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에서는 홍차 마시는 습관을 보고 그 사람의 사회적 지위를 가늠한다고 한다.

요즘의 홍차야 싼 가격에 아무나 마실 수 있는 음료가 되었지만 제국주의와 식민지주의가 지구촌을 덮던 시절의 (아마, 운반비 문제로)홍차의 가격은 비쌌던 모양이다. 그래서 당시 영국에서는 상류층에서는 홍차에 우유를 타서 마셨지만 비상류층, 특히 노동자층에서는 우유에 홍차를 타서 마셨다고 한다.


그리고 그런 습관을 영국의 노동자들은 버리지 않는다고 한다. 내가 그 이유를 진중권에게 물어본 적이 있는데 진중권의 대답은 '영국의 노동자들은 대영제국을 만드는데 크게 일조한 그런 자부심이 있기 때문에 굳이 자신이 노동자임을 숨기지 않는 것 같다'였다.


그리고 홍차 관련 이야기는 엘리자베드 영국여왕이 한국을 방문했을 때 일화에서 더 잘 나타나 있다.


<DJ가 우유에 홍차를 타서 마시는 것을 본 엘리자베드 여왕이 말하기를>

"우리 영국에서는 상류층은 홍차에 우유를 타마시고 서민층은 우유에 홍차를 타마신답니다"

엘리자베드 여왕은 아마도....... 아무런 사심없이 이야기 했을 것이다. 그러나 듣기에 따라 분위기가 상당히 어색해질수도 있는 멘트였는데 '유머 교본'에 반드시라고 할만큼 등장하는 'DJ의 유머'.... DJ도 한 유머 한다.... 가 명불허전임을 입증하듯 그 장면을 멋진 유머로 화기애애하게 바꾸어버렸다. 정확히 기억은 안나지만 대충 이런 내용의 멘트였었다.

"이런... 제가 망명생활과 도피생활을 오래하다보니 홍차를 즐길만한 시간이 별로 없어서요."
(자펌 : 백화는 아직도 우유에 홍차를 타마실까?) - http://theacro.com/zbxe/774378 by 한그루


한국같으면 어땠을까?

오늘 날 자주 쓰는 표현 중 하나인 '이 양반이, 저 양반이'라는 표현에서 보듯 족보를 돈으로 샀던 조선말기의 풍토에서처럼 한국인들의 뿌리깊은 정서에는 '직업은 귀천이 없다'라는 것은 말 뿐인 것으로 남아 있으며 기계적 평등을 요구하는 그래서 '부모의 실력이 자식의 실력이 되는' 현실을 부정하는 풍토에서 홍차를 안마시거나 우유를 홍차에 타서 마셨을 것 같다.


즉, 한국의 social freedom이 156개국 중 144위인 것과 마찬가지로 나라별로 국민의 자존감을 조사한다면 아마 최하위층이 아닐까 추측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posh accent라는 것이 있다. posh accent는 영국의 상류층에서만 사용하는 억양이라고 한다. 그래서 홍차 마시는 방법으로 신분을 가늠하듯 accent를 가지고 신분을 추측한다고 한다. 엘리자베드 여왕의 발음은 posh accent의 표준이라고 하고 상류층 자제들은 성장과정에서 posh accent로 말하는 것을 교육받고 자란다고 한다.


posh accent라는 용어를 접하고 보니, accent는 커녕 중학교 때부터 문장외우는 것이 영어 공부의 왕도라는 영어선생님 때문에, 심지어 그 영어선생님이 2,3학년 때는 담임이 되셔서 중2병 발휘는 커녕 영어문장 외우기로 날밤을 새웠고 그래서 발음은 뒷전이 될 수 밖에 없던 시절 - 하다 못해 나는 early발음을 이얼리라고 했다 ^^. 그런데 그렇게 발음하는 나나 외운 것을 낭독할 때 그 발음을 교정 안해주셨던 선생님이나 ^^ -  내 영어발음은 엉망이 되었고 그래서 영어발음은 시험에서나 나오고 답을 맞추면 되었으며(내가 영어를 자주 100점을 맞지 못하는 이유와 전교 1등을 몇번 해보지 못한 이유 중 하나이다.) 사회에 나와서는 발음 교정으로 당시 주한미군 영내의 대령 부인에게 한달에 30만원 이상씩을 주며 일년간 영어발음을 교정했던 시절이 추억으로 생각이 나며 그 추억 뒤로 '한국이 accent로 사회적 지위를 가늠하는 사회라면 어떻게 될까?'라는 의문과 함께 '안봐도 비됴지, 모든 아이들이 그 accent를 배우느라 몸살을 앓았을 것'이라는 너무 자명한 대답이 생각났다.


말하고자 하는 것은, 한국의 social freedom에 대하여 Albina님과 宇宙님의 좋은 의견을 주셨는데 그 의견 이외에 결국 한국의 social freedom이 극도로 낮은 이유는 낮은 자존감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행정학 상으로 일탈행위는 사그러지기도 하고 주류가 되기도 한다는데 한국에서는 일탈행위를 하는 사람들이, 미래에는 주류가 될, 너무 적다는 것이다. 물론, 벼룩론에서처럼 순종을 강요하는 문화 때문인지도 모르겠지만.


백이숙제는 "以暴易暴"를 남겼고 한그루는 "以"를 남기고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