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만이 국부라 하여 무오의 신은 아닌 것이고, 공과가 있을 터이다. 그중 공적을 따져 보자면 그는 현재의 대한민국이 서 있는 세 기둥(pillar), (1) 자유민주주의, (2) 자본주의 시장경제, (3) 6.25 남침 극복 및 한미동맹, 모두의 건설자이다.


그러나 그에 대한 평가는 박하기 그지없다. 대한민국 건국이라는 공적조차 인정 못 한다는 인간들이 많다.


그와 대비되는 공산 지나의 국부 모택동은 역사상 가장 많은 지구인의 죽음에 대하여 책임이 있는 지구인이다.  그런 그에 대한 등소평 이래의 지나 공산당의 공식 평가가 공칠과삼(功七過三)이라고 한다. 나라를 세웠다 이것이니, 그 공적은 어떠한 과오로도 가려질 수 없다는 판단이리라.


이승만에 대한 박한 평가의 한 원인이 박정희이다. 박정희는 "남한의 히틀러"로 불리는 사람이고, 히틀러처럼 민족사회주의자였다. 민족사회주의는 사회주의의 일종이다. 그 이념적 아비인 Giovanni Gentile가 사회주의자였다.


박정희는 이승만과 양립할 수 없는 인물이다. 친일 vs 반일, 전체주의 vs 개인주의, 독재주의 vs 민주주의, [민족]사회주의 vs 자본주의, 용공 vs 반공, 군인 vs  문민.  이러한 박정희가 자신의 쿠데타를 정당화하기 위하여 구정권을, 자유당 민주당 가리지 않고 몽땅, 구악(舊惡)으로 몰아갔다.


그것이 이승만의 정치적 복권이 무망한 소이이다, 이른바 "우파"도, 이른바 "좌파"도 이승만을 제대로 대접하기를 거부하므로.


여하튼 그의 반일을 극일 애국심 및 천황 전제주의에 대한 혐오감의 발로로 본다면, 이제 민주주의 국가가 된 일본과 화친하여 그들과 공존 공영함이 시대 정신에 부합한다고 보지 못할 이유가 없다. 



(※ 이승만이 일본에 요구한 보상금/배상금이 20억 돌라였다고 한다. 이는 물론 현실적인 금액이 아니라 불러 본 금액이었는데, 가사 어느 금액에서든 만일 이승만때 한일협정 타결이 되었더라면 좀 더 깔끔하게 뒷정리되었을 법 하나, 일본에 그럴 여유가 없었음이 문제였다, 일본이 나름 자신감을 가지고 비로소 진지하게 나설 수 있었던 계기가 1964년 토쿄 올림픽의 성공이었으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