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덕이나 조재현 같이 자신의 위력과 물리적인 힘을 이용해 여성을 강압적으로 강간하면 누구나 나쁜놈인 줄 안다. 이런 놈들 욕하면서 지들은 여성인권이 무자비하게 짓밟히는 사회에서 지는 피해자 편이라며 가해자를 옹호하는 일베형 미소지니트들을 타자화한다. 그러나 안희정 같이 비서를 담배셔틀로 생각하는 고압적이고 이중적인 위선자가 "위력을 이용해" 김지은 씨를 성적 노리개로 이용했다는 사실은 인정하지 않는다. 이 머가리 빻은 붕어 아이큐들은 지들 상상대로 안희정과 김지은 씨가 뜨겁게 연애감정을 키우고 있는 동안  1년에 걸쳐 겨우 4번 성관계를 하고 기념일을 챙기지도 않는 무심한 관계란 있기 힘들단 사실을 알려고 하지 않는다. 불륜이 아닌 위력에 의한 관계일 시 안희정은 김지은 씨를 상대로 1년에 걸쳐 4번씩이나 성폭력을 가했다는 사실에 이르는 상황의 엄중한 반전을 아메바 무뇌충들은 생각하기가 귀찮다. 지들 머리에 한계가 있기 때문에 뇌가 아메바인 상태에서 겨우 할 수 있는 상상이란 불륜 외에는 없다. 뇌가 아메바이면 인간사에서 위력 앞에 좌절하는 무력한 개인의 시나리오가 즐비함에도 섬세한 문학적 서사로도 접해 본 일이 없는 모양인지 인간관계에서 위력이 한 개인을 어떻게 꼼짝 못하게 만드는지 고찰하지 못한다. 불륜이라야 지들 돌머리가 이해가 가능하다. 아메바무뇌충들에게 이 일은 불륜이라야 하기 때문에 가해자 안희정에게는 4번의 위력행사에 대해 심문하지 않는 놈들이 김지은 씨에게는 왜 문을 박차고 나가지 않았느냐고 집요하게 캐묻는다. 아메바무뇌충들은 적지 않은 선의의 지지자들을 거느린 유도전망한 정치인의 미래를 끝장낼 파장을 각오하고 전 국민이 지켜보는 앞에서 일생을 내던지는 일은 동사무소에 민원 제기하듯 쉽다 여기고 그 배후가 겨우 폭로자의 잔망스런 질투심이라고 이해하는 자신의 근시안적 시각이나 멍청함에 잠시라도 갸우뚱하는 법이 없다. 

일제강점기 당시 성노예 할머니들이 앳된 소녀의 나이에 일본군의 서슬퍼런 총칼 앞에 무력하게 끌려 가 전장에서 잔인하게 인권유린을 당한 사실에 모두가 분노한다. 그 때문에 허구헌날 친일파 처단을 목청 높여 외치는 이들은 당시 조선의 비문명과 찢어질 듯 가난했던 기층민 중 가장 하위에서 바닥인생을 살던 이들을 구제할 마지막 출구가 전통적인 정조이념에 반하는 일일 수도 있다는 사실, 그것이 구조적이며 개인의 생업이 무엇이든 일본의 성노예시스템은 자본주의와 결합한 일본제국주의가 인간에 가한 잔학한 범죄라는 사실을 이해할 능력이 없다. 다양한 서사의 피해자들 중 구조적인 성착취의 얼개에서 납치될 일 없이 가장 손쉽게 동원된 이들은 순결주의에 경도된 대중이 누구보다 두려울 수 있다는 사실을 뇌가 아메바인 무뇌충들은 알 리가 없다. 지엽적인 사고에서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에 지금에 이르러도 진정한 미투와 진정하지 않은 미투를 감별하는 일이 멈추지 않고 있는 거다. 


"Somewhere unwritten poems wait, like lonely lakes not seen by anyon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