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

도서관에서 나오자마자 빗방울이 뚝뚝 떨어지기 시작하였다.

  '귀찮더라도 우산을 챙겨 오는 건데.... '

다음 목적지인 마트를 향해 걸음을 서두르는데 저만치에서 비닐 우비를 뒤집어쓴 사람 두어 명이 길가는 사람들에게 굽실굽실거리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선거 운동원이다. 그것도 1번....

쌀쌀맞게 무시해야지, 무시해야지.... 그쪽을 향해 걸어가며 몇 번이나 마음을 다잡았지만 막상 그 중 한 사람이 내게 꾸벅 절을 하는 것을 보고는 덩달아 살짝 고개를 숙여 버리고 말았다.

고개는 숙였어도 잔뜩 우그러져 있는 내 얼굴을 본 그는 내 기분을 알아챘는지 고맙게도 다른 말을 더 건네지는 않고 내가 그냥 지나가게 내버려 주었다.

마트를 향해 걸어가면서 속으로 결심한다.

다음에 또 내가 싫어하는 민주당 선거원을 만나면 밍크 코트 입은 여배우처럼 도도한 얼굴을 지으며 무시하고 말리라....




둘.

워낙에 인간관계가 좁고, 거기다가 뚜렷한 용건 없이 폰으로 수다떠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성격이다 보니 거의 울리는 일이 없던 폰이 울렸다.

척 봐도 기억에 없는 폰 번호다.

게다가 첫자리 번호도 낯설다.

  '여긴 또 어디래?'

난 그런 번호는 보통 받지 않고 끊어 버린다.

요즘 보이스 피싱이 기승이라는데 남달리 띨박한 내 머리로는 그런 사기를 간파할 자신이 없어서다.

하지만고용안정센터에 취업을 알선해 달라고 부탁해 두고 연락이 오기만 기다리고 있는 요즘은 낯선 번호라도 함부로 끊을 수가 없다.

어쩌면 고용안정센터가 연결해 준 공장에서 걸려온 전화일지도 모르니까.

  ㅡ여보세요.

  ㅡ저, 여기는 전북 무준데요....

모르긴 해도 예순은 넘은 듯한 할머니 목소리가 일단 공장 따위에서 걸려온 전화는 아니다.

무슨 건강식품인지 보조 의약품인지를 시음해 보라고 권하는 전화였다.

주소만 알으켜 주면 배송료도 자기들이 물고 무료로 물건을 보내 주겠단다.

내 폰 번호는 또 어디서 구했는지 모르겠다.

  ㅡ그런데요, 제가 공장에서 짤린 지 몇 달이 지났는데도 아직 새 직장을....

거절하는 게 미안해서 이쪽의 부끄럽다면 부끄러운 사정을 얘기하는 말이 끝나기도 전에 딸깍 소리와 함께 통화가 끊긴다.

매너 좀 봐라. 이럴 줄 알았으면 내가 먼저 끊을 걸 그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