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톤의 사추덕(四樞德)은 그의 「국가」에 등장하는 개념이다. 

 그는 국가가 유지되기 위하여 세 종류의 지구인들이 필요하다고 보았다. 첫째, 통치자. 둘째, 보호자. 셋째, 생산자. 

 그의 이 세 계급은 힌두이즘의 카스트 제도를 떠올리게 한다. 통치자 ≒ 브라만, 보호자 ≒ 크샤트리아, 생산자 = 바이샤 & 수드라. 그도 그럴 것이 헬라 사회나 힌두 사회나 결국 인도아리아족이 동과 서의 양끝에서 일군 형제 문명이므로.

 그의 사추덕중 지혜는 통치자의 덕목이고, 용기는 보호자의 덕목이며, 절제는 생산자의 덕목이다. 그러나 '정의'는 어느 한 계급만의 별도 덕목이 아니라, 이 세 계급의 세 덕목이 모두 구비되어 완전해진 상태를 일컬음일 뿐이다. 즉, 통치자와 보호자와 생산자중 어느 하나라도 온전치 못하다면 정의란 존재할 수 없다.

 고려시대 무신의 난과 뒤이은 몽고의 침입 이래, 한반도에서 국가내에 보호자가 있어서 제대로 보호자 역할을 한 적이 있었던가?

- 최우 정권은 강화도로 튀었다. 보호자가 없었다.
- 원종이 원나라와 화해하고 부마국이 되었으니, 원나라가 보호자이었다.
- 이씨조선은 지나를 섬겼으니, 처음에는 명나라가, 나중에는 청나라가 보호자이었다.
- 일본조 시대에는 일본이 보호자이었다.
- 대한민국 시대에는 미국이 보호자이다.
- 김씨조선이라 하여 다른가? 처음에는 소련이, 지금은 공산 지나가 보호자이다.

 보호자가 없는 국가에는 정의도 없다는 플라톤의 생각을 오늘에 되새김은 한반도에 자체적 정의가 없음에 대한 설명/변명이 필요하기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