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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에서도 보듯이 평범한 동화책입니다. 동화를 가장한, 어른들을 위한 동화가 아니라 진짜 동화책.

며칠전 지인이 꼭 한번 읽어보라고 적극 추천을 해준 책이죠.그런데 거창한 인문학 서적도 아니고 사회과학 책도 아니고 꼴랑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쓰인 창작동화를 읽어보라고 하는지 장난하나 싶어서 좀 황당했는데, 읽어보니 정말 장난이 아닙니다. 자본주의라는 구체적 현실속에서 살고 있는 어린이들을 정면으로 다룬 이야기인데, 내용이 좀 충격적이네요. 

우선 이런 스타일의 동화가 과거에도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가난한 아이들의 비참함을 묘사해서 빈부격차에 대한 정서적 공감이나 죄책감을 일깨우는 동화는 꽤 있었던거 같은데 (예를 들어 몽실언니나 육남매?), 파업이라든지 정리해고라든지 용역깡패같은 신문 사회면에나 등장할 법한 소재로 동화를 구성하려는 시도는 이전에 없었던거 같습니다. 기껏해야 학교폭력을 다루거나 행복은 성적순류의 동화들이 소위 사회비판적 동화의 주류였죠. (나름 동화 전문가인 지인에게 확인해보니, 최초 맞답니다)

아마도 이 책을 보면서 꽤 불편해하실 분들도 많을 것 같습니다. 쉽게 예상되는 반응은 "이제 운동권 빨갱이들이 신성한 동화책까지 이념 선전의 도구로 삼는구나!!"는 식의 탄식이겠죠. 그러나 그다지 걱정하실게 없는 것이, 책에서 드러나는 작가의 이념적 포지션은 운동권의 그것과는 거리가 멀고, 오히려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는 피터 드러커류에 훨씬 가깝습니다. 어쩌면 조선일보가 열심히 유포하고 있는 '자본주의 4.0' 담론에 매우 적당한 책일 수도 있구요. 그래서 동화를 읽은 아이들이 못된 사상(?)에 물들까봐 걱정하실 필요는 전혀 없어 보입니다.

인터넷의 책 소개를 보면 '용역놀이'를 소재로 한 동화책이라는게 눈에 띄는데, 아마도 이것을 말하는 거 같습니다.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496880.html
(나는 용역이다, 김진숙 잡아라 : 아이들의 용역놀이. 2011년 9월19일자 한겨레)

줄거리를 대충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초등학생 민수는 미래자동차라는 어느 지방도시 대기업 오너의 아들입니다. 가업을 물려받을 후계자의 한명으로, 특별한 신분에 걸맞는 특별한 교육을 받으며 살고 있는 아이죠. 아버지의 냉정하고 쌀쌀맞은 훈육에 숨막혀 하지만, 아버지는 매우 훌륭한 사람이라는 것에 대해 한번도 의심해본 적이 없는 아이입니다. 그저 아버지의 기대에 맞추지 못하는 자신에게 괴로워할 뿐이죠. 미국 유학에 적응하지 못하던 민수가 한국으로 돌아와 여느 아이들이 다니는 초등학교에 전학오면서 이야기는 시작됩니다.

민수는 전학한 첫날 학교에서 같은 반인 억삼이라는 아이를 만나게됩니다. 억삼이는 민수에게 까닭모를 적대감을 드러내고, 민수는 당황하게되죠. 어느날 운동장에서 민수는 반 친구들이 이상한 놀이를 하며 놀고 있는 것을 목격합니다. 용역과 노조로 편을 나누고서, 용역역할을 맡은 아이들이 도망가는 노조역할의 아이들을 뒤쫓아가 두들겨패는 시늉을 하는 놀이이죠. 아이들과 빨리 친해지고 싶었던 민수는 노조역할을 맡게되는데, 용역역할의 억삼이에게 붙잡혀 흠씬 두들겨 맞게 됩니다. 그리고 억삼이와 이런 저런 언쟁을 하게 되죠. 억삼이는 민수의 아버지에게 정리해고를 당하고, 현재 공장앞에서 농성중인 노동자의 아들입니다.

그 날 저녁, 민수는 아버지에게 용역에 대해 질문합니다. 그러자 아버지는 말 없이 민수를 마당의 잔디밭으로 데리고 나가죠. 그리고 이렇게 말합니다.
"민수야"
"네?"
"이 잔디밭을 자세히 보렴"
"?"
"잔디와 비슷하지만 잔디가 아닌 잡초들도 있지?"
"네"
"이 잔디밭이 회사고 공장이라고 생각해 봐. 아빠의 목표는 멋진 잔디밭을 가꾸는거고. 그런데 잡초가 점점 많아져. 그럼 어떻게 해야겠니?"
"........."
"잡초를 뽑아야겠지?"
"....... 네"
"그게 해고라는 거다."
"아..........."
"그런데 잡초들이 막무가내로 회사에 처들어오는거야. 잔디밭은 점점 엉망이 되고. 그럼 공장이 멈추는거야. 그래서 아빠는 할 수 없이 아빠 대신 잡초들을 내쫓아 줄 사람들을 부르게 되지. 그런 일을 해 주는 사람들이 바로 용역이다"

아버지와 민수가 나누는 대화에서도 보듯이, 이 동화의 미덕은 상투적이지 않다는데 있습니다. 아버지는 절대 "그런 쓰잘데기 없는거 신경쓰지 말고 너는 공부나 해!" 라고 강요하지 않습니다. 차분하고 냉정하게 자본가의 논리를 알아듣기 쉽게 풀어서 민수를 설득하죠. 이 동화가 문제작일 수 있는 이유는 아버지가 민수를 설득하는 논리를 성인 독자들도 쉽게 반박해내기 어렵다는 것입니다. 저 역시 저 장면에서 책을 덮고 한참 동안 사색에 빠져 고민을 해야만 했으니까요. 그런 깊은 주제를 동화적으로 풀어내는 작가의 내공이 간단치가 않았고, 동화라고 만만하게 접근했다가 충격을 받은 이유이기도 합니다.  

아버지에게 설득당한 민수는 당연히 억삼이에게 대항합니다. 그러자 억삼이가 이렇게 대꾸하죠. "니네 아버지는 너도 자를걸?"

암튼, 이후에 전개되는 내용은 아버지의 잔디밭과 잡초의 논리를, 민수와 억삼이가 서로의 우정을 통해서 반박해내는 과정입니다. 여우의 화원이 책 제목이 된 이유이죠. 여우의 화원은 아버지의 잔디밭 논리에 대항하는, 민수와 억삼이의 결론입니다. "아버지! 저 사람들은 잡초가 아니라 나무에요!"

책의 결말 역시 흔한 동화책들처럼 극적인 화해나 어설픈 헤피엔딩같은 상투적인 것으로 마무리하지 않습니다. 더 이상은 스포일러가 될까봐 생략. 작가에게 칭찬해주고 싶은 이 책의 장점은, 섣부른 감정이입이나 가난에 대한 묘사로 아이들을 선동하려는 것이 아니라 나름 객관적인 시선으로 아버지와 민수와 억삼이와 억삼이의 아버지를 묘사한다는데 있습니다. 그럼으로써 책을 읽은 아이들을 섣불리 작가의 메시지에 동화시키려는 시도를 하지 않고, 어린이가 나름 고민해서 뭔가를 얻을 수 있도록 열려있는 구조로 되어있다는 것입니다.  

어쩌면 아이와 부모가 같이 읽고서 열띤 토론을 벌일 수도 있을 것도 같네요. 만약 우리 사회가 이대로 변함이 없다면, 지금 우리의 아이들은 가까운 미래에 대부분 노동자가 되어 이 사회를 물려받게 될 것이고, 그 중의 상당수는 비정규직이 될 것이고, 그 중의 일부는 용역들에게 두들겨맞는 정리해고 노동자로 살아가야만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책의 주제가 절대 아이들의 삶과는 전혀 무관한 먼나라 이야기일 수가 없는거죠.

어쨌든, 쉽지 않은 영역에 도전한 작가의 용기를 칭찬해주고 싶습니다.   

찾아보니 이 책을 소개하는 동영상이 있군요.
http://www.youtube.com/watch?v=NQD3YeZgtW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