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브리어 단어중에 tzedakah라는 것이 있다. 본래의 어의는 "정의"라는 뜻이나, 실제 생활에서의 의미는 "자선"을 뜻한다. 

그러고 보면 자선이라는 단어도 마찬가지이다.

자선(慈善)[명사][하다형 타동사]가난하거나 불행한 처지에 있는 사람을 딱하게 여겨 도와주는 일.

사랑 자, 착할 선이니 자선의 여자적 의미는 "사랑함과 착함"일 뿐이다.

중세 시대 랍비 마이모니데스는 tzedakah를 여덟 단계로 분류하였는데, 아래 등장하는 여승무원의 행위는 그중 여덟번째 단계의 저수준 tzedakah이다.

배고파 우는 승객 아기에게 젖 먹인 필리핀 항공기 승무원 :: 매일경제 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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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마이모니데스의 주장중 핵심 부분은, 그가 tzedakah가 "동심원상으로 행해져야 한다"고 하였음이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그런데 그를 둘러싼 사회는 단층이 아니라, 마치 양파 껍질처럼 다중 복층이다. 그러니 그 수많은 사회중 어느 사회에 더 가치와 중점을 두어야 할지의 선택이 필수이며, 경우에 따라서는 실존적, 치명적 선택이 강요될 수도 있다. 각종 정의론에 등장하는 "전차의 딜레마"를 떠올리면 될 것이다.

그에 대한 마이모니데스의 해답은 비교적 명료하다. 그리고 숱한 동심원들의 중심에는 누가 존재하는가? 바로 자기 자신이다. 마이모니데스의 사상은 편만한 사회주의 사상을 극복하고 인간주의의 영역에까지 도달한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