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용어로 "님이 先"이라는 것이 있다. 게임 아이템중에는 게임 개발사에서 아이템 거래창에 올려 놓을 수 없도록 막아 놓은 아이템들이 있는데, 어쨌든 거래는 해야 하므로 게임내에서 둘이 만나기는 했으나, 어느 쪽이 먼저 아이템을 땅에 내려 놓을지를 가지고 기싸움을 벌이는 경우 사용되는 표현이 바로 "님이 先"이다. 네가 먼저 보내라는 말이니, 레이디 퍼스트와도 통하는 말이다. "네가 흑우 해라!"라는 말의 완곡어법인 셈이다.

이 표현은 중고 거래에서도 이용되는데, 원칙적으로 중고 거래에서는 옥션이나 세티즌같은 에스크로를 이용함이 맞지만, 에스크로가 요구하는 수수료가 상당하기때문에 직거래를 하기도 한다. 만나서 직거래를 한다면 깔끔하겠지만, 가령 서울-부산같은 지리적 이격이 있다면 (1) 물건을 보내고 대금을 받거나, (2) 대금을 받고 물건을 보내거나 둘중의 하나일 테니, 이때에도 "님이 先" 공방이 있게 마련이다.

이런 대화는 모자간에도 흔하게 오간다.
아들: 엄마, 겜보이 하나 사주세요.
어미: 이번 모의고사에서 1등하면.
아들: 지금까지 모의고사에서 다 1등했잖아요. 그러니까 "님이 先" .
어미: 너 지난번 중간고사는 2등했잖아. 그러니까 "님이 先".

최근 재인이와 정은이 사이 관계의 돌아가는 형세를 보아하니 둘이서 이 유치한 "님이 先" 기싸움을 하고 있음이 아닌가 싶다.

재인이의 내심은 대한민국을 들어 정은이에게 바치는 것이라고 본다. 그래서 그 자신 무슨 광영을 볼지는 모르겠으되, 무현이 표현으로 "정의가 패배하고 불의가 승리한",  이 "태어나서는 아니되었을 괴뢰 식민지"를 주체의 조국에 흡수 통일시킴이 바로 정의의 실현이요 역사 바로 세우기라고 생각한다면, 그로서는 한시라도 빨리 수령님께 바침이 마땅하고 옳은 일일 것이다.

그래서 지뢰도 제거하고, GP도 폭파하고, 전차 부대가 기동할 수 있는 신작로도 열고, 감시 카메라도 제거하고, 한강 철책도 제거하고, 기계화보병사단도 해체하고, NLL도 무력화하고, 비행 금지 구역도 설정하는등; 문고리를 부수고 대문을 활짝 열어놓은 채, 꽃단장하고 정은이의 인민군 마중이라도 나설 기세이다. 그러나 거기까지만일 뿐 재인이의 나머지는 "님이 先"이다. 정은이더러 먼저 인민군을 동원하여 쳐들어오고, 미군이 없는 서울 점령에 성공하면 청와대에 앉아서 어쩔 수 없는 척 항복 문서에 서명하겠다는 작정이니, 정은이의 선제 행동을 요구하고 있다고 여겨진다.

반면 정은이는 죽었다 깨어나도 미군이 지키고 있는 남한에 쳐들어갈 생각이 없다. 미국은 북한에 비하여 백 배 이상, 어쩌면 천 배,  강한 나라이다. 미국은 설령 몇 차례씩 실수하더라도 만회할 길이 있으나, 북한은 단 한 수라도 수를 잘못 놓으면 그걸로 끝장이다. 결코 잘못 두어서는 아니 된다. 그러니 미군의 함정일지 뭘지 알 수 없는 남한땅에 어찌 감히 쳐들어가겠는가? 재인이를 믿지만,  믿더라도 100% 믿을 수는 없는 노릇이며, 설령 100% 믿더라도 그 100%란 재인이의 충성심에 대한 퍼센트이지 재인이의 능력에 대한 퍼센트는 아닌 것이다. 재인이가 한미연합사도 해체하는 마당에 주한 미군에 대한 공동 통수권도 없는 것이며, 주한 미군이 어떻게 반응할지 어찌 안다는 말인가?

정은이의 입장은 그러므로 평양에 가만히 앉아 있을 테니까, 재인이가 먼저 헌법도 고치고, 고려 연방제 국민 투표도 실시하고, 남한 야당들도 다 정리하고, 국민연금공단을 동원하여 재벌들 국유화도 완료하고, 남한내 반공 인사들도 다 잡아들이고, 미군도 철수시켜 모든 준비를 다 갖춘 채 상 차려 놓고 초대한다면 그때에나 숟가락 들러 오겠다는 식으로, 재인이에게 "님이 先"이라고 요구함이라고 본다.

결국 재인이와 정은이는 서로 "님이 先"하면서 상대방의 선도적 행동을 요구하다가 돈좌(頓挫) 상태로 시간을 다 보낼 듯 싶다. 시간은 누구의 편도 아니다. 미국 편도 아니지만, 재인이 편도 아니고 정은이 편도 아니다.


미국은 2025년 우주 공간에 사드를 배치할 계획을 가지고 있다. 우주에 사드를 배치한다면, 이것은 바로 레이건이 주장하였던 전략 방위 구상(Strategic Defense Initiative)의 21세기 판인 것이며, 남한의 전략적 가치란 0을 향하여 줄달음질 칠 것이다. 그렇게 되기 직전에 무언가 결판이 날 거라고 본다.

그전까지  당분간 우리는 지루한 "님이 先" 맆 배틀을 지켜 보게 될 것이라고 예상한다. 정은이의 터진 아가리에서 "대관절 남조선의 재인이 동무는 하는 일이 뭔가? 대중이도 그러고 무현이도 그러더니, 남조선 종간나 새끼들은 입만 살았지 하나같이 도무지 믿을 수 없는 놈들이란 말이야! 쯧쯧."이라고 혀를 차는 탄식이 절로 나올 터이다.


트럼프와 정은이가 또 만날 모양인데, 트럼프 입에서 나올 말 역시 "님이 先"말고는 의미 없을 것이라고 예측한다. 나머지 모든 말들이 아무리 그럴 듯 하고 아름답게 빛나고 새콤달콤하더라도 최종 요구는 "님이 先" 하나일 것이다. 정은이가 머리에 총 맞지 않은 이상 그 요구에 응하겠는가? 그러나 정말 만에 하나 정은이가 응한다면, 우리는 비로소 안도할 수 있을 것이다.

"치마를 벗으면 마음까지도 벗는 법이다." (헤로도투스, 「역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