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스토텔레스는 두 단어의 의미를 구별하였다.  동물적이고 즉물적이고 소아적(小我的)인 zoe와 사회적이고 영속적이고 대아적(大我的)인 bios가 둘 다 "생명"으로 번역되지만  그 차이는 크다. 

 인간의 행위는 의지의 소산이다. 의지는 육체의 행동중 행위를 관장하는데, 그 행위중 자신뿐 아니라 타인에게도 막대한 영향을 미치는 행위로 투표(선거권의 행사) 및 공직자로서의 복무(공무담임권의 행사)가 있다. 

zoe만을 가진 사람과 zoe를 넘어 bios까지도 가진 사람의 행위가 같을 수는 없다.  bios도 가진 사람에게 zoe만을 가진 사람에 대한 책임 있는 결정을 맡길 수 있으나, 그 역은 성립하지 않는다. 어른은 아이의 보호자가 될 수 있으나, 아이는 어른의 보호자가 될 수 없음과 같은 이치이다. 큰 그릇에는 작은 그릇을 담을 수 있으나, 작은 그릇에는 큰 그릇을 담을 수 없음도 마찬가지이다.

우주에 있는 그릇중 가장 큰 그릇은 무엇인가? 그것은 천지라고 말할 수 있다. 

"天地不仁,  以萬物爲芻狗.(천지불인, 이만물위추구.)" (노자, 도덕경 5장)

천지는 어질지 않나니, 만물을 풀강아지로 삼는다.

"聖人不仁, 以百姓爲芻狗.(성인불인, 이백성위추구.)" (노자, 도덕경 5장)

성인은 어질지 않나니, 백성을 풀강아지로 삼는다.

그러니 백성들을 풀강아지로 보는 김일성 주체 사상은 노자의 주장과 일맥상통한다. 개개 인민의 존재란 무수히 많은 머리털중 하나와 같은 것일 뿐이므로, 빠지면 빠질 것이요, 자라면 자랄 것이로되; 진정 중요한 것은 머리털로 둘러싸여 있는 '수령'이다.

"[김일성이라는] 사람이 만물의 주체이다."

로버트 하인라인의 「스타쉽 트루퍼스」에서 선거권 및 공무담임권은 시민권자에게만 주어지며, 시민권자가 되려면 군복무를 지원하고 '명예롭게' 제대하여야 한다.  bios를 탑재하였음의 다른 증명 방법이 신통찮은 당대 인류 지성 수준의 반영일 터이다.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며, 그런 제도가 생기게 된 계기에 대한 간략한 역사 설명이 있다.)

그러니,
군복무자에게만 선거권/공무담임권 부여 ≒ 항일 빨치산 출신에게만 선거권/공무담임권 부여
라고 말할 수도 있겠다.

차이점이 있다.
그렇게 시작된 소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선거권을 김일성 일가에게만 독점시키고, 의미있는 공무담임권을 이른바 "백대 혁명 열사 가문"에게만 한정된 유산으로 상속시킴으로써, 공화국에서 "김씨조선"으로 타락(혹은 진화?)하고 만다. zoe냐 bios냐의 결정이 1945년 8월 15일 현재로 소급되며 거기서 결코 불변이라는 것이다. 「스타쉽 트루퍼스」에서 일단은 누구에게나 병역 지원 자격이 평등하게 주어짐 및  그럼으로써 시민권자의 유전적 다양성이 유지됨과 다르다. 

그런 흑화로 말미암아 김씨조선이 남송과 이씨조선에 뒤이은 지구사상 세번째 주자학 국가로 탄생하게 되는데, 앞선 두 주자학 국가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성리학(性理學)의 세계관에서 신분 질서란 마치 태양과 지구와 달의 관계처럼 고정불변의 자연 현상(本性과 理致)이므로, 절대로 자체 멸망하지 않으며, 갈 데까지 가다가 반드시 외력의 작용에 의하여만  멸망'당'한다는 점이다. 세번째 주자학 국가 또한 공통 운명을 맞이하지 않을까 싶다.

2018-12-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