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에 진보누리란 사이트에 올렸던 글입니다.

진보누리가 문을 닫으면서 이 글도 사라진 줄 알았었는데 어떤 분이 자기 블로그에 소개해 둔 것을 우연히 발견했답니다.

파란색 글자들이 제 발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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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링크를 통해 들어갔던 사이트에서 동물보호 하는 사람들을 폄하하는 글을 보게 되었다.

어느 TV 방송국의 PD인 그는 이전부터 걸핏하면 동물보호에 부정적인 발언을 잘 하던 사람이라 내가 발끈하여 태클을 걸었다.

방송인으로서 갖는 그의 영향력이 지금껏 그래 왔듯 앞으로도 동물보호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을 두려워하였던 것이다.

그러자 그 사이트를 관리하는 사람이 나서서 내게 핀잔을 주었고, 나는 다시 거기에 반발하였고....

댓글들이 얽히고, 결국은 감정적인 싸움으로 번지게 된 과정을 요약해 놓는다.

(한 게시물에 달린 댓글은 모두 함께 소개하다 보니 여기 소개된 발언들이 반드시 시간 순서대로 진행된 것은 아님을 밝혀 둔다.)>

 

 

산하 :

 생명을 가졌다는 점에서는 같지만 동물과 사람을 같은 반열에 세울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동물을 까닭없이 괴롭히는 것은 몹쓸 짓이지만,

동물이 괴롭힘을 당했다고 해서 동물을 괴롭힌 인간을 그 이상으로 괴롭히는 사람들의 사고방식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습니다.

동물보호협회니 뭐 이런 쪽에 계신 분들을 만날 때마다 골수 '한국' 기독교인들을 대하는 느낌에 절망도 하게 되고 웃기도 하게 되지만,

뭐니뭐니해도 사람이 안중에도 없는 동물 보호는 뒤집어 입은 양복 같습니다.

 

노씨 :

동물보호하는 분들이 개를 때린 사람을, 그가 때린 강도보다 더 세게 때리기라도 하던가요?

당하는 동물들에게는 생존이 달린 일입니다. 이쪽에서 그들의 생존을 좌우할 힘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조금치의 망설임도 없이,

당연하다는 듯이, 극히 자연스럽다는 듯이 약한 것들을 극한적인 상황으로 몰고가는 사람들에게 그런 짓을 저지르기 전에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만들 정도 이상의 그 어떤 고통을 동물 보호하는 분들이 가하더란 말입니까?

 

산하 : 노씨/

개를 때린 사람은 그가 때린 강도만큼 그가 맞아야 한다고 생각하시는 건 아니시겠죠.

이를테면 이런 사건이 있었습니다. 한 트럭이 후진을 하다가 개 한 마리를 치어 죽였습니다.

그 개는 무척 사랑을 받는 애완견이었던 모양이고

그 주인 가족에겐 꽤 큰 아픔이었겠지요.

트럭 기사야 "개 한 마리 치어 죽인 일"이었을 테구요. 미안하다고.... 개값 물어 주겠다고 했겠죠.

그 와중에 시비가 붙어 "개값 물어 주면 될 거 아닙니까 정말 개 한 마리 가지고...." 뭐 이렇게 떠났겠죠.

그런데 그 사람 핸드폰과 신상명세가 인터넷에 공개되고, 뭇 애견인들이 온갓 욕과 저주를 퍼부었었지요.

제가 생각할 때 그런 짓은 사람을 개만도 못하게 보는 브리짓 바르도같은 행동이라는 겁니다.

이렇게 말하면 무슨 인간우월주의냐고 할지도 모르겠지만

개값과 사람값은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산하 :

개를 치어 죽였다고 해서 사람을 치어 죽인 것처럼 (과실이라 하더라도 인명이 상하면 일단 구속 가능성이 큽니다)

당연 구속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으시겠죠.

 

노씨 :

사람의 가치가 동물의 그것보다 더 높다는 데 동의합니다.한데, 지금 우리가 그 문제를 따지고 있는 겁니까?

제 질문이 무엇이었지요?

ㅡ이쪽에서 그들의 생존을 좌우할 힘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조금치의 망설임도 없이, 당연하다는 듯이,

극히 자연스럽다는 듯이 약한 것들을 극한적인 상황으로 몰고가는 사람들에게 그런 짓을 저지르기 전에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만들 정도 이상의

그 어떤 고통을 동물 보호하는 분들이 가하더란 말입니까?

제가 아는 한, 동물보호 하는 사람들이 개를 죽인 사람을 똑같이 죽이려 들거나,

개를 때린 사람을 같은 강도의 구타로 갚아 주겠다고 나온 적은 없었습니다.

 

노씨 :

그리고, 예로 드신 저 사건의 내용, 제가 아는 것과 다릅니다.

인터넷을 통해 신상이 공개되고 동물보호 하는 사람들이 욕설을 퍼부었던 사건은 저 사건이 아닌 것으로 기억합니다.

트럭이 후진을 하다 개를 친 것이 아니라, 도살하기 위해서였는지 어째서였는지 트럭 뒤에 개를 싣고 가다가

개가 차에서 떨어졌던 겁니다.

그런데 줄에 묶여 있었기에 계속 트럭에 대롱대롱 매달린 채 끌려가다가 질식하여 죽은 거지요.

한데 트럭 운전하던 사람들은(모자라고 들었습니다.) 그 상태에서도 차를 세우지 않고 개가 죽게 내버려 두었던 겁니다.

동물보호 하는 사람들은 거기에 분노하였던 거지요.

뭐, 나중에 그 운전사는 자기들이 개가 매달린 것을 알아채지 못했다고 하였습니다만....

아무튼, 그때 주어졌던 그 정보에 입각한다면 동물보호 하는 사람들이 분노한 것이 당연하였던 겁니다.

 

산하 : 노씨/

"동물보호 하는 사람들이 개를 죽인 사람을 똑같이 죽이려 들거나, 개를 때린 사람을 같은 강도의 구타로 갚아 주겠다고 나온 적"까지는 몰라도,

개를 학대하고 때려 죽인다는 노인의 집을 습격, 노인을 제압하여 결박한 뒤 개들을 탈출시켰다는 얘기를 들은 적은 있습니다.

그리고 그 거사를 위해 '어깨'까지 함께 했다는 얘기도 직접 들었구요. 언젠가 견권과 인권이란 글에서 쓴 얘기입니다만.

그리고 사건의 내용.... 위에서도 썼지만 제가 취재해 볼까 생각했던 사건이므로 별개의 사건이라고 생각하구요.

말씀하신 사건에서도 그 분노를 그 모자의 신상을 공개하고 핸드폰이 마비되도록 욕설과 저주를 퍼붓는 일이 '당연'하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산하 : 노씨/

그리고 이 짤막한 단상을 쓴 것은 어떤 아이템에서 여러 문제로 인해 키우는 개를 학대했던 한 여성이 있었는데 그녀에 대해 퍼부어지는

엄청난 비난과 저주의 언사들을 지켜보면서였습니다. 정말로 무지막지하더군요.

 

녹수 :

제가 당연하다고 한 것은 '분노의 반응'이었습니다. 그 분노를 표출하는 방식에 있어서는

동물보호 회원들에게 문제가 있었음을 인정합니다.

한데, 산하 님의 글이 동물학대 현상에 대해 도대체 분노 자체를 하지 말라는 요구처럼 읽혔답니다.

동물보호 운동 자체를 종교 원리주의와도 같은 독선으로 규정하신 듯한 느낌도 들었구요.

인간을 올바로 대하지 않는 동물보호가들에 대해서만 언급하고 그 반대 모습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으신 점도 공정한 태도라고는 할 수 없겠지요.

 

녹수 :

제가 요즘 사는 일이 하도 빡빡하여 동물보호 운동 쪽에 거의 눈길을 주지 않고 사는 탓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모르겠습니다만

없는 일을 지어내지는 않으셨을 테지요. 분명 지탄받을 만한 모습을 동물보호 사람들이 더러 보였으리가 짐작합니다.

한데, 넷에서 예의를 챙기지 않고 거의 비인간적인 언어 폭력을 휘두르는 것은 네티즌의 보편적인 모습이지

동물보호운동 하는 사람들에게 국한된 모습은 아니지 않습니까.

동물보호를 하는 사람들 역시 평소에 '무지막지한' 저주의 소리들을 일상적으로 들어야 한답니다.

어차피 네티즌의 자격으로 입밖에 내는 발언 전반이 비인간적인 폭력으로 물들어 있는 터에

동물보호 하는 사람들의 그것만을 문제삼으며

거기에서 어떤 결론을 끌어내는 것은 온당치 않다고 생각합니다.

 

산하 :

일단 동물학대 현상에 분노 자체를 하지 말라는 요구처럼 읽혔다면 일단 제 잘못이로군요. 조심하겠습니다.

저 역시 동물학대 현상에 분노하지 말자는 게 아니라,

그 분노의 '반응'이 현저하게 비인간적이고 비생명적인 모습을 보이는 것에 화가 난 것으로 생각해 주셨으면 합니다.

그런데 하나의 접점은 필요하겠군요 ^^

네티즌이나 등등 여러 사람들이 야생동물 보호나 유기견 돌보기 등등에 저주는 내뱉지 않을 겁니다.

아마도 결국은 개고기 문제가 접점에 서 있을 거 같은데요. 그 저주와 비난 (쌍방의)이 결국은 개고기에서 시작되지 않을까요.

 

녹수 :

유기견은 돌보고 개고기는 반대하지 말기를 바라는 것은 개고기를 긍정하는 사람들의 이기심 아닐까요?

 

산하 :

개고기 논쟁을 여기서 펼치시렵니까? ^^

개고기를 먹는 사람이라고 해서 유기견에 대해 애석하게 생각할 수도 있다는 것이 제 생각인데요.,

쇠고기를 먹는 사람이라고 해서 누가 소를 이유없이 쇠꼬챙이로 찌르고 있다면

말리려 드는 측은지심이 없다 할 수 없는 것처럼 말입니다.

저는 개고기 취향이 아니라 먹는 편이 아닙니다만,

개 먹을 줄 아는 분들이 '이기적'이거나 '야만적'이라고 생각해 본 적은 없고,

그들을 두고 '야만적'이란 딱지를 붙이는 분들에게는 단호하게 야만인이라는 딱지를 선사하겠습니다.

 

녹수 :

위에서 했던 소리를 되풀이합니다.

사람에게 애정을 바치는 존재를 음식으로 취급하는 것은 야만입니다.

애정에는 애정으로, 믿음에는 믿음으로 답해야 하는 것이 윤리의 기본 원칙입니다.

 

산하 : 녹수/

역시 동어반복의 시작이로군요. 개고기 논쟁에서는 항상 느끼는 겁니다만..... 님의 독선입니다.

님이 소나 돼지는 사람에게 복종할 뿐이라고 하셨지만, 그렇게 느끼지 않는 사람도 있습니다.

저는 어떤 짐승이든 애정을 주고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기도 하구요. 개는 특별한 존재가 아닙니다.

그게 제 생각이고 많은 사람들의 생각이기도 합니다. 왜 그게 야만입니까? 님이 야만이죠.

과거 자신들과 피부색과 습관 다르면 다 야만으로 치부했던 백인들같은

 

녹수 :

여기서 문제되는 것이 개연성이겠지요. 우리는 지금 한 명의 인간과 한 마리 개 또는 소 사이의 관계를 얘기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인류와 개라는 종, 소라는 종 간의 보편적인 관계를 문제삼고 있는 것입니다.

소와 사람이 사랑을 주고받는 일은 거의 없거나 전혀 없거나 합니다.

그런 희귀한 케이스를 놓고 우리가 뭔가 보편적인 규범을 뽑아낼 수는 없는 겁니다.

 

산하 :

님의 보편일 뿐입니다. 그리고 님과 감수성을 같이 하는 이들의 보편일뿐이죠.

그리고 님은 그 보편을 강요하고 있는 거구요. 그 보편을 받아들이지 못하면 야만이라는 해괴한 공식만을 내걸 뿐이죠.

되풀이하지만 그게 야만입니다.

 

녹수 :

개에 대한 사랑은 모든 문화권에서 발견됩니다.

인류가 가진 가장 오랜 문학 중 하나인 호메로스의 작품에서도 개와 인간 간의 끈끈한 유대는 찾아볼 수 있습니다.

개가 주인의 목숨을 구한다는 류의 전설은 세계 곳곳에서 발견됩니다. 그런데도 보편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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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 보호를 혐오하는 어떤 이에게 던진 나의 답변////

우선, 이곳에 들어오는 이들 중에서 동물보호단체에 속해 있다고 명확하게 밝힌 사람이 저뿐인 듯하니

제가 일단 동물보호운동을 대표하여 답변을 하기는 합니다만,

사람 모이는 곳이 항상 그렇듯 동물보호 하겠다는 사람들 중에도 꽤 중요한 문제에 있어서도

서로 의견이 갈라지는 여러 '파'가 있으므로

제 의견이 동물보호를 대표할 수는 없다는 점부터 미리 밝혀 둡니다.

실상 동물 보호를 강력히 찬성한다는 의사만 확실히 밝혔을 뿐 실제 생활에 있어서는

그저 내 한 몸 먹고사는 문제에 몰두해 있을 뿐인 저로서는

동물 보호를 대변할 자격은커녕 어쩌면 ㅡ아니, 분명히ㅡ 동물보호가라 불릴 자격조차 없을 것입니다.

그저 개인의 자격으로 하는 답변일 뿐이니

편안한 마음으로, 답변 전체의 논지를 말끔하고 간결하게 정리하려는 노력도 하지 않고

생각나는 대로 답변하겠습니다.

 

먼저, 브리짓드 바르도 문제ㅡ

그녀가 정말 극우인지 아닌지 제가 직접 확인하지 않아 모르겠습니다만,

일단 그렇다고 쳐 둡시다.

하지만, 브리짓드 바르도가 극우라는 사실에서

'동물보호가는 대부분 인종 편견에 빠져 있다'는 결론이 어째서 나올 수 있지요?

인종 편견에 빠진 동물보호가는 바르도 하나일 뿐입니다.

 

히틀러 역시 개를 사랑하였다는 점을 지적하시는데,

히틀러의 유태인 박해를 막으려 노력하였던 이들 중에서도 개를 사랑하였던 사람은 꽤 있었을 것입니다.

제가 알기로 히틀러는 개뿐 아니라 아이들도 좋아하였었는데,

그러면 아이를 좋아하는 사람 역시 인종 편견에 빠진 것이라고 봐야 합니까?

 

동물보호 운동과 인종 차별을 연결짓고 싶으시다면

동물 보호 자체에 인종 편견에 동조하는 요소가 있음을 입증하셔야 할 것입니다.

여기서ㅡ 당신의 이런 발언이 아마도 그 '입증'에 해당되리라고 짐작되는군요.

(정리된 형태로 제시하지 않고 편안하게 답변하겠다고 했지만 막상 답변을 하다 보니 꽤 말끔한 모양이 갖추어지고 있군요.^^)

ㅡ서구인들은 동양의 식문화에 혐오를 표시한다.

ㅡ그런 태도는 결국 해당 사회의 문화를 인정해 주지 않고 있음을 나타낸다.

ㅡ요컨대 서구적 동물보호는 자기중심적이다.


동양의 식문화에 대한 혐오라는 대목부터ㅡ

요즘 서구에서는 당신이 그 '혐오'의 예로 들었던 '회'에 열광하는 이들이 꽤 많다고 들었습니다.

서구에서 생활해 보지 않았으니 실감은 나지 않지만, 아닌게아니라 서양 소설을 읽거나 영화를 보더라도

일식 식당에서 회를 찾는 대목을 심심찮게 발견할 수 있었고,

그 소설이나 영화 전체의 흐름에서 볼 때 그렇게 생선회를 먹는 일은 우리나라 소설이나 영화에서 오페라나 발레 관람이 그렇듯

일종의 세련된 문화적 행위에 해당되는 듯싶었습니다. 그러니 생선회는 패스ㅡ

 

개나 고양이를 먹는 행위에 대한 혐오ㅡ

먼저 묻겠습니다. 개나 고양이를 먹는 일에 대한 혐오가 서구인들만의 반응일까요?

우리 사회에서는 그런 혐오가 없을까요?

아마 거의 모든 문화권에서 개나 고양이를 먹는 일에 대해서는 보편적인 혐오가 존재한다고 봐야 할 것입니다.

모든 사회에서 전쟁 및 기타 이유로 인해 식량난에 부딪혔을 때는 개나 고양이를 실제로 먹었습니다만,

그 사회 대부분이 전체 사회가 정상적으로 돌아가게 되면

개나 고양이를 먹지 않는 원래 모습을 되찾곤 하였습니다.

이는 무엇을 뜻할까요?

개나 고양이를 먹는 데 대한 본래적인 혐오와 죄책감이라는 것이 존재하는 거라고 봐야 하지 않을까요?

이 문제는 동물보호 운동 자체에 대한 찬반으로 이어지는 커다란 주제이니 일단은 덮어 두고 넘어갑시다.

 

그러면 나머지 서구인들로부터 혐오를 받는 아시아의 식문화는 과연 무엇일까요?

아마 두 가지가 있는 것 같군요.

1. 지네니 개미니 뱀요리니 하는 혐오식품 류.

2. 원숭이골 요리, 곰발바닥 요리....

 

1번은 말 그대로 혐오스럽기 때문에 반대하는 것입니다. 아닌게아니라 자기중심적 반응이기는 합니다만,

그러나 이런 혐오가 유독 서구인들만의 감정이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해당 사회에서는 어떤지 몰라도 당장 우리만 해도 지네니 뭐니 하는 것들을

먹는 모습을 보면 눈살을 찌푸리는 사람이 대부분일 것입니다.

 

그러면 2번ㅡ

이는 동물 학대와 관계가 있기 때문에 욕을 먹는 요리입니다.

(곰 경우는 야생 희귀동물 멸종을 막으려는 의도와도 관련이 있을 것입니다만... )

원숭이를 살아 있는 채로 두개골을 자르고 어쩌고....

그런 참혹한 과정을 겪어 맛볼 수 있는 미식에 반대하는 것은 서구인이라서 느끼는 혐오가 아니라

인간 본연의 감정이라고 봐야 하지 않을까요?

그러니까 간단히 정리하여 답변하면 이렇습니다.

 

ㅡ혐오 받는 식문화는 혐오 받을 만해서 혐오 받는 것이다.

ㅡ그리고 그런 혐오는 서구인만 느끼는 것이 아니다.

 

자기 자신들을 제외한 나머지 세계를 열등한 것으로 규정하려 드는 서구인의 제국주의적 가치관 내지는

사고방식이라는 것이 분명히 존재합니다,

존재하기는. 그 점을 부정하려 드는 것은 어리석음일 테지요.

그러나, 그런 모습이 서구 전체를 대표하는 것은 분명 아닙니다.

 

여전히 확장주의에 광분하는 일본의 일부 극우 세력이 전체 일본을 대표하지 않듯이.

우리를 호시탐탐 넘보는 일본에 대해 경계심을 잃지 말되

그들을 그저 '죽일 놈의 쪽바리'로 일괄적으로 매도하지는 말아야 하듯,

여전히 의식 밑바닥에 아시아 및 아프리카를 열등한 족속으로 파악하는 습성이 남아 있는

서구인들의 못된 버릇과는 단호히 맞서 싸워야 하되,

서구 자체를 우리의 적으로 파악하지는 말아야 할 것입니다.

 

음... 그럭저럭 말끔하게 진행되어 오던 논지가 조금씩 흐트러지는 기미가 보이는군요.

시원치도 않은 지력을 너무 긴 시간 풀 가동 하다 보니....

 

이쯤에서, 그렇다면 타 문화권을 멸시하는 것이 서구인의 보편적 모습이란 말인가,

서구인에게 더러 고약한 행태가 남아 있다고 해서 동물보호까지 거부하여야 하는가,

그리고 동물보호운동이 과연 서구인의 전형적 행태인가,

동양인에게는 동물보호에 대한 소양이 결여돼 있단 말인가...

등등의 문제들로 넘어가야 하겠지만 모두 생략하고ㅡ

동물보호 운동에 대한 당신의 혐오가 대부분 사실과 일치하기 않거나

단편적인 정보에 입각하여 출발하고 있음을 지적하고 싶습니다.

 

서구인들에 의해 죽어가는 코끼리들, 기타 야생동물들....

어째서 그런 일들에 대한 책임을 동물보호운동이 져야 하지요?

 

동물보호운동은 그런 일들을 막으려는 운동이지 조장하는 운동이 아닙니다.

개를 사랑하였던 히틀러가 유태인을 대량학살하였다고 해서

개에 대한 사랑이 곧 유태인 학살의 원인이 되지는 않듯이,

동물보호운동이 보다 발달해 있는 서구에서 상아나 모피를 더 많이 소비한다고 해서

동물보호가 곧 코끼리를 비롯한 나머지 동물들에 대한

대량 살륙을 불러들이는 것은 아닙니다.

 

반대로, 당신이 열거하였던 코끼리, 물소...등등 야생동물.조류를 모두 보호할 수 있는 데까지는

보호하려 애쓰는 것이 동물보호운동입니다.

모피 코트 역시 서양 여인들만 입는 것이 아니라 세계 전역의 여인네들이 즐겨 입고 있고,

서양이든 동양이든 동물보호에 관심이 있는 여자들은 모피를 입지 않습니다.

모피 얘기가 나왔으니 얘긴데, 브리짓드 바르도가 모피 애호가라는 당신의 발언을 저는 믿을 수가 없군요.

혹시 동물보호에 관심을 갖기 이전의 젊은 시절에 그녀가 더러 모피를 입었었는지는 모르겠으나,

일단 동물보호에 눈을 뜬 이후에는 절대 모피를 입지 않았으리라고 믿습니다.

그녀가 모피를 즐긴다는 말을 저는 사실을 왜곡하는 모함이라고 짐작합니다.

그리고 그녀가 '한국을 씹었다'고 하시는데, 그 점도 사실과 다릅니다.

 

ㅡ나는 한국의 전통 문화를 존중한다.

그러나 개고기는 한국을 대표하는 전통이 아니라고 나는 생각한다.

프와그라가 프랑스를 대표하는 문화가 아니듯이.

명절 같은 때 백화점 같은 곳에 프와그라 요리가 쌓여 있는 것을 볼 때마다

나는 내가 프랑스인이라는 사실이 수치스러워진다.

 

이것이 그녀의 발언이며, 만일 내가 프랑스 인으로 태어났을 경우 내가 가졌을 주장과

완전히 일치하는 발언입니다.

자국의 동물학대 현상을 반성하고 수치를 느끼는 그녀가 다른 나라의 문화를 멸시할 수가 있을까요?

개고기에 대한 그녀의 반대는 동물보호가로서의 반대이지

'아시아를 열등하게 여기는 서구인으로서의 혐오'는 아니었던 겁니다.

 

바르도가 혹시 인종편견을 가졌을 수는 있겠지요.

동물보호를 한다고 해서 모든 면에서 올바른 가치관을 가질 것으로 기대할 수는 없습니다.

 

얼마 전에 한그루 님의 어떤 글을 보니까 우리가 반쯤 성인으로 생각하던

쉬바이쩌 역시 실은 인종 차별로 악명이 높았다지요?

그런 소문은 오해에서 나왔을 게 분명하다고 짐작하긴 하지만,

아무튼 그렇게 더러 혼란스럽게 뒤틀린 것이 인간 정신의 실제 모습인 겁니다.

 

어떤 일에서는 선을 선택한 사람이 다른 일에서는 악을 선택하는 일, 흔히 있는 일입니다.

아니, 오로지 선만 선택하거나 악만 선택하는 사람은 없다고 봐야지요.

 

아무튼, 바르도의 그런 인종편견 때문에 그녀의 동물보호가 잘못된 활동이 되는 것도 아니고,

바르도 한 명 때문에 동물보호운동 자체가 옳지 못한 일이 되는 것도 아닙니다.

 

아까 하던 얘기로 돌아가서, 당신이 동물보호운동을 혐오하는 이유가

'그들이 개나 고양이 등 일부 애완동물에만 관심을 쏟지

나머지 동물들의 운명에는 관심을 갖지 않기 때문'이라면,

그렇다면 오히려 당신은 누구보다 열렬한 동물보호가가 돼야 마땅합니다.

당신의 그런 짐작은 사실이 아니니까요.

 

당장 우리나라 동물보호 단체들만 해도 개나 고양이 같은 애완동물뿐 아니라 각종 야생동물 보호에 힘을 쓰고 있습니다.

변변한 시설 하나 갖추지 못한 어떤 동물보호 단체 본부를 찾아가 보면

주인 없는 개와 고양이는 물론,

까치나 부엉이 같은 야생조류, 오소리, 너구리 같은 야생동물들까지 보호하고 상처를 치료하였다가

다시 자연으로 돌려보내는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각종 밀렵행위를 당국에 신고하고, 불법 설치된 덫을 제거하고,

겨울이면 굶주린 야생동물들을 위해 눈밭에 먹이를 뿌려 주는 행사를 벌이고,

동물실험에 반대하고.... 동물보호단체가 하는 일은 끝이 없습니다.

 

물론 프와그라, 고래잡이, 투우, 물소 사냥 같은 해외의 동물 학대 현상을 막는 일 역시 거기에 포함됩니다.

(다만, 우리 자신의 문제인 개고기를 해결하지도 못하고 있으면서 그런 해외의 일까지 참견하는 것은

남들 보기에 우스꽝스러운 꼴일 수밖에 없을 테니 해외의 동물 학대 현상 방지에 대한 우리의 참여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요컨대,

동물보호운동은 당신이 분개하신 그런 현상을 충분히 능률적으로 잘 막지 못한 잘못은 있을지언정

그런 현상 자체에 대한 책임은 없는 겁니다.

 

동물보호운동에 대한 당신의 착각은 '애완동물'이란 용어에서 비롯되는 것으로 짐작됩니다.

 

'애완'이란 그 단어 자체에 이미 그 대상을 한낱 노리개로 취급하는 마음가짐이 담겨 있습니다.

노리개는 적당히 가지고 놀다가 버려도 되는 존재지요.

실제로 세상에는 버려지는 개들, 고양이들이 수두룩합니다.

그렇게 키우던 중에 싫증이 나면 버리는 잘못된 애완견 문화와 동물보호는 같지 않습니다.

오히려 서로 선명하게 충돌하는 것이 동물보호와 애완견 문화지요.

 

그래서 동물보호 하는 사람들은 애완동물이란 말을 반려동물이란 말로 대체하자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분명한 것은 키우던 개를 버리는 '애견인'들이 곧 동물보호가들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그 반대로 불성실한 '애견인'들이 버린 떠돌이 개를 데려와서 보호하는 것이 동물보호단체 회원들입니다.

 

(물론, 정부에서 한 푼의 보조금도 받지 못한 채 오로지 회원들의 자발적인 성금 몇 푼으로 힘겹게 힘겹게 운영되는 것이 현실이므로

그렇게 동물보호 단체가 거둘 수 있는 떠돌이 동물의 수는 극소수로 한정돼 있지만 말입니다.)

 

당신의 발언 중에서 야생동물을 자연에서 떼어내어

인간 세상에 적응하도록 강요하는 일이야말로 잘못된 일이라는 지적은 옳습니다.

 

(동물보호 단체가 하는 일 중에는 단 하나의 종이라도 인간의 '애완동물' 명단에 새로이 추가되는 것을 막는 일 역시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그런 당신의 주장이 개고기 옹호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입니다.

개고기를 옹호하는 사람들이 흔히 그런 소리를 하지요.

개를 도시에서 키우는 것이야말로 개 학대라고.

마치 개들의 운명에 그들이 진정한 관심을 갖고 있기라도 한 것처럼 말입니다.

 

개는 이미 인간 세상에 완전히 적응을 끝낸 존재입니다.

더이상은 야생적인 존재가 아닙니다.

우리 사람 역시 아주 원시적인 상태를 유지하고 있는 자연환경 속에 들어가면

가끔 우리 속에 숨어 있던 야생적인 기질이 튀어나오기도 하듯,

개 역시 야생동물로서의 면모를 아직은 더러 나타내기도 하지만,

그래도 개는 이미 자연에서 떨어져 나와 인간과 함께 살아가는 데 자신을 맞추게 된 존재입니다.

 

그런 개를 자연으로 돌려 보내자는 주장은 무책임한 주장입니다.

 

게다가, 그렇게 돌려보낼 자연이 이미 존재하지도 않는 현시점에서는 허위에 찬 주장이기도 합니다.

인간이 마구 숲을 없애고 골프장을 만들고 도로를 깔고 터널을 뚫는 통에

기존 환경에서 멀쩡히 잘 살던 오소리나 너구리들까지도

먹이사슬이 파괴되어 굶주리다 못해 인가에까지 내려왔다가 사람들에게 붙잡혀 비참한 죽음을 당하는 것이 현실 아닙니까?

 

그 외ㅡ 다른 동물 및 식물을 먹어야지만 생존할 수 있는 인간의 삶의 기본 조건 문제에 관해서는 그냥 침묵하겠습니다.

그런 철학적인 문제까지 다룰 능력은 제게 없음을 고백하지요.

※※위 글은 제가 자주 드나드는 어느 사이트에서 어떤 분이 일부러 제 닉을 지목하며 동물보호를 공격하는 글을 올렸기에 답으로 올렸던 글임을 밝혀 둡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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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씨 :

욕설이나 인신공격으로만 채워진 글이 아니라면 대꾸할 가치가 없는 글이란 없다고 봅니다.

이쪽 수준이 낮다는 점은 부정하지 않을 테니 아무튼 대꾸해 보시지요.

 

노씨 :

방금까지 달려 있던 댓글은 어디로 사라졌지요? 기분 내키는 대로 알지 못하는 이에게 폭언을 던지고, 그

리고 기분 좀 가라앉으면 얼른 삭제하는 버릇이 있으신가요?

 

하종강 :

이 논쟁이 여기서 더 번지지 않기를 바랍니다. 형민님, 그냥 새기시기 바랍니다. 대꾸할 수준이 아니라고 하면 글 쓴 이가 화를 내겠고...

논리 전개 방식이 형민님이 굳이 긴 글로 답하지 않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형민님이 굳이 일일이 지적하지 않아도 우리 눈에 다 보이니까...

다른 분들도 새겨 들어 주셨으면 고맙겠습니다.

 

하종강 :

다시 고쳐 쓰느라고 지웠다가 올렸습니다.

 

노씨 :

형민이란 분이 산하 님인가요? 아무튼, 반박을 하고 않고는 본인이 스스로 선택할 문제이지

옆에서 이랬으면 좋겠다 저랬으면 좋겠다 하고

주문할 일이 아닌 듯합니다.

 

하종강 :

이 홈페이지를 만들고 운영하는 사람으로서 홈페이지의 정체성에 대한 고민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전에 산하가 올린 글에서 두 분이 댓글을 주고 받으시던데, 그 방식으로 계속 개진할 수는 없겠는지요.

이 홈페이지 댓글은 분량 제한이 없어서, 지금 위에 쓰신 글도 충분히 댓글로 올리실 수 있습니다.

제가 두어 달 동안 건강이 안 좋아서 <노동과 꿈>이라는 게시판 이름에 부끄러울 정도로 노동문제에

관한 내용들을 올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최근 글 목록에 노동문제에 관한 글이 거의 보이지 않는데, 우선은 운영자의 잘못 때문이지만...

(더 이상 적당한 표현이 생각나지 않는데, 고려하지 않으신다 해도 할 수 없겠지요.)

 

노씨 :

이 공간이 노동문제에만 집중하는 곳이 되기를 원하신다면 애초에 거기에서 벗어나는 글이 올라오지 않도록 하셨어야지요.

그리고, 어쨌거나 노동문제에 집중하기 위해 굳이 알지 못하는 이에게 모욕을 가할 필요는 없었을 것입니다.

 

하종강 :

새 글을 그 새 또 올리신 것을 보니, 역시 고려하지 않으시는군요. 기대한 제가 잘못이었군요.

 

하종강 :

예, 마음대로 하시기 바랍니다.

 

노씨 :

저 역시 .....을 기대한 것이 잘못이었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하종강 :

최근 글 목록에 올라오는 글 수가 18 개입니다. 동물 보호 관련 내용이 그 3분의 1인 6 개를 넘지 않도록 해달라고 부탁 드립니다.

6 개가 넘으면 그때는 다른 방법을 고민해 보겠습니다.

 

노씨 :

아무튼 저로서는 언제 어디서든 동물보호 운동을 약화시키는 주장을 보면 즉각 반박할 수밖에 없는 입장임을 밝혀 둡니다.

 

하종강 :

혹시 비정규직 노동자 문제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노씨 :

제 자신이 평생을 비정규직 노동자로 살아왔습니다. 답변으로 충분하겠지요.

 

하종강 :

충분하지 않습니다. 비정규직 노동자라는 존재만으로 노동자성을 갖게 되지는 않습니다.

 

하종강 :

그리고, 익명으로 남을 비판하는, 전혀 모르는 사람이 자신이 평생 비정규직 노동자로 살아왔다고

하는 말을 얼마나 신뢰할 수 있느냐 하는 것도 문제입니다.

 

노씨 :

비정규직이라는 이유로 부당하게 당하고 싶지 않다는 마음가짐이 노동자성으로 부족하다고는 생각치 않습니다만?

 

노씨 :

어차피 얼굴을 까지 않는 넷상에서의 모든 발언은 익명에 속하지 않나요?

그리고 익명으로 하는 비판도 문제이지만 알지 못하는 이에게 대뜸 모욕을 가하는 마음가짐도 문제가 아닐까 합니다.

비정규직이 아닌데 비정규직이라고 속여서 이쪽에 돌아올 이로움이 무엇인지 모르겠는데요?

 

하종강 :

자신이 누구인지 알 수 있는 정보를 좀 주시기 바랍니다. 운영하시는 홈페이지나 블로그를 알려 주시면

제가 성실하게 대응하는 데에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그곳에 가서 노동문제에 관한 글로 게시판을 도배하거나 하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하종강 :

자꾸 '모욕'이라고 하시는데, 그렇게 화를 내실까봐

제가 처음부터 수준이 낮다는 말은 하지 않겠다고 분명히 밝히지 않았던가요?

 

노씨 :

진보누리 사이트에서 '녹수'라는 닉으로 자주 글을 올립니다.

그곳 '누리까페'에 제가 올린 글들을 보면 제가 고졸이며 현재 피시방 알바라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을 것입니다.

뭐, 굳이 그런 확인을 할 필요가 있다면 말입니다.

 

노씨 :

글쎄요.... 자신의 발언이 상대방에게 모욕감을 느끼게 할 만한 발언이었는지 아닌지

분간이 안 되실 만큼 둔감한 분이라고는 생각치 않습니다만....

 

하종강 :

노동자성의 기본적인 요건은 부당하게 당하고 싶지 않다는 것뿐 아니라

다른 노동자들의 권리도 함께 생각하고 그것을 위해서 함께 무엇을

어떻게 할 수 있는가를 고민하는 것부터 시작합니다.

비정규직이 아니면서도 자신이 비정규직이라고 속이면,

비정규직 노동자 문제에 대해 설명하지 못하는 것에 대한 면죄부를 받을 수 있는 이로움이 있습니다.

 

노씨 :

비정규직이기에 부당한 일을 당해 본 사람이라면 노동자의 권리 문제에 눈을 뜨지 않을래야 뜨지 않을 수 없는 겁니다.

 

하종강 :

진보누리에 가서 녹수님이 쓰신 글을 찾아 읽었습니다. <논쟁을 하자>, <누리베스트>, <문화적 삶에 관한 이야기>

이 세 게시판만 검색해 봤는데, '

자주 글을 올렸다'고 할 만큼 글이 많지는 않더군요.

그래도 통하는 부분이 전혀 없지는 않을 것 같아 조금 다행이라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피씨방 알바를 하는 사람을 당해낼 만큼 제가 댓글을 주고 받을 수는 없지만,

이 논의가 건설적일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가능성을 열어 두겠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일단 자제해 주시기 바랍니다. 저 혼자 감당하겠습니다.

굳이 끼어들겠다면 할 수 없고...

 

하종강 :

자신의 존재가 비정규직 노동자이면서도 조선일보를 애독하고, 이랜드 투쟁에 민주노총이나 민주노동당 같은 불순단체가

개입해서 폭력 투쟁을 선동했다고 비난하는 사람들은 노동자 권리 문제에 언제쯤 눈을 뜨게 될까요?

 

노씨 :

그렇군요. 자신이 속한 계급의 이익에 반하는 사고구조를 가진 경우도 분명 있군요, 있기는. 그쪽이 한 점 선취하셨습니다.

한데, 굳이 할 필요 없는 입씨름을 우리가 왜 여기서 벌여야 할까요?

저는 비정규직의 권리를 지키는 활동이 잘못되었다는 류의 주장을 한 적이 없는데 말입니다.

동물보호운동을 폄하하는 발언이 나오지 않는다면 제가 여기서 누군가와 대치할 필요가 애초에 없었을 것입니다.

 

하종강 :

그리고 녹수님의 일상생활 속에서 동물 보호를 위해 들이는 노력과

비정규직 노동자의 권리 회복을 위해 들이는 노력의 비중은 어떻게 되나요?

비정규직 노동자 차별 철폐가 동물 보호보다 훨씬 더 중요하다는 경중의 차원이 아니라,

녹수님 일상 생활 속에서의 조화가 궁금합니다.

굳이 자세히 설명하지 않으셔도 됩니다만...

 

녹수 :

평생 환경운동에 매달려 온 사람은 노동자의 권익에 무관심하다는 결론이 나오는 건가요?

 

하종강 :

저도 동물보호 주장이 잘봇됐다고 폄하하는 주장이나 표현을 한 적이 없습니다.

노동문제가 주제인 홈페이지에서 동물 보호에 관한 논쟁이 번져 나갈까봐 염려한 것뿐인데, 그러한 노심초사조차

" 동물보호 운동을 약화시키는 주장"처럼 보여 "즉각 반박할 수밖에 없는 입장"이 되신 것은 첫째로 녹수님의 열의 탓일 테고,

둘째로는 당사자에게 모욕적으로 들릴 수밖에 없는 저의 지나친 표현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이쯤에서 우리 모두 조금 '오버'한 것을 인정하는 것은 어떨까요? 굳이 사과하라고 요구할 것까지는 없을 것 같은데...

 

녹수 : :

저 아래에서 동물보호 운동하는 분들을 폄하하는 발언이 올라왔습니다.

그 반대 방향의 메시지를 담은 글을 올림으로써

균형을 잡고자 한 것이 '오버'에 해당된다고는 생각치 않습니다.

 

하종강 :

자신의 존재가 비정규직인데 노동자 권익에 무관심할 수는 없겠지요.

저는 혹시 녹수님이 우리집 아이들처럼 강아지나 고양이를 죽도록 좋아하면서도 이랜트 투쟁 현장에 찾아가고

오늘 같은 날은 노근리에도 다녀오는 그런 젊은이는 아닐까 싶어서...

 

녹수 :

얘기의 초점을 사안에 대한 원칙이 아니라 제 개인의 삶 쪽으로 돌리는 일은 탐탁치 않네요.

그리고, 젊은이 아닙니다.

 

하종강 :

아, 그런 생각이었군요. 그렇다면 글 두 개 올리신 정도에서 마무리할 수는 없을까요?

동물 보호 운동 하는 사람을 폄하하는 글도 한 개 정도였던 것 같은데...

 

녹수 :

ㅡ아무튼 저로서는 언제 어디서든 동물보호 운동을 약화시키는 주장을 보면 즉각 반박할 수밖에 없는 입장임을 밝혀 둡니다.

위의 발언으로 제 입장은 분명해진 것 같은데요?

앞으로 다시 동물보호운동을 약화하는 듯한 발언이 나오느냐 않느냐에 달린 일이지 제가 결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저는 그저 피드백을 보이고 있을 뿐입니다.

 

하종강 :

아, 고졸에 피씨방 알바라고 해서 저보다 최소한 스무살 정도 젊은 줄 알았습니다. 나이 들먹이자는 것은 아니고...

서른 다섯 정도라고 짐작하고 얘기하겠습니다.

마찬가지로, 홈페이지 개설 이래 지금까지 노동문제를 주로 고민해 온 곳에서 얘기의 촛점을 동물보호 쪽으로 돌리는 일은

탐탁치 않다는 것이 첫 댓글을 쓸 때의 제 생각이었습니다.

 

하종강 :

그 피드백을 과도하지 않은 선에서 조절해 주시기 바랍니다. 지금 이 정도로...

 

녹수 :

동물보호를 폄하하는 발언을 조절하는 편이 그 피드백을 조절하는 것보다 사리에 맞지 않을까요?

 

하종강 :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한 발언을 하나라도 더 하는 것이 오히려 사리에 맞지 않을까요?

 

하종강 :

최소한 여기에서는...

 

녹수 :

이곳에서 동물보호를 폄하하는 것이 비정규직 노동자의 권리 보호에 무슨 도움이 되었다는 거죠?

 

하종강 :

일단 저는 체력 감당이 안 돼서 잠 자러 가야겠습니다. 내일 낮에 접속해 보겠습니다.

 

녹수 :

그렇게 하세요. 저는 낮에는 자야 하므로 오늘처럼 밤에 다시 들어오겠습니다.

 

하종강 :

그 새 또 쓰셨군요. 할 말이 생각나기는 하지만 한도 끝도 없을 테니, 내일...

 

녹수 :

네, 편안한 밤 되세요. 

 

하종강 :

제가 쓴 댓글들을 첫번째 것만 남겨 놓고 모두 지우는 것이 바람직한 것은 아닌지 고민해 보겠습니다. 그럼 이만...

 

녹수 :

내가 조금 감정이 상했던 것은 바로 첫번째 댓글이었는데....ㅡㅡ;;

 

녹수 :

굳이 이럴 필요까지는 없을 거라는 생각도 들지만....

진보누리 '누리까페'에 녹수란 이름으로 올려진 글 중에는 제가 쓴 것이 아니라

다른 이가 제 이름으로 올린 경우도 더러 있습니다.

녹수란 이름으로 장애인을 비하하는 소리를 한 글이 거기 있는 것이 아무래도 신경쓰여서....

그 글은 제가 쓴 것이 아님을 밝혀 둡니다.

 

산하 :

???? 형민이란 이름이 제 이름인 건 맞는데....

노씨님이 이렇게 장문의 글을 쓰실 정도로 도발적인(?) 댓글을 쓴 적은 없습니다만.

이해하기 어려운 상황....

그리고 아래에서 댓글로 달까 하다가 지금 달면....

제가 예를 들었던 사건은 제가 취재할까도 생각했던 사건이어서 헛갈릴 이유는 없습니다.

분명히 누군가의 반려동물이 죽었고 그 주인들이 인터넷상에 가해자의 신상을 퍼뜨린 사건이었습니다.

 

산하 :

그리고.... 동물보호단체를 취재하면서 직접 들은 얘기 가운데 이런 것도 있었습니다.

"베트남도 개를 먹긴 하는데요." (제가 그랬죠.)

"왜 그런 야만적인 후진국 문화를 꼭 공유해야 해요? "

이건 저랑 공식 인터뷰를 하셨던 동물보호단체 간부의 말이었습니다.

저는 그때 나름의 '편견'을 갖게 됐던 기억이 있네요.

아 이분들 좀 아니구나 하는.....

브리짓 바르도가 동물보호운동을 대표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녀가 인종차별을 노골적으로 내세우는 국민전선의 지지자라는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고, "인간보다 동물의 권익을 우선시하는" 그릇된 동물보호운동의 한 아이콘처럼 되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녹수 :

그런가요? 별개의 사건들인 모양이군요.....

산하 님이 동물보호 하는 사람들에게 '편견'을 갖고 있듯,

저 역시 산하 님에게 ㅡ아니, 우리나라 매스컴 전체에 대해ㅡ

편견이랄까, 피해의식을 가지고 있답니다.

제가 아는 한. 산하 님은 단 한 번도 동물보호 하는 사람들을 공정한 눈을 바라봐 주신 적이 없었습니다.

어떤 글에서는 개고기 합법화를 도모하는 보신탕업자들을

순박하다 못해 어리버리한 노인네들쯤으로 묘사하는 반면,

그들과 대치하던 동물보호가들은 교만하고 머리에 든 서푼짜리 지식을 과시하며 딱딱거리기 좋아하는

허식에 찬 무리쯤으로 묘사하기도 하셨지요.

(의도적으로 그렇게 글을 쓰고자 하시지 않았더라도 그 글이 주는 효과는 분명 그러하였습니다.)

 

정형근을 '개를 좋아하는 사회 지도층 인물'로 내세운 어느 동물보호가 얘기도 하셨었지요.

네, 정말 형편없는 행동이긴 하였습니다.

도대체 어느 단체의 누가 그런 소리를 했는지 알아내어 망신을 주고 싶은 충동도

그 글을 읽고 제가 잠깐 느꼈을 정도입니다.

한데, 그 한심한 동물보호가가 동물보호운동 전체를 대표하는 건 아니잖습니까.

어느 집단에건 간에 자기 동료를 망신시키는 찌질한 인간은 있는 법입니다.

여성운동 하는 분들 중에서도 매춘 여성을 향해 폭언을 던지며 그들의 요구를 묵살한 사람이 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런 여성운동 지도자가 어쩌다 있다고 해서 여성운동 전체가 욕을 먹어야 하는 건 아니잖습니까.

 

네, 정형근을 향해 혐오감을 품지 않고 있다는 자체만으로 그 동물보호가는 비난받아 마땅합니다.

실제로 자신이 가진 힘을 어느 한 곳에만 경주하건 아니면

이 문제 저 문제 두루 살피며 살아가건 그 점은 별도로 치더라도,

아무튼 동물의 운명뿐 아니라 동료 인간의 운명에 대해서도 평소에 관심을 갖고 살았다면

어떤 상황에서도 그런 소리는 나올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 점, 그 동물보호가는 도대체 인간의 삶 쪽은 아예 안중에도 두지 않았다는 이유로 욕을 좀 들어야 합니다.

 

하지만 여기서도 저는 또 좀 다른 면을 읽게 됩니다.

얼마나 평소에 매스컴이 개고기 문제를 놓고 편파적인 개입을 자주 하여 피해의식이 쌓였으면

그 동물보호가가 정형근을 다 들먹였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자, 봐라, 개고기를 찬성하는 사람들이 온통 이 사회 지도층 곳곳에 포진해 있는 것이 아니다.

개를 사랑하는 사람 중에서도 힘 있는 사람이 있다 하고,

마치 친구들에게 가난뱅이라고 놀림받던 여자애가

'우리집에도 세탁기 있다'고 울먹이며 항의하는 듯한 모습이 연상되지 않습니까?

 

개고기 반대가 우리가 사는 세상을 더 평화롭게 만드는 길일지,

아니면 개고기 합법화가 그렇게 만드는 길일지 하는 문제를 두고

매스컴이 동물보호 단체들 쪽 손을 들어 달라고는 하지 않겠습니다.

내가 언론에 몸을 담고 있는 사람이라면 마땅히 이러이러해야 한다 하는 생각은 있지만 말입니다.

제발, 중립이라도 좀 취해 주세요.

지금까지 매스컴은 항상 개고기 합법화 쪽에 유리한 보도만을 해왔습니다.

중립이 아니면서 중립인 듯한 외관만을 취함으로써 사람들로 하여금 개고기 합법화 쪽에

수긍을 하게끔 하는 영향을 끼쳐 왔습니다.

 

힘을 가진 사람은 자기가 가진 힘이 과연 세상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를 항상 염려하고

신중하게 행동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힘 있는 사람의 의무입니다.

 

녹수 : 아, 그리고ㅡ

위에서 예로 드신 어느 동물보호단체 간부의 발언 말인데요.

베트남을 후진국이라고 무시하였다는 얘기라면 몰라도

개고기를 야만적인 문화라고 규정한 점이라면 저도 똑같이 그렇게 생각함을 밝혀 둡니다.

개고기는 분명한 야만입니다.

 

지나다가 :

제가 볼 때는 고기를 먹는 행위 일체가 모두 야만입니다.

개고기 정도 안 먹는다고 야만을 벗어나거나 문명인이 되지는 않습니다.

짐승의 시체를 사람 입맛에 맞게 만드는 요리를 예술처럼 착각하면서부터 인간은 야만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을 포기했습니다.

 

녹수 :

스스로 자신에게 더 엄격한 도덕을 부과하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지요.

그러나 그렇게 하는 의도가 더 멀리 나아가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 자리에 주저앉아 버리기 위해서라면 그것은 비겁함 외에는 아닐 것입니다.

 

지나다가 :

개고기를 먹지 않는 것 정도로 자신은 보통 사람과 다르다고 생각하는 것이 더 비겁합니다.

 

녹수 :

그 비난이 육식을 일체 하지 않는 사람에게서 나오는 비난이라면 반박하지 않겠습니다.

 

지나다가 :

동물보호론자들이 존중 받아야 하는 것만큼 채식주의자들도 존중 받아야 합니다.

이 땅에서 채식주의자로 살아간다는 것은

동물보호론자로 살아간다는 것보다 훨씬 더 어렵습니다.

냉면 육수도 고기에서 뽑아내고 빈대떡에도 고기를 썰어 넣는 세상입니다.

관광지에는 외국 채식주의자들이 찾아갈 식당이 없습니다. 채식주의자입니다. 반박하지 마십시오.

 

녹수 :

당신이 저보다 윤리적으로 우월하다는 데 이의 없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개고기 반대를 막을 자격이 당신에게 생기는 것은 아니지요.

 

지나다가 :

저는 남보아 우월한 것으로 자신의 열등감을 보상 받는 어리석은 사람은 아닙니다.

저는 당신이 개고기를 먹는 사람보다 우월하지 않고,

저도 당신보다 우월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개고기를 먹는 것으로 야만을 구분하고

우월을 운운하고 자격까지 이야기하는 것이 비이성적으로 느껴질 뿐입니다.

 

산하 :

개고기가 '야만'이라는 님의 생각에는 명확히 반대합니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제 방송에선 중립을 지켰습니다.

제 글에서야, 뭐 제 생각이 강하게 드러나긴 하겠습니다만......

 

산하 :

그리고 개고기를 야만이라고 몰아부치는 순간 님 또한 야만적이라는 판단도 유효합니다

 

하종강 :

제가 예상한 현상이 이런 일이었는데, 우려해야 할 일인지는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

전에 이럿 댓글 주고 받기가 왕성했을 때 복가가 썼던 댓글을 인용합니다.

 

복가 : [to ..] 옛날부터 한마디 하고 싶었는데, 님이 아니라 익명으로 쓰시는분들에게,

뭔가 쪽글을 달고 의견을 표명하실때는 좀 자신의 정체를 까고 했으면 해서요.

글이라는 것이, 입장이라는 것이 자신의 정체성과 뗄레야 뗄수가 없는 것 아닙니까.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줄은 알아야 대응을 하던 수르리던 하죠. 칼잡이라면 칼을 갖고 나가고

총잡이라면 권총을 한자루 준비하고, 일식집이면 사시미를..넝담.

찬성이든 반대든 이의를 달든 자기 정체를 밝히고 나왔으면 합니다.

안그러면 별관심도 안가고 보기만 흉해지는 것 같아 영 개운치 않습니다.

마음이 언찮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할 수 없습니다. 뭘 알아야 말이지...

강원도에 일이 있어 급히 나가는 길입니다.

깊은 밤에나 돌아올 텐데 그때는 조금 더 차분하고 진정돼 있는 모습이었으면 좋겠습니다.

 

진눈깨비 : 산하/

과거 개고기 논쟁 과정에서, 식용개가 일반적으로 어떻게 사육되고 도축되는지의 현실을 구체적으로 알게된 순간,

개를 식용하는 것과 관련된 모든 사람들이 확실히 '야만'으로 느껴지더군요.

물론, 저는 육식을 즐기지 않는 편이라

소고기 돼지고기를 즐기지 않는 이유와 같은 이유로 개고기를 즐기진 않던 사람입니다만,

경우에 따라 소고기 돼지고기를 먹게 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개고기도 먹던 사람(복날 회식자리에서 여자들에겐 묻지도 않고 백숙을 시켜주면, 굳이 개고기를 먹겠다고 우기던 사람입니다.

가격차이가 얼만데..하면서 ㅋㅋ)이지요.

그런데 그 논쟁 이후론 육식을 즐기지 않는 차원이 아니라

가능하면 신념에 따라 육식을 피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철저히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에 따라 사육되고 도축되는 식용동물들의 현실을 자세히 보고나면,

차마 저것은 인간이 할 짓이 아니라는 생각이 현격하게 듭디다. 합법화되지 않은 식용개의 경우 더욱 그러하구요.)

 

물론 실천적인 층위에서 채식주의란 너무나 실천하기 어려운 일이라 철저하지 못하지만요.

다행히 저는 운이 좋았던지,

제 생각이 지금처럼 많이 변해온 데에는 인내심 많은 생태주의자들의 도움 덕이 큽니다.

제가 채식주의자가 개 식용에 반대하는 것까진 인정(주제에 무슨 인정~)할 수 있으나

그렇지 않다면 인정할 수 없다고 빡빡 우기면서 논쟁했었는데,

저랑 논쟁하던 상대들은 대부분 실천적 층위의 채식주의자에 반자본주의자들인 근본적인 생태주의자들이었지요.

참, 친절하게도 많은 자료들을 주면서 공부를 도와주더군요.

 

인간이 하는 야만적인 짓들이 어디 한 둘이겠습니까만,

저는 확실히 그것이 아니면 먹을 것이 모자라지도 않는 시대에

인간들이 입과 위를 즐기겠다고 동물들을 그렇게(집에서 기르던 개나 소를 잡을 때하고는 확실히 다른)

사육하고 도축해서 먹는 건,

'야만'이라고 느껴집니다.

동물보호운동이든 여성운동이든 노동운동이든...무슨 운동이든지 간에

그 운동이 다른 운동과의 관계를 성찰하지 못하거나,

트랜드같은 겉멋이거나, 자기논리를 배반하는 경우야 어디 한 둘입니까마는,

어쨌거나 근본적으로 동물보호는 채식주의로 연결되고,

또한 그것은 인간을 포함한 생태주의로 또한 그것은 필연적으로 '반자본'으로 귀결된다고 생각되네요.

 

녹수 : 지나가다//

야만과 야만 아닌 것의 구분이 아예 존재하지 않는다면 모르되, 야만스러운 현상이 존재함을 일단 인정한다면

사람에게 애정을 바치는 존재를 음식으로 삼는 일은 분명한 야만입니다.

 

녹수 : 산하//

바로 위에서 한 얘기의 반복이 되겠습니다.

방송에서 중립을 지켰다고 하시는데....

개고기 합법화를 주장하는 목소리는 열심히 소개하면서 그 반대 주장에 대해서는 그냥 넘어가거나,

더 심하게는 그들을 희화화하여 소개하는 모습이 중립이라고는 생각치 않습니다.

그리고, 방송 만드는 사람의 '개인적 생각'이라는 건 어떤 형태로든 방송에 반영된다고 봅니다.

 

녹수 : 진눈깨비//

채식을 실천하지 못하는 사람으로서 님 말씀에 함부로 동의하는 것도 좀 민망한 일이긴 합니다만,

말씀하시는 바에 동의합니다.

다만, 인류의 문명 자체가 육식을 일단 당연한 일로 받아들이는 위에 지금까지 쌓아올려져 왔으니만큼

채식이 인류 전반에 받아들여지는 데는 좀더 긴 시간을 요함을 인정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문명의 바탕에 깔린, 그걸 유식한 말로 뭐라 하나요? 에토스라 하나요? 에토스 자체가 변화하여야겠지요.

 

녹수 : 하종강//

진보누리 사이트에서 녹수란 익으로 글 올리는 사람이라고 이미 밝혔지 않습니까.

어제 말씀하시던 그 코너는 말하자면

그곳에서도 '베스트'들만 모아 놓는 곳이라 글발이 딸리는 제 글을 그곳에서 거의 볼 수 없을 뿐입니다.

다른 코너에서는 이런저런 사안들을 놓고 여러 사람과 입씨름을 벌이기도 하고,

카페에서는 정치와 직접 상관없는 제 일상의 모습들을 올리기도 하였습니다.

 

산하 : 녹수/

일단 그 방송은 보시지 않았잖습니까 ^^ 방송 끝나고 양쪽 다 통화했는데 별 불만 없었거든요 그만하면 중립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방송 만드는 사람의 개인적 생각까지 차단할 방법은 없습니다.

 

산하 : 깨비/

도축 과정이나 사육 과정의 문제점은 모든 육식의 대상이 비슷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광우병만 해도 그렇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유독 개에만 문명과 야만의 잣대가 들이대지는 건 마뜩지 않군요 ^^

 

녹수 :

방송, 보지 않았습니다. TV 자체를 아예 볼 수 없는 환경에 살고 있습니다.

제가 말하는 방송은 몇 해 전에 문제되었던 방송입니다.

방송 만드는 사람의 개인 생각까지 차단할 수는 없다.... 그

러니까 중립이 아니면서 중립인 척 자처하지 말아 달라는 얘깁니다.

중립이 아니면서 중립에 서 있는 듯한 외관만 꾸미면 보는 이들은 거기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는 겁니다.

 

녹수 :

진눈깨비 님을 대신하여 답하겠습니다.

왜 개에게만 문명과 야만을 나누는 잣대를 갖다대느냐?

소나 돼지는 인간에게 복종할 뿐 애정을 바치지는 않지만

개는 애정을 바치기 때문입니다.

 

산하 : 녹수/

님의 주장대로라면 그 어떤 프로그램도 만들 수 없게 됩니다.

저는 중립적 입장은 아닙니다만, 프로그램에서 중립을 지킬 수는 있는 거지요.

말씀드리지 않았던가요. 양쪽 모두에서 불만 듣지 않았다고..... 그럼 더 이상 뭘 어떻게 해야 하지요.?

그리고 님께 지나가다님의 말씀을 빌어 답변드리겠습니다. "개고기를 먹는 것으로 야만을 구분하고

우월을 운운하고 자격까지 이야기하는 것이 비이성적으로 느껴질 뿐입니다"

 

산하 :

그 개의 애정을 못느끼는 사람은 님 표현대로라면 야만인인가요?

 

녹수 :

아이들을 사랑하지 않는다고 해서 욕을 들을 이유는 없지요.

그러나 아이를 사랑하지 않건 사랑하건 아이를 때리는 사람은 욕을 들어야 합니다.

 

녹수 :

이번 방송이라는 게 어떤 방송을 말하는지 몰라도 전 보지 않았으니 거기 대해서는 얘기하지 않겠습니다.

제가 얘기하는 것은 개고기 문제를 다루는 매스컴의 전반적인 태도입니다.

뚜렷하게 개고기 합법화 쪽 손을 들어 주고 있는 것이

매스컴이 지금까지 취해 왔던 태도임을 부정하시렵니까?

 

진눈깨비 : 녹수/

저는 녹수님과는 좀 생각이 다른 것 같습니다.

애정으로 치면 사실 저는 어떤 동물에게도 애정같은 건 없습니다.

강아지나 고양이 한 마리 키워본 적 없는 주제라, 애정을 갖고 말고할 기회 자체가 없었지요.

오히려 심정적으로는 소의 눈을 보면

가슴이 이상해질 때는 있습니다.^^;;

따라서 개가 다른 동물들과는 달리 사람에게 애정을 바친다는 말이 쉽게 동감이 안되네요.

 

산하/

사육 과정이나 도축 과정의 문제점은 모든 육식의 대상이 비슷하기도 할 겁니다.

사실 합법적이지 않은 개의 경우 훨씬 더 심하긴 하더군요.

그러나 그건 오히려 개식용의 합법화 논리가 되기 십상이라서리~

쩝. 제가 아는 개식용 반대자들은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개라도 식용 사육과 도축의 합법화를 막아야한다는 입장이거든요.

기본적으로 채식주의자들이구요. 다시말해 최소한의 가이드 라인이라고 할까요...

소, 돼지, 닭과 같은 축산동물의 복지(?)를 위해서는 개식용부터 금지하여야 된다고 보는거죠.

 

반려동물인 개마저 축산동물로 포함시키고,

극도의 공포와 고통 속에서 죽임을 당하게 하여 음식의 범위로 포함시키는 것은,

동물에 대한 착취와 학대의 범위를 더 확대시키고 그 잔인함과 끔찍함을 인간의 잣대 대로

정당화 시키는 것에 보탬을 줄 뿐이라는 생각인 거 같아요.

 

암튼, 저는 그 당시(제가 논쟁하던 당시) 저의 무지함에 많이 놀랐고,

많은 자료들을 보면서 굉장히 충격을 받았었습니다.

하지만 아직도 제가 그 운동에 어떤 의지를 갖고 있다기보다는,

제 운동의 정당성을 주장하려면 그들의 주장에 실천적으로 연대해야된다고

믿는 정도의 차원에서 나름의 실천을 하려고 노력하는 중인데요.

산하님의 주장이 제가 당시 그 논쟁에서 펼치던 논리와 매우 비슷한 지점이 있고,

저는 결과적으로 그것이 제 편견이었다는 걸 인정하게 된 경험이 있어서 오지랖 넓게 끼어들어봤습니다.^^;;

그나저나, 이 게시판...오랜만에 오니, 참 낯설군요.^^

 

녹수 : 진눈깨비//

여기서 말하는 애정은 인간 쪽에서 짐승에게 주는 애정이 아니라

짐승 쪽에서 인간에게 주는 애정입니다.

물론, 인간 쪽에서 주는 애정 역시 문제가 되기도 하지요.

단지 개가 인간에게 애정을 준다는 그 이유 때문에서만이 아니라,

인간 쪽에서도 개에게 애정을 주기 때문에ㅡ다시 말해,

개고기란 현상 때문에 상처 받는 인간들이 존재한다는 그 이유 때문에도

개고기는 비난을 받아야 하는 겁니다.

 

하종강 :

제가 위에 인용한 글은 '지나가다'님 보라고 올린 글이었습니다.

녹수님은 읽다가 거슬리면 일단 공격하는 성향이 있는 것은 아닌지 곰곰 생각해 봤습니다.

"녹수님은 해당되지 않으니 지나가다님만 새겨 들으시오라고 단서를 붙이지 않은 사람이 잘못이다.

자신의 잘못을 왜 남에게 덮어 씌우냐?"고 반박하실 거라고 짐작되기는 하지만, 일말의 기대로 한마디 했습니다.

누리카페에서 주고 받으신 댓글들은 저같은 사람에게는 거의 충격으로 받아들여졌는데

(녹수님보다 녹수님을 공격하는 사람들의 행태가 저로서는 적응하기 어렵더군요),

이곳에서는 많이 자제하시는 것처럼 보여서, 솔직히 고맙습니다.

 

진눈깨비 : 녹수/

아, 제가 동물보호운동(개 식용 반대운동을 포함하여)이 채식주의, 생태주의, 반자본주의로까지 연결된다고 생각하는 것은

자본주의 생산양식대로 사육되고 도축되는 식용동물을 먹는 오늘날의 육식은

그 이전, 생태계의 먹이사슬에 따라 생존과 필요에 의해

육식을 하는 경우와 완전히 다르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 점이 간과되거나 부정된다면, 그 동물보호운동의 정당성을 의심해야한다고 생각하는 쪽입니다.

물론 이 사회에서 채식주의를 실천하는 것은

너무 엄청나게 험난한 일이라서 실천적 층위에서 시간이 필요하다는 말씀엔 동의하지만 말이지요.

 

사족이지만, 저는 육식은 즐기지 않아도 생선과 해물은 아주 좋아하는 사람이었는데요..

'오래된 미래'를 읽다가 라다크인들의 경우

꼭 고기를 먹어야할 경우 한 생명을 잡아 적은 사람의 배를 불리우는 생선이나 작은 짐승보다는

한 생명을 희생시켜 아주 많은 사람의 배를 불리울 수 있는 쪽을 잡는 것을 택한다는

구절을 읽고 몹시 상심한 적도 있습니다.^^;;

오늘도 생선회를 대접받고 들어와서, 이런 글을 쓰기가 참 민망하군요. ㅠㅠ

 

녹수 : 하종강//

그랬었군요....

한데, 저에게 공격적인 성향이 있다는 점은 사실입니다.

차근차근 사리를 따져 가며 감정을 배제하고서 옳고 그름을 가리는 것,

그건 어지간해서는 해낼 수 없는 일이지요. 막말만 나오지 않으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전. 서로 다른 입장을 가지고 충돌이 빚어진 이상 감정적인 대치 상태로 넘어가는 일은 피할 수 없는 과정일 거구요.

 

녹수 : 진눈깨비//

솔직히, 지금까지 저는 동물보호를 생명운동으로까지 확장시키는 단계까지만 생각해 왔지

반자본주의적 대항이라는 관점에서는 파악해 본 적이 없었습니다.

물론 자본주의 하에서 벌어지는 갖가지 몹쓸 현상들이

저 밑바닥에서는 서로 연결돼 있다는 생각은 해왔지만 말입니다.

 

산하 : 녹수/

적어도 개고기 문제에 관한한, 특히 개고기 문제를 다루는 방송에서는

'기계적 중립'을 지킬 수 밖에 없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개고기 반대론을 펴시는 분들의

융단 폭격을 감당해야 하니까요. 방송한 뒤에 개고생할 필요는 없지 않겠습니까.

 

산하 : 깨비/

저도 개마저 먹어야 되겠느냐...는 질문에는 머쓱했던 기억이 납니다만......

개를 먹는다고 사람을 개 취급하던 사람들을 떠올리면 그냥 오기같은 게 불쑥 ~~ ^^ 그렇습니다.

 

산하 :

아 혹시 오해가 있을까 그러는데.... "개를 먹는다고 사람을 개 취급하던 사람들"은 일부 그릇된 애견인들을 지칭한 것입니다.

동물보호운동 전반을 가리키는 게 아닙니다.

 

녹수 :

그래서, 방송이 과연 그 기계적 중립이라도 지켜 주었던가요?

개고기 합법화 주장만큼 개고기 반대 입장을 제대로 소개해 주었던가요?

복날의 광경이랍시고,

개고기를 일단 당연한 현상으로 규정한 위에 벌어지는 모습들을 아무리 '객관적으로' 소개하더라도

그것은 편파적인 개입일 수밖에 없습니다.

시공사라는 출판사가 있습니다. 그 출판사, 알고 보니 전두환 아들에게 넘어갔다고 하더군요.

가정컨대, 무슨 출판전시회 같은 행사에서 시공사가 어떤 책을 전시하였고

어떤 마음가짐으로 앞으로 출판 활동을 벌일 작정인지 등등을

암만 중립적으로 객관적으로 냉정하게 소개하였다고 하더라도

그 소개는 이미 전두환에게 면죄부를 준 입장에서 출발하는 소개입니다.

(연좌제 문제는 그냥 넘어갑시다. 더 적절한 비유가 언듯 생각나지 않아 이런 비유를 들었을 뿐이고,

제가 지금 무슨 얘기를 하는지는 전달이 되었을 줄 압니다.)

 

잔디 :

저는 유럽에 살고 있는 여성입니다.

음식문화는 민중들이 굶어죽지 않고 살아남기 위해서 형성되었죠.

생선이 많이 나는 곳에선 생선을 주로 먹었고,

농토가 비옥한 곳에선 채식을 많이 했고, 알라스카같은 동토에선 육식에 의존해서 생존했습니다.

호주에선 캥거루를, 남미에선 기니피그를 먹죠.

소나 돼지 길러서 잡아먹듯이 개를 길러서 잡아먹는 나라도 있고요.

 

어느 동물을 잡아먹으면 야만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제게 있어서 야만스러운 음식문화는 따로 있습니다.

정력에 좋다고 까마귀의 씨를 말리고 코뿔소를 도륙하는 일,

그리고 먹을 것이 풍부한 일본인들이 굳이 멸종에 처한 고래를 먹겠다고 떼쓰는 일,

뭐 이런 일을 들 수 있겠습니다.

저랑 친한 유럽인은 유럽사람들이 요즘 너도나도 생선을 먹기 시작하는 일을 야만적인 음식문화로 들더군요.

전통적으로 생선을 안 먹던 사람들까지

이렇게 무섭게 생선을 먹어대니 바다의 생선이 씨가 마른다는 거죠.

정작 생선에 의지해야만 하는 가난한 나라 사람들은 먹이를 빼앗긴 셈이 되고요.

이런 이유에서 저는 한국에서 개고기 먹는 거 별로 안 부끄러워합니다.

 

하지만 개를 자식처럼 사랑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으니까 그들의 감정을 존중했으면 합니다.

그래서 이제 먹고 살기도 괜찮아졌는데 웬만하며 취미삼아 개고기 먹는 일은 삼갔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솔직히 말해서 저는 개에게 유산 물려주는 사람들이 더 이상해요.

저도 녹수님처럼 동물보호에 힘쓰고 있는 사람이지만 촛점을 조금 다르게 두고 있어요.

어떤 동물이던 살아 있는 동안 학대받고 고통받지 않도록 하는데 촛점을 두고 있지

(동물실험 반대, 사육환경 개선),

어느 동물은 그래도 되고 어느 동물은 그러면 안된다고 차별을 두지는 않는답니다.

 

녹수 : 잔디//

외국에 자기들 나름의 동물 학대가 있다고 해서 그 점이 우리가 동물 학대를 하는 데 대한 면죄부가 되어 주지는 않습니다.

중국에 원숭이 골 요리가 있다고 해서, 프랑스에 프와그라가 있다고 해서

그 일이 우리가 개고기를 당연하게 여겨도 된다는 이유는 되지 못합니다.

원숭이골 요리는 중국 사람 자신들이, 프와그라는 프랑스 사람 자신들이 없애도록 맡겨 두면 될 것입니다.

(중국의 원숭이골 요리는 이미 없어졌고, 프와그라는 프랑스를 포함하여 유럽 각국에서 점진적으로 비난 여론이 높아져 가고 있다고 합니다.

투우로 유명한 스페인에서도 어느 지방에서는 이미 투우가 금지되었구요.)

분명한 사실은, 소나 돼지를 먹는다고 해서 상처받는 사람은 없지만

개를 먹으면 상처받는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점입니다.

그리고, 사람에게 가족 개념으로 받아들여지는 개마저 먹어치우는 사회에서는

다른 나머지 동물들에 대한 최소한의 배려조차 기대할 수 없다는 점입니다.

실제로 한 푼의 이윤이라도 더 챙기기 위해 소를 죽여도 그냥 죽이지 않고

여러 가지 잔학한 과정을 거쳐 도살하는 일이 수시로 벌어지곤 하는 것이 우리 사회입니다.

개고기만 없애면 그런 일이 곧바로 없어진다는 보증은 없지만

개고기가 존재하는데도 그런 일이 사라져 주기를 기대할 수는 없는 거지요.

 

잔디 :

예,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제가 수정하는 사이에 녹수님이 글을 올리셔서 못 보셨을지 모르겠네요.

옆에서 그렇게 가슴 아파하는데 딴 거 먹을 것 충분한 사람까지 꼭 개고기를 먹을 필요가 있나 생각되네요.

하지만 누가 우리 개고기 먹는 민족이라고 야만이라고 하면 틀린 말이라는 거지요.

우리나라에서 예전부터 개를 먹은 것은 생존의 방식이었을 뿐,

야만성과는 상관이 없다는 거지요.

 

잔디 :

제가 인간적으로 참 좋아하는 사람 중에 개장수가 있습니다. 생계형 노동자입니다.

그 사람 앞에서 저는 '옆에서 그렇게 가슴 아파하는데 딴 거 먹을 것 충분한 사람까지 꼭 개고기를 먹을 필요가 있나?'

이런 배부른 소리 절대로 할 수 없습니다.

 

녹수 :

지금 우리나라는 생존의 위협을 느끼는 사회가 아닙니다.

지금 사람들이 개고기를 먹는 것은 살아남기 위해서가 아니라

한 순간의 혀끝의 즐거움 때문에 먹는 거지요.

일단 한 사회에 자리잡은 문화현상이 사라지는 데는 시간이 걸리는 법입니다.

 

지금 우리가 그 시기에 놓여 있습니다.

 

기존의 상태에 익숙해져 있던 사람들이 새로운 상태를 받아들이기 힘들어하는 점은 이해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런 이해가 마땅히 없애야 할 것을 없애는 일을 포기하는 쪽으로 이어질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녹수 :

그 개장수가 어디 개를 팔아야 할 역사적 사명을 타고 이 땅에 태어난 것은 아니잖습니까.

생계형 구사대, 생계형 장물아비, 생계형 마약 밀매상, 생계형 인신매매범....

그들 모두가 그렇게 해서라도 먹고 살아야 할 정도의

척박한 조건에 사는 점은 안타깝지만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마땅히 극복해야 할 일을 그대로 수용할 수는 없는 겁니다.

어떤 사회에서도 밑바닥에서 힘들게 사는 사람들은 존재할 것입니다.

개고기가 존재하건 존재하지 않건 그 점은 마찬가지겠지요.

자본주의 사회 아닌 다른 사회는 어떻게 되는지 모르겠습니다만.

 

지니다가 : 하종강//

전에부터 제가 몇마디 하고나면 “남을 공격할 때는 자기가 누구인지 밝히고 하자”고 자꾸 충고하시는데,

정신병자들의 이전투구를 더 이상 눈뜨고 볼수없어서 끼어들었다가

“너도 똑같은 놈”이라는 말 듣기 딱 좋은 아사리판이기 때문에

자기가 누구인지 밝히기 어려울거라는 생각은 안해보셨습니까?

 

순혈주의나 근본주의적 성향을 보이는 사람들의 공통점은 무언가 한쪽이 지독하게 결핍됐다는 것이고

결국 그 열등감을 보상받기 위해 다른 쪽에 집착한다는 것은 상식입니다.

다른 사람들은 별로 관심 없는 분야에 집착할수록,

그 분야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공격적인 행동을 할수록

자신의 열등감을 더욱 보상받기 때문에 절대로 고쳐지지 않습니다.

그래서 치료 대상입니다.

녹수라는 분은 자신에 대한 짤막한 소개만으로도 뭐가 부족한 사람인지 금방 알겠고,

산하님이야 이 게시판의 글들을 오래 전부터 읽어왔으니 부족한 점이 무엇인지 대충 짐작할 수 있고,

진눈깨비님에 대해서는 아직 잘 모르지만 댓글을 읽는 순간부터

도대체 이 사람의 어떤 열등감이 이러한 행동을 유발했는지 궁금했습니다.

이 홈페이지 쥔장을 봐도 그런 느낌이 들 때가 있는데 이 양반의 지독한 일편단심 노동자 사랑 역시 같은 증세입니다.

 

녹수//

녹수님은 “....하다고 해서 ....한 것은 아니다”라는 어법을 자주 사용하시는데, 그 표현을 그대로 돌려드리면,

동물 보호운동이 반자본주의적이거나 진보적 성향을 가질 수 있다고 해서,

얼빠진 동물애호가들이 면죄부를 받을 수 있거나

산하님 같은 분들이 그 바보들을 비판할 수 없는 것은 아닙니다.

한마디 더, ‘중립’을 자꾸 강조하시는데, 녹수님은 동물보호운동에 대해서 꽤나 중립적이십니다.

동물보호운동에 대해 그렇게 지독한 편향도 보기 어렵습니다.

저는 채식주의자이지만 그것을 남에게 강요하거나, 육식을 한다고 야만이라고 몰아붙이거나,

채식주의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에 대해 공격적인 성향을 보이지는 않습니다.

여러분과 같지 않습니다. 그래서 누구인지 밝히기 싫습니다.

 

잔디 :

예끼, 어떻게 개장수랑 인신매매범이랑 비교하십니까? 개장수가 범죄자입니까? 녹수님, 실수하신 겁니다.

생계형 노동자란 뜻을 이해하시고 하는 말씀입니까?

개 잡는 일이 좋아서, 취미로 하는 일이라 생각하십니까?

이쯤에서 토론을 접지요. 녹수님의 의도는 충분히 이해했습니다.

자꾸 말이 길어지면 좋은 의도가 오히려 희석되겠습니다.

저나 녹수님이나 적절하지 않은 게시판에서 너무 오래 떠들었습니다.

제 몸 하나 돌보지 못하고 남을 위해 고생하시는 여기 주인장님께 도움은 못 될망정 누를 끼쳐서야 되겠습니까?

저는 이제 자러가겠습니다. 녹수님도 좋은 하루 맞으시기 바랍니다.

 

녹수 : 지나가다//

가능하면 쟁점에만 집중하고 상대에 대한 인신공격은 피하도록 합시다.

얼빠진 동물애호가들이 면죄부를 받을 수 없다.... 동의합니다. 그러나 그들에게 유죄를 선고하기 전에

먼저 그들이 얼빠진 짓을 하고 있음을 입증하셔야지요. 지금 우리가 하고 있는 일이 그 일 아닌가요?

개고기 반대가 얼빠진 짓인지 아닌지를 따지는 일 말입니다.

 

제가 중립이 아니다... 당연하지요. 저는 동물보호 쪽 사람입니다.

객관적인 자세를 취하도록 요구받는 언론계 사람이 아닙니다.

저는 동물보호에 깊숙이 관여하고 있는 참여자입니다.

채식주의자이지만 육식을 폄하하지는 않는다.... 단지 육식에 대해 인내심을 가지고 접근하겠다는 얘기가 아니라

아예 육식의 윤리성 자체를 따지지 않으시는 것처럼 들리는데,

그렇다면 당신은 그저 채식이 식성에 맞는 사람일 뿐 채식주의자는 아니라고 봅니다.

 

녹수 : 잔디//

돌아서는 사람 뒤에서 주먹을 휘두르는 짓은 말아야겠지요. 이쪽에서 돌려 드릴 말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논의을 끝내시겠다고 하니 입다물겠습니다.

저는 방금 피시방 아침 청소를 마쳤고, 이제 좀 있으면 근무 교대에 들어갑니다.

혹시 이 뒤에 달릴 댓글에 대한 답변은 오늘밤 자정을 넘기고서야 달 수 있겠습니다.

 

산하 :

지금 녹수님은 일종의 '떼'를 쓰고 계신 겁니다. "복날의 광경이랍시고,

개고기를 일단 당연한 현상으로 규정"하는 자체가 불만스러우신 모양이지만

오히려 일상적으로 개고기 문화가 상존하는 나라에서 그걸 '부당한' 모습으로 내비치는 자체가 역편파적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 일상 앞에서 개고기 반대론자들은 시위를 합니다.

언론은 그걸 취재하구요. 보신탕 집 주인 얘기도 듣겠죠. 그게 다 입니다

녹수님과의 이야기를 접어야 할 거 같습니다. 개장수를 인신매매범에 비하시는 얘기까지 들으니

더 이상 이야기 나눌 필요가 없을 듯합니다.

보신탕집 주인을 살인마에 비하던 어떤 애견인이 기억나는군요.

 

과객 :

그 떼를 쓰면서 열등감을 보상 받는다잖아요.

누가 말리겠습니까? 여기 참 웃기는 곳이군요. 폐인들이 따로 없네요. 다 말려드신 겁니다.

 

녹수 : 산하//

아프리카 어느 나라에서는 어린 소녀의 자궁을 칼로 난도질하는 것이 '자연스럽고 당연한 일'이라더군요.

그에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들이 나타나면 떼를 쓰는 걸까요?

문화라는 건 항시 변화하고 그때그때마다 매번 취사선택을 당하는 겁니다.

시대에 맞지 않게 된 문화현상은 도태되게 마련입니다.

오늘날 개고기를 둘러싸고 이런 논란이 벌어지고 있다는 자체가 이미 개고기가

우리 시대에 맞지 않아졌다는 반증 아닐까요?

 

녹수 :

그저 벌어지는 일을 벌어지는 대로 보도할 뿐이다? 예를 들어....

데모 학생들이 보도 블럭을 뜯어낸다, 학생들이 던진 돌에 맞은 진압군이 치료를 받는다,

길가던 행인이 울퉁불퉁한 보도에 불평을 한다....

이렇게 '사실'만을 나열하였더라도 이미 거기에는 방송하는 사람의 의도가 반영된 것입니다.

보신탕집 주인을 살인마에 비교한 애견인?

그 애견인은 자신의 생각을 조리 있게 표현할 능력이 없었을 뿐입니다.

보신탕의 존재로 인해 실제로 개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일상적으로 받아야 하는 고통을

전달하기 위해 감정적인 표현을 선택하였을 뿐입니다.

 

노씨

////어느 동물보호 반대자의 발언, 그리고 나의 답변////

 

오히려 난 동물 사냥과 혹은 동물에 대한 식용에 비교적 찬성합니다.

지금 자원이 줄어들고 있는 것이 지금 현 세계의 추세이고

이런 상황에서 야생동물까지도 사냥할 수 밖에 없고 동물에 대한 식용을 찬성할 수 밖에 없다고 봅니다.

더구나 동물들은 같은 인간이 아니고

더구나 그들이 감정을 가졌어도 인간만큼의 풍부한 감정을 가지지 못하고 사나운 야생의 기질이 있는 것이 당연합니다.

더구나 동물보호가 현실성을 띄지못하는 이유 중에 하나가

동물은 애당초 목표를 약육강식으로 정해놓고 그 속에서 약육강식을 하고 살며

또한 그것에 순응하지만. 인간에게 애당초 약육강식이라는 것을 정해놓지않고,

최소한의 양심을 목표로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물론 그 양심을 깨며 약육강식을 어기는 인간들이 종종 보이기는 하지만

양심이라는 약속과 규약이 정해져있어서 그런 인간들은 비난을 받고,

또한 그에 대한 처벌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이게 동물들과 인간들의 차이점입니다.

그런 동물들은 결국 자기 자신들이 식용이 되어도 결국 그것에 따른다는 것이고

그런 것에 동물들은 오랜 시간을 거치며 또 거치며 적응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솔직히 전 동물보호를 풀어나가는 쪽으로 할 수 밖에 없다고 봅니다.

 

( 내가 자주 드나드는 어느 사이트에서 어떤 이가 일부러 내 닉을 지명하며 위와 같은 글을 올렸다. 아래는 그에 대한 나의 답변이다.)

 

크게 바라볼 때, 인류는 필요의 세계에서 당위성의 세계로 넘어왔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살아남기 위해 바둥거리고, 허겁지겁 소유물을 긁어모으고,

경쟁자를 즉각 거꾸러뜨리고는 이쪽이 위에 올라가 밟고....

그런 약육강식의 법칙에 충실한 삶에서, 생존 자체에 직접적으로 관계가 없는 문제를 놓고 고민하고,

눈으로 확인되지 않는 가치를 창조하려 애쓰고,

적을 제거하지 않고 함께 공존하는 법을 배우는.... 말하자면 보다 영적인 차원의 삶으로 말입니다.

 

이것이 바로 인간이 걸어온 진화의 길이고, 동물처럼 형질적 변화 대신 영적인 진화를 이룩하고 있다는 바로 이 점이

인간이 만물의 영장이라 자처해도 좋은 근거입니다.

그저 인간이 다른 종들보다 더 강하고 그들을 해칠 능력이 있다는 이유 때문이라면

만물의 영장으로 굳이 인간을 꼽을 필요는 없을 것입니다.

어쩌면 인간 아닌 다른 종이 지금 인간의 자리를 차지하였을 가능성도 얼마든지 있었을 테니까요.

 

당신 자신도 인정하였다시피,

인간에게는 양심과 윤리 규칙이라는 것이 있다는 점, 바로 이 점이 인간과 다른 동물의 차이이며,

바로 여기에서 인간이 만물의 영장이라는 근거가 주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인간이 동물 중에서 가장 강하다,

그러므로 다른 놈들을 해쳐도 무방하다'는 주장은, 곧바로 인간을 만물의 영장의 자리에서

다른 동물들과 다를 바 없는 미욱스러운 위치로 떨어뜨리는 결과가 됩니다.

 

ㅡ강자가 약자를 짓밟아도 된다, 더 센 놈이 원하는데 누가 뭐랄 거야, 억울하면 출세해라....

 

고작 이런 깡패 같은 지침을 가지고 살기 위해 인류가 지난 몇 만 년 동안 선사시대를 거치고 문자와 종교를 발명하고

이데아를 추구하면서 꾸준히 진화의 길을 걸어온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인간이 만물의 영장으로 자처하려면 만물의 영장답게 굴어야 합니다.

만물의 영장에 걸맞는 생각과 행동을 해야 하는 거지요.

만일 인간과 동물 중 어느 한쪽을 선택해야 한다면 저 역시 동물을 희생시키고 인간을 택하겠지만,

지금은 그런 선택을 할 이유가 없는 시점입니다.

 

지금 인류가 겪고 있는 어려움은 인류 자신이 만들고 있는 것이지 동물들 때문에 생긴 어려움이 아닙니다.

인간이 원한다면 얼마든지 멸종시킬 수 있는 동물들을 애써 돌보고,

이미 인류의 손으로 돌이킬 수 없도록 훼손된 환경 속에서일망정

그들이 자기네 고유한 모습을 지키며 살아갈 수 있도록 배려하는 것과,

인간의 이익을 위해 간단히 희생시켜 버리는 것....

둘 중 어느 쪽이 지난 수만 년(고고학을 공부하지 않아 대충 몇 만 년쯤인지 가늠도 안 됩니다만) 동안 인류가 걸어왔던

진화의 길과 닿아 있는지 생각해 보아야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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