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부산에 놀러갔다가 다음 일정까지 비는 서너 시간을 영도에서 보낸 적이 있다.
영도도 나름 관광지 소리를 듣는 곳이니 잘 찾아 보면 스탠다드한 볼거리 코스들이 있으련만, 나는 엉뚱하게도 별다른 특색도 없는 동네에서 버스를 내려 골목 사이로 접어들어가 보았다.
이건 내 오랜 버릇이다.
차를 타고가다가 아무 데서나 내려 낯선 동네의 골목길을 어슬렁거리며 눈에 익지 않은 풍경을 즐기는 일을 나는 썩 좋아한다.
이 날은 영도의 관광 구역으로 가는 길에 스쳐가는 변두리 동네에 불과하였다가 어느 날 갑자기 치킨집이며 카페며 부동산 따위가 우루루 들어서고, 그런 개발 바람이 또 갑자기 뚝 그친 상태에서 도로 침체 모드로 들어간 듯한 그곳의 어설프고도 속악스런 분위기가 내 흥미를 자극하였던 것이다.
어설프면 어설픈 대로, 세련되면 세련된 대로, 조야하면 조야한 대로, 아늑하면 아늑한 대로, 살풍경하고 을씨년스러우면 살풍경하고 을씨년스러운 대로.... 제 나름의 분위기를 지닌 모든 장소를 나는 좋아한다.
그 모두가 다양한 삶의 측면들인 것이다.



도로변에서 샛골목으로 빠져 완만한 내리막길을 따라 내려갔더니 개천이 나타났다.
개천 건너편은 허허벌판이었고 경기장인지 운동장인지를 만드는 공사가 한창이었으나 내가 갔을 때는 해가 질 무렵이라 사람 그림자 하나 보이지 않았다.
어둑어둑한 저녁 하늘 아래 펼쳐진 공사장의 분위기가 그럴싸하여 나는 마침 갖고 있던 디카를 꺼냈다.
그런데ㅡ 그 넓은 땅 전체가 황량하고 적막한 분위기를 띠고 있어 아무데나 카메라를 들이대어도 그럴듯한 작품이 나올 성싶기는 하였으나, 또한 바로 그 때문에 카메라를 대체 어디로 향해야 할지 영 판단이 서지 않는 것이었다.
앵글을 조금만 옆으로 옮기면, 그리고 구도를 가로로 잡느냐 세로로 잡느냐에 따라서, 사진의 분위기 자체는 여전히 같을 테지만 나오는 결과물은 엄청 달라질 것이 틀림없었다.
그 멋들어진 풍경의 어디를 렌즈에 담고 어디를 잘라내야 할지 도무지 선택할 수 없었던 나는 이 날 결국 사진찍기를 포기하고 말았다.
아마도 바로 이 점ㅡ주어진 소재의 어느 부분을 버리고 어느 부분을 취할 것인지를 과감하게 결정할 수 있는 능력이 곧 프로 사진작가에게 필요한 자질이 아닌가 싶다.



전체와 부분의 관계라는 문제에 대해 시사점을 던져 주는 또 한 가지 사례를 들어 보겠다.
내가 어릴 때 우리집은 마산에서 비포장도로로 한 시간쯤 떨어진 예곡이란 시골 마을에서 양계장을 잠깐 했었다.
피시방 야간 카운터로 일하던 시절, 한 달에 두 번 있던 쉬는 날에 바람도 쐴 겸 추억도 더듬어 볼 겸 하여 몇십 년 만에 그곳을 일부러 찾아간 적이 있다.
한적하던 마을은 엄청나게 변해 있었다.
마을로 들어가는 도로변에는 식당이며 편의점들이 들어서고, 얼마 크지도 않은 동네 깊숙이까지 아스팔트가 깔리고, 한쪽에 공장이 들어서 개울가에 폐자재 무더기들이 쌓여 있었다.
그런 스산한 분위기 때문인지 봄이면 진달래를 따곤 하던, 그럭저럭 아늑하던 뒷동산도 이제는 볼품없는 잡목 덤불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마을 큰길에서 우리 양계장으로 빠지는 샛길이 있던 곳에 엉뚱하게도 집들이 들어서고. 기억에 없는 새로운 길들이 생기고.... 그 간의 변화가 하도 극심하여 크지도 않은 마을에서 양계장이 있던 자리조차 찾지 못한 채 귀로에 올라야 했다.



마산으로 돌아오는 버스 속에서 밤샘 근무의 피로가 몰려와 꾸벅꾸벅 졸다가 깨어났더니, 차는 어느 새 마산 시내로 들어와 있었다.
그런데 거기가 어디쯤인지 도무지 파악이 안 되는 것이었다.
우중충한 이층짜리 건물들, 먼지를 뒤집어쓴 간판들이 걸려 있는 초라한 상점들....

마치 예곡 나들이에서 내 어린 시절을 다시 만나지 못한 데 대한 보상이기라도 한 양 6.70년대스러운 풍경들이 차창 옆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마산에 이런 곳이 있었던가?
한참 뒤에야 그곳이 옛 중앙극장 자리를 지나 포교당 쪽으로 가는 사이에 있는, 츄리닝 가게들이 밀집해 있는 지역임을 께달았다.
하긴 그 일대는 묘하게 그곳만 비껴 상권이 생기는 바람에 예전부터 낙후된 분위기이기는 하였다.
버스 노선이 그 지역을 통과하게 된 것도 한 십 년은 된 일이지만 어쩌다 보니 나는 단 한 번도 그 노선을 이용할 일이 없었더랬다.
몇십 년을 마산 토박이로 살아와 내 손바닥을 들여다보듯 눈에 익은 풍경인데도 같은 곳을 차로 달리게 된 것만으로 알아보지 못했던 것이다.



3.15 탑을 지나 경남 데파트 부근에서 차를 내렸다.
여기서부터 집까지는 버스로 두 코스나 되는 가파른 오르막길을 올라가야 한다.
옆으로 차들이 지나가는 큰길을 피해 조금 둘러가는 주택가 쪽 길을 택해 가는데, 지금까지 무수히 지나쳤던 그 동네가 이상하게도 처음 보는 것처럼 낯설게 느껴지는 것이었다.
이건 그날따라 약간 분홍빛을 띠고 있던 하늘 탓도 있을 것이고 좀전의 잠기운이 아직 채 가시지 않은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그보다도 그 전에는 차를 타고 지나친 적이 없던 곳을 방금 차를 타고 지나왔기에, 그 낯선 경험의 연장선에서 그곳을 바라보게 된 점도 한 요인으로 작용하였던 게 아닐까?
같은 대상도 그것이 놓인 맥락이 달라지면 주는 느낌이 달라지는 법이니까.


이왕에 부산 얘기로 글을 시작했으니 마무리도 부산 얘기로 지을까 한다.
나는 부산 나들이가 꽤 잦은 편이다.
마산에서 부산까지의 차비가 꽤 싼 편이라 돈을 얼마 들이지 않고도 대도시의 분위기를 맛볼 수 있는 것이다.
사상 터미널에 도착한 다음 시내버스로 서면이나 범일동까지, 가끔씩은 남포동이나 보수동까지 가는 것이 내 부산 나들이의 일반적인 코스다.
사상에서 범일동 쪽으로 가다 보면 차선이 직각으로 꺾이는 지점이 있다.
그런데 묘한 것이, 사상에서 거기까지 갈 때는 시간이 꽤 걸리는 것 같은데, 범일동에서 돌아오는 길에 그곳에서 사상까지 걸리는 시간은 그 절반 정도로 짧게 느껴지는 것이었다.
아니, 묘할 것도 없다.
두 지점 사이의 거리를 반으로 나누면 앞 절반은 실제보다 길게 느껴지고 뒷 절반은 짧게 느껴지는 건 누구나 겪어 본 일일 것이다.
아니면, 나만 그런가?
같은 대상이 그 놓인 맥락이 달라지면 아주 다른 성질을 띠게 된다는 건 나의 망상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