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4년 가을 소련은 이미 동유럽 전역에서 나찌를 몰아내고 베를린에 근접 지역까지 도달합니다. Normandy 상륙성공으로 독일의 패배는 어느정도 확신했지만 루즈벨트와 처칠은 유럽의 반 이상을 소련에게 내 주어야할 상황을 인식합니다. 처칠은 10월에 스탈린과 만나 유럽을 어떻게 나눌지에 대해 밀약을합니다. Percentages agreement 라고하죠. 그리고 1945년 2월 이 굴욕적인 밀약을 포괄적으로 개선하고자 Crimea 의 Yalta 에서 처칠, 루즈벨트, 스탈린이 모이는데 이를 Yalta Conference (얄타회담) 라고 합니다. 

루즈벨트와 처칠은 적당한 선에서 소련의 유럽진출을 억제하는게 최우선이였기에 스탈린에게 여러가지 sweetner 를 제시합니다. UN 에서 2개의 투표권, security council 의 member 로 veto 할수있는 권리, ..., 그리고 Far East 에서의 소련의 영향력 등입니다. 그리고 이들은 여러개의 세부 조약에 서명하는데 그중 Far East Agreement 란 Kurile 열도, 사할린, 연해주, 몽고, 만주, 한반도 등에 관련된 사항들입니다. 

한반도는 러일전쟁의 밥그릇이였습니다. 일본은 전쟁에서 이긴후 미국의 묵인 (Katsura-Taft) 하에 조선을 강점합니다. 그리고 이를 발판으로 대륙에 진출합니다. 미국이 일본의 대륙진출을 도와준 의도는 Katsura-Taft 3개월후인 1905년 10월에 파악이 되는데요. 바로 Katsura-Harriman 회동입니다. Edward H Harriman 은 미국 철도왕이죠 ... Gold rush 때 철로를 독점하여 엄청난 돈을 번 사람입니다. 요즘도 아이들 장난감 기차에 그의 이름이 붙어있죠. Katsura-Harriman 회동에서 협의한 사항은 만주-시베리아-유럽을 연결하는 철로에 대한 기획으로 Harriman 이 투자하고 지분을 가져건다는게 골자였습니다. 그러나 2주후 일본은 Harriman 과의 협약을 취소합니다. 외무상 Komura Jutaro 가 미국에 지분을 넘겨주게되면 식민정책이 어려워지고 대륙진출도 실패할수있다는 논리로 Katsura 를 설득하였기 때문입니다.

조선을 강점한 일본, 철로에 대한 Harriman 의 욕심에 조선합병을 묵인한 미국 모두 원망스럽지만 맨날 당파싸움하다가 힘없이 나라뺐긴 조선은 넘 한심하죠. 요즘 돌아가는 꼴보면 역사에서 배운게 전혀없는 민족이 아닌가 싶네요.

실패로 돌아간 Katsura-Harriman 조약은 사실 밀약일 이유가 없었지만 구체적인 내용은 19년 후인 1924년에 세상에 알려집니다. 이게 1945년 Yalta 회담에 어떤 관련이 있을까요 ... Yalta 회담의 실무 책임자가 루즈벨트가 소련대사로 임명한 W Averell Harriman 바로 철도왕 Edward H Harriman 의 아들입니다. 지금도 어느정도 마찬가지지만 당시 미국은 철저히 금권주의체제였습니다. 게다가 Yale 대학나온 아들이네요.

뭔 이야기냐면요. 루즈벨트, 처칠, 스탈린 셋이서 러시아 최고의 관광지 Crimea 에 모여서 사진찍고 밥먹고 하면서 한 얘기들은 원론적인 것들이고 실무는 Harriman 과 스탈린간의 거래였던거죠. 소련은 Kurile 열도와 사할린을 귀속시키고 몽고와 만주에 절대적 영향을 갖게됩니다. 그리고 일본이 건설한 만주와 중국의 철로도 소련이 관리하게되죠. 이때만 하더라도 Manhattan project 의 성공이 보장된 상태가 아니었기에 일본이 핵 두발에 쉽게 항복하리란 낙관은 없었을 수도 있었겠지만 소련은 러일전쟁에서 잃은것 이상을 얻게됩니다. 

여러 기록을 살펴보면 Averell Harriman 은 분명 그의 아버지가 추구하던걸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만주에 Harriman 의 기차가 없다는건 그의 뜻대로 되지않았다는 말이죠. 1970년 New York Times 인터뷰에서 모든걸 스탈린이 약속을 이행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했는데요. 과연 그는 스탈린과 어떤 협상을 시도했을까요? 그의 아버지가 일본의 조선강점을 묵인했듯이 소련의 강점을 묵인하려고 했을수도 있습니다. 기록이 없으니 진실은 묻힌것 같은데 정황에관한 자료나 관련논문들은 많이 있으니 찾아보시고 ... 분명한건 그당시에 Harriman 의 이해관계를 고려했을때 의심할 여지는 충분했다는점.

여담으로 처칠의 며느리 Pamela Digby 는 처칠의 아들과 이혼후 Averell Harriman 과 재혼하죠. 그리고 Pamela 의 아들 (할아버지 처칠과 같은 이름 Winston) 은 Harriman 의 엄청난 유산을 물려받게되었답니다.

요약 - Harriman 의 증언대로라면 Yalta 에서 결정된 많은 것들중 많은것들이 파기되었고, 동유럽에 관한 내용은 소련 붕괴와 함께 소멸되었고, 동아시아는 현재 Harriman-Stalin 이 아니라 Rockefeller-Mao 또는 그게 붕괴되는 단계. Harriman 이 대를 이어 사고쳤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