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도주의는 공적이익과 사적이익을 일치시키는 지점에서 완성된다.

그런데 공적이익과 사적이익을 일치시키는 지점은 없다.

그리고 칼맑스는 자본론에서 이렇게 공적이익과 사적이익이 일치시키는 지점을 언급했다. 개념적으로는 약간의 상치가 보이지만.



바로 '자유의 왕국'.


칼맑스의 자본론에서 설명하는 '자유의 왕국'은,

노동생산성이 극단에 이르는 사회로 투입 대비 산출이 동일하기 때문에 독점을 위한 경쟁이 사라진다는 것이고 인류는 물욕에서 해방된다는 것이다.


이걸 주류경제학으로 환치하여 설명하자면,

내가 언급한 extreme technopia와 같다. 극단의 기술 사회에서는 한계생산이 0이 되는 지점을 달성할 수 있으며 이 때 인류는 물욕에서 해방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론적으로는 중도정치를 펼칠 수 없다. 그러나 현실 정치에서 중도정치는 우파/좌파의 반, 그러니까 '후라이드 반, 양념 반'이라는 개념이 아니라 정치가 극단으로 흐르는 것을 막는 완충장치로서 존재한다는 것이다. 독일의 바이마르 헌법 상에서 히틀러의 전황을 막기 위하여 독일민주당이 다른 정당들과 연합한 것이 중도정치의 원형이다.


어쨌든, 한국은 정치역학 상 극단으로 흐를 수 밖에 없다. 그러니까 오히려 중도가 차지할 영역은 넓다는 것이다. 단지, 미래바른당의 역량이 딱 거기까지 밖에 안되기 때문에 저렇게 유명무실화되고 있다는 것.

백이숙제는 "以暴易暴"를 남겼고 한그루는 "以"를 남기고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