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들을 그 침습(侵襲, invasion)의 정도에 따라 나눌 수 있다.
1. 논객(論客)
2. 관객(觀客) 
3. 묵객(墨客) 
4. 세객(說客) 
5. 검객(劍客)
6. 도객(刀客) 
7. 자객(刺客)

1. 논객: 기초의학, 예방의학, 산업의학, 보건학

2. 관객: 영상의학과, 병리과

3. 묵객: 진단서, 처방전, 의뢰서 쓰는 내과, 소아과, 피부과, 방사선종양의학과, 재활의학과, 가정의학과등

4. 세객: 정신과

5. 검객: 외과들중의 한 과

6. 도객: 나머지 모든 외과

7. 자객: 마취과 (청부에 따라 죽이고 살림)

위로 갈수록 비침습적이고, 아래로 갈수록 침습적이다. 침습적이라는 말은 곧 위험하다는 말이고, 위험한 일을 할수록 자기 몸뚱이 하나가 재산인, 소위 "프로"의 세계로 빠져 들어간다.

논객들은 종종 사회주의적 이상/몽상/망상에 젖어들지만, 도객이나 자객쯤 되면 철저한 각개약진에 솔리타리 노 프렌드의 플레이가 필요하며, 당하는 위험에 따른 위험 수당을 요구하게 된다. 그래서 자객들중에는 프리 랜서(lancer가 원래 "창잡이"라는 뜻이다.)도 많이 있다. 일종의 해결사이다. high risk high return이므로, 칼 휘두르고 독 푼 만큼 버는 거지, 무슨 "능력에 따라 일하고, 필요에 따라 나눈다"는 공산주의 이념이란 가당치도 않은 것이다. 게다가 이들은 복면도 한다. 연예인들처럼 얼굴로 먹고 사는 게 아니다.

환자 입장에서 보자고 하여도, 온 우주에 하나밖에 없는 자기 몸뚱아리가 "도마 위의 고기" 신세가 되는 절박한 상황이니, 이곳 이적에(hic et nunc) 공산주의 이념에 투철한 고양이 손을 원하겠는가, 아니면 부르조아지 근성에 쩐 신(神)의 손을 원하겠는가? 물론 고를 수 있다는 전제하에. 그러니 김용익 따위가 감히 나서서 설칠 자리가 아닌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외과 의사가 철저한 문빠이다? 가능한 설명은 물론 있다. 아크로 회원들이라면 다들 짐작할 터이므로, 설명을 생략한다.

"인간의 의식이 존재를 규정함이 아니요, 그 존재가 의식을 규정한다." (맑스)
맑스의 통찰을 가볍게 밟아 주는 실로 대단함 아니겠는가. 대다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