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경제/사회 게시판
1. 저는 국민학생 당시에 오해를 많이 받았습니다. 제가 잘못을 저질러서 욕을 먹는다면, 그건 제가 감수할 부분이지만, 제가 저지르지도 않은 잘못으로 욕을 먹을 때는 억울해서 미칠 것 같았습니다. 아무리 아니라고 해도 안 믿어주고, 어떻게 입증하려고 해도 마음을 꺼내 보여줄 수도 없고, CCTV로 녹화한 것도 없으니, 진상이 나중에 밝혀질 때까지는 억울해도 해결방법이 없었죠. 이런 경험들이 쌓여서, '누구든 억울하게 욕 먹는 경우는 없어야 한다'는 생각이 강화되었습니다. 이 생각은 저를 포함한 모두에게 그대로 적용되어야 합니다. 제가 가끔 댓글로 누군가를 편들고 변호하는 것처럼 보일 텐데요, 바로 이런 관점에서 쓴 댓글로 보시면 됩니다.
2. 신안군에 대해서 제가 아는 것은 몇 가지 밖에 없습니다. 하의도에서 김대중 대통령이 출생했다는 것, 목포와 인접해 있다는 것, 1000개가 넘는 섬이 있다는 것, 섬노예사건이 일어난 지역이라는 것, 대충 이런 정도입니다.
3. 연필 님은 이렇게 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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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연필 님의 뉘앙스는 김대중이 신안의 인신매매(섬노예)를 알고 있으면서도 침묵하고 아무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고 말하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저는 저 부분에 대해서 몇 가지 반론이 있습니다.
첫째로 김대중은 정치를 시작한 이후로 주로 서울에서 살았던 것 같습니다. 신안군 하의도가 고향이긴 하지만, 오래 전의 일일 뿐이라는 거죠. 자신이 살지도 않은 지역의 일을 김대중이 잘 알고 있을까요?
둘째로 신안군에는 1000개가 넘는 섬이 있습니다. 김대중이 그 모든 섬의 현황을 알 리가 없다고 봅니다. 교통이 좋은 지금도 저는 돌아다니는 지역이 좁은데, 교통이 안 좋았던 당시에 김대중이 신안군을 돌아다니면서 현실을 알고 있었을까요? 하의도에 섬노예가 있었는지도 불확실하고, 그걸 김대중이 알고 있었는지도 불확실합니다.
셋째로 섬노예가 언제부터 광범위하게 늘어났는지가 애매합니다. 일부 섬노예 피해자는 80년대나 90년대 초반인 것 같고, 한그루 님의 반론 글을 보면, 대부분의 섬노예 피해자는 천일염과 관련되어 90년대 후반부터 늘어난 것 같습니다. 김대중의 집권 시기에 섬노예가 광범위하게 퍼져 있었다는 근거를 아직 보지 못했습니다. 연필 님이 김대중을 비난하고 싶다면, 이 부분을 입증해야 할 듯 싶습니다.
5. 오동잎 한 잎이 떨어지는 것을 보고 천하에 가을이 왔다는 것을 알아차린다는 말이 있지요.... 한 사람의 섬노예 피해자가 발견되었다면, 그것이 다른 섬에도 일어났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김대중이 대통령으로서 욕을 먹어야 할 부분은 바로 이 부분이 아닌가 싶습니다. 의심이 들면, 조사를 해 봐야 할 텐데, 섬노예사건을 간과하고 조사를 안 했다는 점이 비난을 받아야 한다는 거죠.
6. '지자천려 필유일실'이라는 말이 사마천의 사기 열전에 나온다고 합니다. 대통령이 관심을 두어야 할 사안이 어디 천 가지뿐이겠습니까? 3천 가지 4천 가지가 더 되겠죠. 그렇다고는 하지만, 어느 하나라도 빠지게 되면, 그게 탈이 나서 나중에 대통령을 비난하게 됩니다. 예방을 안 했다고 욕을 먹고, 처리를 잘못했다고 욕을 먹고,...... 가진 권력의 수만큼이나 욕을 먹게 되는 거죠. 이런 욕을 먹기 싫으면, 밑의 공무원을 쥐어짜든지 아니면 대통령을 안 하든지 둘 중의 하나 밖에 해결책이 없을 겁니다.
7. 한그루 님의 말씀대로 나무위키 섬노예 항목을 읽어 보니, 이 일을 해결하는 게 참으로 어렵습니다. 어떻게 해결해야 좋을지 방법이 떠오르질 않더군요. 아크로의 여러 회원님들이 이 부분에 관심을 갖고 궁리를 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서로 투닥거리면서 시간낭비 노력낭비를 하는 것보다는 좋은 선택일 것 같습니다.

나무위키 김대중 항목
일제강점기인 1924년 1월 6일에[1] 전라남도 신안의 작은 섬 하의도 후광리에서 김운식과 장수금 사이에서 3남 1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그런데 아버지 김운식은 장수금[2] 말고 따로 본처가 있었다. 즉 김대중은 다시 말하자면 첩의 자식이었다. 때문에 어머니 장수금은 아버지 집이 아니라 다른 집에서 살았고, 김대중은 어린 시절을 어머니 집과 아버지 집을 오가며 자랐다. 나중에 아버지가 본처와 이혼하면서 적자인 차남이 되었다.[3] 1934년부터 하의보통학교에서 2학년으로 월반해서 공부하다가, 1936년 가을 김대중의 가족들은 목포로 이사하고, 김대중도 목포공립제일보통학교에 4학년으로 편입한다.
한국전쟁이 끝나고 1954년 제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목포시 선거구에 무소속 후보로 출마하지만 민주국민당 정중섭 후보에 밀려 낙선하자 이듬해 상경하였고, 1955년에 야당 정치인들과 교류를 하면서, 1956년 9월 25일 민주당 신파에 입당한다.
해상방위대 전남 지구대 부대장으로 임명되어, 1950년 11월부터 1951년 10월까지 국군의 군수 물자를 해상 수송을 수행하기도 했다. 전남지구 해상방위대(목포해상방위대)[13]는 한국 전쟁 당시 송인명 목포 경비부 사령관의 지시로 창설되었다고 하며 전쟁 중에 약 1년(1950~1951) 동안만 유지된 보조 기관이다. 해상 방위대는 목포 경비부 기구표상에는 없으나 해군목포경비부 연혁사 제39쪽의 기록에 따르면 이 지역에서 약 1년간(50-51년) 존속되었다.
노예, 인신매매 -> 경찰이 해결할 일 (설마 지금 경찰도 업주와 결탁되었단 건 아니겠지 ^^)
몰표 없애고 -> 누구 맘대로? ^^
친북반미정서 없애고 -> 친북 없애는 데는 동의, 반미야 그 사람들이 선택할 일이고 ^^
친전교조, 친노조 정서 없애고 -> 개인적으론 그러고 싶지만 그걸 딴 사람에게 강요한다? ^^
김대중 숭배 정서 없애고 -> why? 이 사람에 대해 별 호감 없지만 그래도 역대 대통령 중에 가장 나은 건 인정해야.... ^^
전라도를 위한 투표로 전환 -> 스토커가 "사랑해서 그런다. 이게 다 너를 위해서다"라면 그 말을 다 믿어야 할지... ^^
그래서 김대중때는 그런 일이 한번도 없었냐고요? 네? 저게 박근혜가 말해서 일을 한거랍니까? 박근혜가 조사를 하라고 해서 일어난 일이냐고요? 아니죠? 이미 일어난 일에 박근혜가 언플한겁니다 그런데 님은 김대중한테 뭘 바래요? 단지 저런 언플하면 만족한다는건거요? 자시고향 낙인 찍는 거런 일을 하라는 겁니까? 왜 신안 사람들은 이미 낙인 짝혀있으니 상관 없다고요? 아 전라도를 그렇게 사랑한다는 사람이 계엄령 타령을 하지 않나 낙인 상관 없다고 하질 않나 김대중이 종교하고 하더니 이젠 설교를 하라고 하질 않나 님이 머리가 있다면 이런 개소리는 못하겠죠
복요리가 잘못되어 화를 당하는 사람들이 보이길래 복요리 좀 제대로 하라고 야단을 쳤더니 어떻게 해야 안전한 복요리를 만들 수 있는지 방책은 제시하고 그런 소리를 하라....? 님 논법대로라면 행정에 대해 모르는 일반 국민은 정부 행정에 일체 토를 달지 말아야 하고 세법에 대해 아는 바 없는 사람은 재벌들이 탈세를 하거나 말거나 신경끄고 살아야 하고, 노동법에 무지한 노동자들은 악덕 경영자에게 고분고분 착취를 당하고 살아야 합니까?
그런데, 다행히도 염전 노예 문제 해결은 그리 어렵지도 않을 듯하군요. 전국 모든 염전의 고용 실태를 확실히 조사하여 부당한 취급을 당하는 사람들이 있는지 없는지 확인하고, 인권 침해 사례를 보면 엄중한 처벌을 하고, 아울러 그런 일이 벌어지는 데 일조한 해당 지역 경찰과 공무원을 파직 처리하고, 그러고 난 뒤에도 일년에 두 차례씩 지속적인 염전 노동자들의 인권 상태를 점검한다면 해결 못할 것도 없을 것으로 짐작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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