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을 보고 '이완용이 고종의 옥새를 훔쳤는데 뭐가 합법적이야?' 또는 '나중에 고종이 무효를 주장했는데 뭐가 합법적이야?'

이런 생각을 잠시나마 했다면, 이 소개글도 그렇고 앞으로 쓸 본문도 심장에 상당히 안좋은 글일테니 그냥 스킵하세요. 뭐, 어쩌겠습니까?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라는 노랫말처럼 '선동 당하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니 말입니다. 그래도 진실이 뭔지 알고 싶으면 님 마음대로.


사실 별로 쓰고 싶지 않은 글입니다. 진영논리가 극심한 주제라 언급하고 싶지도 않고 저도 이 주제에 관하여는 상당히 오류를 많이 범했으니까요.


그런데 비행소년님이 저의 혼동을 바로 잡아 준 ratchet에 대한 설명을 하려니 비엔나 협약(또는 빈 협약)이 거론되어야 하고 독일의 배상정책이 거론되어야 하며 한일협정에서 무엇을 박정희 정부가 놓쳤는지(그동안 정권이라는 표현에서 정부라는 표현으로 순화시키되 박정희 정권과 전두환 정권 둘은 '정권'이라는 호칭을 고수했지만 그 중 박정희 정권은 박정희 정부로 호칭을 바꿉니다.) 설명을 드려야하길래 그냥 내친 김에 그동안 정리된 생각들을 글로 써봅니다.


박정희, 나쁜 짓 많이 했죠. 그런데 그 맥락이 있습니다. 그 맥락보고 용서해주자는거 아닙니다. 비난을 해도 역사왜곡하지 말고 제대로 하라는 이야기입니다.


그동안 한일협정 관련하여 무조건 박정희 죽일놈 만들고 식자대접 받는 진보쓰레기들이 얼마나 역사왜곡을 했는지를 좀 밝히려고 합니다. 박정희 잘못했습니다. 좀 아쉽죠. 근데 그 것도 맥락이 있습니다.


경제개발해야하는데 419혁명으로 수립된 제2공화국 장면의 투자 요구를 미국은 알뜰히 거절했습니다. 6.25 당시 트루먼을 설득하여 미국을 참전하게 만든 그 장면조차도 경제 투자를 이끌어내지 못했습니다. 박정희는 더욱 더 거부 당했죠. 남로당 전력이 있기 때문이였죠.


사실, 미국의 이런 기조는 중국의 일대일로에 대한 태도에서도 그대로 견지됩니다. 즉, 국가에 의한 개발은 무조건 반대한다는 것이죠. 어쨌든, 경제개발을 해야 하는데 돈이 없습니다. 그래서 기댈 곳은 일본.


당시 일본 아니면 돈 빌릴데가 어디 었었나요? 자립경제니 하는 개소리는 집어넣으세요. 한일협정관련하여 박정희를 최대 멍청했다고 비난할 수는 있어도 진보진영의 박정희의 일본 향수와 일본의 극우의 식민지 시대 향수의 결합이라는 주장은 새빨간 거짓말이죠. 오히려 남북한의 통일을 방해하는 일본의 발목을 잡은 효과도 있습니다. 그러니 한일협정의 두 키워드는 such와 already입니다.


솔직히, 오히려 고마와야 해야 할 일본에 우월감으로 포장된 뿌리 깊은 열등감(감히 왜구가?)에 연유하는 근원을 모르는 적개심. 뭐, 그 적개심이 노예근성을 DNA에 새겨넣은 개돼지의 습성이라는 것을 잘 알고는 있습니다.


또한, 진보진영이 일본에 대한 적개심을 부추키기 위해 독일의 배상 정책을 비교하는데 그건 일본의 배상정책과 독일의 배상정책의 역사가 다른 출발점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독일 배상의 경우에는 냉전을 더욱 심각하게 만들었다고 평가를 받을 정도로 미국과 소련의 대립이 심각했던 반면 일본은 좀 다른 전개였습니다.


그 어마어마한 배상금에도 불구하고 독일이 라인강의 기적을 일으킨 이유도, 동독이 동구권에서 가장 잘 사는 나라가 되었던 것도 바로 미소의 대립에 의하여 동서독 공히 배상금의 대부분을 탕감받았기 때문입니다.


어쨌든, 한일협정 당시 일본이 남한에 공짜로 준 돈은 3억불인데 이 돈은 독일이 전범피해자들에게 배상한 1960대까지 기준으로 하면 엇비슷한 금액입니다. 그런데 일본의 배상금액은 한국에 전부 준 것이고 독일은 각 나라에 나누어 준 것이니 금액적으로는 일본이 더 많이 배상한 셈이죠.


물론, 1970년대 이후에 독일의 배상금 총액은 2001년까지 70억 유로였으며 그 중 상당 부분은 '돈으로 산 통일'이라는 비야냥을 들을 정도로 통일을 위한 밑밥이기도 했습니다만 그 진정성만큼은 의심할 이유가 없습니다. 이 과정에서 ratchet용어가 나옵니다. 독일은 배상정책을 공식적으로 종료하면서 '그러나 이 종료는 비가역적인 것이 아니며(non-ratchet) 전 세계를 향하여 열려져 있다'라는 선언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이 ratchet는 한미FTA에서 의미는 같지만 좀 다른 맥락이고 국가 간 조약을 규정한 비엔나 협약(빈협약)에서는 규정이 필요없습니다.


근데 과연 을사조약은 국제적으로 무효일까요?


일부 학자들은 을사조약이 체결된 이후에 3일 후에 독일의 빌헬름 2세에게 보낸 을사조약의 부당성이 당시 국제법에 의하여 거증된다고 했는데 거짓말이죠. 20세기 초의 국제법? 뭐 별거 없습니다.

國際法 / International law

전통적 의미로는 국가간의 법. 주로 준거법, 국제재판관할 등의 문제를 다루는 국제사법(private international law)과 대비하여 국제공법(public international law), 만국법이라고도 불린다. 구한말에는 '만국공법'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국제공동체(international community)를 규율하는 법으로 20세기 초까지만 해도 '국가 간의' 법을 의미했다. 하지만 2차세계 대전 도중 급진적 시오니스트들이 팔레스타인 지역에서 살아가던 유대인들의 근거지인 게토를 점령하면서 팔레스타인 사람들에 대한 일방적인 학살이 벌어진다. 


이러던 것이 UN의 ILC(International Law Court)에 의하여 국제법의 시초인 비엔나 협약(빈 협약)이 만들어지고 성문화되었으며 관습화된 것을 하나둘씩 명문화시키되 UN의 ILC의 취지에 벗어나지 않는 것은 명문화되지 않았어도 적용시키며 backward adaptability(후진 적용)를 인정한 것이고 한일협정의 유효는 바로 비엔나 협정 후에 체결되었지만 backward adaptability에 의해 가능한 것이죠. 을사조약 역시 마찬가지고요.


비엔나 협약 제57조를 아래에 인용합니다.

제57조(조약의 규정 또는 당사국의 동의에 의한 조약의 시행정지)
모든 당사국 또는 특정의 당사국에 대하여 조약의 시행이 다음의 경우에 정지될 수 있다.
(a) 그 조약의 규정에 의거하는 경우, 또는
(b) 다른 체약국과 협의한 후에 언제든지 모든 당사국의 동의를 얻는 경우


양국의 협의가 조약이 파기됩니다. 국제협약이 장난도 아니고 3일 이내에 무효임을 주장했다고 무효다? 지나가던 개가 웃습니다. 제가 ratchet를 혼동했던 부분이 바로 이 부분입니다. 조약에 참석한 모든 국가가 조약 무효를 서명하지 않는 한 비가역적입니다.



다음에는 한일협정의 such와 already가 왜 키워드가 되는지를 역사적 사실을 들어 설명하겠습니다. 좀더 자세한 문멕을 파악하기 위하여 한일협정 영문원본괴 샌프란시스코 조약 12월 결의안 195(Ⅲ) 원본이 있어야 하는데 찾지를 못하겠네요. 그리고 배상관련하여 한국정부의 정통성을 좀 따져봐야겠네요.




이 글에 있을 수 있는 오류에 대한 책임을 발뺌하자는게 아니고 내가 모르는 무엇인가가 있나요? '상식적 수준의 지식만 있으면 거짓말인 것이 금방 들통이 날텐데' 그런 거짓말이 언론에 난무하니 말입니다. 물론, 국제법에 대하여 우리나라가 개무식하다는 것은 여러번 밝혀졌지만 수준이 별로 나아지는 것 같지 않네요.



이번 한일무역전쟁에서 보여준 한국인들.

만일 각국 국민들을 대상으로 국제화 상식수준을 수치화한다면 한국은 OECD 국가들 중 몇위를 할까요? 장담하는데 꼴찌할 것입니다. 




백이숙제는 "以暴易暴"를 남겼고 한그루는 "以"를 남기고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