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진호 ㅈ 되니까 내부고발자라며 자신을 처벌하면 불법이라는 김경욱.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는 이미 훨씬 전에 나오라고 했다는데?

"이미 일 년 전에 그곳에서 나오라고 말했고, 일 주일 전에 스스로 죄에 대한 처벌을 달게 받으라고 했으나 거절했습니다.
당신들의 친구들은 당신이 더 잘못하지 않도록 더 추악해지지 않도록 조언하라고 했으나 당신의 추악함에 동조하고 함께 추악해졌습니다."

제 영화 <얼굴, 그 맞은편>의 첫 장면은 어둡고 좁은 도시의 골목길입니다. 사이버성폭력의 피해자가 된 여성이 얼굴과 목소리를 잃고 사회로부터 격리되어 바깥 세상을 향해 소리없는 말걸기를 합니다.
비틀거리는 발걸음으로 천천히 골목 끝 환한 거리로 나오고 싶어 서성입니다. 그리고 세상 사람들에게 말을 겁니다.
"그곳은 봄인가요?" 
"바스락거리는 한 줌 햇살"
"지금쯤 라일락이 피었겠죠?"
"저 끝에 학교가 있어요"
"그곳에는 아직 내 이름이 남아 있을까요?"
목소리를 잃은 그녀의 소리없는 비명은 자막안에 갇혀 맴돕니다.

이 소리없는 비명에 응답하는 여성들이 있습니다.
어느 날 갑자기 사적 공간에 머리채 잡혀 온라인에 성적 도구로 전시되어 팔리고 있는 여성의 신체, 인격, 일상, 여성 그자체.
클릭 한 번만으로도 시공간을 넘어 팔리고 능욕당하고 온오프를 넘어 인격살해당하는 이 끔찍하지만 이름조차 없는 폭력을 사회에 고발한 여성들.
여성이라면 누구라도 언제라도 피해자가 될 수 있는 이 사회. 그래서 피해자와 피해자 아님의 의미도 경계도 없는 사회. 그리하여 "내가 피해자다"라며 세상을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여성들.
스크린골프장 알바로 모은 돈을 써가며, 대형마트에서 갈치를 팔아가며 활동을 한 여성들은 이름없는 폭력, 소리없는 비명에 이름을 만들고 저항의 외침을 만들어 갔습니다.

우연한 사고가 아니었습니다.
여성을 성적 도구로 만들어 이미지노예시장에 내다 팔았습니다. 시장이 있었습니다. 시장을 만들고 상품을 전시했습니다.
그리고 이 야만적인 시장을 그러싸한 합법적인 마켓으로 보이게 하는 카르텔이 있었습니다.
사이버성폭력카르텔, 그 중심에 웹하드가 있었고, 이 웹하드의 끔직한 이권을 로비하는 웹하드협회가 있었고, 이 웹하드협회와 함께 사이버성폭력 근절의 이슈의 방향을 웹하드의 이해에 맞게 물타기를 해줄 비영리시민단체라는 외피를 쓴 민간단체가 있었습니다. 국가는 비어 있었습니다.
아니 국가는 웹하드카르텔의 불법행위에 조력했습니다. 직무를 해태하고 웹하드의 이해에 맞게 법과 제도를 제한하고 그리고 웹하드의 로비를 허용했습니다.
이 과정을 추적한 여성들이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입니다. 그리고 그녀들의 서사를 쫓는 카메라가 있었습니다.

우리에게는 웹하드카르텔을 위해 충성을 다했던 '공익제보자'가 없습니다. 우리는 제보를 통해 웹하드카르텔의 실상을 알게 된 것이 아닙니다.
피해자의 피해회복을 위해 밤낮을 다해 누구는 청춘은, 누구는 중년의 마지막 남은 열정을 다해 이 문제를 추적했습니다.
언론에 보도된 자료를 거의 다 취합했고 분석했으며, 연관성에 대해 추적했습니습니다. 피해자의 목소리와 증언 그리고 웹하드에서 일했으나 문제를 느끼며 나온 사람들의 증언을 맞추고 분석했습니다. 활동의 범위가 넓어지고 깊어질 수록 증언자가 많아졌고, 다양한 제보를 받았습니다. 그들은 웹하드카르텔의 내부자가 아닙니다.

우리는 웹하드카르텔의 외부자들의 목소리와 피해자의 증언에 기초해서 웹하드카르텔의 실체을 처벌할 수 있는 자료를 만들고,
그 자료를 경기남부경찰청에 제보하였습니다. 그리고 경기남부경찰청의 수사가 제대로 진행될 수 있도록 그 사실조차 발설하지 않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다큐가 완성되었고, 다큐가 상영되는 날을 D-day로 해서 이 사실을 SBS '그것이 알고 싶다'에 전달했습니다. SBS '그것이 알고싶다' 제작진은 이 문제를 좀더 대중적으로 접근하기 위한 다양한 자료를 취합하고 취재를 해서 7월 28일 '웹하드편'을 방영하였고, 국민들의 공분을 불러 일으켰습니다.

그것이 방영되는 날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의 활동가들은 잠을 자지 않았습니다. 방영과 함께 이미 "대통령직속 웹하드카르텔 특별수사대 구성을 위한 국민청원서"를 작성하고 있었습니다.
웹하드카르텔은 기업간 담합만으로 구축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경찰 검찰 법조계 방통위 국회 정치권 등 전방위로비를 통해 구축되었고 수사단계에서 죄상이 축소 은폐될 수 있기에 페미니스트정부를 자처하는 문재인 대통령에게 마지막 희망을 갖고 작업을 시작한 것입니다.

하루에 만 명 씩 청원에 동참한 국민들의 수가 20만명이 넘었을 때 활동가들은 울었습니다. 소리없는 여성피해자의 목소리가 이제 20만명이 넘는 국민의 소리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민갑룡 경찰청장은 '웹하드카르텔'에 대해 수사하겠다고 밝혔습니다. 헤비업로더 몇 명만 잡고 수사를 마무리했던 지난 날들과는 다를 것입니다. 이미 웹하드카르텔의 정점에 있는 양진호를 비롯한 그에 조력했던 공범들에 대한 전방위수사가 진행되었습니다.

그런데 수사가 막바지에 이르고 양진호의 체포와 구속이 목전에 있을 무렵에 국민들은 양진호의 폭행이 담긴 영상을 보게 된 것입니다. 국민들은 충격을 받았습니다. 어찌 저런 만행이 저렇게 버젓이 자행될 수 있는가? '갑질'이라는 이름으로 한순간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것을 보고 또 우리는 울었습니다.

그동안 '차마 눈을 뜨고 볼 수도 상상할 수도 없는 폭력'을 당하고 사회적으로 낙인당하여 소리조차 내지 못했던 여성들이 떠올랐습니다. 그렇습니다. 공감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피해자의 영상을 보지 않았던 국민들은 당연히 보지 않았기 때문에 알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피해자영상을 100원 200원에 다운 받아 보았던, 그들. 그들은 피해의 아픔과 공포를 즐기던 사람이 아니던가요? 그녀들이 당했던 끔찍한 폭력은 소비하고 사이버성폭력에 조력했던 남성이 양진호한테 맞는 모습을 보고는 분노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성과 남성의 폭력 피해는 이렇게 다른 것이구나, 다시 한번 절감했습니다.

그리고 바로 이 영상을 세상에 알렸던 언론사들은 '양진호의 미친 행각'을 시리즈로 보도했습니다. '반전', '충격', '기행' 이런 수식어를 예고하면서 말입니다. 탐사보도라는 이름 아래. 그런데 탐사는 없고 제보자의 말을 그대로 전하는 탐사가 어디 있단 말입니까?

그들의 말처럼 '충격'적인 것은 공익제보자의 신분을 얻고, 그동안 양진호의 비리를 전한 사람이 바로 양진호의 최측근이며 웹하드카르텔의 중심에서 카르텔의 법적 문제와 카르텔 직원의 노무감사했던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신원보장과 책임면책의 지위 안에 숨어서 양진호의 비리는 폭로하면서도 자신이 속했던 뮤레카를 지키기 위한 수사적 언술을 토해내는 모습을 보면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하게 됩니다. 피해자에게 사과한다면서 반성한다면서 그동안 자신이 행했던 행위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거나 회피하고 축소 혹은 거짓을 말하는 그 입을 보면서 또 다시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하게 됩니다.

손으로 하늘을 가린다는 말이 있습니다. 가능할까요?
웹하드카르텔의 정범자였고 지금도 정범자인 그에게 일주일의 시간을 주었습니다. 스스로 경기남부경찰청에 가라고 말입니다. 가서 자신이 알고 있는 카르텔의 전모를 밝히고 자신의 죄도 밝히라고 말입니다. 그게 사과이고 사죄입니다. 그러나 웹하드카르텔의 정범자는 그렇게 할 시간에 공익제보자의 신분을 획득하기 위한 언론 작업을 하면서 국가인권위에 가서 자신의 이해에 따라 선별된 자료만 제출하고 '신원보장'과 '책임면책'을 보장하는 공익제보자의 지위를 얻어 왔습니다.
그리고 대국민 협박을 하고 있습니다. 자신의 신원을 밝히면 형사처벌의 대상이 될 수 있다고 말입니다.

부끄럽지 않은가요? 당신은 그리고 당신의 친구들은. 
국민이 그리고 지금껏 목숨을 걸고 투쟁했던 여성들이 그것을 두려워 할 거 같습니까? 이미 당신의 신원은 다 특정되어 밝혀지고 있습니다.
모자이크와 음성변조 넘어로 당신의 실체는 이미 다 국민 앞에 까발려졌습니다. 당신이 기자회견 하기 전에 우리는 당신의 존재를 알았고, 당신의 지인들 모두가 당신의 과거와 지금 현재의 모습을 보고 비애감을 느끼고 있습니다.
기자들이 그것을 모르고 있는 것 같습니까?

당신은 마지막 기회조차 스스로 버렸습니다. 탐욕과 거짓 그리고 최소한의 양심마저 버리고, 혼자 살아 남겠다고 비열한 술수를 쓰며 전전긍긍하는 초라한 범죄자의 모습만 남았습니다.

곧 법은 당신을 처벌하겠지요. 하지만 이미 당신은 더 큰 처벌을 스스로에게 내렸습니다. 자멸이란 이런 것입니다.

이미 일 년 전에 그곳에서 나오라고 말했고, 일 주일 전에 스스로 죄에 대한 처벌을 달게 받으라고 했으나 거절했습니다.
당신들의 친구들은 당신이 더 잘못하지 않도록 더 추악해지지 않도록 조언하라고 했으나 당신의 추악함에 동조하고 함께 추악해졌습니다.

여성들이 처벌해줄 것입니다. 과거의 인연으로 시민단체나 지인들에게 더 이상 감정 구걸하지 마세요. 그들도 듣지 않을 것입니다. 기다리세요. 그 자리에서. 움직이면 움직일수록 당신의 설 자리는 점점 좁아집니다.

왜, 우리의 추적은 끝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Somewhere unwritten poems wait, like lonely lakes not seen by anyon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