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 1637년은 별로 중시되는 해가 아니다. 유럽 중세를 끝장낸 삼십년 전쟁 (1618~1648)의 와중에서 저문 평범한 한 해로 기억될 뿐이다.

그러나 이 해에 데카르트 (1596~1650)는 두 가지 업적을 이룩하였는데, 그 첫번째는 직교좌표계(Cartesian coodinate system)의 발명이었고, 그 두번째는 「방법 서설」의 발표이었다.

어느날 데카르트가 낮잠 자다가 천정에 거꾸로 매달려 있는 파리의 움직임을 보고 그 움직임을 어떻게 기술할지 숙고하다가 직교 좌표계를 발명하는데, 이 우연한 사건의 결과 대수학과 기하학이 결합되는 일이 벌어지게 되며, 지금으로서는 너무나도 자연스러워 이것이 무슨 발명씩이나 되겠는가 싶지만, 이 직교좌표계의 발명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하더라도 지나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직교좌표계에 함수를 그려놓고 보면, 두 점 사이의 평균 기울기를 아니 생각할 수 없고, 두 점 사이 거리를 작게 줄이다 보면 접선을 아니 생각할 수 없고, 접선의 함수를 생각해 보면 미분이 아니 나올 도리가 없다. 뉴톤이나 라이프니츠가 없었더라도 미적분은 반드시 나오게 된다. 

미적분과 운동 방정식이 나오자, 이제 서양의 배와 대포는 동양을 본격적으로 침략하게 된다. 아니 침략을 안 하더라도, 하다 못해 초가집을 짓더라도 자원과 노동력과 시간을 절약하여 지을 수 있게 되었으니, 동서양 차이 발생은 불가피하였다. 그전까지는 집의 기둥 굵기를 얼마로 해야 안전할지, 포신 두께를 얼마로 해야 안전할지를 정확히 알 방법이 없었다. 경험칙에 근거하여 이정도면 괜찮더라는 주먹구구식으로 만들었으니 여기 얼마나 낭비가 많았겠는가.

직교좌표계가 서양에만 있었던 것은 물론 아니다. 11세기경 바둑서 「현현기경」에 이미 19로×19로 표기가 있었으니, 이 또한 일종의 직교좌표계 아니겠는가? 그러나 이 직교좌표계는 해석학으로 발전하지 못한 채 신선 놀음 기보에만 이용되고 끝났으니, 이때가 동서양의 운명의 갈림길이요 분수령이었던 셈이다.

데카르트는 사상적으로 그보다 이천년쯤 소급하는 소크라테스 (B.C.E. 470~399)의 후계자이었다. 소크라테스의 적전 제자 플라톤이 스승의 의심병과는 달리 절대성 풍부한 이데아 관념에 사로잡혀 사추덕과 철인 정치를 운위하였고, 그 결과 칼 포퍼의 「열린 사회와 그 적들」에서 열린 사회의 첫번째 적으로 낙인찍혔음에 반하여, 데카르트는 소크라테스의 "나는 모른다", "나는 의심한다"는 방법론을 철저히 받아들였으니, 소크라테스의 진제자는 데카르트라는 말이 과한 표현은 아닐 것이다.

데카르는 모든 것을 회의하고, 회의하고, 또 회의한 결과; 이렇게 회의하는 자기 자신의 존재만은 명백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래서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Cogito ergo sum.)"라는 유명한 선언을 하게 된다.

이 명제는 두 가지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는데, 그 첫번째는 "요소환원주의"의 확립이고, 그 두번째는 "신의 존재의 비(非)전제"이다. 데카르트는 자기 자신의 존재를 증명한 후, 그 증명을 통하여 신의 존재를 증명하고, 신의 존재를 통하여 삼라만상의 존재를 증명하였으니, 기왕의 기독교 스콜라 철학과는 순서가 정반대인 것이며, 비로소 인간이 신[이라는 신화]으로부터 해방된 것이었다. 달리 데카르트를 서양 근대 철학의 아버지라고 부름이 아니다. 이런 맥락에서 「방법 서설」이 근대 최초로 라틴어 아닌 자국어로 쓰여진 철학서였음도 지적할 만 하다.

요소환원주의는 근대 철학 및 과학의 가장 기본적인 사유 방식이요 도구이니, 그 한 궁극이 현재에는 물리학에서의 표준 모형에까지 도달하였음을 언급함으로 충분할 것이다.

맑스와 엥겔스는 그들의 「공산당 선언」에서 "하나의 유령이 유럽을 배회하고 있다"고 썼다. 그가 언급한 유령은 이른바 "공상적 사회주의"로서 모든 인류가 지배도 피지배도 없이 에덴 동산이나 유토피아나 극락같은 생활을 할 수 있다는, 지상 천국이 가능하다는 주장이요 주의이었는데, 인류중 '악한 지배 계급'과 '선한 피지배 계급'을 구별하지 아니하고 성선설로 퉁쳤다는 결정적 약점을 가지고 있었다. 이를 "공상"이라고 비아냥거린 맑스는 여기에 데카르트로부터 배운 요소환원주의를 적용하게 된다. 그 결과는 다음과 같다.

생시몽주의: 모든 인간이 독재없이 행복
맑스주의: [그때까지] 프롤레타리아 계급이 독재

맑스가 행한 것을 그 후계자들이라 해서 못 할 까닭이 있겠는가? 요소환원주의가 맑스의 독점 특허도 아니지 않은가? 그래서 다음과 같은 연쇄의 등장은 필연적인 "기러기 효과"라고 할 수 있다.

생시몽주의: 모든 인간이 독재없이 행복
맑스주의: [그때까지] 프롤레타리아 계급이 독재
레닌주의: [프롤레타리아 계급을 대신하여] 공산당이 독재
스탈린주의: [공산당을 대표하여] 서기장이 독재
모택동주의: [서기장인] 내가 독재
김일성주의: [서기장인 나의] Y 염색체가 독재

결국 영생불멸의 주체 사상이란, 데카르트 요소환원주의의 궁극에 도달한, 공산주의 끝판왕이요 최종 몹인 셈이다.

축하한다. 남한 인민들이여! 영생불멸의 주체 사상을 배우고 체험할 수 있는 지구상 유일무이한 곳 한반도에 태어난 저주인지 축복인지를.

(※ 철인 정치란 철인에게 fascis를 쥐어주자는 주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