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필의 노래 중에 '촛불'이란 곡이 있다.
이 노래를 들을 때마다 나는 알 수 없는 위화감을 느끼곤 했었다.


위화감이라는 게 그렇다.
뭔가 딱 들어맞지 않아 부자연스럽기는 한데 그 원인이 무엇인지 알아채기는커녕 보통은 자신이 위화감을 느끼고 있다는 사실조차 깨닫지 못하는 것이 위화감이다.
위화감의 원인이 드러날 때에야 비로소 '아, 그 동안 내가 위화감을 느꼈었구나' 하고 깨닫게 되곤 한다.
나도 그랬다.
저번에 버스를 타고 가다가 버스 기사가 듣는 라디오 방송에서 '촛불'이 흘러나오는 것을 들었을 때 불현듯 그 노래를 들을 때마다 뭔가가 들어맞지 않는다는 느낌을 내가 받곤 했음을 깨닫는 것과 함께 그 원인이 무엇인지 알아차릴 수 있었더랬다.
내가 느끼는 위화감은 노랫말에서 나오는 것이었다.



그대는 왜 촛불을 키셨나요
그대는 왜 촛불을 키셨나요
연약한 이 여인을 누구에게 말할까요
사랑의 촛불이여 여인의 눈물이여
너마저 꺼진다면 꺼진다면 꺼진다면

바람아 멈추어라 촛불을 지켜다오
바람아 멈추어라 촛불을 지켜다오
연약한 이 여인을 누가 누가 누가 지키랴


이 노랫말은 남녀의 사랑을 얘기하고 있는데, 촛불이 어떻게 사랑에 대한 메타포가 될 수 있을까?
촛불을 켜는 일이 어떻게 여인을 사랑하는 일이 될 수 있으며, 촛불이 꺼진다고 해서 여자가 눈물을 흘릴 필요가 왜 있을까?
의식 위로 떠오르지는 않았지만, 대충 이런 의문을 지난 몇십 년 동안 이 노래를 들을 때마다 나는 느끼곤 했던 것이다.
그야 메타포의 세계에서는 일견 서로 동떨어져 있는 듯한 것들 사이에서도 얼마든지 유사성을 발견할 수 있으니 작사가가 사랑과 촛불을 등치시키지 말라는 법도 없기는 하다.
하지만 왜 하필 촛불일까?
촛불을 켜는 것을 사랑이 싹트는 일에 비유하고 촛불이 꺼지는 것을 사랑이 식는 것에 비유하는 건 너무 인위적인 설정 아닌가.


그런데 그날따라 퍼닝(punning)을 즐기고 싶어졌는지, 문득 촛불을 좆불로 바꿔 들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떠오르는 것이었다.
그러자 갑자기 모든 아귀가 착착 맞아떨어졌다.
그러니까 사랑의 촛불이란 남자의 발기 현상을 가리키는 것이다.
사실 양초를 보며 길쭉한 것이 꼭 남자 성기 모양 아닌가.
노랫말 속의 여인이 촛불이 꺼졌다고 눈물을 흘리는 것도 당연하다.
남자의 음경이 시들면 여자들로서는 슬플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이 노래는 섹스 도중에 남자의 물건이 시들어 버린 것을 안타까워하는 여인의 심정을 표현한 노래인 것이다.


물론 좆불이란 단어는 국어사전에 없다.
그러나 남자의 발기 현상을 불과 연관짓는 건 자연스러운 연상작용 아닐까 싶다.
사실, 발기한 음경의 귀두는 열을 받아 벌겋게 달아오른 것처럼 보이지 않는가.
부싯돌로 불을 붙이는 동작도 마치 자위행위와 흡사하고 말이다.(정확한 기억은 아니지만, 불의 기원이 신의 용두질에 있다고 설명하는 어느 원시 부족의 신화도 들은 적이 있는 것 같다.)


작사가가 의도적인 장난을 쳤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기에는 너무 위험한 장난이다.
아마도 그는 연인들의 로맨틱한 시간을 장식하는 소도구인 촛불로써 쉽게 사랑의 감정을 품었다가 쉽게 식어 버리는 남자의 이기적인 속성을 비유하였을 뿐일 것이다.
하지만 그의 무의식 속에서는 촛불에 남근을 대입하는 연상작용이 진행되었음에 틀림없다고 나는 생각한다.
의식적으로 한 일은 아니다, 무의식적으로 진행된 일이다.... 하고만 생각하기에는 2절 노랫말 속에 나오는 '철없는 촛불'이란 표현이 함부로 여자와 몸을 섞고 나서 뒷감당도 하지 않는 남자의 경박함을 너무 딱 정확하게 가리킨다는 감이 있긴 하지만.