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주가 없어 글은 거의 쓰지 않지만...
그래도 과거 기록을 조금이나마 환기 시켜드릴까 하고 적어 봅니다.

일전에 제 고등학교/대학교 선배인 이세종 열사(학교에서 부르는 공식 호칭)에 대한 댓글을 썼습니다.
어떤 분도 그에 대해서 답을 주시진 않았죠.
하지만 여전히 의문이긴 합니다.
https://www.kdemo.or.kr/blog/location/post/1232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0123243

많은 사람들은 계엄령이 발동되었다는 것이 곧 국민을 죽일수 있다고 생각하는 듯 합니다.
위키에는 계엄령에 대해 아래와 같이 나옵니다.
--------------------------------
계엄령(戒嚴令)은 내란, 반란, 전쟁, 폭동, 국가적 재난 등 비상 사태로 인해 국가의 일상적인 치안 유지와 사법권 유지가 불가하다고 판단될 경우 대통령과 같은 국가 원수 또는 행정부 수반이 입법부의 동의 아래 군대를 동원하여 치안 및 사법권을 유지하는 조치이다. 계엄령이 선포된 지역에서는 계엄사령부가 행정사무 및 사법사무를 관장한다. 계엄령을 인정하는 대부분의 국가에서는 계엄령이 초비상 사태에 대한 일시적인 조치로 규정하고 있으나 독재 정권이 반대자를 탄압하는 데 이용하거나 정통성을 부여받지 못한 권력 집단이 권력을 유지하는 방편으로 삼는 등 부정하게 사용되고 있다.
--------------------------------

일의 선후가 참 중요하고 디테일이 중요할텐데요.
80년 그 봄... 5월17일까지 "내란/반란/전쟁/폭동/국가적 재난"이 있었나요.
위키에 보니 나름 그 당시의 상황을 잘 설명해주고 있는데요.
https://ko.wikipedia.org/wiki/5%C2%B717_%EC%BF%A0%EB%8D%B0%ED%83%80

제가 이해한 바로는...
"김대중 내란 음모 조작사건"을 위해서 광주에 군부대를 파견해서 일부러 소요를 발생시켰다고 봅니다.
저런 내란음모 때문에 계엄령이 필요했다는 증거를 만들려고 광주를 그리 만든 것이죠.
https://ko.wikipedia.org/wiki/%EA%B9%80%EB%8C%80%EC%A4%91_%EB%82%B4%EB%9E%80%EC%9D%8C%EB%AA%A8%EC%82%AC%EA%B1%B4

그렇기에 김대중에 엮기 좋은 대도시 광주를 타켓으로 삼아 작업을 했고
그 과정에 피해자가 발생하면 "내란 동조자/간첩"으로 몰아서 처리하면 될 일이었겠죠.

사실 계엄이라고 해서 군대가 학교에 난입해 학생들을 죽일 이유도 그래서도 안되는데
남한의 군대는 그렇게 했습니다. 
목적이 있고 잘못을 처리할 방안까지 마련 했으니 가능한 일이었다고 봅니다.

지만원의 주장에 북한군 침투설을 동조하는 사람들이 정말 멍청하다는 것이 이 글에서도 드러나는데요.
5월18일0시의 전국 계엄확대의 시점을 북한군이 어떻게 알았을까요?
그 시간을 어떻게 알고 또 사건이 발생할 광주를 어떻게 알아서 침투할 수 있었을까요?

거꾸로 그런 북한군의 동향을 군부가 알고 
군대를 파견했다면 계엄이 아니라 간첩소탕작전을 했어야 했겠죠.
지금껏 남한 군부가 그런 정보를 밝힌 적이 전혀 없는 것으로 압니다

유언비어와 망상에 사로잡힌 사람들이 
자신들과 두세시간 밖에 안 걸리는 거리에 사는 사람들을 모욕하고 있죠.

...
그래도 의문은 남습니다.
전북대에 들어와서 왜 이세종 열사를 죽였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