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켑렙에 쓴 내 글을 검색할 일이 있어서 들렀다가 이곳에 올릴만한 글이 있어서 퍼 옵니다. 관심있는 분들을 위해서 리플까지 모두 복사해 왔습니다. ^^






정신의학 토론 5 :프로이트와 정신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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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Writer : 코지토     Date : 08-04-23 01:26     Hit : 3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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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이트에서 정신의학과 한의학을 비교하는 논쟁이 벌어지면서 몇 가지 쟁점이 떠올랐습니다
 
1. 정신의학은 한의학과 비슷한 '주관적학문이며 따라서 과학적이지 못한 것인가?
 
2. 정신의학자혹은 임상심리학자가 언론에 정치인 등 공인의 정신분석 운운하는 것은 일종의 전문가 윤리를 저버린 것 아닌가?
 
3. 프로이트는 정신의학 내부에서 퇴출되어야 할 사이비혹은 유사과학아닌가혹은 일정 가치를 인정한다고 하더라도 그건 자신의 원래 위치보다 더 높게 평가되어 있는 것 아닌가?
 
 
1. 정신의학의 주관성
 
말할 필요도 없이 정신의학은 현대의학의 한 분야이며 당연히 현대과학의 하위범주입니다따라서 정신의학이 주관적이다혹은 한의학과 비슷한 사이비 과학이라고 이야기하는 것은 적절하지 못할 뿐 아니라 이야기 자체가 성립될 수 없습니다.
 
정신의학이 물리적생리적 현상을 다루는 분야가 아니다 보니 한 환자의 생태에 대해서도 다양한 이견이 있을 수 있습니다그러나 실상 이런 현상은 다른 의학분야에 대해서도 마찬가지 입니다물론 외과처럼 부러진 곳은 뼈를 맞추고 찢어진 곳은 꿰매는 것처럼 진단이 틀릴 수가 없는 부분도 있습니다그러나 복합증상-흔히 증후군이라고 일컫어지는-에 대해서는 어떨까요많은 의사들이 저마다 다른 처방을 내놓을 확률이 대단히 높습니다하다못해 성형수술에 대해서도 의사마다 흉터를 지우는 방법이 다를 수 있습니다자신이 도제한 스승이 잘 쓰는 수술법을 사용하기 마련입니다이 경우 성형의를 주관적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정신의 질병은 단일 증상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일종의 복합증상의 증후군으로 드러나는 것이 보통입니다예컨대 A라는 사람의 증상을 봅시다그는 타인에게 대단히 공격적입니다그리고 남들 잘 되는 꼴을 못봅니다항상 마찰을 일으키고 심지어 어린 아이를 학대하기 일쑤입니다.
 
이 여자의 진단명을 뭐라고 봐야 할까요? DSM-Ⅳ를 보면 성격장애의 한 부분에 해당할 듯도 하지만 상당히 강한 우울증도 드러나고 있습니다. 그런데 한 정신과 의사는 이 여자의 가장 중요한 증상은 우울증이라고 판단합니다. 임상심리검사에서 우울증 성향이 강하게 나타났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다른 정신과 의사는 경계선 성격 장애라고 판단합니다. 이 정신과의사는 대상관계이론에 오리엔테이션이 있거든요.
 
결국 정신의는 자신이 가장 중요하다고 판단되는 증상에 의거해 판단을 내리기 마련입니다. 그리고 그 증상을 완화하기 위한 약물을 처방하고 또 상담도 병행하게 됩니다. 이 경우 약물은 증상을 가라앉히는데 도움을 줍니다. 물론 환자의 체질이나 성향에 따라 같은 증상에도 다른 약물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이런 접근법은 사실 다른 과의 진단에도 비슷하지 않나요?
 
증후군이 나타나면 의사마다 자신이 중시하는 증상에 가장 적합한 약물을 처방하고 의사마다 처방하는 약물이 다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각각의 약들이 각 증상에 효과를 드러내는 것은 마찬가지라고 봅니다. 이 같은 주관성의 개입 자체를 정신의학의 주관성으로 몰아 붙이는 것은 다소 무리가 있다고 봅니다.
 
또한 어떤 인구집단에도 존재하는 몇몇의 괴짜를 토대로 정신의학 자체를 판단하는 것 역시 무리한 논리적 비약 아닐까요?
 
 
 
2. 정신의학의 남용
 
정혜신이나 기억이 잘 나지 않지만 노무현의 정신분석을 시도한 한 의사의 글은 그야말로 테러에 가깝다고 봅니다. 물론 정신의 전공자로서 한 사회의 성향이나 방향성을 심리학 이론에 비추어 비유하는 것은 무리가 없습니다. 그러나 공인이라는 이유로 함부로 정신적인 성향을 운운하는 것은 일종의 전문가 윤리의 배신행위입니다. 이들은 정신과의사로서 자격 미달이라고 생각합니다.
 
같은 이유로 이들의 자기과시적 행위에 대하여 나르시시스틱 퍼스낼리티 디스오더에 가까운 성향을 지니고 있다고 말해도 별로 할 말이 없을 듯 합니다.
 
 
3. 현대 심리학에서의 프로이트
 
말러리안님의 기우와 달리 현대 심리학에서 프로이트가 차지하는 비중은 매우 작습니다. 더구나 정통프로이디안을 자처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고 보아도 무방합니다.
 
정통프로이디안식 정신분석은 어떻게 진행될까요? 소파에 눕고 의사는 환자의 머리 위쪽에 자리 잡습니다. 환자는 끊임없이 자신의 자유연상을 늘어 놓습니다. 의사는 가만히 앉아 거의 말하지 않습니다.
 
요즘 정신과 진찰실에서 이런 풍경이 벌어질까요?
 
이런 풍경이 벌어지는 곳은 흔히 영화 속입니다. 보통 코믹물에서 나오죠. 환자는 누워서 끊임없이 자신의 망상을 늘어 놓고 의사는 뒤 쪽에 앉아서 만화책을 보거나 숨어서 음식물을 먹고 나오거나, 혹은 아예 자리를 비우거나 합니다. 프로이디안에 대한 대중의 사고방식이 잘 드러나는 신입니다.
 
그럼 현대심리학에서 프로이트는 자취를 감추었을까요?
 
프로이트 하면 떠오르는 오디프스 컴플렉스, 구강기, 항문기 등의 발달단계, 리비도, 이드, 이고, 슈퍼이고, 거세 공포 등의 개념을 그대로 원용하는 심리학자나 상담가는 정말로 거의 없습니다. 그러나 이같은 개념은 정신역동심리학의 개념으로 흡수됩니다.
 
프로이드를 계승한 정신역동심리학의 대표는 <대상관계이론>과 미국의 <자아심리학>입니다. 이들은 프로이드이론에서 자아구조와 무의식을 받아들이고 리비도이론을 폐기합니다. 그리고 비어버린 리비도의 자리에 "관계'를 채워 넣습니다.
 
<대상관계이론>은 심리내적 구조가 현실세계를 받아 들인 후 심리내적으로 <표상>을 구축함으로서 완성된다고 봅니다. 그리고 이 표상을 완성시키는데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존재는 그의 양육자, 특히 어머니, 더 정확하게는 어머니와의 관계성이라고 주장합니다.
 
대상관계이론은 현재에도 명맥을 유지하고 있으며 제법 많은 의사들과 상담사들이 대상관계이론이 용어를 심리상담의 현장에서 활용하고 있는 것으로 압니다.
 
다시말해 프로이트는 거의 사용되지 않지만 그의 계승자들은 아직 제법 싱싱하게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는 말입니다.
 
대표적인 대상관계 이론가들 - Otto Kernberg, W.W. Meissner, Kenneth S. Robson 등등...
 
 
 
4. 역동심리학의 한계
 
<대상관계이론>을 비롯한 프로이트기반의 역동심리학이 임상에서 무용한가? 글쎄, 그럴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근래의 통합주의적 접근경향에서 역동심리학을 완전히 무시하는 상담가는 거의 없을 것이라고 봅니다. 이들에게 역동심리학은 확실히 임상에서 효과적인 도구입니다.
 
그러나 이들 학문체계, 포스트 프로이디즘은 확실한 한계를 지니고 있습니다. 이들은 프로이트의 성욕강박에서 벗어나 '관계'를 지향하고 심리적 '역동'을 강조하지만 현대 심리학과 인지과학, 뇌의학이 밝히고 있는 새로운 지식과 동떨어진 학문이 되어가고 있거든요.
 
이들은 인간의 심리가 일종의 말랑말랑한 가용성 플라스틱이라고 간주합니다. 이 플라스틱에 형상을 입히는 것은 '관계'와 심리적 에너지 '교환'이 됩니다. 그러나 현대과학은 인간의 마음이 결코 말랑말랑한 플라스틱이 아니라라는 것을 밝혀내죠. 인간의 마음이 통제불능의 리비도가 아니듯이 무제한적 가용성을 지닌 플라스틱도 아니라는 겁니다. 핑커는 이러한 심리학적 가정을 <실리퍼티>라 부르면서 빈서판가정의 하나라고 조롱합니다.
 
현대심리학이 밝힌 마음은 유전적으로 조율되는 모듈프로그램입니다. 각각의 모듈 프로그램은 적절한 환경에서 자신의 프로그램을 가동시키지만 적절한 환경에 노출되지 않으면 프로그램 운영이 중단됩니다. 각각의 모듈은 이기적이자 이타적이고 폭력적이자 관계지향적이기도 합니다. 이 모듈의 상호작용이 인간 심리의 내적인 표상이라고 가정합니다.
 
역동심리학은 인간의 마음을 하나의 에너지로 표현하고 관계는 그 에너지의 모양을 결정짓는 가장 중요한 주형이라고 봅니다. 이러한 가정은 절반, 혹은 절반에 가까운 진실을 설명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나머지 절반은 유전자, 생리학, 호르몬의 영역이 아닐까요? 
 
현대 정신의학은 이 양자의 중요성을 모두 인정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한때는 약물근본주의가 위세를 떨쳤습니다. <프로작>의 개발은 특히 약물근본주의의 르네상스를 가져왔습니다. 그러나 요즘은 다시 심리상담의 중요성 역시 인정되고 있는 시기라고 알고 있습니다. 인간의 정신활동이 호르몬과 무관할 수는 없지만 정신작용 자체를 호르몬이라고 부를 수는 없거든요. 교향곡은 음표로 표현되고 있지만 결코 음표=교향곡이 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반달사슴  08-04-23 12:01
코지토님// 

 잘 몰라서 질문 하나 합니다. 

님의 글, 
"핑커는 이러한 심리학적 가정을 <실리퍼티>라 부르면서 빈서판가정의 하나라고 조롱합니다." 

실리퍼티는 뭐고 빈서판가정은 무엇인가요? 
검색을 하려다가 말한번 건네 보고 싶어서 질문합니다.
코지토  08-04-23 14:18
반달사슴/ 
말 건네 주셔서 감사합니다. 
반달사슴님의 리플읽으면서 저 역시 말 건네고 싶었습니다...^^ 

실리퍼티는 일종의 실리콘 덩어리처럼 자유롭게 모양을 바꿀 수 있는 덩어리를 말합니다. 일종의 장난감입니다. 실제로 실리콘으로 만들어져서 실리콘 퍼티라고 부르기도 하는 것으로 압니다. 

인간의 마음이 완전히 무형의 실리퍼티로 태어나기 때문에 적절한 주형만 입히면 무엇으로든 만들어 질 수 있다는 가설이 실리퍼티 이론입니다. 이 이론은 인간이 완전히 백지로 태어난다는 빈서판(balank slate)이론 중 하나라고 스티븐 핑커는 비판합니다. 

빈서판이론은 인간은 본성 없이 백지로 태어나 환경과 문화로 인해 본성이 형성된다는 이론입니다. 빈서판이론은 또 표준사회과학 모델이라고 부르는, 정치적으로 올바른 사회과학적 가설의 한 부분을 형성합니다. 스티븐 핑커는 표준사회과학모델에 대해서도 비판적입니다.
 반달사슴  08-04-24 00:29
실리퍼티라는게 태어날땐 ego 가 없다고 생각한 프로이트의 가설과 별 다를것이 없군요. 이런 이론들에 대해서 요즘 정신분석학계에선 아기들을 지나치게 무능력하고 수동적인 존쟤로 보는 시각이라고 비난하지요.
코지토  08-04-24 14:12
반달사슴/ 네... 하지만 프로이드는 아이는 리비도나 본능은 가지고 태어난다고 봤죠. 그런 점에서 완전한 빈 서판가정과는 차이가 있는 것으로 압니다. 오히려 대상관계이론, 자아심리학쪽이 빈서판에 가까운 것으로 봅니다. 

프로이트는 리비도의 카텍시스를 형성하는 것이 양육자와의 관계, 정확하게는 양육자의 부분부분으로 카텍시스가 가고 이러한 과정을 통해 성격구조가 형성된다고 봤습니다. 대상관계이론에서는 원형질의 에너지가 부모와의 관계에 의하여 일정한 모양으로 표상화 되고, 이 표상의 구조화가 성격이라고 봤습니다. 

요즘은 통합주의적 접근이므로 이러한 발달이론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경우는 없는 것으로 압니다.
 Damian  08-04-24 22:32
좋은 글 감사합니다.
 반달사슴  08-04-25 01:26
코지토님/ 
빈서판 이론이 무언지는 잘 모르지만... 만약 아이가 마음의 칠판을 가지고 세상에 나온다면, 
프로이트는 신생아의 칠판은 낙서로 가득차 있고 평생 지우기가 어렵다고 생각했지요.  3세 이전의 아이들이 자라나면서 그 칠판이 어떻게 쓸만한 것이 되는지에는 별로 관심이 없었답니다. 어른들의 칠판에 있는 그 낙서를 지우고 쓸만한 내용을 적어나가는 일에 관심이 있었답니다. 
스피츠와 말러 같은 분들은 아이가 태어날때 가지고 나오는 그 칠판에 상당히 정리된 내용이 있다고 생각했지요. 비록 신생아들이라도 칠판에 의미있는 내용들이 있고 이때 부터 엄마와 함께 내용을 더 만들어 나간다고 생각했지요. 
하트만과 에릭슨 등은 칠판에 낙서가 있어도 그위에 색이 다른 분필로 정리된 내용을 적어나가면 낙서들은 별 힘을 쓰지 못한다고 보았지요. 
포나기와 스턴에 이르러서는 아이가 분필을 쥐고 태어난다고 보는거지요. 그 분필을 엄마와 같이 쥐고 칠판에 그림을 그리다가 나중엔 혼자서 그리고 놀고.....
 반달사슴  08-04-25 01:34
말러..님/ 
중간에 나오는 프로이트 그림이 앤디워홀 작품인가요? 
이런것도 있었나 싶어서....
 mahlerian  08-04-25 01:47
반달사슴/ 
네. 워홀작품입니다. ^^
코지토  08-04-27 18:04
Damian/ 
아닙니다. Damian님의 글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짧게 쓴 글이기도 하고요. 
칭찬에 감사드립니다.
코지토  08-04-27 18:06
반달사슴/님의 비유가 적절한 지에 대해서는 제 내공이 짧아서 뭐라고 하기가 어렵습니다...^^;; 

다만... 프로이트가 신생아의 칠판이 낙서로 가득 차서 고치기 어렵다고 보지는 않았을까....  라고 생각합니다. 신생아가 원천적으로 타고나는 성욕, 리비도, 타나토스를 낙서로 보신다면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은 해봅니다. 

다른 비유에 대해서는 제 내공으로는 답변을 드리기가 어렵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