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물은 유전한다(Panta rhei)." 고대 헬라의 헤라클레이토스가 한 말이다. 

  이 말이 당대의 유행어이었다고 한다. 예를 들자면,  돈 꾸어준 사람이 찾아오자, "돈을 꾸어간 나와 지금의 나는 다른 사람이다, 만물은 유전하므로." 이 말 듣고 채권자가 화나서 채무자를 팼는데 그 결과 법정에 서서 변명하기를, "때린 나와 지금의 나는 다른 사람이다, 만물은 유전하므로."

  같은 논법을 적용하자면, 안희정이와 성교를 하고는 순두부 찌개 사러 나갈 때의 김지은과 수행 비서에서 잘린 후 (그런데 정무 비서 직급이 더 높고, 연봉도 높음. 헐.), 미투 운동에 참여하여 "업무상 위력에 의한 간음"을 당했다고 주장하는 김지은은 다른 사람인 것이다, 만물은 유전하므로.

  연상되는 사례를 들자면, 회가 동한 남자의 꼬드김에 빠져 술김에 원나잍하였으나, 아침에 눈곱에 침자국에 화장분 녹아내린 얼굴을 들키고는 먹버를 당하고나서 기분 더러워진 언냐가 원나잍남에게 강간당했다고 고소미를 시전하는 것.

  남자에게 머리(대가리)가 두 개 있다고 말한다면, 여자에게는 입(아가리)이 두 개 있다고 말할 수 있다. 과연 입이 두 개이니, 말도 두 가지이겠다.

  이른바 "성인지 감수성"이란 사회 문화적 요인으로  배제와 차별이 일어나는 상황을 젠더 관점에서 인지할 수 있는 능력이라고 정의되어 있다. 여자란  원래부터 두 입 가지고 두 말 하는  존재이니만큼, 그 왔다리갔다리하는 히스테리칼한 사정을 배제하지 말고 넉넉히 이해해 주어야 한다는 뜻이렷다. 그럴진대 남자가 두 머리 가지고 두 행동 하는 사정은 판사들이 왜 '[남성] 젠더 관점'에서 인지하여 주지 아니하는 것인가? 이것은 정의가 아니다. 공평이 아니다. 두 눈을 가린 정의의 여신 Dike의 판결은 더더욱 아니다.

  배제를 말하는가? 차별을 말하는가?

  군대에 대한 배제는? 탄광 막장에 대한 배제는? 여자 대학 의전원 법전원에 대한 배제는? 여성 전용 도서관에 대한 배제는? 취업시 여성 가산점은? 중소 기업 지원중 여성 기업인 가산점은?  주공 임대 아파트에 대한 여성 지원자 가산점은?

  골프에는 '핸디캡'이라는 것이 있다. 잘 치는 사람과 못 치는 사람이 함께 '즐기기' 위한 수단이다. 마찬가지로 남자와 여자가 연애든 결혼이든 함께 '즐기기' 위하여 핸디캡 둘 수 있다. 그것은 '사적 자치'의 영역이요, 아마추어의 영역이다.  그러나 핸디캡이 프로 골퍼의 세계에도 존재하는가? 법정에서도 존재하여야 하는가? 답은 생략한다.

  일구이언 이부지자(一口二言 二父之子)는 비정상인을 가리킴이나,
  이구이언 삼남지녀(二口二言 三男之女)는 정상인을 가리킴이다.

  삼종지도(三從之道), 삼종지의(三從之義), 삼종의탁(三從依托) 모두 같은 뜻이니; 여자는 평생에 걸쳐 세 남자에게 기생하는 좌식(坐食) 계급이요 주인(主人)이라는 고대의 가르침이다. 이혼녀 김지은인들 그 원하는 바가 남달랐을까?  안희정에게는 물론 죄가 있다. 그러나 그의 죄목이 "업무상 위력에 의한 간음죄"여서는 아니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