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파와 우파라는 명칭이 역사적으로 프랑스 대혁명 당시 의장의 명령에 따라 국회 의장석에서 볼 때 왼쪽에 자코뱅당이, 오른쪽에 지롱드당이 자리잡은 데에서 연유하였음은 다들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이런 역사적 연원으로 캐나다에서는 지금도 하원에서 집권당이 우측에, 야당이 좌측에 마주 보고 앉는다. 정권이 교체되면 자리도 물론 교체된다.

정치학에서 좌파와 우파 구별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을 터이나, 근본적인 구별점은 다음과 같다.

개혁(改革)의 가능성을 시인(是認)하면 좌파이고,
개혁(改革)의 가능성을 부인(否認)하면 우파이다.

이런 관점에서 구소련 패망당시 공산당이 우파요, 자본주의 개혁세력이 좌파였음이 이해가 갈 것이다.

좌파는 이처럼 개혁(고치고 바꿈)의 가능성을 시인하기때문에, 그 본질적 속성으로 이중잣대를 가지지 아니할 도리가 없다. 곧, "내가 하면 로맨스요, 남이 하면 불륜"이다. 시시각각 잣대의 개혁(改革)인 셈이다. "바꾸자"에서 "잣대도 그때 그때 바꾸자"가 나오니, 자기를 판단할 때와 남을 판단할 때 다른 잣대를 쓰게 되는데, 대개 전말을 아는 자신에게는 관대한 잣대를, 전말을 모르는 남에게는 엄격한 잣대를 쓰게 마련이다.

진모나 손모의 가증하고 비열하게 여겨지는 "한 입으로 두 말하기"는 그들이 무슨 정신분열증 환자이거나 이중인격자이어서가 아니라, 그들이 지닌 좌파 사상의 논리적 귀결이 그러한 것이다. 한겨레니 오마이뉴스니 엠비시니 제이티비시가 조중동에 대하여는 진실 보도를 요구하면서 정작 자기들 입맛에 맞을 때는 조작 왜곡 보도를 서슴지 않음도 마찬가지이다. 대중이의 말 바꾸기 신공 또한 원래 천성이기도 하겠지만 그 좌파 사상 역시 일조하였을 것이다.

요컨대 그들은 이중잣대, 삼중잣대,...다중잣대를 가지고 있는 셈이며; 보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손오공의 여의봉(如意棒) 잣대를 가지고 있다고 보아야 할 터이다. (물론 여의봉을 휘두르려면 타고난 순발력과 영리함과 사악함이 갖추어져 있어야 하겠다. 그들의 그런 재주 하나만은 평가할 만 하다.)

그에 비하여 우파는 그 정의 자체가 "바꾸지 말자"이니 당연히 단일잣대를 갖고 있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 판판이 선전선동전에서 좌파에게 깨지는 것이다.

그러나 여의봉 휘두르기의 원조인 손오공의 천상에서의 결말이 어찌 되었나? 기성세력인 옥황상제 체제를 전복하고자 쿠데타를 꾀한 손오공이 난동부리다가 석가모니와 한타 싸움을 벌여 근두운을 타고 단숨에 10만 8천리를 날았으나 알고보니 부처님 손바닥도 못 벗어났더라는 이야기이다.

좌파가 아무리 날뛰어도 그들은 나무의 잎사귀에 들러붙어 단물을 빨아먹는 진딧물같은 존재에 불과하다. 뿌리와 줄기가 굳건하다면 몇 개의 나뭇잎의 병듦은 단지 잠시의 보기 흉함과 성가심일 뿐일 것이다.

물론 오늘의 우파가 어제는 좌파이었고, 오늘의 좌파가 내일은 우파가 될 수도 있다.  좌파든 우파든 어느 하나에 영원히 안주할 수는 없을 터이다. 먹이 피라미드의 최정상에 '젖먹이 아기(기생인)'가 있듯이, 오늘의 좌파가 기생적 존재라고 해서 마냥 기생만 할 것은 아니기때문이다.

(※ 본회원은 영어의 libertarianism을 자유주의(自由主義)로 번역하고 싶다. 그러면 liberalism은 무어라 번역하여야 할까? 자유분방주의(自由奔放主義)가 적절하리라고 본다, 그들의 판단의 잣대가 자유분방하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