합시다...) 물론 이겨놓고 개삽질로 더 망쪼가 들었던 케이스도 있긴 하지만서도....갈팡지팡...

오랜만에 와서 글을 쓰면서 넘 두서가 없었네요.

끝까지 읽어주신 들에게는 꾸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