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거짓약속의 보편화 가능성

 

1. 나는 돈을 빌릴 때 갚을 수 없을 때도 갚겠다고 약속한다.

 

2. 나는 1이 도덕적으로 허용될 수 있는 행위이어야 한다는 칸트의 요구를 받아들인다.

 

3. 1은 칸트적 의미에서 도덕적으로 허용될 수 있는 행위이려면 보편화 가능해야 한다.

 

4. 1이 칸트적 의미에서 보편화 가능하다는 것은 1이 다음 형식에 해당하는 행위이어야함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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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이라는 상황에서 내가 A라는 행위를 하는 것이 정당화된다면 R이라는 상황에서 누구든 A라는 행위를 하는 것이 정당화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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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 누구라도 돈을 빌릴 때 갚을 수 없을 때도 갚겠다고 약속하는 것은 정당화되어야 한다.

 

5. 누구라도 돈을 빌릴 때 갚을 수 없을 때도 갚겠다고 약속하는 것이 정당화되려면 우선 약속이 가능해야 한다.

 

6. 약속이 가능해야 한다는 것은 약속할 때 그 약속을 믿고 들어주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7. 6의 의미에서의 약속이 불가능하다면 거짓약속을 할 이유가 없어지며 따라서 거짓 약속을 하는 것도 불가능해진다. 물론 할 이유도 없고 할 수도 없는 행위는 정당화될 수도 없다.

 

8. 모든 사람이 돈을 빌릴 때 갚을 수 없을 때도 갚겠다고 약속한다고 가정하고 그 경우 과연 5가 성립하는지 따져보자. 물론 현실적으로는 모든 사람이 거짓약속을 하는 사회는 있기 힘들다. 따라서 이 가정은 현실적 상황에 대한 가정이 아니라 사유실험 속에서 실험자가 상정했기 때문에만 성립하는 상황에 대한 가정이다. 왜 모든 사람이 거짓약속을 한다고 가정해야 하는가? 어떤 행위가 보편화 가능하다는 의미에서 도덕적으로 허용될 수 있는 행위인지 알아보려면 그 행위는, 4/5/6의 의미에서, 모든 사람이 그 행위를 할 때조차도 바로 그 행위로 성립해야 하기 때문이다.

 

9. 모든 사람이 거짓약속을 한다고 가정하면, 약속은 불가능해지는가? 칸트는 불가능해진다고 본다:

 

‘... 약속 그 자체가 불가능할 것이다. ... 왜냐하면 누구도 그에게 어떤 약속이 행해졌다고 생각하지 않을 것이고, 따라서 이러한 진술을 빈말이라고 비웃을 것이기 때문이다.’

 

10. 칸트의 주장을 가만히 살펴보면, 빅월드님의 설명과는 달리, 칸트가 거짓약속하는 것의 논리적 자기모순을 지적하고 있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1) 우선 논리적 자기모순이란 양립 불가능한 명제 사이의 그 양립불가능성을 가리킨다. 즉 논리적 자기모순이란 명제들 사이의 관계에서만 성립한다. 모두가 거짓약속을 한다면 거짓약속 자체가 불가능해지는게 맞더라도(그러나 맞다는 어떤 논리적 보장도 없다), 이 맞음이 현실세계에서는 가정 자체가 성립되지 않기 때문에 확인이 안되고 사유실험속의 세계에서만 확인이 된다 하더라도, 모두가 거짓약속하는 것과 결과적으로 거짓약속 자체가 불가능해지는 것 사이의 관계는 ‘일정한 시간적 경과에 의해 매개되는 두 사태 사이의 관계’인 한, 논리적 자기모순이 아니다. 동일한 상황에서 동일한 행위를 모든 사람들이 할 때 바로 그 사실로 말미암아 끝내는 그 행위에 의해 의도되었던 결과가 누구에게도 발생하지 않게 되는, 그래서 그 행위 자체가 불가능해 지는 사태는 분명히 현실적으로 있을 법한 사태인데, 논리적 모순 외에 더 좋은 명칭(변증법적 모순?)이 있을 것이다.

 

2) ‘모두가 거짓약속을 한다’는 전제로부터 ‘거짓약속 자체가 불가능해진다’는 결론이 논리적으로 도출된다는 의미에서 거짓약속하는 것의 논리적 자기모순 운운할 수 있다고 주장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모두가 거짓약속을 한다’는 ‘거짓약속 자체가 불가능해진다’와 동의어도 아니고 ‘거짓약속 자체가 불가능해진다’를 함의하지도 않는다. 모두가 거짓약속을 하면 거짓약속 자체가 불가능해지는지 여부는 두 명제들의 의미만으로는 결판나지 않는다. 사유실험 속의 세계에서라도, 인간들과 인간세계의 이러저러한 사실들과 사실들에 대한 추정을 매개로 해서 ‘개연성’ 있는 결론을 내리는 것만이 가능하다. 그리고 칸트가 하고 있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즉 칸트는 비록 ‘극히’ 단순한 수준으로라도 ‘경험적으로 그렇게 할 수 있을 가능성이 얼마고 그렇게 해서 이익이 얼마고 손해가 얼마고 이런 거 일일이 따지기’에 해당하는 생각을 거쳐 약속이 불가능해질 ‘것 같다’라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실로, 칸트가 하고 있는 것이 사유실험인 것은 맞지만 그 사유실험 속의 세계는 모두가 거짓약속을 한다라는 한 가지만 빼고는 현실세계와 전적으로 동일한 세계이며 그 사유실험의 그럴듯한 결론은 현실세계를 위한 것이다. 그런데 물론, 그 결론은, 덕하님 생각대로, 그다지 그럴듯하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여기서 중요한 것은 칸트의 결론이 그럴듯한지 아닌지가 아니라 칸트가, 덕하님이 칸트의 문장들을 있는 그대로 잘 이해하신 대로, ‘순수 논리 차원에서 이런 것은 보편적 도덕 원칙이 되기엔 결함이 있다는 얘기’를 하고 있는게 아니라는 것이다.

 

결론: 빅월드님은 거짓약속의 보편화 가능성에 대한 자신의 해석이 틀림없다고 자신만만해서는 안된다. 덕하님의 해석이 칸트의 그 문장들을 읽는 더 자연스러운 ‘방식’일 수 있고 더 나아가서는 맞는 해석‘방식’일 가능성도 있다.

 

 

빅월드님 주장하다:

‘칸트가 제안하는 것은 단지 이성적 주체로서의 내가 해보는 사고실험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가정을 했을 때, 거짓말 약속하는 것은 논리적 자기 모순에 빠지기 때문에(모두가 다 거짓 약속을 한다면 약속이란 개념 자체가 불가능하며 따라서 거짓 약속도 무의미해진다) 도덕법칙으로 세울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른다는 것입니다. 경험적으로 그렇게 할 수 있을 가능성이 얼마고 그렇게 해서 이익이 얼마고 손해가 얼마고 이런 거 일일이 따지기 전에 이미 순수 논리 차원에서 이런 것은 보편적 도덕 원칙이 되기엔 결함이 있다는 얘깁니다. 그러므로 이에 대해 "어떤 사람들이 거짓 약속을 하고 다닌다고 해서 약속 체제가 붕괴하지도 않는다. 왜냐하면 약속을 상당히 성실히 지키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자신의 이득을 위해 약속을 쉽게 어기는 사기꾼들과 웬만하면 약속을 지키는 선량한 사람들을 구분할 줄 안다. 그리고 사기꾼으로 판명된 사람의 약속은 보통 믿지 않지만 선량한 사람들의 약속은 대체로 믿는다. 물론 100% 신뢰는 아니다."라고 하는 건, 이덕하님이 "거짓말하는 것을 도덕법칙으로 의욕한다"는 말이 무슨 말인지도 모르고 있다는 걸 얘기해줄 뿐입니다.’

  
 

 

II. 칸트 윤리학과 공리주의

 

다른 글에서 짧게 주장한대로, 칸트의 도덕철학과 공리주의자들의 그것 사이에 일치점을 찾을 수 없는 것은 아니다. 칸트는 아마도 보편화가 불가능하기 때문만이 아니라 가능하더라도 거짓약속은 타인을 목적으로 대우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거짓약속을 해서는 안된다고 주장할 것이다(그러나 칸트는 동일한 근거에서 거짓약속을 해도 되는 경우를 상정할 수 있다. 즉 거짓약속을 하는 것이 상대를 더 목적으로 존중하는 것이 되는 경우를 상정할 수 있다). 칸트에게서는 어떤 행위가 도덕적이냐 아니냐를 가름하는 것이 그 행위를 해야만함이 실천이성의 구사에 의한 (순수) 선의지로부터 나온 것인지 여부라 하더라도 우리가 실제로 사람들의 행위의 도덕성 여부를 판단할 때 그 행위가 그 칸트적 기준을 충족시켰는지를 시원하게 확인하기는 어렵다. 시원한 - 사실은 여전히 불투명한!! - 확인은 오직 본인에 의해서만 가능하다. 우리가 실제로 주로 보는 것은 그 행위가 어떤 행위들인가이며 칸트도 결국은 정언명법의 원리들을 출발점으로 삼아 전통적으로 도덕적인 행위로 믿어져 온 것들을 포함해 도덕적 행위의 후보들을 제시하고 있다. 공리주의의 다양한 버전들 중에 칸트의 정언명법과 후보들에 호의를 보이는 것이 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거짓약속을 하지 말라’가 (거짓약속으로 타인에게 손해를 끼치는 것은 타인을 목적으로 존중해야 한다는 정언명법의 원리에 어긋난다는 의미에서) 칸트의 후보들에 들어간다면 (또는 들어갈 수 있다면), 공리주의자들이, 거짓약속이 주는 손해 말고도, ‘내가 목적으로 존중당한다는 것’이 주는 행복감이나 쾌락을 이유 삼아 거짓약속을 도덕적인 행위가 아닌 것으로 규정할 수도 있을 것이다.

 

* 참조

 

http://www.earticle.net/Search/Pub/ArticleView.aspx?orgSn=95&jouSn=108&jouVolume=7702&artSn=100810&jouKind=1

 

D.D. 라파엘, <현대도덕철학> (서광사), 6장 [원서는 개정되었다. 개정판조차도 나온지 꽤 되었지만 여전히 도덕철학 입문서의 고전이라 할 만한다. 철학에 대한 배경지식이 거의 없이도 읽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