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논문을 검색하다가 굉장히 흥미로운 논문을 발견했어요. 대부분 인용임. 

http://congress.aks.ac.kr/korean/files/2_1478845697.pdf

일단은 조선인이 만주로 이주한 건 일본제국주의의 억압을 피하기 위한 거였어요. 

조선이 중국에 꾸준히 조공을 올리던 일종의 '속국'이었다가 일본제국주의의 식민지로 편입되고 중국이 서양문물을 베껴 온 일본제국주의 앞에 스러지자 [서구 제국주의와 일본에 무너지는 중국을 목도하면서, 조선의 지식인들은 중국이 대변하는 동양문명의 열등성을 의식하고, 새로운 아시아를 구상하는 일본의 오리엔탈리즘에 기반해서 조선인 스스로를 동양의 '중간민족'으로 자처하는 인식이 형성되었다. 서구보다 열등하고 동양 민족의 지도자급인 일본보다는 못해도 중국보다는 문명화되어 있다는 자기평가가 일본의 제국주의가 급부상하는 국면에서 조선의 지식층, 관료들 사이에 형성되었던 것이다].

[『조선일보』 간도 특파원 이종정이 만주와 몽골을 돌아보고 나서 1927 년에 쓴 기행문에서도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이 땅이 한 예날 우리 선민(先民)의 안주지이었던 것은 회고함이 도리어 무익하다 할지라도 목하(目下) 수백만 백의 (白衣) 대중이 주거하는 지대임에 있어 또는 우리의 만대 자손이 이 땅에서 나서 이 땅에서 번영할 억만년 이래를 생각할 것 같으면 우리는 도저히 이 땅에서 번영할 억만년 미래를 생각할 것 같으면 우리는 도저히 이 땅의 사정을 등한시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뿐만아니라 고국에 있어서 나날이 생활의 파멸을 당하고 쫓겨나는 무산 대중의 살길을 찾는 곳도 만주 벌판이라 할 것이며 남다른 의지와 포부로 고국을 떠나는 지사(志士)의 찾는 활무대(活舞台)도 이 만주 황야라고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그렇다하면 우리는 먼저 어느 민족보다도 이 만주와 및 몽고 연해주 일대에 대한 사정을 잘 연구하여야 할 것이며 모든 생존권도 확립케하도록 노력하여야 할 것이다. 이것은 결코 야심에 나오는 것도 아니요. 만주는 우리 반도의 연장지역이요. 이 땅에 주거하는 동포의 생명이 또한 내지(內地) 동포의 생명 연장이니까 우리는 우리의 생명을 더욱 연장시키기 위하여 이 땅의 개발에 최선의 노력을 다할 것이며 합리한 수단과 방법으로서 국제적 지위에 처하여 모든 권리를 수호 신장하기에 전심하여야 할 것이다."]

만주 중국인들이 이주조선인들을 멸시하고 천대하며 잔인하게 노동을 착취하는 예가 기행문에 나옴. 

[특히 여기서 만주를 통해 보여지는 중국의 '현재'를 한국의 '과거'와 비교한다는 것의 기저에 진화론적인 문명관이 분명히 작동되고 있다. 이 점은 '비문명인', '미개인'으로 중국인을 그려내는 아래 서술을 통해서 역시 확인 가능하다.]

[1922 년 『신생활』 기자 자격으로 만주를 순유한 독립운동가 김원벽은 단정한 일본인 상점에 비하여, "형색이 컴컴하고 문외가 불결하여 악취가 大甚한 중국인 상점"들, "불결한 것이 특색인" 장춘의 중국인 市街, "앞머리 깎은 것에 정떨어지"는 느낌을 주는 중국인의 모습을 묘사하고 있다. 그러다 장춘에서 만난 일본영사관 형사의 만주에서 일선융합(日鮮融 合)이 조선보다 더 잘되는 것 같다는 말에 동의하며, "일본인 태도가 (조선에서보다) 좀 다른 것 같다. 만주에선 日鮮人의 惡관계가 배치되지 않는 점이 많고 조선인보다 더 천대할 청인이 무수하니 청인을 싫어하는 심정으로 조선인에게 좀 호감을 두는" 38 것이라고 답변한다. 독립운동가임에도 불구하고 중국인을 '청인(淸人)'이라고 부르면서 일본이 조선인에 호감을 더 갖는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김원벽의 반응을 통해, 민족 간의 위계를 합리화하는 제국주의의 논리가 당시 조선 지식인에게 얼마나 내면화되었는지를 엿볼 수 있다. 이처럼 식민지 조선에서의 "일본 - 조선"이라는 대립항은 중국에서 난데없이 사라지면서 '일본 - 중국', '조선 - 중국'이라는 대립항으로 대체되며, 지식인의 의식에 투영된다. 그들은 의식적으로는 식민지 지배자로서의 일본에 반대하고 저항하면서, 무의식적으로는 일본의 시선과 맥을 같이하여 중국인을 '미개함'으로 규정지어 일본의 만주 지배를 정당화하고 있다. 결국 제국의식에서 벗어나지 못해 제국 담론에 동참하게 되었다.]

[춘해의 눈에 비치는 중국인의 모습은 시끄럽고 촌스러우며, 아편쟁이처럼 정신기 하나 없시 멍하는 미개한 꼴이었다. 이러한 중국인에 대한 그의 인식은 복잡하기 짝이 없다. 이성(理性)적인 측면에서는 피지배자라는 동일한 위치를 자각하면서 중국인에게 어느 정도 동질감을 느끼는데, 감성(感性)적인 측면에서는 그들의 미개한 꼴을 구역이 나올 정도로 도저히 용납할 수가 없다고 했다. 그는 일본 제국주의가 '문명/야만'의 기준으로 조선과 조선인을 '야만'에 편입시켰던 같은 논리로 중국인을 '야만'에 편입시킨 자기의 시선을 의식하면서, 중국인들에게 "호감을 가지려고 애를 쓰"지만 끝내 차별의식을 금치 못하였다. 그는 그러한 자신이 한심스럽고, "마치 내 나라사람이 모욕을 당하는 것 같은 부끄러움과 불안이 생기는 것을 억제치 못한"다면서 죄책감까지 느낀다. 이처럼 '근대'에 대한 강력한 강박감은 그의 의식의 균열을 일으킨다. 중국에서 자기와 동일한 위치에 있는 식민지인을 대면할 때야 비로서 자기의 '하얀 가면'을 의식하게 되는데, 도저히 그 가면을 벗지 못하는 자신의 모순된 내면을 발견하게 된다. 이렇듯 '식민지 근대성'에 의해 깊이 내면화된 식민지 지식인의 분열된 의식이 생생하게 그려지고 있다.] 

[위에서 1920-1931 년 조선 지식인들의 만주 기행문에서 나타난 '중국(인) 인식'을 살펴보았다. 이들은 조선 민족의 '희망의 땅'으로서 만주를 열망하였으며, 단순한 타국체험을 넘어 민족 공동체의 생존과 결부된 측면에서 만주행을 시작하였다. 그러나 이들의 바람과는 다른 차원으로 현지에서 그들은 중국 관민에게 시달리는 조선인의 열악한 생존 환경과 궁핍한 생활상을 눈으로 확인하였다. 그 와중에 만주는 혐오와 공포가 교차되는 '수난의 공간'이자 '미개한 땅'으로 묘사되게 된다. 그 공간에서 조선 지식인의 근대적 주체로서의 정체성과 제국 외부의 이방인, 조선인, 동양인이자 식민지인으로서의 정체성이 부딪치며 빚어낸 균열을 이들의 기행문을 통해 읽어낼 수 있다.]

['미개인'으로서의 중국인을 인식하는 경우는, 서양인들이 동양을 바라볼 때의 시선으로부터 19 세기 말 일본인들의 조선 기행문에 나타난 시선(박양신, 2003)과 너무나 유사한 일종의 '시선의 계승'을 확인케 한다. 일반적으로 '서양 - 동양', '제국 - 식민지'라는 구도에서 논의되어 온 이러한 오리엔탈리즘 '시선의 계승'은 '식민지 - (반)식민지'라는 구도에서도 비슷하게 나타났던 것이다. '미개'하고 '역겨운' 중국인, '과거 한국'보다도 못한 타락한 중국 정부, 무법천지의 땅으로서의 만주 등 식의 담론 생산은 일제가 이 땅을 확보하여 치안을 유지하고 문명화시켜야 한다는 제국주의 논리와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이것은 만주국 설립 후에 대동아공영권에 대한 제국주의의 정당성을 선전하는 식의 담론으로 이어졌다고 하겠다. 이러한 '중국(인) 인식'은 결국 본의 아니게 제국담론을 답습하면서 일본의 16 만주지배와 대륙침략의 당위성을 긍정하는 역할을 하였으므로, 식민주의와 근대성 간의 은밀한 공모성을 한층 더 입증해 주고 있다. 결국 제국 자체를 지탱하는 담론으로 귀결되며, 일본 제국주의에 대한 자신의 비판을 무력화시키거나 차단하게 하는 역설적인 상황을 초래하고 말았다.]

[만주국 건국 후에 만주는 '이등 국민'으로서, 또는 식민화의 주체로서의 조선인의 욕망이 본격적으로 투영되는 공간이 되었다(곽은희, 2014:92-93)는 조선 지식인의 인식을 단지 시국선전물로 치부되는 논리가 성립되지 않을 것이다. 사상적 전향의 기미는 그 이전 시기에 이미 드러나 있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상적 전향은 결코 사상이 급변한 데서 비롯된 것이 아니고, 체제의 강요에 의해 부득히한 것도 아니며, '문명'의 이름으로 진행된 근대적 세계체제의 변동과 동아시아의 맥락 속에서 '식민지 근대성'의 내면화 과정과 불가분의 관계를 가지고 있다. 1930 년대에 들어 본격적인 '전향'이 이루어지기 전에, 이른바 '전향의 전야(前夜)'에 이미 묻히게 된 '불가항력'들에 대한 치밀한 검토가 향후 연구에서 계속 요구되는 바이다. 이에 본 연구는 작으나마 기여를 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아래 대목을 페북에서 읽은 적이 있어요. 금시초문이었는데 이 논문과 연결이 되는군요. 
[첨언하자면 조선왕조도 대한제국으로 변용되어 무너지는 와중에까지 만주지역에 식민주의적 야욕을 드러내며 간도지역을 식민화 했다는 사실을 한국인들이 얼마나 알까. 은장태의 연구가 잘 보여주고 있듯이 대한제국의 근대국가로서의 식민화 욕망은 강렬한 것이었다. 일본제국주의의 침략이 거세지는 그 와중에도 간도를 식민화하겠다고 1천명 단위의 군대를 자국민 보호라는 명목 하에 간도에 파견하고 .....]

"Somewhere unwritten poems wait, like lonely lakes not seen by anyon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