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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 시위대의 '교도소 습격' 따윈 존재하지 않았다>
1. 광주교도소는 광주-담양 국도와 호남고속도로 사이에 있으며, 두 도로의 옆에 바로 붙어있어 통행이 빈번한 교통 요충지에 위치하고 있다.
2. 5월 21일 오후 7시 30분에 계엄군은 광주시 외곽 도로와 광주-담양 도로 사이에 위치한 광주교도소를 주둔지로 삼아 도로를 봉쇄했다. 제 3공수여단은 교도소 주변 500m~1km 떨어진 도로 위에 바리케이드 설치하고, 무장 여부와 관계없이 통행하는 차량에 무차별 발포했다. 정리하면 제 3공수여단이 도로를 타고 외부로 빠져나가려는 차량에 발포한 것이지, 시위대가 교도소를 습격하지 않았다.
http://i50.tinypic.com/2ms2h3d.jpg (가운데 운동장이 보이는 건물이 광주교도소)
3. (5.18 당시 광주교도소장 한도희의 증언) "시민군이 80년 당시 광주교도소를 습격했다는 계엄사의 발표는 사실이 아니다. 시민군이 교도소를 습격했다면 교도소 주변에 시체가 있어야지 어떻게 도로에 있을 수 있겠는가. 당시 교도소에는 3공수여단 병력이 중무장하고 있어서 교도소 습격이란 상상할 수도 없었고 계엄군이 시 인근 지역의 시위 확산을 막기 위해 무차별 발포한 것으로 알고 있다."
http://news.naver.com/main/read.nhn…
4. (1995년 12월 검찰 현장조사 결과) "광주교도소는 광주~담양 간 국도와 호남고속도로 사이에 위치, 시외곽으로 빠져나가려던 시민군과 계엄군 사이에 다수의 교전이 발생했다. 이 과정에서 시위와 무관한 시민들이 도로를 지나다 매복병사들로부터 사격을 받았다."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
5. (2007년 7월 국방부 과거사진상규명위원회) "외곽도로 봉쇄작전 중 계엄군의 발포로 인해 가족과 함께 광주교도소 앞을 통과하던 차량, 아이들과 함께 광주를 떠나던 사람, 계엄군 주둔지역의 마을주민 등 많은 사람들이 죽거나 다쳤다." (12.12 5.17 5.18 보고서 100쪽)
6. 전남합수단에서 작성한 광주 교도소 습격 기도사건에는 당시 광주교도소에 복역중인 류락진의 처 신애덕과 동생 류영선이 시위에 가담해 교도소를 습격, 복역중인 류락진을 구출하도록 선동했다는 내용이 나온다. 더욱이 류영선은 시위 군중과 함께 교도소를 습격하다 총상으로 사망한것으로 되어있다.
류락진이 광주교도소에 복역한 것과, 류영선이 총상으로 사망한 것은 사실이나 당시 신애덕은 합수부에 가 시위주동자로 예비 검속했던 딸 류소영을 찾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다. 또 류영선은 소재를 모르는 조카 류소영을 찾으려다 계엄군의 과격진압을 보고 시위대에 합류했다가 5월 21일 금남로 발포로 머리에 관통상을 입고 사망했다. 류영선이 사망한 후 그의 가족들은 차례로 전남합수단에 불려가 '류영선이 류낙진을 구하기 위해 시민군을 선동하고 교도소를 습격했다'는 혐의와 관련하여 심문받았다.

인용을 하려면 제대로 해야 하지 않을까요?
1995년 검찰의 조사보고서에는 님이 인용한 내용만 나옵니까?
거기에는 광주교도소를 경비하던 계엄군을 시민군이 공격하는 내용도 나오고, 계엄사가 시민군의 광주교도소 습격 첩보를 입수하고 미리 계엄군(공수부대가 아님)을 광주교도소에 배치하는 내용도 있습니다. 물론 광주교도소가 외곽으로 빠지는 길목에 있어 계엄군이 시민군의 외곽 진출을 차단할 목적으로 광주교도소를 거점으로 한 것도 사실입니다.
설사 시민군은 광주교도소를 습격할 생각이 없었다 하더라도 시민군으로부터 공격을 받은 입장인 계엄군은 당연히 그것을 습격이라 생각할 수 있는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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