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만화 '심야식당'을 보면 자신이 죽은 뒤에 사람들이 자신의 포르노 잡지 컬렉션을 발견하게 될 것을 걱정하는 사내가 나온다.
그렇게 걱정된다면 남부끄러운 물건들은 싹 정리해 버리지 그러느냐고 하자 그건 또 내키지 않는다고 대답한다.
아직은 먼훗날의 얘기지만, 나 역시도 죽음을 앞두게 되면 USB에 저장해 둔 포르노 영상들을 삭제해야 할 사람으로서 무척이나 공감이 갔다.
그때쯤이면 치매가 찾아올 수도 있는데 혹시라도 타이밍을 놓쳐 민망한 사태가 벌어지게 될까봐 지금부터 벌써 불안하다.
언제 치매가 찾아올지 모르는 나이가 되면 그런 남부끄러운 물건들은 일찌감치 없애 버리면 불안해 할 필요가 없지 않느냐고?
그래서 저 만화가 공감이 간다는 거다.
떳떳하지 못한, 그리고 대단하지도 않은 쾌락이라도 아직 살아 있는 동안에는 포기하고 싶지 않은 것이 사람 마음이니 말이다.
부디 그때쯤에는 나이에 걸맞게 사람이 좀 점잖아져 성욕에서 벗어나 있기를 기대할 뿐이다.
뭐, 나이로 치자면 지금도 이미 점잖아져 있어야 마땅한 나이이긴 하다만....


조금 다른 얘기이지만, 세상을 뜬 사람들이 생전에 인터넷 상에 남긴 흔적들을 일일이 찾아 지우는 새로운 업종이 생겨났다는 얘기를 들은 기억이 난다.
생존하지 않는 이들이 남긴 넷 상의 흔적들을 지우는 작업은 과연 필요할 것이다.
프라이버시 면에서도 그렇고 사이버 공간을 불필요하게 허비하는 일을 없앤다는 측면에서도 그렇다.
그런데ㅡ 여기서 문득 내 생각은 한층 관념적인 차원으로 확대된다.
그런 효율적인 차원을 떠나 어쩌면 우리가 인터넷에서 벌이는 활동 모두가 우리가 사는 우주의 엔트로피를 증가시키는 일에 해당되는 것이 아닐까?
무릇 하나의 시스템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에너지가 소비되는 법이다.
오늘도 인터넷에 글을 올리고 댓글을 달고 다른 이들이 올린 게시물을 클릭하는 나는 어쩌면 우주의 무질서를 늘이는 데 협력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그런데 그런 방향으로 생각하다 보면 우리의 생존 자체가 유해하고 무의미하게 여겨지게 된다.
그렇잖은가. 우리가 숨을 내쉬고 앉았다 일어나고 팔을 휘두르는 등의 일거일동 모두가 어차피 엔트로피를 늘이는 결과로 이어진다고 하던데, 그런 식으로 생산성만 따지려 든다면 결국 우리의 생존 자체를 부정하는 꼴이 되고 말지 않는가.
어떻게 사람이 생산적인 일만 하고 살겠는가.
비생산적인 소일거리, 시시껄렁하고 더러는 천박하기까지 한 도락도 탐하며 사는 것이 삶 아닌가.


그래서, 결론이 뭐냐고?
그냥 이대로 살자는 거다.
어울리지 않게시리 철학자 흉내 따위 내지 말고.
철학도 인간을 위해 있는 거다.
인간을 고귀한 존재로 만드는 데 이바지해야.... 뭐, 거기까지는 안 가더라도 아무튼 자신이 가치 있는 존재이며 자신의 삶이 의미가 있다는 생각을 하는 데 이바지해야 철학도 존재 의미가 있다.
기껏 형이상학적인 사고를 펼쳐 봤더니 우리의 삶이 근본적으로 무의미하다는 결론으로 이끄는 철학은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 오늘의 결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