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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에게 음식이란 감정을 불러 일으키는 중요한 요소다. 음식은 생존과 관련된 부분이기에 인간이 쓴맛과 신맛을 느끼게 되는것은 독과 상한음식을 구분하기 위해서 진화했고 생소한 음식에 대한 거부감 또한 생존문제에서부터 발전을 하게 된것이다. 아이들이 특정한 음식을 강하게 거부하는것도 이러한 본능에서 비롯되었으며 어렸을때 형성된 음식에 대한 경험이 인생전반에 걸쳐 영향을 미치게 된다. 이렇듯 음식은 매우 감정적이고 본능적으로 인간에게 다가온다.
개고기 논쟁에서 많은 사람들이 논쟁을 벌이지만 대부분은 핀트가 맞지 않는 부분이 많다. 근본적으로 왜 개고기가 혐오감을 불러 일으키고 개고기가 왜 특정지역에서만 유통되고 인류적인 음식이 되지 못하였는지를 알아야한다.
먼저 우리가 어떻게 음식에 대한 태도를 결정하는지부터 살펴보자.
첫째로 시각적 익숙함이다. 당신이 치킨을 시켰을때 닭대가리가 들어있다면 어떨까? 매우 혐오스럽다고 느꼈을것이다. 그런데 매운탕에는 생선대가리가 들어가 있어도 그렇게 혐오스럽지 않게 생각한다. 왜일까? 인간은 시각적으로 익숙한 형태의 음식에는 거부감이 크게 없다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닭대가리를 먹지 않으니 생소한 음식에서부터 오는 혐오감이 매우 강하게 오는것이다. 반면 중국은 닭대가리를 먹고 다른 음식에서도 머리부분이 종종 나오는 경우가 많다. 그들에게는 이게 익숙한것이다. 서양인이 산낚지를 먹는걸보고 기겁하는 이유도 일단 서양에서는 낚지나 오징어를 거의 먹지 않기 때문이 크다.
둘째로 공감적인 부분이다. 당신이 오르틀랑이나 푸아그라의 조리법을 안다면 그 음식에 대한 태도가 혐오스럽게 바뀔 가능성이 많다. 인간이 만들어낸 여러 조리법중 정말 엽기적인 요리가 수두룩하다. 그런 조리법을 보고 엽기적이고 혐오스럽다고 느끼는 것 자체가 인간이 공감능력이 있기 때문이다. 음식으로 변하기전 생물인 상태의 것에 대해 조리법으로부터 느껴지는 고통에 공감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것이 강렬하게 되면 채식주의자가 되는 것이다. 그러면 육식을 하는 사람은 공감능력이 없느냐? 그것은 앞서 말한 시각적 요소에서 찾을수있다. 당신이 마트에 가서 고기진열대를 보고 그 고기가 생물이였던 상태를 떠올리는 사람은 거의 없을것이다. 시각적으로 하나의 제품으로 나오기 때문에 그것이 그 전의 생물의 고통까지 연결 시키기에는 시각적 요소가 미약하다는 것이고 앞서 닭대가리에서부터 느껴지는 혐오감은 그것을 보고 또한 생물의 닭을 떠올리기 때문인 면도 있다. 즉 생소한 음식에 공감적인 부분까지 겹치면 극도의 혐오감이 오는 것이다.
자 그럼 이제부터 개고기에 대해서 말해보자.
앞서 말한 두가지부분에 대해서 개고기가 모두 해당된다고 할 수 있다. 일단 개고기라는것은 근 100년동안 서양에서 특정지역에서 혹은 특수한 상황에서 종종 먹던 개고기가 자취를 감추었으니 일단 익숙하지 않음에서 나오는 혐오감이 있다. 다음은 공감적 부분이다. 이는 동서양 할것없이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서양은 다들 아니까 넘어가자 동양에서도 이 공감에서오는 개고기에 대한 혐오감이 있었다고? 반문할 수 있겠지. 실제로 조선시대 학자 조상진, 이종성같은 사람은 개고기를 비판했고 지금의 개고기 논쟁과 조금도 다르지 않다. 조선시대에도 개는 애완의 대상이였다. 식용과 애완 둘이 구분한다는건 애초에 매우 힘든 일이다. 청나라에서는 개고기를 금지시켜 청나라에 가서 개고기를 찾던 조선인이 쫓겨난 적이 있다는 사실이 역사적으로 존재한다. 한족은 개고기를 먹지만 만주족은 먹지 않았다. 이유는 개가 충성스러운 동물이라고 여기였기 때문이다. 이렇듯 문화적으로 식용이 가능하지만 공감적으로 거부감이 든다는 것은 개가 다른 가축과는 차원이 다르다는 것이다. 개고기 찬성론자들이 동양의 식습관을 근거로 하지만 그에 대한 반론도 존재하기에 개고기가 단순히 동양에서 문화적인 요소로 널리 인정받았다는건 잘못된 사실이다.
이렇듯 개는 다른 가축과는 다른차원에서 생각해야 한다. 혹자는 그럼 다른동물과 차별하는 것이냐 개가 왜 소와 돼지보다 가치가 있느냐 라고 반문한다. 가치가 있어서 안먹고 가치가 없어서 먹는다? 무엇에 대한 가치를 따질 것인가? 소와 돼지는 식용으로서 길러졌기에 먹는것이고 개는 그렇지 않기에 안먹는것이다. 가치라는것이라면 식용으로써의 소와 돼지는 당연히 먹어야 가치가 있는것 아닌가? 그런데 왜 개는 특별한가? 돼지가 애초에 개처럼 애완동물로 키워졌다면 돼지도 개와 같이 작고 귀엽게 개량되었을것이고 돼지고기를 먹지않게 되었을것이다. 개가 애초에 특별하게 태어나서가 아니라 인간이 개를 그렇게 만들었고 그렇게 대하기 때문이다. 개가 공감능력이 높고 어쩌고 저쩌고 하는 말로 개고기를 반대하는건 후자의 공감에서부터 오는 혐오감을 보충설명하는 것이고 인간이 개를 특별하게 대한다는 것이지 개가 특별해서가 아니다. 따라서 개고기 찬성론자들이 주장하는 모든 동물은 차별하지 말아야 한다는건 애초에 인간심리상 불가능한 일이다. 인간은 자신고 닮은 동물을 더 사랑한다. 돌고래는 지능이 높아서 좋아하고 귀여운 동물은 모성애를 자극해서 좋아하고 모든 동물은 인간에게 차별적으로 다가온다. 이건 본능이다. 그래서 개는 다른 동물과 차별될 수 밖에 없다. 그런 점에서 전인류적인 반려동물이 된 개를 먹는다는것은 전인류적으로 혐오감을 불러일으키는것이 매우 너무나 본능적으로 타당하게 당연한 일 일수 밖에 없으며 개고기를 먹어도 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이런 혐오감에 대해 문화적인 근거로 방어한다는것은 애초에 모순됨을 깨닭기 바란다.
어떤 손(客)이 나에게 이런 말을 했다.
"어제 저녁엔 아주 처참(悽慘)한 광경을 보았습니다. 어떤 불량한 사람이 큰 몽둥이로 돌아다니는 개를 쳐서 죽이는데, 보기에도 너무 참혹(慘酷)하여 실로 마음이 아파서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제부터는 맹세코 개나 돼지의 고기를 먹지 않기로 했습니다."
이 말을 듣고, 나는 이렇게 대답했다.
"어떤 사람이 불이 이글이글하는 화로(火爐)를 끼고 앉아서, 이를 잡아서 그 불 속에 넣어 태워 죽이는 것을 보고, 나는 마음이 아파서 다시는 이를 잡지 않기로 맹세했습니다."
손이 실망하는 듯한 표정으로,
"이는 미물(微物)이 아닙니까? 나는 덩그렇게 크고 육중한 짐승이 죽는 것을 보고 불쌍히 여겨서 한 말인데, 당신은 구태여 이를 예로 들어서 대꾸하니, 이는 필연(必然)코 나를 놀리는 것이 아닙니까?"
하고 대들었다.
나는 좀 구체적으로 설명할 필요를 느꼈다.
"무릇 피(血)와 기운(氣)이 있는 것은 사람으로부터 소, 말, 돼지, 양, 벌레, 개미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한결같이 살기를 원하고 죽기를 싫어하는 것입니다. 어찌 큰 놈만 죽기를 싫어하고, 작은 놈만 죽기를 좋아하겠습니까? 그런즉, 개와 이의 죽음은 같은 것입니다. 그래서 예를 들어서 큰 놈과 작은 놈을 적절히 대조한 것이지, 당신을 놀리기 위해서 한 말은 아닙니다. 당신이 내 말을 믿지 못하겠으면 당신의 열 손가락을 깨물어 보십시오. 엄지손가락만이 아프고 그 나머지는 아프지 않습니까? 한 몸에 붙어 있는 큰 지절(支節)과 작은 부분이 골고루 피와 고기가 있으니, 그 아픔은 같은 것이 아니겠습니까? 하물며, 각기 기운과 숨을 받은 자로서 어찌 저 놈은 죽음을 싫어하고 이놈은 좋아할 턱이 있겠습니까? 당신은 물러가서 눈 감고 고요히 생각해 보십시오. 그리하여 달팽이의 뿔을 쇠뿔과 같이 보고, 메추리를 대붕(大鵬)과 동일시하도록 해 보십시오. 연후에 나는 당신과 함께 도(道)를 이야기하겠습니다."
라고 했다.
http://www.seelotus.com/gojeon/gojeon/su-pil-bi-pyeong/seul-kyeon-seol.htm
슬견설(蝨犬說)은 고려시대 문인 이규보가 쓴 수필이다. 인간 중심적 편견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며 평등심을 주장하는 내용이다. 《동국이상국집》에 실려있고, 5차 교육과정의 고등학교 국어(상) 교과서 및 7차 교육과정의 중학교 2학년 국어 교과서에 실려 있었다.
https://ko.m.wikipedia.org/wiki/슬견설
그 손에게는 이렇게 말씀하시면 됩니다. "당신은 한번이라도 소나 돼지에게 고맙다고 생각해본적이 있느냐?"
템플 그랜딘이라는 유명한 축산학자의 말입니다. 공장형 축산을 비판하며 축산환경 개선에 앞장서고 윤리적 도축을 개발한 사람이죠. 소나 돼지를 먹지 않는게 아니라 먹으면서 고맙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그런데 개를 먹으면서 개에게 고맙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나요? 개를 먹어도 된다는 사람은 그냥 다 닥치고 먹자주의지 동물의 고통에 관심이 있는 사람은 아니거든요. 동물의 고통에 관심이 있으면 먹냐 먹지 않느냐가 아니라 살아있는동안 동물복지에 대해서 애기를 하겠죠. 거기서 더 나아간다면 채식주의자가 될것이고요. 그래야 더 타당하지 않나요? 죽는 순간만 관심이 있다면 그냥 정신병자 아닙니까?
조지 오웰 "코끼리 죽이기"
나는 코끼리를 쏘고 싶지 않았다. 코끼리의 할머니같은 분위기에 정신이 팔린 채 그가 풀더미를 무릎에 탁탁 치는 걸 바라보고 있자니 그를 쏘는 것은 살인 같았다. 당시 내가 동물을 죽이는데 큰 거부감이 있었던 건 아니지만, 코끼리를 쏴 본 적도 없고 그러고 싶지도 않았다. (왜 그런지 모르겠지만 커다란 동물을 죽이는 건 항상 더 나쁜 짓 같이 보인다.) 게다가 짐승의 주인도 고려해야 했다. 살아있는 코끼리는 적어도 100 파운드 가치가 있지만 죽은 코끼리는 상아 값으로 5 파운드 정도만 쳐줬다. 그러나 나는 빨리 행동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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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지의 제왕에서 레골라스가 올리파운트를 죽일 때, 스타쉽 트루퍼스에서 해병대원들이 수류탄으로 탱커버그를 죽일 때, 같은 식의 불편함이 느껴집니다. -_-
우선 팬더는 곰이 아니라 너구리에 가까운 종이고... ^^
인간은 포유류니까 어류나 파충류보다 다른 포유류에 애착을 느끼는 게 자연스러울 수도 있지만... 그렇다면 같은 인간끼리는 서로 엄청나게 위해주는게 마땅한데도 다른 인간들을 자기가 기르는 애완동물만도 못하게 취급하는 경우가 수도 없이 많은 걸 볼 때 이게 '본능'이라는 말까지 붙일 수 있는지는 모르겠고...
더구나 같은 포유류 중에서 사람과 더 가까운 원숭이를 제치고 개를 더 사랑해야 한다는 논리를 뭐라 설명해야 할지는 더욱 오리무중이고...
물론 원래의 이유를 막론하고 '많은 사람이 이렇게 생각하니 이게 정답이다'라고 우기는 입장도 가능은 하겠지만 아직도 개고기를 즐기는 사람의 수가 무시할 수 있는 정도는 아닌 데다가 미래에 개고기 식용자들이 지금보다 늘어날 것 같지는 않지만 '누구를 해치지 않는 한 남이 먹는 거에 관여할 필요 없다'라는 입장이 더욱 널리 퍼질 거라는 예상은 충분히 가능하고...
이래저래 개빠들에게는 탄탄한 근거도 장미빛 미래도 보이지 않는 듯...
지능의 문제가 아니라 유전적으로 가까운 쪽에 끌리는 거 아니냐는 얘기였는데... 원숭이의 명예를 위해 덧붙이자면 인간이 원숭이를 볼 때 거북함을 느끼는 건 "식탐이 많"아서라기보다 이들이 어설프게 닮아서 '불쾌한 골짜기'(https://namu.wiki/w/%EB%B6%88%EC%BE%8C%ED%95%9C%20%EA%B3%A8%EC%A7%9C%EA%B8%B0 )에 빠졌다는 설이 더 타당한 듯....
개가 "주인에 대한 충성심이" 높아서 많이 기르고 아껴준다? 개는 어디까지나 주인이라는 인간 개체에 충성을 하지 인간 종에게 충성을 하는 게 아님(모기와 인간 자신을 제외하고 매년 인간을 가장 많이 죽이는 동물은 개). 개인에 대한 충성심 때문이라면 결국 이들이 쓸모가 있어서 기른다는 소린데 이는 동물들의 '가치'와 '효용'에 대한 논의로 회귀됨. 그리고 효용성으로 볼 때 과연 밭가는 소와 타고 달리는 말보다 개의 그것이 더 높은지는 의문임.
그리고 동물 키우는 문제를 왜 저한테 물어보시는지? 본 회원은 오래 전부터 '다른 개체의 생명을 책임진다는 중대한 사명의 무게를 감당하기가 어려운 탓에' 평생 동물을 기르지 않겠다고 결심했는데 이를 쉬운 말로 풀어말하자면 "귀찮아서 못합니다. ^^"
원숭이 예를 님 스스로 증명했으니 단순히 유전이나 지능으로 끌리는게 아니라는건 님도 인정하시겠네요. 그러니 원숭이를 더 좋아해야 하다는 말이 안되는 소리고요. 그리고 개보다 효용성이 높은 동물은 없죠. 인간이 초기 인류였을때 살아남을 수 있었던건 개와 같이 사냥을 다녔기 때문이라는 학설이 있습니다. 말도 소도 가축이 되기전 수렵시절부터요. 그만큼 개라는 종 자체가 인류랑 밀접하며 동거동락한 시절이 깁니다. 그래서 인간에게 의존적으로 진화했고 충성심이 발달하게 된것이죠.
개가 늑대로부터 진화했지만 늑대와 개의 결정적 차이 이것은 다른동물들과도 결정적인 차이점인데 개와 늑대가 모두 인간에게 길들여 졌다 하더라도 어떤 문제상황 예를 들면 상자안에 먹이가 있는데 쉽게 꺼내기 어려운 상황에서 늑대는 혼자 혹은 다른늑대들과 같이 문제를 해결하려고 시도합니다. 그러나 개는 문제상황에서 인간에게 의존하게 됩니다. 인간이 그 먹이를 꺼내주길 바라면서 인간을 바라보고 있는거죠. 이런 행동 패턴은 다른 어떤 동물에게서도 발견되지 않는 개만의 특성이고요. 그러니 단순히 먹기 위한 가축으로 길러진 소, 돼지와는 인간이 개를 대하는 태도가 당연히 다르겠죠. 의문이 해결되셨나요?
동물을 키우는 문제를 님에게 물어보는 이유는 님 같으면 원숭이와 개중 어떤걸 선호하겠느냐는겁니다. 실제로 키우라는 소리가 아니라 회피는 하지 마세요. ㅎ
님은 둘 다 싫겠지만 다른 사람들은 개를 선호하니 님 개인으로 판단하는건 의미가 없죠. 님이 개를 더 사랑하는 이유를 물었으니 하는 말입니다. 원숭이보다 개를 더 사랑해야 한다는게 아니라 개를 더 사랑하고 있다는걸 말하는 겁니다. 왜 그렇는지는 이미 님도 아시고 있는거고요.
남이 먹는거 가지고 뭘 그러냐고 할 수 있는데 이미 그러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거든요. 비윤리적 사육과 조리법에 대해서 비판하는건 그걸 먹는 사람이 아무런 해를 끼치지 않아도 그런 비판을 듣는거거든요. 푸아그라나 오르틀랑이 대표적으로 비판받는 음식인데 대체 그들은 왜 이 난리일까 싶죠? ㅎ그러게요. 님 논리라면 세상의 어떤 음식도 비판을 받으면 안될텐데 말입니다. 죽은 사람 시체를 먹는것도 아무런 피해를 주지 않으니 뭐 가능한거고요. 이런게 앞으로 더 늘어난다는거죠? 기대 하겟습니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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