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민석의 헛소리2 - 간도가 우리 땅?

 

2018.08.20.

 

지난 주의 설민석과 최진기의 독도 관련 국수적 발언에 대해 비판하는 글에 이어 오늘은 설민석의 간도가 우리 땅이라는 억지 주장에 대해 비판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설민석의 강의 동영상을 링크하니 들어보시기 바랍니다.

<설민석이 간도는 우리 땅이라 주장하는 동영상>

https://www.youtube.com/watch?v=IdHYjW_GEtA

 

설민석은 간도(북간도, 동간도)가 우리 땅이라는 근거로 백두산 정계비의 비문 내용을 들고 있습니다.

청의 목극등과 조선의 박권이 양국의 경계를 정하기 위해 백두산 아래 4km 지점에 세운 정계비의 내용은 아래와 같습니다.

<烏喇摠管穆克登 奉旨査邊 至此審視 西爲鴨綠 東爲土門 故於分水嶺上 勒石爲記 康熙五十一年五月十五日>

이 내용 중에 양국의 경계를 말하는 西爲鴨綠 東爲土門의 문구에서 토문을 두고 설민석은 두만강이 아니라 쑹하강의 지류인 토문강을 말하는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서쪽의 경계가 압록강이라는 것에 대해서는 양측이 이의가 없는데 동쪽의 경계에 대해 청은 두만강, 조선은 쑹하강의 지류인 토문강이라고 본 것이라는 것이죠.

설민석의 주장이 얼마나 어이없는지는 조선왕조실록 숙종실록 51, 52권을 보면 금방 알 수 있습니다. 당시 조선 조정은 토문을 당연히 두만강으로 인식하고 있었고, 다만 목극등이 두만강의 시원이 되는 지류를 잘못 지정하는 바람에 이를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고민했습니다. 이에 대한 내용이 숙종실록 52권에 잘 나와 있습니다. 52권을 보면 조선은 토문을 당연히 두만강으로 인식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목극등과 박권이 양국의 경계를 압록강과 두만강으로 하는 것에는 합의하고 백두산 정계비에도 그렇게 표기했는데 문제가 하나 있었습니다. 두만강이 백두산 천지에서 바로 시작 되어 흐르는 것이 아니고 땅 속으로 스며 들어갔다가 일정 거리를 두고 원류가 시작하기 때문에 천지에서 두만강 원류까지의 양국의 경계를 설정하는 것이 문제였습니다. 목극등은 천지에서 두만강 시작되는 곳까지를 목책과 돌로 쌓아 경계를 표시하라고 조선에 이르고 두만강이 시작되는 원류가 되는 곳을 조선에 일러 주었습니다.

그런데 목극등이 제대로 살피지 않고 두만강 원류가 되는 곳을 쑹하강 지류로 조선측에 잘못 알려주게 됩니다. 조선의 관리들은 목극등이 알려준 대로 쑹하강의 지류로 따라가게 되는데, 아니나 다를까 두만강이 나오지 않고 엉뚱한 데가 나오니 조선 쪽에서 더 당황하게 됩니다. 목극등이 잘못했다고 지적하면 목극등이 곤란해질 것이고, 목극등이 잘못 말한 대로 조선과 청의 경계를 했다가는 원래 청과 조선이 경계로 하기로 한 두만강과 다른 국경선으로 목책이나 돌을 쌓게 되니 이것 또한 문제가 될 것으로 보았기 때문입니다. 결국 목극등이 지정한 두만강 시원이 아닌 실제 두만강이 시작하는 지점까지 목책과 돌을 쌓았습니다. <숙종실록 52, 숙종 38127일 병진 3번째기사 1712년 청 강희(康熙) 51, ‘백두산 정계가 잘못된 것에 대한 겸문학 홍치중의 상소. 이에 대한 논의와 거산 찰방 허양의 공술 내용’>이 바로 이 내용입니다. 52권의 내용은 길어서 아래에 링크를 걸겠습니다. 제 말이 사실인지 직접 클릭해서 확인해 보시기 바랍니다.

http://sillok.history.go.kr/id/ksa_13812007_003

숙종실록 51권 내용은 비교적 짧아 그대로 복사해 올리겠습니다. 여기에는 토문을 두만강이라고 조선이 인식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내용이 나옵니다.

 

<숙종실록 51, 숙종 38523일 을사 1번째기사 1712년 청 강희(康熙) 51, ‘접반사 박권이 백두산 정계의 일에 대해 치계하다’>

 

<박권(朴權)이 치계하기를,

"총관(摠管)이 백산(白山) 산마루에 올라 살펴보았더니, 압록강(鴨綠江)의 근원이 과연 산 허리의 남변(南邊)에서 나오기 때문에 이미 경계(境界)로 삼았으며, 토문강(土門江)의 근원은 백두산 동변(東邊)의 가장 낮은 곳에 한 갈래 물줄기가 동쪽으로 흘렀습니다. 총관이 이것을 가리켜 두만강(豆滿江)의 근원이라 하고 말하기를, ‘이 물이 하나는 동쪽으로 하나는 서쪽으로 흘러서 나뉘어 두 강()이 되었으니 분수령(分水嶺)으로 일컫는 것이 좋겠다.’ 하고, 고개 위에 비()를 세우고자 하며 말하기를, ‘경계를 정하고 비석을 세움이 황상(皇上)의 뜻이다. 도신(道臣)과 빈신(貧臣)도 또한 마땅히 비석 끝에다 이름을 새겨야 한다.’고 하기에, 신 등은 이미 함께 가서 간심(看審)하지 못하고 비석 끝에다 이름을 새김은 일이 성실(誠實)하지 못하다.’는 말로 대답하였습니다."

하였다.>

http://sillok.history.go.kr/id/ksa_13805023_001

 

구글의 지도를 보고 백두산 천지와 압록강, 두만강을 살펴 보시기 바랍니다.

쑹하강과 그 지류는 북쪽으로 흐르고 있고, 동쪽으로 흐르는 것은 두만강입니다. 청과 조선의 동쪽 경계를 토문으로 한다고 했는데 어떻게 북쪽인 쑹하강과 그 지류인 토문강으로 할 수 있습니까? 그리고 쑹하강과 그 지류인 토문강은 중국의 내륙으로 흐르지 동해로 흐르지 않아 양국의 경계를 한다는 것은 말도 되지 않습니다. 양국의 경계를 쑹하강의 지류인 토문강을 한다면 토문강이 끝나는 지점 뒤의 양국의 경계는 무얼로 할 것입니까? 그리고 쑹하강 지류인 토문강은 실개천에 불과하고 그 길이도 짧은 반면, 두만강은 말 그대로 강의 규모로 양국의 경계로 하기에 적합합니다.

목극등과 박권은 백두산을 중심으로 ()자로 흐르는 두 강이라고 이르고 있는데, 압록강과 자로 흐르는 강은 두만강이고, 쑹하강이나 그 지류인 토문강은 ()자로 흐르고 있습니다.

백두산 정계비에도 두 강의 분수령상에 비를 세워 기록한다(故於分水嶺上 勒石爲記)고 하고 있습니다. 백두상의 정계비의 위치는 압록강과 두만강의 분수령에 위치에 있습니다. 토문이 쑹하강의 토문강을 말한다면 백두산 정계비의 위치가 설명이 되지 않습니다.

이런 모든 정황과 사실들을 종합할 때 백두산 정계비에 나오는 토문은 두만강이 확실하지요.

 

세종 때 북방에 46진을 설치하여 여진족을 막았습니다. 4군은 압록강의 남쪽에, 6진은 두만강 끝의 남쪽에 설치했습니다. 압록강과 두만강 이북은 여진족의 땅이었고 이 여진족이 후금을 세우고 중국의 중원을 장악하고 청을 세웠습니다. 그 이후 자신의 발흥지인 간도 지역은 무인화하고 버려둔 것이고, 강희제 때 조선인이 넘어와 문제와 일으키자 양국의 경계를 확실히 하고 백두산 정계비를 세운 것입니다. 간도를 우리가 차지한 적도, 관리한 적도, 행정구역으로 편입한 적도 없는데 백두산 정계비를 지 마음대로 해석하고 간도가 우리 땅이라고 우기고 있습니다.

역사적 사실이 이런데 설민석은 백두산 정계비를 들먹이며 간도가 우리 땅이라고 설레발을 칩니다. 자신이 근거로 내세운 백두산 정계비라도 제대로 해석하고, 그것에 대한 심층적 연구를 했으면 모르지만, 그의 강의에는 그런 흔적이 전혀 없습니다. 우리나라 대표적인 역사학 강사라는 자가 고딩생 수준의 얕은 지식으로 공중파를 휘젓고 다니며, 지식 포퓰리즘으로 지식 장사를 하고 다녀도 아무도 이에 대해 이의 제기를 하지 않습니다. 우리의 지성계가 이 모양이면서 일본의 역사 왜곡을 비난하고 중국의 동북공정을 비판하고 있으니 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