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문재인 정부가 경제문제, 즉 소득주도경제 성장를 무리하게 고수 하다가 망할 것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요새 와서 보니까 경제 문제 이전에 젠더 문제로 먼저 무너지게 생겼다라는 생각이 듭니다. 새로운 정권이 들어왔으면 성공하는 것이 대한민국을 위해서 당연히 좋은 것이지만, 어쩌다가 망한다고 해도 그럴수도 있다고 봐야 합니다. 하지만, 그 정권이 만든 문제가 수십년간 세대를 걸쳐서 갚아야 할 빚으로 남겨질 수도 있는데, 그것을 선택된 정권의 권리로 보고 그냥 두고 봐야만 할까요.

여론 조사를 보면 20-30대 남성들, 특히 대선 때 문재인을  찍었던 이들이 페미니즘 문제로 현 정권에 대한 지지를 급속도로 접고 있습니다. 실제로 엠팍이나 보배드림같은 친민주당이나 친문들이 주류인 남초 싸이트 들에서 최근 들어  문재인 찍은 것을 후회한다라는 글들이 점점 더 많아지고 있습니다. 
 
새삼스럽게 작년에 한국에서도 막 미투 운동이 번지기 시작했을 때 페북에서 봤던 강한 진보성향을 띤 한 지인의 글이 기억이 나는데, 내용이 이랬습니다. 예전에 자신이 공익 근무를 할 때, 한 30대 중반의 여성 상사가 있었다. 박사까지 한 분이었는데 능력도 있고 성격도 좋은 훌륭한 여성이었다. 그런데, 그보다 더 어리고 직급도 낮은 남자 직원이 단지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이 상사를 무시하는 것도 모자라서 일부러 업무를 방해하는 행동을 대놓고 하는 것을 수도 없이 보았다. 그 덕택에 이 여성 상사분이 일처리가 안되서 혼자서 울고 있는 것을 여러번 목격한 적이 있었는데, 한국은 이와같이 여성이 살기에 어려운 나라다. 미투 운동을 적극 지지한다. 

좋은 의도를 가지고 쓴 글입니다. 그런데, 저는 이 글을 읽으면서 가슴이 상당히 갑갑한 느낌을 받았는데, 왜냐하면 이 분은 86 세대이고, 이 분의 공익 시절은 무려 30년 전 이야기라는 것입니다. 이 분은 사회적으로 대단히 성공한 분이십니다. 일종의 오피니언 리더란 말이죠. 그 글에 수도 없는 찬성과 맞장구를 치는 댓글들이 있었는데, 댓글을 쓴 지인들이 이 분께 쓰는 말투로 보아 대부분 같은 연배인 86 세대라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 이후로 언젠가 사석에서 메갈리아, 워마드의 패륜적인 오프라인 행동에 대해서 '이런 식의 혐오를 조장하는 것은 아닌 것 같다. 이게 일베와 뭐가 다릅니까.'라고 했더니 '그동안 남자들이 누려온 혜택이 얼마나 많은데, 고작 그런 것 가지고 쪼잔하게 그러느냐'라고 하더군요. 그런데, 30년이 지난 지금 2-30대 남자들도 여전히 그때와 똑같은 혜택을 누리고 살고 있나요? 

소위 깨어있다고 생각하는 기성세대 또는 기득권 남성들은 그동안 그들이 성공하기까지 어머니, 누나/여동생, 배우자의 희생을 통해서 그 자리에 왔다는 자각이 존재합니다. 이들이 페미니즘을 옹호하는 것의 모티베이션을 들여다 보면 그 미안함의 표출이기도 합니다만, 한편으로는 성공한 사람들이 가지는 아량같은 면이 보이기도 합니다. 좀 심한 말로 공격하자면 어떤 남성들은 일종의 선민의식으로 페미니즘을 옹호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합니다.

그런데, 문제가 뭐냐하면 그렇게 미안했었고 이제 바꾸어야 한다고 생각한다면 자기들이 누려온 혜택과 권력을 그동안 희생한 그 세대들에게 넘겨주어야 하는 것이 가장 합리적이고 정당한 발상입니다. 하지만 이들의 선택은 대개 자신들의 기득권을 내려놓는 것보다는 자신들의 아랫세대 남성들의 희생을 강요하기 시작한 것에서 이 양성 평등의 문제가 어긋나기 시작한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듭니다. 그냥 단지 어긋나기만 하면 어찌 바로 잡을 희망이라도 있는데, 지금은 세대 전체 수준의 혐오로 번지고 있는 것 같아서 상당히 걱정스럽습니다.

한가지 예를 들어 보면 페미니스트들이 젠더 페이갭을 자주 거론하는데, 한국 데이터에서 "동일 직종, 동일 노동"의 경우에 2000년대 중반에 이후부터는 이미 그 갭이 상당히 작아진 상태입니다. (제가 아크로에서도 몇번 거론한 적이 있습니다. 해당 논문이 어디 있는지 찾을 수가 없네요. 오마담님이 소개해준 논문인데...) 시계열상으로 젠더 페이갭은 출산 후에 직장으로 복귀를 못해서 경력이 단절된 여성들이 몇년 후(아이들이 큰 이후에) 다시 노동시장에 참여하면서 얻은 직업의 임금이 낮아서 생기는 효과가 전체 여성의 임금의 평균 낮추는 것에 결정적인 요인이 됩니다. 반대로 출산을 하더라도 바로 복귀를 해서 경력을 살린 여성들에게는 젠더 페이갭이 거의 발생하지 않습니다. 결국 메갈리아 같은 곳에서 말하는 유리천장의 실제 희생자는 20대 미혼 여성들이 아니라 일하고 싶지만 일을 못하는 3-40대 이상의 경력 단절 여성들입니다. 따라서 혜택은 20대 여대생들이 받아야할 것이 아니라 그 위 세대의 여성들이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실제 희생을 한 세대가 그들이기 때문이기도 하니까요.

김정숙 여사의 자서전을 보면 재미있는 구절이 하나 있습니다. 젊었을 때 맞벌이 하던 중에 늦게 퇴근하고 왔더니 달님께서 손가락 까딱 안하고 마냥 기다리고만 있더라. 부랴부랴 밥차리고 설겆이를 하고 있는데 부르길래 가봤더니 재떨이 가져다 달라고 해서 폭발했다. 둘째 임신 중이라 힘들어서 첫째 좀 봐달라고 했더니 엎어져 자라, 디비 자라했다라는 식으로 나와 있습니다. 

문재인은 페미 대통령을 표방하고 있습니다. 저는 문재인이 진정한 페미니즘이 뭔지, 젠더 이슈가 뭔지 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지난 대선 TV 토론 때도 홍준표가 물어볼 때 자기 입으로 '동성애 반대한다'고 아주 확고하게 여러번 확인 사살하는 것을 보면서 기함을 한 적이 기억이 납니다. 인권변호사 했다는 사람의 입에서 어떻게 저런 수준의 말이 나올 수가 있는지 말입니다. 무슨 고민의 흔적이 보이지 않습니다. 어떤 면에서 문재인이 선택한 인권변호사라는 직업도 그냥 뭔가 간지나 보여서 한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문재인의 페미니즘은 그냥 좋은 것이 좋은 거라는 식일 뿐입니다. 특유의 사람'만' 좋은 동네 반장 정신입니다. 하지만, 문재인과 집권 86세대들에게는 치열함이 없습니다. (아, 권력 장악력 측면에서는 예외입니다. 타의 추종을 불허할만큼 집요하죠.) 탈원전을 하면 어떤 일이 생기는 지 생각은 해본 적이 없습니다. 최저임금을 30% 올리면 어떤 일이 발생하게 될 지에 대해서 연구를 해본 적이 없습니다. 공무원 17만명 채용하면 앞으로 세금+연금이 얼마나 더 드는 지를 생각해 본 적이 없습니다. 문캐어 하면 의료보험 재정이 어떻게 되는 지 스스로도 잘 모릅니다. 꼭 자기가 안하더라도 전문가를 시켜서라도 해야하는데 그런 생각도 안합니다. 전문가들이 반대하면 일단 적폐로 몰아 넣는 것은 잘 하기는 하던데....반대가 너무 많으면 앞에서는 안하겠다 말해놓고 뒷구멍으로 하고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페미니즘하면 좋지 않겠습니까? 왠지 진보적으로 보이고, 덤으로 2-30대 여성들 몰표도 받고 일석이조 아닙니까. 갑가지 지난 대선 때 조국의 주도하에 20대 여성과 이니랑 포옹하기 행사(?) 할 때 보았던 그 특유의 표정이 생각나는군요.

진보라는 것은 세상이 변하는 것에 보조를 맞추어 전진하는 것이고 그와 동시에 그 변화의 물결에서 소외되는 경제적, 사회적 약자들의 편에 서서 같이 가는 노력 그 자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아주 치열한 고민과 노력을 동반해야 합니다. 최저임금을 30%를 올리면 혹시 또 다른 약자들을 더 힘들게 만드는 것이 아닌지. 양극화를 걱정해서 일자리를 만들기 위해서 공무원을 많이 뽑는다고 한다면, 혹시 이게 지금 자라나는 후대 세대에게 큰 짐이 될 수 있는지. 일을 벌렸을 때 소외될 수 있는 약자들은 과연 없을지에 대해 신중한 검토와 고민을 거치는 것이 바로 제대로 된 진보주의자의 자세라고 봅니다. 

치열한 고민이 없는 행동은 그저 있어 보여서 하는 유행 따라하기나 선민의식의 발현일 뿐 진보가 아닙니다. 제가 문재인이 대통령이 되는 것을 반대한 가장 큰 이유가 바로 이것입니다. 말만 번지르하게 해놓고서는 그 이후에 발생하는 일에 대한 궁극적인 책임을 지지 않습니다. 결국 그 댓가는 대한민국 진보주의 진영이 다 지게 되어 있습니다. 약자들이 살기 좋은 세상은 커녕 약자들끼리 서로 치고 받고 싸우게 만듭니다.  

불펜의 댓글을 읽다보니 이런 글이 있더군요. 젠더 문제에서 문재인은 자기가 김정숙에게 저지른 잘못을 아무 상관 없는 남의 아들들의 희생을 통해서 갚으려고 한다고. (자기 아들은 잘 먹고 잘 살 길은 이미 잘 만들어 놨지요.) 결국 이런 식의 좋은게 좋은 거지 하면서 무책임한 행동을 하는 리더 덕분에 이번 정권을 통해서 남녀 갈등과 혐오만 크게 깊어져 가고 있습니다. 역설적으로 한국의 2-30대 리버럴들이 조단 피터슨에 열광하게 만드는 데에 가장 큰 공헌을 한 것이 바로 문재인과 86 세대라는 것을 그들은 알까 합니다. 

대한민국은 지난 30여년간 수구 보수들이 의도적으로 만들어낸 지역갈등(또는 차별)의 몸살을 겪어 왔습니다. 이제는 저질 포퓰리스트 리버럴들이 자신들의 정권의 안위를 위해서 무책임하게 남녀갈등과 혐오를 조장하고 있습니다. 현 2-30대가 앞으로 이 나라의 주역인데, 이 상황이 점점 더 굳어지면 앞으로 수십년간 지역갈등보다 더 한 수준의 남성/여성 혐오가 대한민국에 만개하는 것을 보게 될 지도 모르겠다는 두려움이 듭니다. 진정한 페미니즘은 혐오를 통해 한쪽 성이 가진 이익을 다른 쪽이 가진 것을 뺏는 전쟁이 아니라, 양성이 서로 이해하면서 협력하여 선, 즉 평등한 문화를 만들고자 하는 목적을 가지는 것이 아니던가요. 



덧: 요새는 수구와 진보의 차이가 뭔지가 구분이 안갈 때가 많아서 곤혹스럽습니다. 사실 이 글은 조심스러워서 그동안 여러번 썼다, 지웠다를 반복을 하기도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