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세기 말 영국에서 발생했던 귀먹어리와 관련된 글을 읽다가, 10년 전에 귀먹어리 노부부와 마주쳤던 기억이 떠올랐죠. 친구와 참치 회집에서 술을 먹고 있는데, 앞 좌석에 귀먹어리 노부부가 정답게 정종에 참치회를 드시고 계셨죠. 주방장이 가끔 오는 단골 손님이라고 하더군요. 어렴풋한 기억에 저는 그 분들에게 말을 걸려고 했었던 것 같습니다. 얼굴들이 마치 어린아이 같으시다구요.  물론 말을 건네지는 못했습니다. 주방장이 말려서 말이죠.

 

위 글의 저자는 18세기 말에 접어들어서야, 귀먹어리(물론 벙어리이기도 하겠죠)라는 존재가 "가시적인 존재"로 나타난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기호 언어(sign language, 수화라고 보면 될듯)가 정립이 되고, 귀먹어리 협회가 생겨나고, 기타 등등... 즉, "들려지지 않는 귀먹어리의 언어", "들려지지 않는 존재"이던 귀먹어리와 벙어리가 그들의 존재를 세상에 드러내는 것이죠. 물론 지금까지도, 그 존재를, 그 존재들의 언어를 사람들은 듣지 못하죠. 그리하여 보지 못하죠.

 

서양 철학사는 저 시기 까지 귀먹어리라는 존재를 배제합니다. 인식, 지식의 핵심인 듣기(hearing)가 없이는 이성 같은 것을 가질 수 없다고 칸트가 말합니다. 이 칸트의 명제는 옳기도 하고 틀리기도 한데, 듣지 못한다면, 말할 수 없다는, 그리하여 어떤 지식도, 이성도 습득될 수 없다는 측면에서 옳고, (에크리의 라캉식으로) 귀먹어리도 대타자의 목소리를 듣기 때문에, 그이들도 말할 수 있고, 지식을 습득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는 틀립니다. 귀먹어리에게 어떤 언어 체계, 인식 체계가 없다면, 수화 혹은 구화(입모양을 보고 무슨 말인지 읽는 것)를 학습할 수조차 없겠죠. 대타자는 보통 언어, 법을 일컫는데, 여기서는 보다 구체적으로 언어 체계, 의사소통 체계를 일컫습니다. 그렇다고 꿀벌들이 꿀의 위치를 알리기 위한 기호 언어(sign language)와 같은 것은 아닙니다. 수하에는 사투리가 있지만, 꿀벌의 기호 언어에는 사투리가 있어서는 안되니까요. 그리하여, 귀먹어리에게 비장애인과 같은 언어 습득 체계는 없을 지언정, 그가 동물이 아닌 인간이 한에서, 의사 소통 체계가 있다는 것이죠. 마치, 24개월된 유아가 자기중심적인 독백을 하는 것처럼 보이는 순간에도, 그는 여전히 대타자와 대화를 하고 있다는, 인간의 언어 체계, 의사소통 체계 속에 놓여 있는 것과 마찬가지 입니다.


 

귀먹어리와 관련된 글에서 저자는 귀먹어리=벙어리를 장애인의 범주에 넣지 말자고 합니다. 즉, 비장애인(정상인이라고 잘 못 불리우는)과 다른 언어를 사용할 뿐인 비장애인이라고 말하고 싶은듯 합니다. 그럴 경우, 다른 장애인의 장애의 경우는? ... 휠체어를 탈 뿐, 비장애인과 다르지 않죠. 기타 등등... 물론, 그 장애인이 비장애인과 다르지 않으려면, 서울 시내의 모든 버스가 장애인용 저상버스로 교체되어야하고, 서울 지하철의 모든 역에 엘레베이터가 설치되어야 하며, 장애인이 통행하는 모든 길에 있는 연석이 제거되어야하고, 모든 건물에 장애인이 접근할 수 있는 접근로가 만들어져야 겠죠.


지하철을 타다보면, 안내방송에서 "노란선 밖으로 한 걸음 물러나 주세요"라는 멘트가 나오죠. 비장애인에게 이 "노란선"은 그냥 노란선일 뿐입니다. 그렇다면, 맹인은 그 노란선이 무엇인지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한 발 앞으로 디디는 것으로 죽음의 문턱을 건너야 하는 그 노란선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그게 동그랗게 요철이 되어 있습니다. 그건 시각 장애인들에게 일단 멈추라는 의미입니다. 이런건 횡단보도에도 있죠. 막대 모양은 그 방향으로 계속 가라는 의미, 동그란 모양은 멈춰서거나, 길이 나눠진다는 의미이겠죠. 이 예는 또하나의 기호 언어의 범주에 들어갈 수도 있겠군요. 비장애인이라면 그저 노란선일 뿐이지만, 맹인에게는 하나의 언어인 셈이죠

초등학교 고학년 때, 만화책에서 어떤 주인공이 외눈박이 행세를 한 것을 보고, 몇 일 동안 그렇게 외눈박이 행세를 한 적이 있었습니다. 외눈박이 였던 그 주인공이 두 눈을 번쩍 뜨는 장면이 아직도 생생하게 머리 속에 그려집니다. 기억 속에서, 그 주인공은 변장을 위한 목적이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그 어릴 때에 대한 저의 기억으로는 두눈박이가 보는 세상과 외눈박이가 보는 세상은 어떻게 다를까라고 생각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과연 그들의 세계는 "우리"의 세계와 어떻게 다를까요? 그들은 과연 어떤 언어를 사용하고, 어떻게 세계를 보고, 느낄까요? 오랜동안 어둠 속에 묻혀있던 그들 말이죠.

이 신비함, 이 경이, 이런 것들에 대한 경외, 이것들이 바로 우리로 하여금 학문을 하게하는 어떤 무엇이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