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는 다(多)자녀 가구가 종종 있는데 다자녀를 부의 상징으로 여긴다. 미국 부유층은 아내가 고임금 종사자이거나 전문직 자격을 가지고 있더라도 오직 자녀 낳기에 올인하는 경우가 있다. 그 남편도 그 본인도 우수한 유전자를 가지고 있을 경우, 국가 사회 종족을 위하여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애국 애족과 봉사가 그 유전자를 널리 퍼뜨림이라고 여김이다. 이런 경향은 모르몬 교도들에서 두드러지는데, 대통령 후보를 지낸 밑 롬니나 바랔 오바마 치하에서 주공산지나 대사를 지냈던 죤 헌츠만(유타주 주지사 출신)이 그런 인물들이다. 롬니는 아이가 다섯이고, 헌츠만은 일곱이다. 모르몬교도는 아니지만 최근 작고한 아버지 부쉬도 자녀가 여섯이다. 유태인들이 다자녀를 신의 명령이요 축복으로 여김은 잘 알려져 있으므로 보기를 생략한다.

레이건 정권전에는 다른 사정으로 다자녀인 경우도 있었다. 흑인들중 일부가 자녀 숫자대로 나오는 보조금 및 푿 스탬프를 얻기 위하여 마구 아이를 낳아 다자녀인 경우가 있었으나, 소련과의 군비 경쟁에 나서기 위하여 이런 저소득층 육아 보조금을 레이건이 대폭 삭감한 후 이런 경향은 잦아 들었다.

한편 남한에서의 사정은 어떠했고, 어떠한가?

개발의 시대전, 전근대적 농업 생산의 시대에는 다자녀란 그냥 당연한 전략이었다. 많이 낳고 많이 죽고, 살아남은 자녀는 노동력이요 노후 대책이었다. "제 먹을 것은 제가 갖고 태어난다."는 속담도 있었으니, 많이 낳은 자녀를 어떻게 키울지의 고민이란 없었다. 마치 씨뿌리면 벼가 자라듯이 애가 "알아서" 크면 크는 것이니, 온실속의 화초를 기름과는 전혀 딴판의 발상이요 행동 방식이었다. 기름이란 없었다, 키움이 있었을 뿐. 그것도 터울이 많이 지면 윗동기가 아랫동기의 보모 노릇 감당하는 것이었고...

그러다가 남한에서도 다자녀가 부의 상징인 시대가 잠깐 스쳐지나갔다. 이병철이나 정주영같은 이들의 상황이 그러하였다.

그후 다(多)자녀는 그만두고 유(有)자녀가 부의 상징인 시대를 거쳐, 이제는 결혼이 부의 상징인 시대가 되었다. 결혼을 한다 하면 1억원 이상 들여 특급 호텔에서나 해야 하는 것이고, 그게 아니라면 굳이 결혼할 이유도 필요도 없다는 세대가 등장하였으니, 결혼을 하지 않고 태어난 혼외자의 비율이 OECD 국가들중 믿기 힘들 정도로 독보적으로 낮은 (이웃 일본이나 이슬람 국가 터키보다도 낮음) 남한에서, 결혼이 없는데 출산을 바람이란 연목구어가 아닐 수 없을 것이다.

무사히 결혼에 성공하였다 하더라도 낳는 자녀의 숫자는 없거나 하나인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누구나 시작이야 '초보 육아'이지만, 여러 자녀를 기르면서 경험치를 쌓아 숙달된 육아 전문가가 될 터인데, 그리 될 기회가 거의 원천 봉쇄이니, 초보 육아자의 초보 육아를 받는 아이들인들 제대로 지덕체를 연마한 조화롭고 갖추어진 인격으로 성장할 수 있겠는가? 초보 육아자의 초보적 육아를 받고 자란 아이가 유치한 어른이 되고, 유치한 어른이 초보이자 유치하기까지 한 육아를 행함으로써 아이가 더욱 더 망가지는 악순환이 일어날 가능성도 있다.

악순환의 가능성은 물론 결혼과 출산이 부의 상징인 세태에 의하여 어느 정도는 자동 조절이 될 터이나, 이를 국가 사회에 보탬이 될 수 있는 정책으로 보조하고자 한다면 "출산 허가제"의 도입을 고려해 볼 수 있을 것이다. 혼외 출산자에 대한 징벌과 제제를 강화하고, 출산 및 육아 자격 교육 및 시험을 통하여 유자격자에게만 출산을 허용하되, 출산한 자녀에 대하여는 전폭적 지원을 한다는 제도를 도입한다면 국가 구성원들의 질이 향상될 수 있을 것이라고 본다. 이른바 "선택과 집중"이다.

무면허 초보 운전자가 일으키는 교통 사고의 위험성을 생각해 본다면 이 발상이 이해 될 것이다. 과거 대가족 제도하에서는 초보 육아자를 교육해줄 교관의 존재가 편만하였으나 지금은 그러하지 아니하므로 별도 교육이 필요한 것이며,  교육의 공교육화라는 일반적 흐름속에서도 자연스러운 귀결이다.

그런데 이런 세상을 상상해 보면 앨더스 헉슬리가 쓴 「멋진 신세계 (Brave New World)」와 얼마나 다르겠는가? 기술이 더 발달하면 더 이상 인간 여성의 자궁을 빌릴 필요도 없이 그 책에 나오는 대로 시험관내에서 인간이 출생할 것이니 말이다. 그리고 이런 제도의 도입이란 필연적으로 국가에게 fasces를, 그것도 엄청나게 큰 fasces를, 쥐어줌이니 그 아래 놓이는 대부분의 인간들은 얼마나 초라하고 왜소해지겠는가?

이런 지구인들이 더 이상 왜 필요하겠는가? 지구인들 지성을 뛰어넘은 강인공지능이 있어서 생각한다면 말이다. 

물론 그냥 뛰어넘은 정도가 아니라 그 존재의 차원에서부터 아득하게 초월한 초지성체가 있다면 그의 유희와 게임의 유닡으로서의 지구인들의 존재 의의는 당분간 남아 있을 수도 있겠다. 이 삼라만상이란 비쉬누의 배꼽에서 튀어나온 브라흐만이 그려내는 환(幻, maya)에 불과하다는 힌두교의 신앙은 음미할 가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