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 아크로에 올라오는 글들도 일베나 문베충 서식지만큼 '팩트는 무시하고' 올라오는 글들이 대부분이죠. 예로, 이거 예전에 모모 인사가 올린 자료로 '북한군 점령기에 전라도의 민간인 학살자수가 이렇게 많은데 전라도는 어떻게 북한에 적대감을 가지지 않느냐?'라는 헛소리를 하는 근거로 삼았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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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은?

하도 어처구니 없는 주장이라 제가 글을 써놓고 아직 안올린 글에서 인용합니다.

[6.25사변 피살자명부] (1952.3.31)에는 각 도별 명부가 확인된 피살규모가 전남 4만 3,511명(72.6%)이 가장 크고, 그 중 영광군(2만 1,225명:전남의 48%, 전국의 35%)이 가장 큰 것으로 나타났다. 이 피살자 명부 역시 매우 유용한 정보를 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몇 가지 중대한 결함을 갖고 있다. 이 명부는 기본적으로 정확성과 신뢰도에 문제가 있다. 숫자가 맞지 않은 경우가 많고 피살 일자와 장소 등의 오류가 많은 편이다.
(자료 출처는 여기를 클릭)


제가 인용한 자료와 님께서 인용하신 자료는 전남의 학살자수가 4만 3천 511명으로 일치합니다. 신뢰할 수 있는 근거라는 것입니다.(굳이 이 말을 안해도 6.25사변 피살자 명부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그 중 영광군에서 2만 1천 255명이 북한군에 의하여 학살되었다고 집계되었습니다. 이는 전남에서 북한군에 의하여 학살된 민간인 수의 48% 그리고 전국의 35%에 해당하는 어마어마한 숫자입니다.


이들이 전부 북한군에 의하여 학살되었을까요?


자, 그 진위를 조갑제옹(기자는 김동성)의 조갑제 닷컴에서 인용해 드리죠.

영광군 피살자 名簿를 보면 사망일시가 1950년 6월에서 1951년 2월까지 분포돼 있다. 영광에 인민군이 진입한 시기는 1950년 7월23일이다. 인민군이 진입하기 전에도 빨치산 등 토착 좌익에 의한 학살이 자행됐음을 알 수 있다. 빨치산이 완전 토벌된 때는 1951년 2월20일이다. 


결론은?

"영광군에서 학살된 민간인들 중 상당수는 인민군이 진입하기 전에 빨치산 등 토착 좌익에 의하여 학살이 자행되었습니다. 그리고 빨치산이 완전 토벌된 1951년 2월 20일까지 당시 죽은 민간인들 명부도 영광군에서 학살된 민간인이 포함되어 있어 집계가 된겁니다. 기간은 세개로 나뉘어지는데 빨치산들이 학살하던 기간, 인민군 점령 기간 그리고 국군의 토벌 기간."


이 글이 완성되려면 이리에서 미군이 비행기에 장착된 기관총으로 호남민간인을 학살한 사건 등 많은 역사적 사료들이 동원되어야 하는데 글쎄요... 굳이 그럴 필요가 있나 싶어서 글을 쓰다 말았습니다. 완성되면 올리고 그렇지 않으면 말고~


"그냥 자신들이 믿는대로 살다 뒈지는게 편하겠죠"



사실 김일성에 대한 증오, 북한에 대한 증오는 다음과 같은 사료를 바탕으로 해야 합니다.

-"후방을 철옹성같이 다져야 한다. 도피분자, 요언(妖言) 전파 분자와 무자비하게 투쟁하며 밀정 및 파괴분자를 적발, 가차없이 숙청하고 반역자는 무자비하게 처단해야 한다" (1950년 6월 26일, 방송을 통한 김일성의 지시하달, 출처: "남북한 관계 사료집 22권")

 -"반동분자, 비협력분자, 도피분자를 적발하여 '무자비'하게 숙청하라" (1950년 6.25 남침 직후 서울 시내에 뿌려진 김일성의 호소문,출처: "꽃피는 산하-6.25의 흔적을 찾아서")

 -"국군장교와 판검사는 무조건 사형에 처하고, 면장, 동장, 반장 등은 인민재판에 부친다"(1950년 6월 30일 포고문, 출처: "정치범은 자수하라"와 "반동분자 처리지침")

 -"숨어 있는 반동도배들이 자수하기를 기다리면서, 그 반동분자들과 투쟁하지 않는 경향이 당일꾼들에게 만연되고 있는 현상은 극렬히 비판해야 한다." (1951년 1월 21일, "적에게 일시 강점 당하였던 지역에서의 반동단체에 가입하였던 자들을 처리함에 관하여"라는 군사위원회의 결정 3개항을 설명하면서)

 -"악질반동에 대해 복수하려는 것은 극히 정당한 일입니다." (1950년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제3차 정기대회에서 진술한 김일성 동지의 보고/”한반도 분단의 재인식”-신일철 著)


이런 역사적 자료가 있고 김일성이 얼마나 개새끼인지를 증명하는 자료가 있음에도 좌파 애들은 이런 식으로 주장합니다.

그러나 북한 공식기관의 지시와 실제는 달랐다. 상부의 지시가 하부에서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다. 특히, 부락단위에서 진행된 숙청 과정에서 중앙에서 지시한 “인권의 존중”, “정의의 행정”등의 원칙이 실무집행자인 각 면분주소원과 부락치안대원들에게 얼마나 제대로 전달되었으며, 또 그게 지켜졌는지 의문이다. 김범찬은 “북한군은 민간인의 학살에 관여하지 않았으며, 남한내에 억눌러 있던 증오감의 표출을 올바로 통제하지 못한 결과 잔인한 보복이 자행된 것”이라고 파악하였다.(15)
(출처는 여기를 클릭)




이런 명백한 역사적 사료가 있음에도 서로 주장하는 바가 다른 이유는 간단합니다. 우파나 좌파나 서로 뒤가 캥기는 짓을 많이 했기 때문이죠. 그러니 자신의 추악한 과거는 숨기고 상대방의 잘못만 이슈하거나 나아가 아예 역사를 왜곡해버리죠.


우파, 좌파 따질 것 없습니다. 사상적 포지션으로 보면 한국 우파나 좌파나 쓰레기였다는 것. 문제는 지금이라고 교정이 되어야 하는데 안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뭐, 진실은 필요없죠. 내 입맛에 맞는 글이 필요할 뿐. 뭐, 아크로에서도 그런 경향이 농후한데 뭘 더 이야기하겠습니까?

백이숙제는 "以暴易暴"를 남겼고 한그루는 "以"를 남기고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