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비오 신부의 5.21 헬기 기총 소사 증언은 신빙성이 있나

 

2019.03.13.

 

먼저 이 글을 읽는 독자 여러분께 부탁 말씀 드린다.

이 글은 객관적 사실관계를 다루는 것이지 5.18의 성격을 규정하거나 역사적 평가를 하기 위한 목적이 아님을 밝힌다. 따라서 각 개인이 생각하는 5.18에 대한 가치 판단을 개입하여 선입견을 갖고 읽지 말았으면 좋겠다.

 

전두환은 자신의 회고록에서 5.18 당시 헬기 사격을 목격했다고 증언한 고 조비오 신부에 대해 성직자라는 말이 무색한 파렴치한 거짓말쟁이라고 기술하여, 조비오 신부의 조카로부터 사자 명예훼손혐의로 고소를 당했다.

만약 5.18 당시 헬기 기총 소사가 없었다면 전두환은 무죄가 된다. 사자 명예훼손은 생존자와 달리 허위 사실 적시에 의한 명예훼손만 인정되고 사실 적시에 의한 명예훼손은 인정되지 않기 때문이다. 헬기 사격이 있었다고 하더라도 전두환이 고의로 저런 기술을 한 것이 아니라면 무죄가 되지만, 이 경우는 재판부가 고의가 아니라고 판단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여 유죄의 가능성이 높을 것이다. 따라서 전두환측과 조비오 신부측(검찰)5.18 당시 헬기 사격이 있었느냐를 두고 치열한 공방을 벌일 것으로 보인다.

 

최대 쟁점인 5.18 당시 헬기 기총 소사가 있었는지를 지금부터 알아 보자. 더 범위를 좁혀 조비오 신부가 증언한 5.21 오후 130~ 2시 사이에 헬기 기총 소사가 전남 도청 부근에서 있었는지 살펴보겠다.

결론부터 말하면 5.21 오후 1~2시경 전남 도청 인근에서 헬기 기총 소사가 있었다는 것은 조비오 신부의 착각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판단된다.

 

1. 조비오 신부의 증언 내용

 

먼저 조비오 신부가 어떤 증언을 했는지 본인이 직접 증언한 내용을 아래에 그대로 옮겨 보겠다. 이 내용은 5.18 재단에서 5.18의 주요 인물들을 면담하며 구술록을 기록으로 남긴 <5.18의 기억과 역사 5 천주교편(P100~105)>에서 인용한 것이다.

<그때 그 시각에 공중에서드르르륵소리가 난거야. 그러니까 다들 이게 뭔 소리냐고 다들 난리가 난거지요. 나가지 말라고 결정이 되자마자 공중에서는 총소리가 나니깐 이(영수)요한 신부님은 밖으로 나갔어요. 사제관 뜰 앞 정도로 나오고 나는 성당 밖으로 나오니까 헬리콥터가 남쪽 에서 날아와서 불로동 쪽으로 가는데 불로교 쯤에서 올라오는데 높지도 않고 사람이 내려다보는 것이 보여요. 그렇게 가면서피익~드르르륵쏘는거라. 처음에 났던 것도 그 소리였어요. 내가 얼마나 혼비백산했는지. 정말 혼이 날아갔지요. 그때는 호남동 성당이 기와가 이어진 담이었어.

그때 내가 그리 은신을 했지요. (헬리콥터는)사직공원을 넘어서 월산동 쪽으로 넘어가.“오메, 저놈들 진짜 쏘네.” 그 쏘는 것을 이(영수)요한 신부님도 본 거야. 어디에 대고 쐈는가? 누가 맞았는지 모르지만 쏜 것은 본거지요. 그날 21일이야. 드르르륵 한 소리는 발포한 것은 도청 앞에서 발포한 것인지 모르겠어요. 그때가 1시 반부터 2시 반 그 사이 내가 역력히 기억하거든요. 거기서도드르르륵하는 소리가 났고, 공중에서도 발포한 (불빛과) 소리가 났어요. 거의 동시다발적으로 총소리가 (불빛이) 났는데 처음 노골적으로 시민을 향해 발포한 시간이 21일 오후 1시라고 하더구만, 그러니까 맞아떨어져. 우리 사제회의는 그 소리를 듣고 다들 일어난 거예요. 그래서 다 집으로 가셨지요.>

 

이 조비오 신부의 증언을 보면, 헬기 기총 소사를 목격할 당시 조비오 신부가 있었던 장소는 호남동 성당이고, 조비오 신부가 헬기의 기총 소사가 있었다고 지목한 곳(헬기의 발포 소리가 난 곳)은 도청 인근으로 보인다.

 

2. 김영삼 정부가 조사한 ‘5.18 관련 사건 수사결과 보고서에 나오는 당시의 상황

 

그러면 조비오 신부가 증언한 헬기가 발포했다는 시간과 장소에는 당시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보자.

1995718(김영상 집권 시절) 서울지발검찰청과 국방부 검찰부가 발표한 ‘5.18 관련 사건 수사결과보고서에 나타난 521일 오후 1시 이후의 도청 광장에서 벌어진 상황은 다음과 같다. 이 보고서의 P97~105를 보면 당시의 전남도청 앞 상황이 자세히 묘사되어 있는데 조비오 신부의 증언과는 많이 다르다. 그리고 P207~210에는 헬기 기총 소사 여부와 관련하여 언급하고 있는데, 헬기 사격은 없었다고 결론 내리고 있다.

 

-. 5.21. 08:00 : 전남도청 앞에 수 만명의 시위대가 사체 2구가 실린 손수레를 앞세우고 시위.

-. 10:00 : 시위대 대표 4, 도청에서 장형태 도지사와 면담.

-. 11:00 : 장형태 도지사 시위대 앞 연설 포기하고 헬기로 시민 자제 요구 방송.

-. 12:00 : 공수 부대 장갑차 2대와 함께 도로에 횡대로 포진하여 시위대의 도청 진출 저지, 시위대는 장갑차, 트럭, 버스, 택시 등의 백여 대 차량으로 공수부대 저지선 압박.

-. 13:00 : 시위대가 계엄군 장갑차에 화염병 투척, 장갑차에 불이 붙는 순간 시위대의 장갑차 1대가 갑자기 공수부대 쪽으로 돌진, 공수부대의 저지선 무너지고 공수부대원 2명이 장갑차에 깔려 1명 사망. 시위대 장갑차의 갑작스런 돌진에 놀란 계엄군 장갑차 소대장이 장갑차에 거치된 기관총 방아쇠 건드려 공중 발포. 도청 직원들이 선무활동의 일환으로 스피커 통해 애국가 방송하며 해산 호소. 계속하여 시위대의 버스와 트럭이 도청 쪽으로 돌진해 오자 공수부대 장교들이 돌진하는 차량을 향해 발포하여 버스 운전자 1명 사망.

-. 13:30 : 시위대쪽에서 장갑차 1대가 도청으로 돌진하자 경계중이던 공수부대원 장갑차를 향해 일제히 발포하여 청년 1명 피격. 공수부대의 발포로 후퇴하였던 시위대가 다시 카톨릭센터, 한국은행 광주지점 부근에 모임.

-. 13:00~15:35 : 시위대, 광주 인근 전라 지역 파출소, 지서, 경찰서, 광업소, 화약고, 한국화약 등에서 카빈, M1, AR, LMG 등 총기 49백여 정, 실탄 13만여 발, TNT 10du 상자, 수류탄 27십여 발 탈취.

-. 14:45 : 61항공단 UH-1H 헬기 전남도청 상공에서 공중 정찰 중 시위대의 대공사격으로 6발 피격.

-. 14:50 : 시위대 장갑차 전남도청 광장쪽으로 돌진, 공수부대 발포로 후퇴.

공수부대는 전남도청 본관과 신관, 전남일보, 수협 도지부, 상무관 등 인근 건물 옥상에 병력 배치하여 도청 부근 접근하는 시위대에 총격.

-. 15:00 : 남평지서에서 무기 탈취한 시위대가 충금지하상가 사거리 도착.

-. 15:15 : 우체국 쪽에서 시위대 2천명 모여 칼빈과 실탄 휴대하고 전남도청 쪽으로 진출하면서 총격전.

-. 15:50 : 시위대가 전남의대 오거리에서 전남도경 쪽으로 사격하면서 이동.

광주통합병원 상공에서 선무방송하던 헬기 시위대 대공사격 6발 피격.

-. 16:00 : 광주은행 본점 부근에 트럭이 도착하여 시위대에 30여 정 칼빈 분배. 일부 시위대는 전남의대 부속병원 12층 옥상에 LMG 2정 설치하고 전남도청과 군 헬기 향해 사격.

윤흥정 전교사령관, 공수부대 전남도청 철수 지시.

-. 16:30 : 전남도청 상황실 폐쇄.

-. 17:00 : 공수부대 전남도청에서 철수 시작.

-. 17:15 : 전남도경 상황실 폐쇄, 경찰 병력 철수 시작, 전경들은 운동복으로 갈아입고 철수.

-. 20:00 : 전남도청 시민군에 의해 접수됨.

출처 : http://www.systemclub.co.kr/bbs/board.php?bo_table=12&wr_id=6106

 

* 시간이 되시는 분은 이 ‘5.18 관련 사건 수사 결과 보고서를 자세히 정독해 읽어 보기를 바란다. 여러분들이 알고 있는 5.18과 많은 부분이 다르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가장 격렬했던 521일 상황을 보면 영화 화려한 휴가’, ‘택시 운전사’, ‘265.18 관련 영화들이 얼마나 사실과 다르게 묘사했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공수부대원들이 일렬 횡대로 정조준하여 상관의 발포 명령에 따라 시위대를 향해 일제히 발포하는 영화의 장면은 완전히 허구다. 이 보고서대로 당시를 재현한다면 화려한 휴가에서 묘사한 장면과는 완전히 다른 상황이 된다. ‘화려한 휴가를 보면 오후 1시에 애국가를 신호로 공수부대가 평화적 시위를 하는 비무장의 군중들을 향해 일제히 발포하는 것으로 그려져 있지만, 사실은 시위대의 차량 공격으로 공수부대원 2명이 깔려 그 중 1명이 사망하자, 공수부대원들이 자위적 차원에서 돌진하는 차량을 향해 총격을 가했고, 갑작스런 쌍방의 무력 충돌을 진정시키기 위해 애국가를 틀었던 것인데 영화에서는 이를 계엄군이 애국가를 신호로 하여 발포하는 것을 사전에 계획하고 시행했던 것처럼 묘사했다.

그리고 105페이지에 나오는 5.21에 사망한 시위대 명단에서 조사천을 유심히 보시라. 칼빈 총상으로 사망했다. 조사천의 아들이 아버지의 영정을 들고 있는 사진(‘5월의 어린 상주‘)5.18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것인데 그 주인공이 칼빈에 의해 사망한 것이다. 공수부대원의 총격에 의한 것이 아니라 시민군의 총격에 의해 사망했다. 이날 사망자 중 조사천 외 8(9)이 칼빈 총상으로 사망하고 2명은 총기불상이다. 그런데 화려한 휴가에서 어떻게 나오는가?

 

3. 조비오 신부 증언과 ‘5.18 사건 관련 수사결과 보고서교차 검증

 

위의 ‘5.18 사건 관련 수사결과 보고서와 조비오 신부의 증언을 교차 검증해 보면, 시위대 장갑차가 갑자기 돌진하여 공수부대원을 사망케 하자 당황한 공수부대 장교가 장갑차의 기관총의 방아쇠를 건드려 공중으로 발포했을 때 났던 기관총 소리를 조비오 신부가 헬기의 기관총 사격 소리로 오인했음을 알 수 있다.

조비오 신부는 5.21 오후 1시경에 전남도청 인근에 있지 않고 도청으로부터 500m 떨어진 호남동 성당에 있었기 때문에 전남 도청 앞 상황을 보지 못했다. 헬기는 전남도청 상공을 선회하며 시민들의 자제 요구 방송을 하고 있어 조비오 신부는 500m 떨어진 성당에서 도청 상공을 비행중인 헬기를 보았고, 마침 공수부대 장갑차의 기관총 소리도 들어 이를 헬기 기총 사격으로 착각한 것으로 보인다.

 

조비오 신부가 착각했다고 볼 수 있는 근거는 이것 말고도 많다. 5.21 오후 1~2시경에는 도청 부근에는 수 만명의 사람들이 있었다. 만약 조비오 신부의 말대로 그 시간에 도청 부근에서 헬기의 기총 사격이 있었다면 이를 목격한 사람은 최소 수 천명이 되어야 정상이다. 헬기가 10층의 전일빌딩보다 낮게 비행하며 호버링 상태로 사격을 했다면 헬기의 모습, 헬기의 굉음, 기관총(M60)의 사격 소리가 굉장했을 텐데 현장에 있던 수 만명의 시위대들이 이를 보지 못했을 리 없지 않은가? 현장에서 헬기 기총 소사를 한 것을 목격한 사람은 없는데 500m 떨어진 성당에서 현장을 보지도 못한 조비오 신부의 증언이 신빙성이 있을까?

당시 그 장소에는 수 만 명의 사람들이 있었는데 헬기 기총 사격으로 사망하거나 부상을 입은 사람이 단 한 사람도 없다. 헬기에서 기총 소사를 하면 그 위력은 어마어마하다. 말 그대로 쑥대밭이 되는데 당시 도청 부근에 그런 곳이 있었는가? 헬기 기총 소사에 의해 피격된 사람도 없고, 헬기 기총 소사를 한 사람이나 기총 소사를 한 헬기를 운전한 헬기 조종사도 없다. 피해자도 없고 가해자도 없는데 어떻게 헬기 기총 소사가 있었다고 주장할 수 있나?

 

4. 헬기를 향해 대공 사격한 기록과 증언은 무얼 말하나

 

‘5.18 사건 관련 수사결과 보고서에는 5.21 하루 동안 헬기가 무장 시위대의 칼빈 소총과 경기관총인 LMG로 대공 사격을 세 번 받은 것으로 나온다.

이 외에 시위대가 헬기를 향해 대공 사격한 증언은 많이 있다.

 

1) 5.18 당시 화순 시민군이었던 <문관>의 증언

우리가 방림국교 앞에 도착했을 때, 헬기 2대가 돌아다니면서 선무방송을 했다. 헬기가 그렇게 돌아다니자, 많은 시민군들이 방림초등학교 안으로 들어가 숨기도 했다. 다음 날 새벽 4시경이 되니, 헬기가 또 날아다니면서 방송을 하고 다녔다. <시민 여러분, 안정을 되찾으시고 집으로 돌아가십시오.> 그러나 시민군들은 헬기를 향해 총을 쏘았다.”

 

2) 20살의 다방 주방장이자 시민군이었던 <조인호>의 증언

“1980521일 오후 2시경에, 이미 군용트럭을 탄 무장 시민군이 도청 주변에 있었으며, 먼저 도청 쪽으로 LMG 3발을 쏜 다음, 헬기 한 대를 향해 총을 쏘아 명중했다.”

그리고 LMG 2정이 함께 있었는데, 27살 정도이고 키가 작은 청년이 월남전 혹은 군대에서 자신이 LMG 사수였다면서 도청 쪽으로 총을 3발 쏘았다. 총소리가 엄청나게 컸다. 그 총소리에 이전까지 도청에서 계속 들렸던 총소리가 뚝 그치고 시내는 고요해졌다.

그런데 그 때 무등산 쪽에서 군용 헬기 3대가 저공으로 비행하면서 우리들 상공을 선회했다. 그러자 그 사람이 저 녀석도 한 패니 쏘아 버린다면서 헬기 한 대를 향해서 총을 쏘았다. 그러자 총에 맞은 헬기는 비틀거리면서 송정리 쪽으로 날아가고 나머지 2대의 헬기는 아주 고공으로 비행하였다.“

 

3) 시민군 <손종대>의 증언

그리고 이 날이었는지, 아니면 그 이전이었는지 확실하지는 않지만, 시민들이 산수동 뒤에 있는 깃대산’(무등산 증심사 입구)에서 총을 쏘았던 적이 있다. 이 때는 두 대의 헬리콥터가 <광주시민 여러분, 자제합시다>라는 내용의 선무방송과 아울러 유인물을 뿌렸는데, 총으로 무장한 시민들이 총으로 쏘아 떨어뜨리겠다고 두 대의 헬기를 향해 총을 쏘았다. 하지만 헬기가 총에 맞아 떨어지지는 않았다.”

 

4) 중학생 시민군 <최동복>의 증언

“21일 오후 3시경, 이 때 실탄을 지급받았다. 하늘에서 헬기가 떠들어댔다. <시민 여러분, 모두 자제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몇 명의 폭도들로 인하여 국가는 위기에 처해 있습니다. 모두 집에 돌아가 주시기 바랍니다.> 화가 치민 우리는 헬기를 향해 총을 쏘기 시작했다. 이 때부터 자신감이 생긴 나는 머뭇거리지 않고 총을 쏘았다.”

 

5) 동아일보 <김영택> 기자의 보도

시민들은 헬기를 향해 일제히 주먹을 휘둘렀다. 그리고 몇 발의 총성이 울렸다. 시민군들 가운데 누군가가 폭도라는 말에 분개한 나머지 헬기를 향해 총을 쏘아 버린 것이다. 총소리가 나자 헬기는 유유히 사라져 버렸다.”

 

위의 헬기를 향해 대공 사격한 사람들의 증언들에는 헬기가 기총 사격했다는 말은 어디에도 없다. 자신들이 대공 사격하여 헬기를 피격했음에도 헬기로부터 반격의 기총 사격이 있었다는 말도 없다. 전부 선무방송을 위해 비행했을 뿐이다. 칼빈 소총 뿐아니라 LMG 경기관총으로부터 대공 사격을 받아 피격까지 당했음에도 아무런 반격도 없이 사라졌던 헬기가 521일 오후 1시경 전남도청 인근에서 비무장의 시위대(일부는 칼빈으로 무장)를 향해 M60 사격을 가했다는 것이 상식적으로 말이 될까?

 

5. 국과수의 전일빌딩 감정보고서는 신빙성이 있을까

 

국과수는 전일빌딩 외벽과 내부에 있는 피탄 흔적에 대한 조사 후, 기총 소사의 가능성이 있다는 감정보고서를 발표했다. 그런데 이 국과수의 감정보고서를 보고 헬기 기총 소사가 있었다고 판단할 수 있을까?

필자는 국과수의 감정보고서 원본을 아직 입수하지 못해 전문을 볼 수 없으나, 언론에 보도된 내용을 토대로 국과수의 헬기 기총 소사가 있었을 가능성이 높다는 결론이 왜 무리인지 밝혀 보겠다.

아래는 언론이 보도한 국과수의 감정 내용이다.

 

<감정보고서에 따르면 전일빌딩에서 발견된 총탄흔적은 모두 185개에 달한다.국립과학수사연구원 탄흔에 대한 검토결과 전일빌딩 외벽에서는 구경 5.56mm 또는 구경 0.3인치 탄환에 의한 탄흔으로 유력한 흔적 35개가 확인됐다. 전면 5, 후면 7, 우측면 23개 등이다.전일빌딩 10층에 위치한 전일방송 기둥, 천장 텍스, 바닥 등지에서 최소 150개의 탄흔이 식별됐다.이 같은 총탄흔적을 토대로 총기 발사각도를 분석한 국과수는 현실적으로 헬기에서 발사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밝혔다.전일빌딩 10층 천정에서 발견된 탄흔은 총기의 발사각도가 수평 또는 10도 이내의 상향 사격에서 발생할 수 있는 탄도로 분석됐다., 최소 10층 이상의 높이에서 사격이 이뤄졌다는 것이다. 국과수는 “1980년 당시 자료에 의하면 전일빌딩 주변, 특히 전일방송 전면에 10층 이상의 건물이 존재하지 않았다현실적으로 헬기와 같은 비행체에서의 발사 가능성이 매우 높은 것으로 평가된다고 밝혔다.특히, “기둥을 중심으로 한 동일 지점에 상향, 수평 및 하향의 각도로 집중 사격된 상황으로 보아 헬기가 호버링(공중 정지) 상태에서 고도만 상하로 변화하면서 사격한 상황이 유력하게 추정된다고 설명했다.다만, 탄흔의 총기 종류에 대해선 정확한 식별이 어렵다고 밝혔다. 창틀 주변 목재 마감재에서 식별된 탄흔 크기에 대해선 M16소총 가능성을 우선 추정했다. 국과수는 전일방송 실내에 생성된 탄흔 숫자가 최소 150개 이상인 점과 M16 소총의 탄창이 20발 또는 30발 탄창인 점으로 볼 때 1인이 탄창을 교환하며 사격했거나 2인 이상 다수가 동시에 사격한 정황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이어 탄흔 밀집 정도로 봐서는 M134 미니건의 가능성은 완전히 배제할 수 있으나 천정 텍스에서 식별된 탄흔 생성 방향으로 봐서는 UH-1헬기의 양쪽 문에 거치된 M60 기관총의 가능성은 완전히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고 여지를 남겼다.헬기 기총사격이 이뤄졌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또 국과수의 3차 현장조사 당시 시민이 제출한 5.56mm 탄피 2점과 0.3인치 탄피 3점은 생산시기로 보아 당시 사용된 실탄의 탄피일 가능성이 인정된다고 감정했다.>

 

국과수는 전일빌딩 외벽, 기둥, 천장 텍스, 바닥에서 구경 5.56mm, 0.3인치(7.62mm) 탄흔이 발견되었다고 했다. 이 중 5.56mm는 당시 계엄군이 사용하던 M16의 구경으로 이는 헬기의 기관단총이 아니다. 따라서 헬기 기총 소사와 무관하다.

문제는 7.62mm 구경인데, 7.62mm 구경의 총기가 무엇이냐가 헬기 기총 소사가 있었는지를 판단하는 핵심이다. 그런데 국과수는 이 7.62mm 구경의 총기가 무엇인지 판단하지 않았다. 충분히 판단할 수 있음에도 국과수는 탄흔의 방향을 가지고 헬기 기총 소사가 있었을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서에 기술했다.

먼저 7.62mm 구경의 총기가 무엇이었는지 알아보자.

당시 시민군이 사용한 총기는 카빈 소총이고, 헬기 기총 소사가 있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계엄군 헬기가 사용한 총기는 M60 기관단총이라고 한다. 카빈 소총, M60의 제원은 아래와 같다.

 

구분 구경(mm) 유효 사거리(m) 최대 사거리(m)

카빈 7.62 200~250 2,000

M60 7.62 1,100 3,725

 

카빈과 M60은 구경은 7.62mm로 동일하나, 유효 사거리를 보면 화력이 엄청나게 차이가 난다. 유튜브에서 M60과 카빈의 사격 장면 동영상을 보면 그 위력의 차이를 실감할 것이다.

, 이제 전일빌딩 10층에 헬기 기총 소사에 의한 피탄 흔적이라고 하는 사진을 보자.

<전일빌딩 헬기 기총 소사 피탄 자국을 보여주는 기사>

https://news.naver.com/main/read.nhn?oid=152&aid=0001958542

저 전일빌딩 기둥에 난 피탄 흔적이 M60에 의한 것으로 보이는가? 마치 곰보 자국 같이 얕게 피탄되었고, 모두 도탄되어 기둥에 박힌 탄환이 전혀 없다. M60에 맞은 흔적이라고 보기에는 너무 위력이 낮은 것으로 보인다. 지근거리에서 권총으로 쏘았을 때 나타나는 수준의 탄흔이다.

국과수는 헬기가 호버링 상태에서 전일 빌딩에 기총 소사했을 것으로 추정했다. 국과수의 추정대로 호버링 상태로 사격했다면 그 거리는 불과 50m 이내의 초지근으로, 타격 당한 곳은 그야말로 쑥대밭이 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곰보 자국만 남은 저 피탄 흔적이 M60에 의한 것이라고? 만약 M60이 그 정도 위력(화력) 밖에 되지 않는다면 우리 국군은 하루 빨리 M60을 폐기하고 다른 기관총으로 대체해야 할 것이다. 벽면과 기둥의 탄흔은 M60의 총격에 의한 것이 아니다.

50m 이내에서 M60으로 총격을 가했는데 기둥이든, 벽면이든 그 어디에 박힌 총탄이 하나도 없다는 것이 말이 되나?

아래에 링크하는 글은 전일빌딩의 피탄 흔적을 분석한 일베의 글이다. 매우 합리적으로 잘 분석했다고 생각한다.

<일베의 전일빌딩 피탄 흔적 분석>

https://www.ilbe.com/9963491915

 

다음으로 국과수가 천장 텍스의 피탄 흔적의 방향을 보고 헬기 기총 소사가 있었다고 판단하는 것에 대해 반박해 보겠다. 국과수는 천장 텍스에 보이는 탄흔 방향으로 보아 발사각도가 수평 내지 10도 이내일 것으로 보여 헬기에서의 총격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그런데 천장 텍스에 스치듯 지나간 듯 보이는 자국이 헬기 기총 소사나 카빈 소총의 탄흔일까? 탄환이 도탄되거나 유탄이 되면서 천장 텍스를 훼손했거나 다른 물체에 의해 훼손된 흔적이라고 보는 것이 합리적이지 아닐까? M60의 탄환이 천장 텍스를 향해 발사되었는데 저런 흔적만 남길 수 있을까? 카빈 소총도 직접 천장 텍스를 향해 발사하면 텍스를 뚫고 천장을 타격할 것인데 그보다 훨씬 화력이 좋은 M60이 그 정도만의 흔적을 남긴다고?

천장에는 텍스를 뚫고 맞은 탄흔이 수 십개 발견되었다. 왜 국과수는 천장에 남은 탄흔의 발사각도는 무시하고 텍스에 난 흔적으로 발사각도를 말하는 것일까? 발사각도를 추정하는데 정작 중요한 천장의 탄흔은 아예 언급도 하지 않고 텍스에 스치듯 지나간 흔적으로 발사각도를 추정하는 것이 합리적일까?

외벽과 창문틀, 그리고 기둥에 나타난 탄흔은 M60의 총격 흔적으로 보기 힘들다. 만약 헬기가 M60으로 전일빌딩 10층을 사격했다면 어떻게 외부에 있는 외벽, 창문틀, 기둥에는 하나도 맞지 않고 천장 텍스를 맞히는 것이 가능할까?

바닥에 난 탄흔이라고 보여주는 사진을 보면 저게 총격에 의한 것인지, 총격에 의한 것이라 하더라도 M60에 의한 것이라고 추정할 수 있는지 의문이다. 사진상의 바닥 흔적은 총탄 자국으로 보이지 않는다. 외벽이나 기둥에 나타난 탄흔과는 그 모양이 현격하게 다르다.

 

6. 527일 헬기 기총 소사 여부

 

527일에 헬기 기총 소사가 있었다고 증언하는 몇 몇 사람들이 있지만, 이들은 자신들의 증언을 입증할 어떤 근거도 제시하지 못해 착각을 했거나 오인을 한 것으로 보인다.

527일 새벽에 계엄군은 시민군이 장악했던 전남도청을 점령 완료하고 광주를 평정했기 때문에 헬기 기총 소사를 할 이유가 없었다.

‘5.18 사건 관련 수사결과 보고서’ 137쪽에서 139쪽을 보면 당시 공수부대가 전남도청을 점령한 과정이 상세히 나온다.

 

-. 04:00 : 3공수여단 전남도청 후문 도착.

-. 04:46 : 11공수여단 특공조, 전일빌딩과 관광호텔을 저항 없이 점령.

-. 05:06 : 7공수여단 특공조, 광주공원 점령

-. 05:21 : 전남도청 점령 완료.

-. 06:20 : YMCA 건물 점령.

-. 07:15 : 31사단, 광주 서구 일신방직 지역 점령, 작전 완료.

-. 07:25 : 20사단, 서구 지역 제외한 전지역 점령, 충정작전 완료.

 

위에서 보듯이 공수부대는 전일빌딩을 새벽 446분에 아무런 저항 없이 점령했고, 광주 전지역을 계엄군이 점령한 시간은 725분이었다. 527일 무장 헬기가 기총 소사를 할 이유가 없었고, 특히 전일빌딩은 저항이 없이 점령한 것을 볼 때 헬기 기총 소사가 있었을 가능성이 제로다.

 

<전남대학교 5.18 연구소>의 자료에 따르면 시민군이 전일빌딩 옥상에서 오후 2시까지 저항하다 마지막으로 전사했다는 기록이 있지만, 공수부대가 전일빌딩을 새벽 446분에 점령, 도청을 오전 521분에 점령하고 충정작전이 725분에 완료되었는데 전일빌딩에 남아 있던 시민군이 오후 2시에 저항하다 마지막으로 전사했다는 <전남대 5.18 연구소>의 기록은 검증해 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전남대학교 5.18 연구소>527일의 일지에도 공수부대가 전일빌딩을 접수할 때 등 충정작전이 완료될 때까지 헬기 기총 사격이 있었다는 기록은 없는 것으로 보아 527일에도 헬기 기총 소사는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전남대학교 5.18 연구소, 자료실>

http://cnu518.jnu.ac.kr/bbs/board.php?bo_table=sub6_03_01&wr_id=14&sfl=wr_subject%7C%7Cwr_content&stx=%EC%A0%84%EC%9D%BC%EB%B9%8C%EB%94%A9+%EC%98%A5%EC%83%81&sop=and&page=3

 

7. 전일빌딩에 남은 7.62mm 탄흔의 총기 종류는 카빈이다

위에서 살펴본 대로 헬기의 M60에 의한 기총 소사의 흔적은 없다. 그렇다면 전일빌딩에 남은 7.62mm 탄흔은 어떤 총기에 의해 발생한 것일까? 카빈 소총이다.

전일빌딩 옥상(10)을 향해 시민군들이 사격한 기록이 이를 뒷받침해 준다.

당시 시민군에 참여했던 <김기광>의 증언 공수부대는 적이었다는 편에는 아래와 같은 내용이 나온다.

 

<언젠가 궐기대회를 하고 있을 때 웬 사람이 전일빌딩 옥상에서 내려다봤다. 누군가 '저기 군인 같다'고 하니까 그 많던 사람들이 일시에 일어나 함성을 질렀다. 그때 군인들이 헬기를 타고 옥상에 내려왔다는 말이 있었기 때문에 사람들이 더욱 긴장을 한 것 같았다. 우리는 그 주변에 있다가 전일빌딩 옥상으로 총격을 가했다. 그러나 잠시 후 그가 군인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알고 보니 그는 잘 보기 위해 올라갔다고 했다.>

http://cnu518.jnu.ac.kr/bbs/board.php?bo_table=sub6_03_01&wr_id=433&sfl=wr_subject%7C%7Cwr_content&stx=%EC%A0%84%EC%9D%BC%EB%B9%8C%EB%94%A9+%EC%98%A5%EC%83%81&sop=and&page=3

 

그리고 <전남대학교 5.18 연구소>의 자료집이나 김영삼 정부의 <5.18 사건 관련 수사결과 보고서>에는 공수부대원이 전일빌딩 옥상에서 경계를 서고 시민군을 향해 사격했다는 기록이 수 차례 나온다. 시민군들도 옥상에 있는 공수부대원들을 향해 카빈 소총으로 사격했을 개연성이 많다.

실제 시민군이 전일빌딩 옥상을 향해 사격했다는 증언도 있고, 시민군이 전일빌딩 옥상으로 사격했을 가능성이 매우 높은 정황들로 볼 때, 시민군들이 카빈 소총으로 전일빌딩(옥상)에 총격을 가했다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따라서 전일빌딩 10층 외벽이나 기둥 등에 카빈 탄흔이 있어야 한다. 카빈 구경은 7.62mm이고, 전일빌딩 10층에는 7.62mm 탄흔이 나왔다. 그렇다면 전일빌딩의 7.62mm 탄흔은 어떤 총기의 총격에 의한 것이라고 봐야 하나? 카빈 탄흔이다.

만약 전일빌딩 10층의 탄흔이 헬기의 M60 기관단총의 탄흔이 되려면 7.62mm 탄흔은 두 가지로 나와야 한다. 화력이 카빈보다 비교할 수 없을 정도 세고, 또 카빈이 쏜 거리보다 훨씬 짧은 거리에서 호버링 상태에서 M60이 사격을 했음으로 카빈 탄흔과 M60 탄흔은 확연하게 구별되어야 한다.

그러나 국과수의 감정보고서 어디에도 이런 말은 없다. 그냥 5.66mm 혹은 7.62mm 탄흔이 나왔다고 할 뿐이다.

전일빌딩의 7.62mm 탄흔은 카빈 소총에 의한 것이라는 결론을 내리는데 무리가 있는가?

 

 

<참고 사항> 김영삼 정부의 검찰과 국방부가 조사한 보고서에 나타난 5.18 발포 역사  

1번째 발포 : 5.19일 오후 5, 계엄군 장교가 타고 있던 장갑차가 고립되자 시위대가 장갑차 뚜껑을 열고 불타는 짚단을 넣으려 했을 때 발생했고,  

2번째 발포 : 20일 밤, 공수부대 대오를 향해 고속으로 돌진하는 대형차량 바퀴에 대대장들이 권총을 쏜 것이고,  

3번째 발포 : 같은 날 광주역에 중과부적 형상으로 완전 포위돼 있던 3여단이 포위망을 뚫기 위해 실탄을 배급하러 갈 때 길을 뚫기 위해 공포를 쏜 것이었고

4번째 발포 : 광주역 앞에서 3공수 4개 대대가 포위망을 뚫고 전남대로 철수할 때 발생했고,  

5번째 발포 : 521일 새벽 5시 경에 전남대에서 시위대가 하늘을 향해 카빈총을 가지고 공포를 쏜 것이고,  

6번째 발포 : 같은 날 12시경에 무장시위대가 광주교도소를 향해 공격해 들어가면서 발생한 쌍방의 총격전이었고,  

7번째 발포 : 전남대를 지키던 3공수 여단의 최후저지선이 돌파 당함으로써 공수대와 시위대 사이에 주고받았던 사격이었다.  

8번째 발포 : 가장 문제를 삼아왔던 52113시의 전남도청 발포다.  

9-15번째의 발포 : 그 후에도 도청 앞과 전남대에서 수많은 발포와 교전이 있었고, 특전사 10개 대대가 광주시를 철수할 때 철수로 곳곳에서 정규군과 정규군 사이에 벌어지는 정도의 쌍방 교전들이 치열하게 전개됐다.  이 이외에도 시민군들은 무기 사용법에 서툴러 오발을 했고, 이로 인해 시민들이 상하기도 했다사람들은 52113시경에 발생한 전남도청 앞에서의 총성이 처음인 것으로 알고 있고, 그에 대한 발포명령자가 누구인가 찾아야 한다고 말해왔다. 그러나 도청 앞의 첫 발포는 당황한 계엄군이 장갑차에 설치된 기관총을 건드려 공중으로 발사된 것으로 광주시위 진압과정에서 발생했던 8번째의 것이었으며 9-15번째의 발포는 돌진차량에 대항하기 위해 발생한 것들이었다 

최초의 발포가 있었던 519일부터 이때까지 발생한 총 15차례의 발포들은 차량을 돌진하거나, 장교가 탄 장갑차 속에 불타는 짚단을 집어넣으려는 기막힌 공격에 대해 취한 조건반사적인 발포였던 것이다 

출처 : http://www.systemclub.co.kr/bbs/board.php?bo_table=12&wr_id=6106

 

* 필자는 지만원이 주장하는 북한군 600명 개입설을 믿지 않으며, 황장엽이 당시 광주에 내려와 북한군을 지휘했다는 둥 소위 광수 찾기 놀이에 대해 비판을 하기도 했다. 다만, 지만원의 주장 중에 사실과 가까운 것은 수용하고 인용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