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의 섭식은 오랜 인류의 문화였습니다. 프랑스 혁명 후.... 아니 19세기까지만 해도 프랑스에서는 개고기 전문 정육점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최근에는 2010년에 프랑스에서 개고기 전문 정육점이 있었다는 증거가 발견되었습니다. (예전 개고기 논쟁 당시에는 19세기 말의 사진을 인용했었고 이번에 인용하려고 검색을 한 결과, 20세기 초반에 프렁스에 '개고기 전문 정육점'이 있었다는 사실이 새로 밝혀졌군요.)

개를 키우면서 개를 먹는 사람들은 자기 개가 잡아먹혔을 때 당연히 분노하겠죠. 그리고 그 분노의 지점은 '남의 재산을 강탈했다'라는 것과 '개의 공감능력에 대한 안타까움'이 복합되었기 때문이겠죠. 사람은 전부 이중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dog'이라는 단어의 유래를 아시나요? 15세 영국의 귀족들이 사냥용도로 개를 키웠는데 이 개가 나중에 늙어서 사양할 능력이 없으면 잡아먹었던 개를 지칭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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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출처는 위키백과)



하나 여쭈어보죠. 개들이 단체로 갑자기 진화해서 1세기도 안되어 안간과의 공감능력을 키운 것일까요? 그래서 당시 프랑스에 살던 개들은 공감능력이 없어서 식용으로 정육점에서 팔였느냐고요?


아니죠. 그들은 먹거리가 많아졌고 그래서 수요가 줄어들었고 또한 개고기는 소고기나 돼지고기보다 사육하는데 효율이 떨어져서 인간의 육식 대상에서 탈락되었을 뿐입니다. 프랑스에 있던 개들이 어느 날 단체적으로 방사능에 피폭되어 없던 공감능력이 생긴게 아니라니까요?


한국은 개의 섭식 행위가 굉장히 오래되었습니다. 거기에 보양제라는, 과학적 근거가 전혀 없는 비과학적 근거에 의해 식용이 되었으며 박정희 정권 때는 '결핵에 좋다'는 이유 때문에 개고기 섭식을 의사들이 권장했습니다.


즉, 개고기 섭식 문화가 오래되었고 잘못된 신화에 의하여 개고기 섭식이 계속 유지되는겁니다. 우리가 타파해야할 것은 인간의 이중성에 대한 불만이 아니라 비과학적인 신화에 의하여 아직도 개고기를 먹는 습관이 유지되는 것입니다.

백이숙제는 "以暴易暴"를 남겼고 한그루는 "以"를 남기고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