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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이숙제는 "以暴易暴"를 남겼고 한그루는 "以寂易騷"를 남기고 간다.
[김기식의 눈물]
2013년 4월 16일의 일이다. 내가 날짜를 기억하고 있는 것은 딱 1년 후인 4월 16일에 세월호 참사가 있었기 때문이다.
현직 기자였던 나는 그때도 무심히 포털 사이트의 뉴스 목록 속보를 확인 중이었다. 그러다 “현직 국회의원 아들 투신자살” 속보가 떴다. 자극적인 뉴스인지라 기사를 봤더니 고양시의 한 지역이었다. 순간 어떤 불안감이 엄습했다. 곧바로 사정을 알 만한 지인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아니나 다를까, 예상대로 지인 정치인의 아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이었다.
마음이 아팠다. 대학교 때 한 시민 단체에서 상당히 오랫동안 자원 활동을 한 적이 있었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아이의 부모는 그때 그 시민 단체를 주도하는 활동가 부부였다. 이미 국장, 실장 등으로 리더 역할을 하던 아이 아빠와의 교류는 뜸했지만, 아이 엄마는 자기 팀의 자원 활동가가 아니었는데도 (조금은 무심하게) 이것저것 챙겨주었다.
나중에 기자가 되고 나서도 인연은 이어졌다. 가끔씩 기사를 쓸 때 뜬금없는 메일을 받을 때가 있었다. 기사 링크와 함께 몇 가지 구체적인 오류를 지적한 글이었다. 사회복지 전문가였던 아이 엄마가 보기에 미숙한 기사를 살뜰하게 지적하는 것이었다. 낯 뜨거웠지만, 누구보다도 바쁜 사람이라는 걸 알기에 고마웠다.
아이 아빠랑 가까워졌던 건 2005년 황우석 사태 때였다. 당시 그 시민 단체를 이끄는 처지에 있었던 아이 아빠는 ‘닥터 K’로 알려진 내부 고발자의 보호를 사실상 총책임지는 위치에 있었다. 살얼음판을 걷듯이 위태로웠던 상황에서 그 시민 단체가 끝까지 내부 고발자를 보호할 수 있었던 때는 아이 아빠의 리더십이 중요한 역할을 했었다. (많이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다.)
그러다 아이 아빠와 아이 엄마는 외국으로 2년 정도 연수를 떠났다. 나는 막연히 아이 아빠가 현실 정치에 뛰어드리라고 생각했고 적극적으로 지지했다. 가끔 시민운동가는 ‘시민’ 운동만 해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지만, 나는 더 많은 시민운동가가 현실 정치인으로 변신해서 세상을 바꾸는데 기여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쪽이다.
아니나 다를까, 아이 아빠는 2012년 민주통합당 비례 대표로 국회의원이 되었다. 지역 토호, 아버지 후광, 전문직을 하면서 쌓은 재산, 심지어 평생 정치와 담 쌓았다가 예능 프로그램에 몇 번 출연하고 난 다음에 반짝 스타가 되어서 국회의원 대통령을 한답시고 나서는 ‘인턴 국회의원’이 대다수인 여의도에서 그는 역시 빛났다. 식상한 표현이지만 ‘준비된’ 정치인이었다.
아이 엄마는 여전히 그 시민 단체의 중요한 파트를 책임지면서 대학교에서 박사 학위를 밟는다는 얘기를 들었다. 20년 넘게 사회복지 운동의 현장에서 부대꼈으니, 그것을 한 번 정리할 기회를 가지고 싶었을 것이다. ‘역시!’ 하면서 마음속으로 응원했다. 어쩌다 보니, 같은 동네에 살았지만 서로 바쁜 탓에 사적인 교류는 끊어진 상태였다.
*
아이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정확한 이유는 모른다. 집단 따돌림이 원인이었으리라는 풍문을 듣기는 했으나 정확한지 모르겠다. 하지만 세상을 바꾸겠다고 동분서주하는 와중에 아이가 스스로 목숨을 끊을 정도로 아파한지도 몰랐던 아빠, 엄마의 뒤늦은 후회, 슬픔, 설움은 굳이 듣지 않아도 안다. 둘이 얼마나 치열하게 살았는지 알기에 너무나 마음이 아팠다.
나는 아빠, 엄마가 국회의원이나 시민운동가를 그만두지는 않을까 걱정했다. 보통 사람으로서는 아이를 그렇게 떠나보낸 슬픔을 어떻게 감당할 수 있을지 가늠이 안 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두 사람은 오랫동안 단련된 프로 운동가-정치인이었다. 또 애초 둘 다 전형적인 외유내강이었다. 어쨌든 버티는 것 같아서 다행이다 싶었다.
이제 내일(4월 15일)이면 엄마, 아빠가 아이를 떠나보낸 지 5년이 되는 날이다. 공교롭게도 다음 날(4월 16일)은 세월호 4주기다. 이번 5주기는 엄마, 아빠로서는 더욱더 참담할 것이다. 어쩌면 아이를 잃으면서까지 평생을 헌신해왔던 대의가 누더기가 된 상황이기 때문이다.
많은 이들이 돌을 던지지만 나는 돌 대신 꼭 안아주고 싶다. 나는 돌을 던질 자격이 안 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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