접사렌즈로  잠자리의 눈을 찍으면 괴물처럼 보인다.
현미경으로 물체의 특정 부분을 확대하여 보아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부분으로 우리는 그 물체의 정체를 알 수 없다.
마찬가지로 역사적 사건중 일 부분만을 가지고 진실을 알 수는 없다.
예를 들면 계엄군이 시민들에게 맞아 죽는 장면만 보면 시민이 군인을 때려 죽이니 군인들이 가만 있을 수 있는가?
라는 반응을 보일 것이다.
그런데 군인이 180명을 때려 죽이고 2700명을 살상시키는 장면과 군인 몇명이 죽이는 장면을 같이 보여주면?
군인이 대검으로 시민을 찌르고 곤봉으로 뒤통수를 쳐서 죽인 후에 시민들이 투석을 하고 화염병을 던진다면?

진실은 달라진다,
그런데 극우인사들이 일부분을 가지고 전체의 진실을 호도하거나 면피하려고 한다,
더 웃기는 것이 당시 전두환일당이나 그 후예 혹은 그 덕으로 잘 먹고 잘살지도 않은 사람들이 학살의 죄악을 같이 나누어 지려고 한다는 점이다.
별별 거지 같은 이론을 펙트로 분칠해서 말이다,

그런 인간들은 군인들이 군화발로 짓이겨 얼굴이 뭉개진 사진과 여대생의 유방을 도려낸 검시 보고서는 침묵한채 일제사격 장면을 소개하면서 조작이면 알려달라고 한 글에 대하여 영화 사진을 올렸다고 난리를 친다,
아울러 광주 학살자가 2천명이 아닌데 2천명이라고 주장하는 극소수의 사람들을 일반화 시켜서 정치적으로 이용한다고 악을 쓴다,
최근에 2천명 죽었다는 것을 정치적으로 누가 어떻게 악용하여 어떤 효과를 보았는지 제시하기 바란다.
허기는 길벗은 단 한번도 진실에 관심을 가진적이 없다.

광주 민주화 운동은 전두환 정권의 정권 찬탈음모에 대하여 서울역에서 ㅎ7만명의 학생들이 모여 시위를 하는 연장선에서 발단한다.
즉 12.12 사태를 통하여 권력을 장악한 신군부가 국민의 뜻을 어기고 자기들이 권력을 잡으려는 계획속에서 비상계엄을 전국으로 확대하였고 혼란을 수숩한다면서 전면에 나서는 명분을 얻기 위해 김대중과 광주를 엮어서 폭동으로 몰기위해 계획적으로 시민들을 자극하여 일어난 사건이다.
18일 10시에 전남대생 300여명이 시위 학생들 얻어맞고 시내로 진출하였는데 1시30분경 벌써 공수부대가 과격진압을 하였고 3시 20분경 최초의 사망자가 나왔다.
이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통상적으로 시위는 경찰이 맡고 감당이 안될 때에 군인들이 나선다.
그런데 광주에서만큼은 군인들 그것도 공수부대가 3개 여단이나 투입이 되었다.
어떻게 계엄하에서 300명이 시위를 했는데 대검으로 찌르고 곤봉으로 뒤통수를 치면서 진압을 할 수 있는가?
항의하는 시민들 택시 기사들까지 찌르고 때리고 마침내 광주 역전에서 사격을 하였고 22일 도청에서 일제사격까지 하였다.
또한 시민들이 반남지서에서 총기 탈취한 시간을 조작하였으며 보안사 근무자의 증언에 의하면 여러가지 공작이 진행되었다는 사실도 밝혀졌다.
이미 광주의 진실은 수 많은 사진 비디오 목격자 수사기록 청문회 국방부 전투상보등으로 드러났다.
그런데 헬기 기총소사나 사망자 숫자 시신숫자등 지엽적인 문제를 일각에서 제기한다고 5.18을 정치적 음모로 몰고 교묘하게 5.18을 폄하하며 물타기를 하는가?
그런 인간들은 세치혀와 알량한 지식으로 혹세무민하는 것이다.
현명한 사람 올바른 사람은 전체를 보고 문제의 본질을 지각하는 사람이다.
아울러 악의 무리를 두둔하고 문제의 본질을 교묘하게 흐리면서 사실확인을 명분으로 악인을 비호하고 국가무력을 사적 이익을 위해 사용하여 국민을 학살한 사건을 이념대립으로 만들려는 저의가 무엇인지 의아하다.
아울러 지 할말만 하고 남의 흠은 기막히게 찾아내면서 자기 실수나 오류는 모르쇠하는 인간을 뭐라고 하는지 누가 알려주시라.

http://v.media.daum.net/v/20180516175355838?rcmd=r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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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적으로는 광주 민주화 운동의 의혹 중 하나인 아시아자동차 차량 탈취 사건과 최초 무기고 탈취로 기록된 나주 반남지서 사건, 녹두서점 북한 찬양 유인물 사건, 전남도청 독침 사건, 도청 옥상 북한인공기 펼침 사건 등을 나열했다.

허씨는 "방산업체인 아시아자동차 차량이 탈취당하고 반남지서 무기고가 최초로 털렸는데도 이를 중점 수사하라는 지시는 전혀 없었다"며 "일반 시민이 무기고의 위치를 정확히 알 수도 없었을 뿐 아니라 무기고가 탈취됐는데 책임지는 사람도 없이 수사는 이상하리만큼 흐지부지된 점에서 조작을 의심했다"고 털어놨다.

그는 이어 "전남도청 옥상에 인공기가 펼쳐졌다는 첩보와 녹두서점 불온 유인물 첩보는 당시만 해도 당연히 대공수사를 전담하는 우리 부대가 파헤쳐야 할 사안인데도 상부에서는 오히려 수사하지 못하게 했다"며 "이는 '광주사태'를 북한군 침투와 연계시키려는 조작 시나리오라고 생각을 했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