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제 모래상자 이야기가 있었다. 남한에 너무나도 많은 규제가 있어서 사업하기 힘드니 규제를 좀 줄여달라는 애원이 있었고, 그래서 몇 가지 규제를 모래상자에 넣어 보겠다고 과시를 하였으나, 기업들이 보고서 실소를 했다는 이야기이다.

 인터넽에 돌아다니는 파일중에 "주요 사회적 금기에 대한 OECD 34개국의 방침 (2015)"이라는 것이 있다. 이 일람표에 따르면, 낙태, 매춘, 사촌결혼, 동성결혼, 포르노, 대마초의 여섯 가지에 대하여 모두 금지인 나라는 남한이 유일하다. 표를 작성한 사람의 의도가 있을 터이므로 표 내용의 정확성에 완전한 신뢰가 가지는 않으나 (예컨대 미국의 경우, 일부 주에서만 매춘이 합법이다. 네바다주의 경우 라스 베가스에서는 불법, 라스 베가스 바깥에서는 합법이다. 대마초도 주마다 규제의 정도가 다르다.), 적어도 남한이 앞의 여섯 가지 모두에 대하여 법으로 금지하고 있음만은 명백하고 직접 경험되는 사실이다.

 그러면 남한은 과연 유교 탈레반이 지배하는 전근대적 주자학 국가에 헬조선이라는 말인가?

 단순히 그렇게만 말할 수는 없다는 생각이다. 본회원은 위 여섯 가지 금지를 모두 타파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으나, 그렇다고 해서 저런 금지와 규제가 오직 주자학과 전근대성때문이라고 단순하게 매도하기는 어렵다는 입장도 가지고 있다.

 사고의 실험을 해보자.

 무인도에 로빈슨 크루소가 표류해서 정착하게 된다. 여기에는 어떠한 규제도 필요없다. 일어나고 싶은 때 일어나서, 가고 싶은 곳에 가서, 먹고 싶을 때 먹고, 마시고 싶을 때 마시고, 싸고 싶을 때 싸고, 자고 싶을 때 자면 된다. 중간에 명상이라도 하고 싶으면 얼마든지 명상해도 된다.

 이 섬에 프라이데이가 표류해 왔다. 일단 침입이다. 그러면 이제 크루소는 자기 나름의 대처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1) 침입자를 처단, (2) 침입자를 추방, (3) 침입자를 주민으로 수용,  (4) 침입자를 손님으로 대접, (5)  침입자를 노예로 만듦 정도가 가능한 선택이다.  

 (1)과 (2)는 쉽다. 이기든가 지든가에 따라 결과가 명료하다. 그러나 (3) 이하부터는 규칙이 필요하게 된다. 규칙의 갯수는 (3)에서 (5)로 갈수록 많이 필요하게 될 것이다.  가령 (3)이라면 섬의 적당한 곳에 줄을 그어 놓은 후 "서로 이 금은 넘지 않기로 한다" 한 문장이면 족할 수도 있다. 둘이서 각각 절반의 무인도 사람으로서 살아간다면 이처럼 간단한 규칙으로도 그 사회(?)의 유지가 가능하다. 만일 사회가 복잡해지거나,  특히 인구 밀도가 높아진다면 이런 간단한 규칙 하나로는 결코 그 사회가 유지될 수 없다.

 지구인들이 '도시'라는 것을 만들기 전에는 각각의 사람들이 거의 무인도에서 살아감과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지금도  시나이 광야의 베드윈들에게는 단순한 규칙만이 있을 뿐이다. 낯선 사람이 천막 가까이 다가올 때 그후 일어날 수 있는 일은 오직 둘중 하나이다, 벗이 되거나 적이 되거나.

 그러나 뉴욬이나 서울같은 대도시에서는 그런 식으로 굴러갈 수 없다. 지구인들의 숫자가 많고, 지구인들끼리 엮일 수 있는 경우의 수가 무척 커지므로, 그들이 서로 안전하게 살아가기 위한 규제와 금지도 그에 발맞추어 정교해질 수밖에 없다. 그러지 않고서는 그 좁은 공간에서 그 많은 사람들의 삶이 유지될 수 없다. 이는 분자들에 대한 압력이 낮을 때는 분자의 상태가 기체이다가, 압력이 증가하면 액체로 바뀌었다가, 압력이 더욱 증가하면 고체로 바뀜과도 같다. 고체 결정속의 분자들에게 무슨 자유도가 있겠는가? 약간의 진동만이 가능할 뿐.

 이런 관점에서 각종 규제는 원인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결과일 뿐이며, 남한 사회의 다양한 규제의 근본 원인은 높은 인구 밀도 및 생식 압력임을 알 수 있다.

 「송하비결」의 예언대로 남한에서 핵전쟁이 벌어지고, 그 결과 숱한 사람들이 죽는다면, 그것은 물론 매우 안 좋은 일이겠지만, 각종 규제와 금지가 획기적으로 줄어들 계기가 되기는 할 것이다.

"...., 현실적인 것은 이성적이다." (헤겔, 「법철학 강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