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이버에서 연재되는 웹툰 비질란테를 보면서 나는 내가 느끼는 이중적 심리에 대하여 당황했었다. 

세상에, 명백한 범죄, 그 것도 연쇄살인을 일으키는 주인공을 향해 환호하다니!!!!

그리고 그 당황함의 끝에 나는 내 자신을 합리화 했다. 


'이건 내 탓이 아니라 정말 우스운 수준의 한국 공권력 탓'이라는 자기 합리화 말이다. 그런데 그런 나의 합리화는 그동안 내가 모멸차게 비난했던 워마드에 대한 감정적 conflict를 일으켜 '정의로움의 아마겟돈'을 만들어 뭐가 옳은 것인지, 뭐가 정의로운 것인지, 그리고 나는 과연 정의로운 판단을 '객관적으로 내리려고 노력했는지'에 대한 혼란이 일어났다.


빌어먹을..... 웹툰 비질란테를 보지 않았다면 이런 '정의로움의 아마겟돈'의 혼돈을 일으키지는 않았을텐데.


비질란테라는 단어는 스페인 또는 포르트칼로부터 온 것으로 미국 시사용어에도 자주 등장하며 발음이 '비질란트'이며 자경단 또는 린치의 뜻이 있다.  그런데 웹툰 비질란테 주인공의 행위는 자경단의 행위 및 린치의 행위를 넘어서서 해당 전과자를 죽이는 것으로 각 사건들의 종결을 한다.



웹툰 비질란트의 주인공은 다음과 같은 원칙에 의하여 처벌자를 고른다.

첫번째, 범죄의 흉악성에 비하여 형량이 가벼운 전과자
두번째, 그 전과자가 자신이 저지를 범죄를 반성하는지의 여부


어느 사건 편에서는 어린 아이를 성폭행하여 죽였는데 형량이 가벼웠을 뿐 아니라 비참하게 죽은 가족들이 절규하는 인스타그램(편의 상 인스타그램이라고 하자)에 가서 반성의 글을 남기기는 커녕 조롱의 댓글을 남긴 가해자의 행위를 보고는 그 가해자가 주인공에 의하여 살해되는 장면에서는 통쾌함을 느꼈다.


내가 느끼는 감정이 정상적인 것일까? 아무리 그 가해자가 극악의 행위를 했다고 하더라도 그 가해자에게 사적으로 죽음을 내릴 수 있을까? 그리고 그 사적인 살인에 '정의로움을 느끼는 내가 정상적인 것'일까?


나의 정의로움을 느끼는 정도는, 웹툰 비질란테의 작가가 '이 웹툰에서 등장하는 사건들은 실제 사건이나 인물과 관련이 없다'라고 명시했음에도 웹툰에서 전개된 사건들과 비슷한 실제 사건들이 댓글들로 구체적으로 올라오면서 더 강해졌다.


만일, 웹툰 비질란테에서의 사건과 댓글들로 올라온 사건의 가해자들이 일치해서 단순 '대리만족'이 아니라 실제 상황에서 그 가해자들이 같은 이유로 살해를 당한다면 나는 어떤 태도를 견지할까?


아마 웹툰을 보면서 느꼈던 정의로움만큼은 아니겠지만, 아니 실제상황이므로 어쩌면 더 정의로움을 더 강하게 느꼈을지도 모른다.


웹툰 비질란테 주인공이 처벌자를 고르는 기준 중 두번째는 지나치게 자의적이기는 하다. 물론, 많은 흉악범죄자들 중에 드물지 않게 자신의 과거 범죄 행위에 대하여 반성하며 살아가고 있기는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반성하지 않는다고 해서 그 것이 살해될 이유는 되지 않는다.

그러나 첫번째 이유에 대하여는 한국 공권력 특히 판결을 내리는 법원은 그 형량이 너무 자의적이기 때문에 정당하다고 본다.

즉, 나는 첫번째 이유에 합당성을 부여하면서 합당성이라고는 찾을 수 없는 두번째 이유에 합당성을 부여하여 정의로움을 느끼는 나도 이해 못하는 해괴한 감정을 일으키고 있는 것이다.


특히, 어린이를 향한 성추행 범죄나 여성들을 향한 성범죄들에 대한 형량은 '술을 한잔 마셨기 때문에 선처를 바란다'는 가해자에게 지나칠 정도의 선처를 내리는 어처구니 없는 가벼운 형량을 내리는 것이 다반사다. 개인적인 법 감정으로는 무기징역 나아가 사형을 내려도 시원찮을 성범죄에 기껏해야 3~4년 형량을 내리는 것이 다반사이다.


성범죄에 관한 한 일방적인 피해자일 수 밖에 없는 여성들은 그런 성범죄의 가해자들은 남성들에게 어처구니 없는 선처를 보이는 것을 보고 어떤 생각을 했을까?


"우리 여성들에게 최후의 보루일 법정마저 우리를 버렸다"라는 생각을 했을 것이고 이런 피해의식은 자경단 형식으로 워마드를 만들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워마드 운영자가 이번에 법정 구속이 된 모양이다. 제목에 '일베'가 거론되고 '왜 우리 여성에게만 더욱 가혹한가'라는 헤드타이틀만 보고 그 상세를 보지 않았다. '왜 우리에게 더욱 가혹한가'라는 내가 별로 좋아하지 않은 어법에 눈길이 갔던 이유는 한국 법정의 성범죄에 관련하여 남성 편의 일변도의 판결이 사실이기 때문이다.


결국, 내가 형평성을 가지고 있다면 웹툰 비질란테의 주인공의 살인 행위에 정의로움을 느꼈듯 워마드 멤버들의 행위에 최소한 타당성을 부여했어야 했다. 그런데 나는 워마드를 비난 일변도의 자세를 견지하면서 웹툰 비질란테 주인공의 살인행위에 정의로움을 느낀 이중성을 보인 것이다.



어쩌면, 아니 확실히, 한국 여성들에게 폭악적이었던 사회 분위기와 달리 법정에서나마 여성과 남성을 평등하게 대했다면 워마드라는 괴물은 탄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유좇무죄 무좇유죄'라는 워마드의 시위 팜플렛을 그 현실을 그대로 대변해준다.



결국, 한국 여성의 최종 보루였어야 마땅할 한국 법정에서조차 남성일변도의 편파적인 편을 들고 그래서 '만인은 법 앞에 평등하다'라는 절대 원칙조차 깨버린 한국 법정, 그래서 더 이상 버틸 곳이 없는 워마드는 스스로 괴물로 변해갔고 그 괴물은 지금 '차별천국'이라는 한국이라는 괴물과 싸우고 있는지도 모른다.


모든게 법정 탓이다. 그리고 내가 웹툰 비질란테에서 느낀 정의로움이 '잘못되었다'라고 생각을 바꾸기 전까지 나는 워마드에 대한 어떤 비난도 할 수 없을 것이다. 아니, 하지 않는게 당연하다 왜? 자격이 없으므로.

백이숙제는 "以暴易暴"를 남겼고 한그루는 "以"를 남기고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